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 마고는 메독의 훌륭한 세 와인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낭만적이다.
- Morton Shand
분명히 우아한 향과 오묘한 맛에서는 샤또 마고와 견줄 와인은 없다.
- Warner Allen
보르도 포도원들 중 유일하게 지역명으로까지 그 이름이 사용되는 샤또 마고. 다른 일등급 와이너리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품질의 일관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작황이 좋은 해에는 그 어느 일등급 와인에도 뒤지지 않는 최고급 와인을 생산해내어 오래 전부터 그 명성을 세계에 떨친 샤또 마고. 이 샤또의 역사와 그 와인의 세계를 알아보도록 하자.
샤또 마고의 역사는 중세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료에 의하면 13세기 초 해적들로부터 시골 변방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를 지롱드 강의 어귀에 군데군데 설치했는데, 이때 설치된 요새 중 하나가 바로 현 샤또 마고의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 땅의 기운이 샤또 마고가 500여년간 여러 소유주의 손을 거치는 동안에도 꾸준히 그 역사를 이어올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역사적인 위치에 세워진 샤또 마고. 이 샤또의 소유주 중에는 영국 왕 에드워드 2세(Edward Ⅱ)의 소유였던 적이 있다고 전하는 자료도 있지만, 필자는 샤또 마고의 초대 소유주를 15세기의 몽 페랑드 (Montferrand)와 드 두르포르(De Durfort) 두 사람으로 보는 자료를 기준으로 역대의 소유주들의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1 480년 드 두르포르는 그의 소유권을 보르도의 거상 장 지멜(Jean Gimel)에게 넘겼으며 이는 다시 16세기 초 로리(Lory) 가문에게로 넘어갔다. 장 로리 (Jean Lory) 다음으로 샤또 마고의 소유주가 된 이는 그의 사촌 기이 레스토낙(Guy de l`Estonnac)이었다. 16세기 말 샤또를 소유하게 된 레스토낙은 토지를 매입하거나 교환하여 토지의 구획을 정리하고 샤또 마고의 소유의 흩어져 있던 소필지를 한 곳으로 밀집시키는 등 동종의 재배지를 농가의 주위 중심으로 모으는 작업을 하였다.
이후 샤또 마고는 계속 가문 내에서 상속되었으며, 17세기에 장 드니 드 레스토낙(Jean Denis de l`Estonnac)가 이를 소유하게 될 즈음해서는 현재 샤또 마고의 규모(약 75헥타르)의 3배 가량의 커다란 영토였다. 이즈음해서 샤또 마고는 그 규모 뿐 아니라 그 품질도 향상되어 와인들의 가격과 가치가 날로 높아졌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편찬되었던 프랑스 와인 편람에 수록된 주佛 미국 공사였던 그리고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정부에 보낸 1787년 여행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제퍼슨은 그의 고향, 버지니아주에서도 포도 묘목을 수입하고 직접 포도 재배를 했을 정도로 와인에 심취해 있던 인물이었다. 포도의 재배와 최신식 양조 기법 뿐 아니라 와인 산업 전반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그가 1855년 등급 분류 훨씬 이전인 1787년에 이미 일등급 넷 중 샤또 마고가 최고라고 한 것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이다.
샤또 마고의 높은 위상은 그가 남긴 와인 가격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1784년 당시 소유주였던 다리쿠르(d`Aricourt)는 최고급 와인의 경우 토노(천2백병 분량)당 2400리브르를 받았으며 일반 소비자들은 샤또 마고 한 병을 3 리브르에 살 수 있었다. 이 가격은 다른 샤또의 것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으며, 이 기록은 와인 가격에서 품질이 차지하는 부분이 높았던 당시 소비자들이 샤또 마고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샤또 마고의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도 역사의 흐름에 휘말려 그 빛을 발하지 못하는 시점에 접어들고 만다. 프랑스 혁명으로 구체제가 무너지고 샤또 마고는 Migeau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그는 대부분의 임차인들이 그렇듯, 포도원 자체에는 투자하지 않고 소출량을 늘리는 데만 신경을 써 샤또 마고의 포도원은 이때 많이 황폐해진다. 따라서 1802년 후작 두아 드 라 콜로니아(Douat de la Colonilla)가 이를 매입할 시점에는 고작 65 만 프랑에 거래된다.
