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와인, 보졸레
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는 보졸레의 황제로 불리우는 조르주 뒤뵈프의 보졸레 와인박물관이 있는 로마네쉐-토린느였다.
로마네쉐-토린느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로 역장조차 없는 그저 기차가 잠깐 멈췄다가 떠나는 역이었다. 로마네쉐-토린느에서 보졸레 와인박물관 근처에 숙소를 정했는데 이 작은 마을에 낯선 동양인 여자가 혼자 나타난 것이 신기한지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눈길을 많이 받았다.
어둠의 장막을 새벽의 회색 빛 손가락들이 거둬가기 시작할 무렵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래도 조금 남쪽이라고 날씨가 별로 춥지 않길래 가디건 하나만 걸치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습기 가득한 촉촉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걷다가 보졸레 10크뤼중 하나인 플레뤼 표지판을 발견, 기쁜 마음에 뛰었다. 죠르쥬 뒤뵈프의 공장 코너를 도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포도밭!!! 낮게 깔린 구름은 산허리에 걸려 있었고 산기슭엔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시골마을. 그리고 끝도 없이 펼쳐진 정돈된 포도밭은 정말 그림 같았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포도밭을 걷는 기분! 내 생애 절대로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보졸레 누보 출시때문에 바쁜지 꼬뜨드뉘의 포도밭은 가지치기가 한창이던데 여기는 가지치기는 커녕 포도도 꽤 그대로 달려있었다. 아마도 부실해서 수확되지 못한 놈이리라...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포도를 골라 한 알 따먹어보니 우리가 먹는 식용포도보다 알은 작지만 훨씬 달았다.
새벽의 포도밭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우유를 듬뿍 넣은 밀크 티와 따뜻한 크루아상에 집에서 직접 만든 쨈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즐거웠던 포도밭 산책의 여운이 남아서 그런지 이 간소한 아침식사로도 마치 여왕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졸레 박물관을 보기 위해 다시 기차역으로 가야 했는데 짐이 무거워 호텔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주방장인 자신의 남편이 태워다 줄 거라고 했다. 어찌나 고마웠던지 팁을 넉넉하게 줬다.
보졸레 박물관은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그 어느 와인박물관보다 첨단의 시설과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와인 만드는 과정을 뮤지컬 영화로 만든 3D 입체영화부터 시작해 진짜 사람인줄 알고 깜짝 놀라게 했던 밀랍 인형들... 포도나무의 일생과 토양샘플 모음, 오크통 만드는 과정... 보졸레에 관한 모든 것을 총 망라한 듯 보이는 박물관 곳곳에서 보졸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설립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 조 희 정 -
1. 축제의 와인, 보졸레
2. 에르미타쥬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3. 엠.샤푸티에(M.Chapoutier)
4. 에르미타쥬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