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 피숑-롱그빌 꽁테스드라랑드라는 쎙 쥘리앙(Saint-Julien)과 쎙 램베르의(Saint-Lambert) 마을 사이에 자리한 라 바티스(La-Batisse), 라 바스티드(La Bastide), 라 바데른(La Baderne)이라고 불리우던 곳에 위치해 있다.
샤또 피숑-롱그빌 꽁테스드라랑드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명칭이나 때로는 피숑 라랑드 혹은 피숑 꽁테스라고 간단히 생략해서 부르기도 한다.
1855년 와인 등급 구분에서는 안타깝게 2등급 와인으로 분류가 되었지만, 일등급 와인 3개를 배출한 뽀이약 지역의 와인답게 그 품질과 명성이 여느 일등급 와인 못지않다.
실제로 일등급 와인의 품질이 그 기준에 못 미치는 해에도 일등급 품질의 와인을 생산해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와인이다.
피숑 가문의 역사는 중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와(Francois) 그리고 캐서린(Catherine). 피숑 가문과 바보리에 가문의 만남을 통해 1602년 베르나르 피숑이 태어나고, 베르나르는 다시 롱그빌 남작의 외동딸인 앤 다피(Anne Daffis)와 1646년 결혼을 한다. 이로써 피숑과 롱그빌 가의 만남이 시작이 되고 피숑 롱그빌 가의 와인의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롱그빌家는 보르도 의회의 의장을 여럿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따라서 앤 다피와 결혼한 베르나르 피숑은 두 번이나 약관 20세의 루이 14세 왕을 접대할 수 있었다.
1659년에 한번 그리고 그 다음 해 스페인의 필립 4세왕의 공주, 마리테스와 결혼하기 위해 생장 드 뤼즈(Saint Jean de Luz)로 가는 길에 한번 더 그를 대접했었다.
베르나르 피숑은 마르쟁의 약속을 따르기 위해 마지못해 결혼한 젊은 왕을 극진히 위로 하기위해 멋진 연회와 사냥 여행도 준비하고 보르도 롱그빌에 있는 그의 우아한 저택 The Cours du Chapeau Rouge(지금은 은행)에 루이왕을 초대하였다고 한다.
베르나르와 앤 다피의 둘째 아들 자크(Jacques)가 1649년 탄생하였고 그는 1694년 2월 9일 로잔 가문의 테레스와 결혼한 후 그의 아버지의 롱그빌의 남작 작위를 인계 받았다.
이 날짜로 피숑 가문은 둘로 나뉜다. 즉 맏아들인 프랑스와(Francois)의 피숑-파램피르(Parempuyre)와 둘째 아들인 자크의 피숑 롱그빌이다. 1731년 자크 피숑은 사망하고 자신과 같은 이름의 아들 자크에게 모든 것을 상속한다.
롱그빌 농장은 자크의 아들인 장 피에르(Jean Pierre) 피숑과 그의 아들 죠셉(Joseph)에게 인계되었다. 죠셉은 1755년 태어나, 1850년 그의 나이 95세로 사망하였다.
조셉은 1784년 페레당그라드(Pelet d`Anglade)家의 아가씨 나르본느(Narbonne)와 결혼하여 5자녀를 두었는데 맏아들인 라울(Raul)은 피숑 롱그빌의 소유주로 남작이 되었고 동생 루이는 결혼도 하지 못하고 1835년 사망하였다.
첫째 딸 소피는 수녀가 되었으며 둘째 딸 마리 로르(Marie Laure)는 1818년 라랑드(Lalande)家의 앙리 백작과 결혼하였고 셋째 가브리엘(Gabrielle) 역시 라보르(Lavaur) 가문의 백작과 결혼하였다.
그들 형제의 장자인 라울 역시 1819년 매제인 앙리의 누이 라랑드 페리시테와 결혼을 하였으니 가족의 혼인 관계가 얼키고 설켜서 좀 복잡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재산 상속법이 계정 되어 영국에서와 같이 토지가 후계자에게 전부 상속이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형제 자매에게 균등 분배 상속되었다. 작위 또한 장자에게만 대물림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형제에게도 아버지의 작위가 세습되었다.
