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태양·천연수 이용 최고급 제조…'세계 5대 와인 강자'로 부상
▲ 지난 6월 열린 와인 시음회장에서 참가자들이 다양한 아르헨티나산 와인을 테스트 하고 있다. |
40ℓ. 아르헨티나 국민 한 사람의 연간 와인 소비량이다. 2002년 약 15억7960만ℓ의 와인을 생산해 낸 아르헨티나의 전체 인구는 3800만명이 넘는다. 40ℓ는 750㎖짜리 와인 53병이 된다.
하지만 과거엔 이보다 더 많이 마셨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아르헨티나 현지의 와인 소비량 표를 보니 1970년대엔 질보단 양이라는 듯 1인당 연간 소비량이 70~80ℓ에 이르렀다. 그간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대부분이 국내 수요로 소비되었기 때문에 해외로 와인을 수출한다는 컨셉(개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아르헨티나 와인시장에 변화가 온 것은 10여년 전인 1990년대부터. 무엇보다도 그간 아르헨티나인들이 가졌던 질보다 양이라는 와인 컨셉이 점차 고급와인을 애호하는 분위기로 변해갔다. 양질의 고급와인을 선호하는 애호가들이 늘면서 와인을 통한 고급 사교문화도 형성되어 갔다.
반면 질로 승부하는 프레미엄 와인을 찾는 이들이 늘어감에 따라 1인당 와인 소비량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 남겨진 와인을 처리하는 데 곤란을 느끼게 된 아르헨티나 와인 제조사들은 해외 와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일찍부터 해외 와인시장을 공략한 이웃나라 칠레보다는 한참 늦은 셈이다. 칠레는 국내 와인소비량이 생산량의 50%에도 도달하지 못해 해외시장 개척을 서둘렀다.
아르헨 와인 제조사 1221개
1990년대 정치적·경제적 안정은 아르헨티나에 많은 해외자본 유치를 유도했다. 국내 와인 시장에도 약 12억~13억달러의 해외 자본이 투자되었다. 세계 최고의 와인 메이커들을 영입하고, 와인 제조 신기술을 도입하는 데 힘을 쏟은 1221개의 크고 작은 와인 제조사들의 땀은 아르헨티나를 신흥 와인국으로 발돋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칠레, 호주, 미국, 남아공, 뉴질랜드 등과 더불어 급부상하고 있는 신흥 와인국 중의 하나이다. 유럽 전통 와인국들에 대항하고 있는 신흥 와인국 대열에 뒤늦게 합류했지만, 사실 아르헨티나 와인 역사는 신흥국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와인을 맛보고 있는 시음회장의 모델. |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르헨티나는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에 이어 세계 5대 와인 생산국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가운데 약 70%가 아르헨티나 서쪽에 위치한 멘도사주에서 생산된다. 안데스 산맥을 끼고 있는 천혜자원의 무공해 청정지역인 멘도사주는 환경적인 면에서 와인 생산지로 최적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포도밭은 양질의 태양을 가득 받고,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멘도사강으로부터 컴퓨터화된 관개시설을 이용해 천연수를 받는다. 와인전문가 구스타보씨는 "멘도사에선 공해가 없는 친환경적 자연 안에서 포도가 재배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최대 와인 생산지답게 멘도사주는 남반구의 가을 추수기인 3월에 '포도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한다. 축제기간 동안엔 15만~20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아름다운 '포도아가씨' 선발을 참관하기도 하고,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온갖 색색의 퍼레이드도 관람한다. 멘도사주의 포도축제는 관광상품화되어 관광수익을 올려주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멘도사주에는 와인의 본고장임을 과시하듯 다른 주에선 볼 수 없는 2년제 와인양조학과(Enology)가 이곳 대학에 있다. 콩그레소(Congreso)대학, 돈보스코(Don Bosco)대학, 후안 아구스틴(Juan Agustin)대학에선 와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또 국립 와인박물관도 있어 5000여종의 와인 관련품들도 볼 수 있다.
