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상적인 시음 조건
와인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최고 품질의 대표적인 와인을 되도록 많이 시음해 보아야 한다. 올바른 시음법을 배우려면 좋은 와인을 가지고 시작해야만 복합적인 부케(Bouquet)향이 무엇인지, 잘 숙성된 훌륭한 와인의 미묘한 감미가 얼마나 근사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시음 방법을 터득하고 와인에 대한 묘사에서 나오는 주요 개념을 잘 기억해 두는 것이다. 또 포도 품종, 와인 산지, 숙성법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한 기초가 확실해야만 와인 시음이 진정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가치 있는 와인 시음이 되려면 우선 여건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와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서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음하는 사람들이 없는 자리에서 와인을 잔에 따르거나 와인 병을 알루미늄 호일이나 종이로 싸서 서빙하고 시음가에게 그 와인의 포도 재배지역 및 포도 품종, 수확연도 등의 정보만을 주며 산지명이나 생산자, 기타 특징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면 안된다. 일단 레이블을 보게 되면 이미 반은 와인 감별이 끝난 셈이 되니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포도주 감별에 대한 목적이 있을 경우에 해당되는 조건이고 보통의 사교적인 와인 시음에서는 그럴 필요는 없다.
와인 시음을 하는 방은 햇빛이 많이 들어오고 특별히 눈에 띄는 색채가 없으면 좋다. 네온 빛은 눈의 착각을 일으켜 적포도주의 색깔을 엉뚱하게 변조시켜 버리며 보통 백열등 아래에서는 따스한 느낌의 붉은 빛 때문에 와인의 색이 미화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도 네온등 보다는 백열등이 낫다. 물론 이상적인 여건을 갖추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열성적인 시음가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나쁜 조명 아래에서도 자신이 인지한 바를 "상대화"시키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미심쩍은 경우는 와인을 창가로 가지고 가서 자연광아래서 관찰을 할 수도 있다.
한편 주방에서의 조리 냄새, 담배연기, 강한 향수 같은 이질적인 내음은 절대 피해야 한다. 전문적으로 시음을 하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향수를 뿌린 채 시음자 옆에 앉는 것은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와인을 시음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는 오전이다. 오전에는 미각 기관이 중성적을 뿐 아니라 휴식을 취한 후 이므로 집중해서 시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아침 식사를 마친 직후나 진한 커피를 마신 후는 피한다. 특히 시음 전에는 달거나 신 음식, 또는 계란, 민트(Mint), 후추가 들어간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미각 기관을 중성화하려면 물이나 빵으로 입을 씻어내는 방법도 좋은 예이다.
와인 잔은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식기 수납장에 장기간 넣어 둔 와인 잔은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시음할 와인을 약간 따라 잔을 헹구어 낸다. 시음할 때는 와인의 색과 냄새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찰이 용이한 잔을 택해야 한다. 유리가 두꺼운 잔이나 깔때기 모양 혹은 정교하게 세공(Carving)된 잔은 적합하지 않다. 프랑스의 '국립 원산지호칭 연구원(Institute National des Appellation d'Origin)'에서는 'INAO Wine Glass'라는 이상적인 잔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ISO(International Standard Organization)와인잔'도 시음에 이상적인 잔이다.
이상적인 시음 횟수는 시음자 개인의 숙련도에 따라 다르다. 와인 전문가들은 하루에 60~80회 정도의 시음을 하고 몇 시간 동안 200여 가지의 와인을 시음한 후에도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와인 시음은 아마추어에게는 불가능한 얘기이다. 그러나 시음하는 와인의 가지수가 너무 적으면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통의 아마추어 와인 애호가들은 9~12가지를 시음하는 것이 적당하다. 시음할 때는 한 모금 들이킨 와인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분석/평가가 끝나면 곧 바로 뱉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와인을 얼마 마시지 않아도 알코올의 작용 때문에 감각 기관의 인지 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