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구름위의 산책" : 시음회에 관하여.
천상의 시음회였다고나 할까 ? (무역센타 35층의 높이를 상상할 것)
신진들의 신선한 과일향과 노장의 원숙한 경험과 입담이 부께 Bouquet 로 표현되었던 모임이었다.
세용, 형욱의 구수한 만담은 지영, 인순의 드높은 학구열의 열기를 식혀 주었으며, 성순, 희숙이 간간히 거드는 마음씀씀이 시음회의 칼로리를 높여 주곤 했다. 진식 훈장의 조언은 고비고비마다 좌중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리저리 학처럼 다니며 서빙을 도와 주는 양수 또한 그 겸손과 직업의식이 돋보였다.
이 모든 것과 함께, 학균, 학립, 지윤이 만나 이루는 서빙의 간결함과 애뜻한 성의 또한 결정적으로 시음회의 품위를 한껏 드높여 주었다.
지윤낭자의 그 순박한 미소와 수줍음은 그의 희생과 봉사정신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모임의 차원을 '천상 잔치'로 승화시켜준 수호천사의 모습이었다.
끝남을 아쉬워 하며 남아 정리하는 Final (커피향) 도 길었고, 잔향 다섯이 돌려가며 테이스팅한 인터콘의 소면 또한 그랑크뤼급이었다.
II. "흑인 올페" : 와인에 관하여.
남아공의 화이트 와인이 '흥미'로울 것이라는 주변의 얘기를 들은 터라 기대가 컸었다.
2000, KWV, Robert's Rock, "Chenin blanc/Chardonnay", 12.5% vol.
과연 Chenin blanc 과 Chardonnay 의 블랜딩 와인은 향기는 아직 꽃피지 않았으나 (꽃필까요?…) 맛에서의 개성미가 돋보였다. 쌉쌀하게 강하게 솟구치는 단순함에는 그 어떤 야생성마저 감돌았다. 아프리카의...
1999, Carhedral Cellar, Chardonnay, 13% vol.
두번 째의 Chardonnay 와인은 색깔이 상당히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도 향기가 뛰어 났다. 바닐라와 코코넛이 바나나향과 만나 이루는 '오크 과일'의 궁합이 뛰어났고, 간간이 터치를 주는 싱싱한 오이향도 깔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시 입맛은 섬세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강하고 센 인상을 남겨주고 만다. 내용물이 부족하여 알코올 균형을 잡아 주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1996, KWV, Carhedral Cellar, "Cabernet-Sauvignon", 12% vol.
레드와인은 일단 색상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전반적으로 색깔은 진하나 그 색상이 탁하고, 고동색 뉘앙스가 우러 나오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생기있게 반짝이며 자신의 산도와 건강함을 자랑해야 하지 않는가. 윤택한 외모는 모든 먹거리가 갖추어야 할 기본이라 생각된다. 사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있기에…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공통점은 웬지… 꺼림직하다.
남아공 와인제조 기법상의 특징이련가, 아니면 한계련가…
현 단계에서는 그냥 하나의 '개성 Caracter' 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화이트 와인과 마찬가지로 레드와인 또한 향의 독특함과 풍부한 볼륨감이 눈길을 끌었다. 오죽했으면 세용 도령이 코로 ****을 느꼈을까!
"조금만 더 다듬으면" 보르도의 향기와도 별반 다를 바가 없겠다.
그렇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단지 그것이 힘들 뿐이지.
너무 과하지 않게 오크통을 사용하기.
오래된 오크통을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기.
메를로를 너무 익히지 않기.
덜익은 카베르네 소비뇽에 주의하기 등등만 잘 지키면 결국 보다 힘있고 섬세한 하모니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코에서 그나마 느끼는 "오크 성전 Cathedral Cellar" 의 오르가즘이 입에서 이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때로는 포도주의 품질에 비해서 오크를 과하게 사용한 느낌을 받는다. 아니면, 오크칩을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고 옆에 있던 지영이 거든다.
오크칩. 이건 마치 우리가 티백 현미녹차를 마시듯 오크칩을 망사 봉다리에 넣어 담가 향을 우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일 뿐.
때로는 해묵은 오크 탱크를 너무 오래 사용한 느낌도 있다. 오크가 주는 삼나무향과 바닐린 향이 사라지고, 대신 어떤 '묵은' 향이 날 수 있는데… 뭔가 산뜻하지 않은 느낌.
1997, KWV, Carhedral Cellar, "Triptych", 13% vol.
Triptych. "트립티크" 라고 읽는다.
다른 와인들은 레이블의 바로 그 위치에 품종 이름이 적혀 있었기에, 이것도 품종이름인 줄 알고 욜심히 찾아 보았는데…
그러나 그 이름은 너무도 생소했고 사전에도 나오지 않았다.
포도 품종 이름은 아니고, 하나의 닉네임, 브랜드가 아닌가 싶다. 어디서 기원한 이름일까? 아프리카의 한 종족 이름일까?
급기야 학균 사또가 즉시 남아공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카베르네 소비뇽에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을 블랜딩한 와인을 일컫는다고. 세가지 품종의 트리오!
신선한 충격이다. 그렇다면 보르도 스타일 이지 않은가?
위에서 레드와인의 전반적인 색상의 탁함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 와인만은 예외였다. 암홍색과 오렌지빛 뉘앙스가 산뜻하게 마지막 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향과 맛에서도 기본적인 조화와 균형이 보이는 행복감을 맛 볼 수 있었다. 단지 힘이 좀 부족한 것이 느껴지나… 디켄팅을 시켰더라면 어땠을까?!
III. 에필로그 : 남아공 와인의 위상
국내에도 신세계 와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 저변에는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들이 많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와인수입회사가 '생소하나 다양한' 와인을 수입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을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 볼 때, 한독와인이 이번에 남아공의 KWV 와인을 수입하기로 한 결정은 한국 와인소비 문화의 새로운 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로 보여 진다.
남아공 와인이 '고급와인 Fine wine' 의 범주에 등장한 것은 대략 1970년대이다. 캘리포니아와 호주 와인의 성장으로 불붙은 신세계 와인의 컬리티 행진이 드디어 이 검은 대륙에도 불심지를 지폈다. Paarl 과 Stellenbosch 를 핵으로 하는 남아공 와인 기술은 국영와인공사 KWV 와 Rustenberg 등 유명 메이커를 중심으로 급신장하고 있다.
사실 18-19세기에 남아공의 디저트 와인 Muscat de Constantia 는 유럽의 왕실에 공급되었으며, Yquem, Tokaji 등과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남아공 와인의 잠재 가능성은 크다고 볼 수 있다.
신기술의 도입과 과감한 장비 교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출 조절을 통한 양질의 포도 생산이 남아공 와인 품질 향상의 중요한 숙제라고 본다. 물론, 달린 포도 10 송이 중에서 5 송이를 솎아내려는 '인식의 전환'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지난 와인재배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만…
벵골라 한류가 가져다 주는 생기가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열기를 식히며 배출해 낼 또 다른 '그랑크뤼'를 기대해 본다, 또릿또릿한 올페의 눈망울을… !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