그런 이유로 1850년 노 남작의 사망으로 피숑 그빌 농원의 2/5는(28 헥타아르) 두 아들에게 나머지 3/5(42 헥타아르)은 세 딸에게 상속되어야 하지만 자손들의 부재로 결국에는 두 자녀에게만 상속되었다.
즉 라울에게는 아들들의 몫이, 마리 로르에게는 딸들의 몫이 상속되었다. 이러한 두 재배지의 분리로 아들 라울에게 상속된 농원은 Château Pichon Longueville BARON 이 되고 딸 마리로르 백작부인에게 상속된 농원은Château Pichon Longueville-Comtesse de Lalande로 이 둘은 1855년 보르도 등급 분류에서 나란히 그랑 끄뤼 2등급에 책정되었다.
불행히도 이 두 자매 샤또에게는 직계 후손이 없었다. 라울의 피숑-롱그빌 라랑드 샤또는 같은 이름의 라울인 그의 친척에게 상속되었다. 그는 1694년 분가한 프랑스와의 피숑 파램피르가의 후손이며 이때 피숑 롱그빌의 남작 작위도 물려 받았다.
라랑드의 마리 로르 백작 부인 역시 후손이 없어 다른 라랑드가의 백작 찰스와 결혼한 질녀에게 유증으로 피숑-롱그빌 꽁테스드라랑드 샤또를 상속하였다. 마리 로르 백작부인은 그의 아버지를 닮아 90세의 수명을 넘겨 1882년 보르도에서 사망하였다.
라랑드의 찰스 백작 부부에게는 결혼을 하지 않은 장녀 앙리엣트(Henriette) 그리고 크르와家의 조셉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둔 차녀 딸 소피(Sophie) 둘 뿐이었다.
1926년 소피가 사망하자 그녀의 다섯 자녀들은 그들의 이모 앙리엣트와 함께 보르도의 와인 브로커인 미아이(Miailhe) 가문의 에두아르와 루이 형제에게 피숑꽁테스의 샤또와 모든 가구를 포함하여 칠십만 프랑에 매각하였다.
이들 형제는 1930년대에 인수한 샤또 팔메(Palmer)의 지분과 1966년에 취득한 샤또 도작(Dauzac) 그리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샤또 시란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9년 에두아르 미아이의 사망으로 재산을 정리 되었고 샤또 피숑꽁테스만 그의 자녀들에게 분리 상속되지 않고 단일 소유 샤또로 남게 되었다.
샤또 도작은 에드워드가 사망하던 해 상속세를 위해 처분하였고 샤또 팔메의 지분은 장녀 마담 모니크 시세르에게 넘겨졌고 샤또 시란은 아들 윌리엄 알랭에게 상속되었다.
그리고 피숑-롱그빌 라랑드 지분 중 에두아르 미아이 소유의 55퍼센트는 장군 헤르베 랭커생(Lencquesaing)의 미망인이 된 막내딸 미아이 에리안(May Eliane de Lencquesaing)에게 상속되었다.
랭커생 부인은 곧 다른 네 사람의 지분을 인수하여 84%의 지분을 확보하여 1978년 이래로 샤또를 운영을 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랭커생과 그녀의 자녀가 피숑꽁테스 샤또의 모든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샤또 피숑꽁테스는 2층짜리 훌륭한 복고풍 건물이다. 이 건물은 쎙 쥘리앙과 뽀이약의 경계를 지나는 도로 바른편 조그마한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사실 이웃의 비숑롱그빌 바롱 건물만큼 멋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1840년대 초 지여진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거주하여 왔고 또한 전시용의 건물뿐이 아닌 주거용의 특성이 잘 보존된 샤또라고 할 수 있다.
