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어떤 이가 깡트냑 마고 지역의 한 3 등급 샤또의 와인을 `수퍼 쎄컨드 (Super Second)`라는 명구로 불렀다. 2등급도 아닌 3등급 샤또의 와인이 이미 수퍼 쎄컨드의 자격을 성취한 것이다.
그 샤또의 이름은 팔메(Palmer)이며 이곳의 1961년산 와인이 수퍼 세컨드라는 수식어를 부여 받았던 것이다. 1961년산은 포도액이 와인으로 발효되자마자 일등급에 버금가는 와인이라는 평이 여기저기에서 나와 너도나도 이를 사겠다고 나서서 가격이 급등했으며, 그 인기가 가히 전설적이었다.
그후에도 샤또 팔메 1961년산의 명성은 크리스티(Christie`s) 와인 경매장에서 여러 차례 재평가되게 되는데, 이곳에서도 팔메의 1961년 와인이 계속해서 매독의 일등급 와인과 리보네 와인과 대등한 수준의 가격에 팔린 것을 보면 최초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1961년산 샤또 팔메의 품질과 명성은 한순간에 이룩된 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샤또 팔메의 1950년대산 와인들은 그 품질이 대단히 좋았고 60년대의 것들도 이에 버금가게 좋은 것들이 생산되었다. 1970년에 샤또 팔메에서는 아주 좋은 와인을 내놓았고, 이에 1966년산이 비교되는 것을 보면, 이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생산되었을 와인들의 우수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팔메의 이러한 시기가 샤또 팔메의 길 건너 이웃의 이름난 샤또는 쇠퇴하고 있을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샤또 팔메는 마고 지역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그 맥을 최고의 와인 메이커들을 충분히 기용함으로써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인근 지역 샤또들이 새로운 기술을 많이 도입하고 발전을 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명백한 2인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샤또 팔메1 의 역사는 찰스 팔머(Charles Palmer) 장군으로부터 시작한다고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찰스 팔머는 1777년 영국의 에이본(Avon) 주의 온천 도시인 바스(Bath)에서 시장 직을 맡고 있던 존 팔머(John Palmer)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튼(Eton) 고교와 옥스포드(Oxford)의 오리엘(Oriel)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10기병 연대에 입대한 고집이 세고 야심찬 군인이었다. 진급에 진급을 거듭하여 대령이 되었을 때 그는 섭정왕자의 전속 부관이 되기도 했다. 또한 외모가 뛰어났던 그는 매우 사교적인데다가, 교양 있는 사람이어서 모든 영국 상류사회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 무렵, 당시 영국군의 육군 소장이었던 팔머는 꼬박 3일이 걸리는 리용에서 파리의 여행 중에 한 아름다운 여인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가 만났던 여인은 다름 아닌 가스크(Gascq)가의 미망인 잔느(Jeanne)였다. 그녀는 보르도의 훌륭한 포도 농장을 당시 시가의 사분지 일의 헐값으로 급히 팔기 위해 파리로 가는 중이었고 이를 사게된 것이 바로 팔머 자신이었다.
팔머 장군이 샤또 드 가스크(Château de Gascq)를 10만 프랑이라는 적은 가격에 매입하기로 합의를 한 것은 1814년 6월 14일. 그후 40년이 넘도록 팔머 장군은 그의 재산을 농장에 투자하여 구입 당시 면적이 60헥타르였던 것을 3배에 가까운 162헥타르로 확장시켰다.
그는 또한 오래된 포도나무를 새 포도나무로 바꾸는 등 막대한 비용을 들여 투자를 했으나 그의 노력에 비해 소득이 극히 적거나 전연 없었다. 이러한 농장의 문제들은 그를 찌그러뜨리기 시작하였으며, 팔머는 관리인의 봉급도 주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급기야 그의 부인 메리 엘리자베스 앳킨슨(Mary Elizabeth Atkinson)과도 이혼을 하게 되면서 눈덩이 같이 불어난 빚 때문에1843년 파리에 있는 한 은행에 31만2천 8백40 프랑에 샤또 팔메 농장을 저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세상의 이목에서 사라져 1851년 4월 17일 사망하였다고 말하는 이들과 정확하지 않지만 Mayfair에서 가난하게 삶을 영유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이 되었건 멋지게 인생을 시작하고도 포도원과 와인을 사랑한 이의 말년이 이렇게 끝나야 했다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샤또 팔메의 역사는 그와 함께 묻히지 않는다. 1853년 포르투갈 유태계의 은행가 집안인 페리에(Pereire) 형제들이 샤또 팔메의 가장 좋은 85 헥타르를 은행으로부터 41만 프랑에 구입하였다.
새로운 주인 페리에 형제들은 팔메 장군보다 부자였고 사업수완도 능란해서 농장을 아주 잘 관리하여 모범이 되는 농장을 만들었으며 이들이 생산한 와인 또한 훌륭했다.
그리고 이들은 1860년대의 포도나무의 진디 병과 흰가루 병 병균에도 불구하고 포도 농장은 177헥타르로 확장하였다. 또한 1856년에는 건축가 뷔르게(Burguet)에 의뢰하여 현재 우리가 보는 우아한 샤또를 건축하였다.
그러나 페리에 형제들이라 하더라도 세계 1차 대전과 1930년대의 공항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들 또한 1938년 유명한 와인 거상 쉬셀(Sichel), 프레드릭 마러르 베쎄(Frederic Mahler-Basse), 페르난드 지네스테(Fernand Ginestet), 미아이에(Miaihe)에게 샤또 팔메를 양도하게 된다.