'말벡·토론테스'는 최상급 와인
▲말벡 품종으로 만든 레드와인 |
멘도사주에서 생산되는 말벡(Malbec) 품종의 레드와인과 토론테스(Torrontes)종의 화이트 와인은 전세계적으로 그 향과 맛에서 최상의 와인으로 쳐준다. 레스토랑 이피카 빌리지(Villa Hipica)에서 소믈리에(와인감별사)로 일하는 안드레스(29)씨는 "아르헨티나 토론테스 품종은 향이 꽃향 등을 담고 있는 최고의 와인 품종"이라고 격찬했다.
와인전문가들이 세계 최고 중의 하나로 꼽는 멘도사주 말벡 레드와인은 붉은 앵두색을 지녔으며, 향은 자세히 맡아보면 자두맛, 건포도맛, 커피, 초콜릿, 바닐라, 바이올렛 꽃향을 지녔다고 한다. 토론테스종의 화이트 와인은 초록빛이 약간 감도는 금색으로, 향은 장미, 오렌지 껍질, 복숭아, 꿀, 금못향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르헨티나가 와인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엔 여러 와인 제조사의 노력이 담겨 있다. 노르톤(Norton)사의 경우 세계 40여개국으로 와인을 수출하고 있으며, 최근엔 중국에서 재배용 포도밭을 샀다. 니에토 세네티너(Nieto Senetiner)사는 연간 1200만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멘도사주 포도원에서는 '와인창고투어' '포도 가지치기' '포도 수확하기' 등 프로그램을 통해 와인 애호가들을 맞고 있다. 이밖에 유기농밭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와인을 생산해 생산량의 75%를 벨기에, 미국, 독일, 영국 등으로 수출하는 중소 와인제조사도 있다.
신흥 와인국으로 성장한 아르헨티나는 2페소(800원)부터 시작되는 저가의 테트라팩 와인부터 생산량이 한정된 양질의 고급 프리미엄 와인까지 모든 종류의 와인을 생산해 내고 있다. 1200여개의 와인 제조사들이 최상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정열과 땀을 쏟고 있는 만큼 아르헨티나는 머지않아 신흥 와인국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와인국으로 부상할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소믈리에 학교도 급증
와인산업이 성장하면서 갖가지 와인 행사도 열리고 있다. 지난 6월에 열린 와인페스티벌 '와인루트(Wine Route)'에서는 3일 동안 50개의 와인사가 참여해 350종의 와인을 선보였다. 15페소(6000원)의 입장료만 내면 입구에서 빈 와인잔을 하나 들고 원하는 와인을 맘껏 음미할 수 있어 6000여명의 와인 애호가들이 다녀갔다.
이곳을 찾은 유대계 아르헨티나인 엘렉산드리(21)씨는 "와인의 깊은 향은 여인과 같다"라는 묘한(?) 말을 던졌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저곳 기웃대며 심각하게 와인을 받아 음미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주최자 파브리시오씨는 "아르헨티나 와인시장은 점점 대중화, 고급화되어 가고 있다"면서 "늘 존재해왔던 와인의 마법을 많은 이들이 이제서야 알게된 것일 뿐"이라고 언급, 와인에 대한 이곳 현지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와인학교에서 와인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 |
와인이 대중화되면서 최근엔 소믈리에가 되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는 소믈리에 양성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수강생들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통 15개월 코스이며 수강료는 한 달에 약 180~240페소(7만~10만원) 정도 한다.
학원에서 만난 수강생 곤살로(33)씨는 아르헨티나 남쪽 지방으로 가서 작은 레스토랑을 열고 조그만 와인바를 곁들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건축가 하비엘(34)씨는 요리를 배우던 중 와인에 반해 소믈리에 코스에 등록한 케이스. 그는 "요리사나 소믈리에로 일하게 될 확률은 없지만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다 좋아하기 때문에 요리와 와인 공부가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출처 : 7월 24일 1763호 주간 조선 국제면)
- 모니카인터내셔날 대표 모니카 정 -
부에노스아이레스= 모니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