샤또 피숑꽁테스의 포도원과 떼루아(기후, 지형, 토양의 제반 요소들)를 살펴보자.
샤또 피숑꽁테스는 지롱드 강의 어귀와 대서양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건조한 기후를 갖는다. 두 물줄기는 공기의 이동을 촉진시켜 하늘의 구름을 몰아내어 이 지역의 강수량은 오히려 적다.
또한 피숑꽁테스가 위치한 뽀이약 지역 자체가 포도의 응집력에 도움을 주는 비교적 건조한 국지 기후 지역이라는 사실이 이 곳 와인의 품질에 플러스가 된다.
샤또 피숑 롱그빌 꽁테스의 농장 전체의 면적은 86 헥타르이고 포도나무의 현재 경작면적은 60헥타르이나 1960년대 초 포도나무의 경작 면적은 단지 40헥타르에 불과하였다.
1960년대 말로 가면서 꽁테스의 농장은 피숑 바롱, 라투르(Latour), 오 바쥐 리베랄(Haut Bages Liberal), 바따이(Batailley) 농장 사이의 소구획 필지를 합쳐 거의 10 헥타르를 더 취득한다. 그리고 미셀 드롱(Michel deLong)이 관리하던 시절에 다시 한번 5헥타르 정도 확장한다.
라투르와 꽁테스 샤또 정북쪽길 사이에 위치한 4.5헥타르의 농장을 제외한 피숑꽁테스의 다른 농장은 피숑롱그빌 바롱의 서북쪽 즉, 그랑 푸이 라코스트(Grand Puy Lacoste)를 향해서 뻗어 가는 큰 대지에 위치한다.
피숑꽁테스 농장의 일부분(12헥타르)은 뽀이약 지역에 위치하지 않고 사실상 생쥴리앙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이 와인이 뽀이약의 다른 그랑 끄뤼 와인에 비해 우아하고 유연한 특성이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피숑꽁테스 와인의 매력은 궁핍하고 메마른 땅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 토양의 표면은 거의 순자갈이고 표면 아래의 깊은 곳은 진흙이 많다. 이 지층아래에는 녹색을 띤 사암이며 그 밑에는 석회암과 이회암이다.
이와 같은 토양에서 포도 나무는 양분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며 그 과정에서 색다른 차원의 맛이 포도에 부여되게 되는 것이다.
1959년까지 피숑꽁테스의 와인은 뽀이약과 쎙 쥘리앙으로 나뉘어 입병되었다. 물론 그 품질에는 차이가 없다. 단지 양쪽에서 입병된 와인을 비교해 보고픈 와인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지 않나 싶다.
피숑-롱그빌 꽁테스드라랑드 와인에 사용된 포도 품종이 이루어내는 조화는 뽀이약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른 와인들과 구별되는 특별함을 지녔다.
이 샤또의 포도 품종의 비율은 거칠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와인의 장수에 기여하고 특이한 개성을 준다.
까베르네 소비뇽(45%)은 와인에 뼈대(구조)와 강건함을 주어서 와인을 장수할 수 있게 한다. 메를로(35%)는 이 지역 와인의 특징적인 색상, 매끄러움, 유연함과 남다른 특색을 준다. 그리고 까베르네 프랑(12%)은 와인의 과일 향, 견고함과 더불어 균형을 잘 이루게 한다.
쁘띠 베르도(8%)는 와인에 신선함 훌륭한 복합적인 향, 매콤함을 준다. 또한 세컨드 와인 The Reserve de la Comtesse를 1973년부터 전 샤또 생산량의 20~50%내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다.
오늘날 피숑 - 롱그빌 꽁테스드라랑드는 이웃 라투르의 와인같이 떫거나 탄닌이 압도적이지는 않으나 무한한 향기와 원숙한 향의 와인이다. 응집력과 복합성, 매끄러움과 부드러움 훌륭한 향의 강도 특히 와인의 순수한 고귀함은 라투르보다는 라피트를 더 닮은 특성이 있는 와인이다.
[_이석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