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초순, 마지막 포도주를 내리고 난 기쁨과 힘듦에 근 하루를 꼬박 쉬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달 중순 12년 된 나의 애마를 타고 뚤루즈를 거쳐 마르세이유를 지나 이탈리아 국경을 넘었다.
지중해변이라고는 하지만 해안 산맥과 알프스의 산자락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국경에서 3시간을 몰아, 높고 낮은 언덕을 수도 없이 지나 도착한 작은 마을은 알바(Alba) 라고 했다.
"심슨 가족"의 엄마 머리 모양을 한 지중해 삼나무(Cypress)가 정겹게 시골 촌가를 에워싸고 있는 곳.
그들의 어색한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긴 밤을 바르바레스코 와인을 마시며 보냈다. 그리곤 늦잠이 들어 뒷담의 강아지가 시끄럽게 짖어댈 때까지 단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분명히 시간은 9시30분쯤이었는데… 유난히 밖은 어두웠다.
"어~? 시계가 죽었나?… 분명히 밥을 줬는데…"
삐걱거리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본 순간.. 띠용~ @.@
그 진한 안개가 자욱히 온 마을과 산을 덮고 있었다.
"아… Nebbiolo … 의 고향에 왔구나…."
Pio Cesare 와인 메이커 디너
다시 2002년 2월로 돌아와서… 여기는 인터콘 그랑카페 비노텍.
디켄팅중인 Pio Cesare 와인의 시큼한 포도주향이 풍겨나는 가운데, 1881년부터 4대째 양조업을 이어온 이 가문의 현 소유주 Pio Boffa 씨와 와인애호가들이 모였다.
Boffa 씨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분이었다. 역시나… 거의 30분 넘게 진행된 그의 초도 연설은 이탈리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부터 Terroir, 양조까지… 자세하게 진행되었다.
드디어 테이스팅은 시작되고…
한 시간 전부터 브리딩(breathing) 된 와인이 디컨터로 서빙이 되었다. 사실, 디컨터로 서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해 본 사람만이 알지.
스테판은 특별히 Spiegelau 글라스웨어를 사용했다.
두 보르도 글라스에는 Gavi와 Barbera d'Alba를 받았고, Barbaresco와 Barolo는 버건디 잔에 서빙되게 하였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섬세한 Barbaresco와 Barolo를 위해서는 오히려 보르도 스타일의 잔이 나았지 않았을까 했다.
그럼 슈피겔라우 잔의 향을 따라 1999년의 그 피에몬테 마을로 여행을 떠나 보실까요~
테이스팅 : Piemonte 의 운치와 정감이…
2000, Gavi DOC
부끄러움을 머금고 있는 와인이라할까?
가벼운 노란색에 창백한 연초록빛 뉘앙스가 처연하니…
그 향의 싱그러움이 마치 햇과일을 따 담은 듯… 부드러운 리치향과 새큼한 복숭아향… 그리고 산사나무 꽃향기로 이어지는 팔레트의 전이도 기분이 좋다.
Cortese품종으로 만드는 이 스타일의 와인은 그 품질이 들쑥날쑥한데, Pio Cesare는 본연의 싱그러움은 살리고 과도한 산도는 감추는 지혜를 빌린 듯하다. 저온 발효 기법을 사용한 듯…
1998, Barbera d'Alba DOC, "Fides"
특별한 포도밭 이름이 붙어 있다. "Fides"는 라틴어의 "믿음" 과 "신뢰"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91년 Pio Boffa는 알바 마을의 한 쪽에 심어진 Nebbiolo를 뽑아내고 Barbera를 심었다 했다.
세상에나...!!
그 귀한 바롤로 땅에 네비올로만 심으면 Barolo DOCG가 되는 것을...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지혜와 도전정신을 읽을 수 있다. 사실 Barbera는 Piemonte 지역에서 특유한 개성을 형성한다. 마치 보졸레 땅에서 Gamay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같다.
진한 흑자두빛 칼라가 부끄럽지 않게 향도 진하며 농밀하다. 그윽한 오크향과 자주맛이 강하고, 멧집 또한 남못지 않다. 역시 "믿음"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듯.
레이블 디자인 또한 독특하다. 내 딴엔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이 동그란 동심원의 개수를 제대로 셀 수 있으면 취하지 않은 것이니깐, 차를 몰고 갈 수 있지 않느냐... 라고. (-_-)
빙글~빙글~ @.@ ... "아마~ 이랬을 것임~다 !"
1998, Barbaresco DOCG
일반적인 평가는 Barbaresco보다 Barolo를 쳐주지만, Pio Cesare의 와인은 난 (개인적으로) Barbaresco가 더 좋다. 자신을 더욱 잘 표현한 것 같다.
선명하고 깔끔한 색상하며, 부드럽고도 섬세한 향의 절제와 맛감이 전형적인 Barbaresco이다. 그래서 나는 Barbaresco를 "멋진 Chianti Classico의 업그레이드 버전" 이라고 비교해 본다.
무엇보다 촉촉한 오크의 느낌과 제비꽃향의 깊은 터치가 인상적이다. 탄닌은 비교적 녹아들은 편. 뒷맛은 과일향으로 끝나며 상큼한 산도로 마무리되고 있다.
1997, Barolo DOCG
Wine Spectator 지 선정 "2001년의 100개 와인" 목록에서 7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1997년은 특히 Toscana에서 최고의 빈티지 인데, 이는 Piemonte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Boffa씨의 설명.
색상 자체는 Barbaresco와 비교해 약간 깊고 탁한 듯 (진하다는 의미에서… ).
바롤로는 2가지 스타일이 있는 듯 하다.
하나는 우아한 이미지를 간직한 부드러운 바롤로, 주로 북서부 지역에서 나온다. 또 하나는 물론, 강건하고 기운 찬 스타일, 주로 남동부에서 생산된다.
그 이유는? 양조 스타일의 차이일수도 있고, 토양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터프한 벨벳 탄닌에 깊은 풍미가 그윽한 와인으로 5년 정도는 숙성시켜 주어야 "자아표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전통과 현대, 계승과 발전...
Pio Boffa 씨는 포도원의 설립자 Pio Cesare씨의 증손자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보통 외국에서는 성을 뒤에 쓰기에 뒷성이 같아야 하는데…증손자라면서… 성이 다르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물론 안 아프게 살짝!! ^^*~)
창립자 Pio Cesare는 Pio Giuseppe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은 Pio Rosy라는 딸만 있어서… 사위인 Boffa 가문의 성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Pio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서… 결국 Pio Boffa가 되었다.
그리고…옛날옛적 이탈리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성을 앞에 쓰고 이름을 뒤에 썼었는데, 지금은 다른 유럽나라들처럼 성이 뒤로 오게되었다는 것. 휴~ 이제 이해되죠??!!
할아버지의 이름을 손자가 쓰고..등등 서로 서로의 것을 공유하는 온정은 유럽인들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럽에서 7년을 살은 나도 우리 아들 이름을 지을 때,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 함자 중에서 각각 가운데 자 한 자씩을 따서 이름지었던 것이다.
이름 얘기 나온 김에 스테판의 와인 이름풀이 한번 들어볼까나??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바르베라…
이 동네 와인은 모두 <바>자로 시작하는 가벼~(Gavi)"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