코르크와 스크루 캡의 사용에 관한 찬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주요 와이너리들은 스크루 캡 사용이 매우 자연스러워졌고 구대륙의 와이너리들도 실험적으로 스크루 캡을 사용하고 있다.
[ St. Hallett 의 수석 와인 메이커 Stuart Blackwell 씨]
이런 상황에서 흥미로운 테이스팅 행사가 열렸다. 수입사인 수석무역과 Indulge 와인 컨설팅, WSET에서 마련한 ‘코르크와 스크루 캡이 레드 와인에 미치는 영향’ 이란 주제의 테이스팅 행사였다.
코르크를 사용한 레드 와인과 스크루 캡을 사용한 레드 와인을 비교 테이스팅 함으로써 어떤 와인이 더 좋게 느껴지는 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수석무역에서 수입하는 호주 St. Hallett 의 수석 와인 메이커 Stuart Blackwell 씨가 직접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1972년부터 St. Hallett 에서 일하고 있는 Blackwell 씨의 말에 따르면 St. Hallet 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기본적으로 스크루 캡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코르크를 선호하는 곳으로 수출하기 위해서 코르크도 사용하고 있단다. 이 테이스팅을 위해 Blackwell 씨는 같은 와인이지만 마개만 다른 와인 즉 코르크와 스크루 캡을 사용한 와인을 직접 가지고 왔다.
St. Hallet 은 남호주의 Barossa Valley 에 자리잡고 있는 와이너리로 쉬라즈를 기본으로 한 와인은 물론 리슬링과 쉬라즈, 그르나슈 블랜딩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테이스팅에 쓰인 것은 쉬라즈 100%의 St. Hallett Faith Shiraz 2004 로 프랑스와 미국산 오크통에서 12-16개월 동안 숙성시켰다.
테이스팅 방식은 참석자 40명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눠서 코르크 사용 와인 3병, 스크루 캡을 사용한 와인 3병, 총 6병의 순서를 섞어서 블라인드로 테이스팅 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와인이라도 병마다 컨디션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A, B 그룹은 서로 순서가 다르게 6개 와인을 테이스팅하게 된다. 부케와 맛으로 점수를 매기고 총합으로 1등부터 6등까지 순위를 매긴다.
6개의 시음잔에 준비된 와인들… 약간 긴장감이 돈다. 테이스팅 하면서 사실 같은 와인일까 싶을 정도로 느낌이 다른 와인도 있었고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해 점수를 매기는데 고심이 되는 와인들도 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A 그룹, B 그룹에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1등이 된 것은 스크루 캡을 사용한 와인이었다. 2등은 스크루 캡과 코르크를 사용한 두 와인이 공동으로 랭크 되었다.
사실 절대적인 결과로 볼 순 없지만 전부터 알려졌던 것 -블라인드로 테이스팅 했을 때 스크루 캡과 코르크를 사용한 와인의 차이를 모르지만 병을 공개하면 코르크를 사용한 와인이 더 맛있다고 답한다는 것- 과 일맥 상통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정직하다. 시음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스크루 캡을 사용했다는 와인이 좀더 생생하고 과일의 풍미나 타닌이 강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코르크를 사용했다는 와인은 오크의 풍미가 좀더 강했고 어떤 것은 산화된 듯한 느낌도 있었다.(사실 산화가 시작된 와인이라고 했다.)
Stuart Blackwell 씨는 15년 동안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견해를 얘기했다. 코르크를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은 첫번째 TCA 현상이다. 오염된 코르크가 와인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와인에서 곰팡이나 오래된 버섯, 젖은 마분지 같은 향이 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폐해 중 하나다.
둘째는 과도한 산화 현상으로 와인에서 아로마나 부케 같은 향들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코르크 원인으로 와인에 문제가 발생하는 비율은 보통 15%~20% 정도나 된다.
그는 잘 만든 와인이 단순히 마개 때문에 변질된다는 것은 와인 메이커로서 용납이 안되며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크다고 주장했다. 와인 자체의 품질 평가를 받고 싶으며 처음 병입되었을 때의 와인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산물인 코르크는 어쩔 수 없이 같은 와인일지라도 다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스크루 캡은 와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테이스팅했던 St. Hallett Faith Shiraz 2004]
코르크를 사용한 와인은 오랜 세월동안 코르크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산소와 접촉해 숙성되면서 여러 변화의 맛을 얻는다. 이렇게 와인의 미덕은 숙성을 통한 변화에 있다.
반면에 산소의 접촉을 완전 차단하는 스크루 캡은 변화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Blackwell 씨는 와인을 병입하기 전에 미리 어느 정도 산소를 와인에 용해시킨다고 한다. 공기(=산소)는 와인의 최대 적이면서도 최고의 친구이기도 하다.
산소가 부족한 와인에는 달걀 썩은 듯한 냄새가 나는데, 스크루 캡을 사용한 와인에서도 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와인에 용해시키는 산소의 양이 충분하지 않을 때 생기지만, 이 또한 충분히 양조자가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테이스팅을 통해 충분하지 않지만 스크루 캡의 장점 혹은 와이너리가 선호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취향의 문제가 남았다. 개인의 입맛은 천차만별이고 상황에 따라 같은 와인이라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확실히 스크루 캡의 우위성이 인정되고 있지만 좀더 복합적인 맛을 가진 레드 와인의 경우는 쉽게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다. 여러 해 동안 익숙해진 맛과 습관을 바꾸는 것은 힘들 수 있다.
점점 와이너리들은 리스크를 줄이는 쪽으로 스크루 캡을 선택하고 있다. 코르크 아래에서 변화를 겪은 와인이 어떤 맛일지 예상하기 힘든 것에 반해 스크루 캡을 사용한 와인은 각 빈티지의 품질을 변함없이 간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