이 네 가문의 부단한 노력으로 샤또 팔메의 명성과 번영은 1970년대에 완전히 회복 되었고, 오늘날은 보르도의 가장 훌륭한 와인중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 샤또 팔메의 소유주는 쉬셀 가문의 주식회사 쉬셀과 말러르 베쎄 가문의 개개인(말러르, 그의 부인, 7자녀와 27손자녀)으로 되어 있다.
샤또 팔메를 이야기하면서 알랑 쉬쉘(Allan Sichel)의 이름을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와인의 탁월한 품질이 관리인이었던 피에르 샤르동(Pierre Chardon)과 그의 두 아들 끌로드(Claude)와 이브(Yves) 그리고 포도주 저장 창고와 농장에서 일하는 20여명의 농부의 헌신인 덕이라면 이 와인이 영국에서 누리는 특별한 인기는 쉬셀 가문의 영국 쪽의 보스였던 고 알랑 쉬셀의 열정적이고 열광적인 주장의 덕 때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는 영국민들에게 사업을 통해 샤또 팔메의 우수성을 전했으며, 팔메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전달하는 홍보대사격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샤또 팔메의 포도원과 떼루아(기후와 토양의 제반 요소들)를 살펴보자. 샤또 팔메의 포도 농장의 주요 부분은 샤또 마고의 남쪽과 지롱드 강 어귀에서부터 흘러 잔물결이 출렁대는 강변의 작은 고원에 위치한다.
샤또 팔메의 토양은 이웃 가론느와 도돈뉴 강에 규판석 석영같은 큰 자갈과 영암 자갈이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 된 제 3기층 지질이다. 이러한 자갈 퇴적 물로 형성이 된 언덕에 자리한 팔메 농장은 땅밑 수 미터까지 이르는 흙색의 규판 자갈, 황색과 백색의 석영, 홍, 녹, 청색의 석영암-백악질-석회암의 특별한 토양 구조의 덕을 본다.
팔메 농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도나무의 조림 밀도를 헥타르당 1만주로 하여 나무끼리의 경쟁을 조장하며 포도 나무의 뿌리들로 하여금 더 깊이 파고 들게 한다. 또한 비료의 사용은 최소화하며 토양의 상층토는 쟁기로 흙을 갈아 엎는 작업을 계속한다.
팔메 농장의 특이성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는 메독의 일부분 지방에 존재하는 해양성 국지 기후다. 이 같은 기후 지역에서는 봄에 비가 적게 내리고 따뜻하여 5월과 6월에 이미 꽃봉우리가 필 수 있을 정도다. 빠른 개화 시기는 물론이고, 여름과 가을이 뜨겁고 건조하며 일조량도 많아 포도 재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샤또 팔메의 농장의 총 면적은 52헥타르이며, 비교적 높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47%)와 같은 비율(47%)의 까베네 쇼비뇽 그리고 약 6%의 쁘띠 베르도의 포도 품종이 팔메의 특별한 스타일을 결정한다. 현재 와인 샤또 팔메(Château Palmer) 와 세컨드 와인인 라 레젤브 뒤 제네랄(La Reserve du General)를 생산하고 있는 것 외에 1998년부터는 알터 이고 드 팔메(Alter Ego de Palmer)를 생산 판매하고있다.
알터 이고 드 팔메(Alter Ego de Palmer)는 그 맛이 섬세하고 우아하며 팔메의 독특한 스타일로 만든 복합적인 향이 난다. 이 와인에 사용된 포도 나무의 평균 수령이 20년 된 것들이며 오크 통 숙성기간이 16-17개월로 20-25% 정도는 새 오크 통에서 숙성된다. 병입 후 2년이 지나면 마실 수 있는 와인이나 10~15년 더 숙성 시킨 후에 마셔도 좋은 와인이다.
반면 그랑 방(Grand Vin) 샤또 팔메에 사용되는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이 32년이며 오크 통의 숙성기간이 20에서 21개월로 새 오크통의 사용 비율이 45%이다. 이렇게 생산된 샤또 팔메는 전연 조약하지도 그렇다고 강건하지도 않다.
빈약한 해에는 질감이 모자란 듯하고 좋은 뽀이약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활력을 발견할 수 없지만 부드러운 과일 향과 틀림없는 제비꽃 향과 언제까지 기억에 남는 섬세함이 섞여 오묘함과 매끄러움이 있는 좋은 와인을 만들어낸다.
마고의 다른 우수한 와인처럼 활력이 넘치지도 않으며 질감이 대단히 충만하지도 않지만 더할 나위 없는 균형감이 있고 귀족적이며 숙성이 덜 되었을 때에도 마시기 쉬운 와인이다. 또한 숙성이 잘된 때에는 부드럽고 감칠맛이 풍부하며, 거의 벨벳같이 매끄러움과 우아한 부케 그리고 진하고 복합적인 과일향을 지닌 섬세한 여운의 와인이다.
[_이석기_]
1. Château Palmer에 자신의 이름을 부여한 영국인 장교 찰스 팔머. 그의 이름을 따라 이곳의 이름을 샤또 팔머라고도 불릴 수 있으나, 본 글에서는 프랑스 현지의 운영진들의 요구에 따라 샤또 팔메라는 이름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