2새 주인은 기존의 샤또 건물을 허물고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샤또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해 1810년 완공하였다. 그리고 1879년 은행가인 백작 필레-윌(Pillet -Will)이 사상 초유의 거금 5백만 프랑으로 사또 마고를 인수한다. 그러나 그는 곧 `필록세라`라는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는 해충의 출현으로 역대의 소유주들보다 더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수수방관만 하지 않고 포도재배의 개선 방안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인근 포도원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즉시 채택하는 순발력을 보인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샤또 마고는 이후 그의 대릴 사위 트레모아(Tremoille)에게 상속되었지만, 가족 간의 상속은 그로서 끝이 난다. 이는 1차 세계 대전이 경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와 샤또의 경영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보르도의 거상인 피에르 모로(Pierre Moreau)와 에로(Herault)가 기업 연합을 형성하여 1921년 Tremoille의 소유로 되어 있던 샤또를 주식회사 형식으로 바꾼다. 그러나 흩어진 물이 필연적으로 다시 모이게 되 듯, 1935년 페랑드 지네스떼(Ferand Ginestet)가 시작한 지분 흡수 작업은 그의 아들 페에르 지네스떼(Pierre Ginestet)대인 1949년에 완성되고 만다. 즉, 조금은 다른 형태이지만, 샤또 마고는 다시금 단일인의 소유가 되고 만 것이다.
새 주인이 된 Pierre Ginestet는 혁명 후 낙후되기 시작한 샤또의 포도원과 양조시설 그리고 와인의 품질 개선에 나섰으며, 그의 경영하에 포도원은 물론 와인에까지 많은 발전을 한다. 그는 샤또 복원과 샤또 내의 필요한 기구를 새로 갖추기 위해 가문의 재산인 끌로 푸르테(Clos-Fourtet)(St. Emilion)를 처분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는 가장 좋은 와인의 배합으로 만들어져야 했을 그랑 방(Grand Vin)이 샤또 마고 소유의 18개의 발효 통에서 무차별적으로 생산됨을 발견하고 새로운 설비를 갖추어 그랑 방과 AOC 마고로 생산될 와인들을 구분 지었다. 이밖에도 그는 1930년대 다른 많은 샤또들과 같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Delor家의 뒤포르 비방스(Durfort-Vivens)을 매입하고, Margaux와 Palmer 사이에 있던 샤또 아벨 로랑(Chateau Abel-Laurent)의 토지 일부를 취득했으며, Rausan-Segla 와 토지를 교환하여 샤또 마고의 포도 재배지를 재구성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 샤또 마고 와인의 품질을 아쉽게도 회복하지 못했다. 이는 샤또 병입의 의무규정이 번복되어 와인의 병입과 숙성의 전 과정을 샤또에서 관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 훌륭한 와인 수입업자인 영국철도호텔에서는 1949년부터1953년 후반까지 병제품이 아닌 나무통 단위로 샤또 마고의 와인을 선적할 것을 주문했었다.
샤또 마고의 최악의 빈티지로 꼽히는 1972년과1973년 와인 이후, 샤또 마고는 기존의 품질을 회복하지 못하여 다시금 부동산에 매물로 나오게 된다. 증류주제조업자이며 기업인인 한 미국인이 8천 2백만 프랑을 제시하며 이를 사겠다고 나섰지만, 프랑스 정부의 반대로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외국인 소유의 1등급 와이너리가 샤또 라투르와 샤또 오브리옹으로 충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샤또 마고를 다시금 외국인에게 매각한다는 것은 프랑스의 자존심을 파는 것과 같이 평가되었던 것이다. 즉, 샤또 마고는 개인의 소유이기 이전에 프랑스인 모두의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샤또 마고는 7천2백만 프랑에 프랑스 슈퍼마켓 그룹 펠릭스 뽀땅(Felix Potin)의 그리스계 오너이자 프랑스 와인 회사 리콜라스의 대주주인 앙드레 멘쩰로뿔로스(André Mentzelopoulos) 에게 판매되었고, 이 계약에는 당시 샤또의 셀러에 보관되고 있던 1974, 1975, 1976년 빈티지 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멘쩰로뿔로스는 위기에서 샤또 마고를 구해낸 인물로 오래 남을 듯 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의미의 후원자는 아니었다. 그는 샤또 마고를 통해서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는 필립바르(Philippe Barre)를 지배인으로 채용하고 장 그랑제누(Jean Grangerou)를 셀러장으로 삼았으며 포도 재배 책임자로는 장 페에르블라싸르(Jean-Pierre Blanchard)를 재임명했다.
이밖에도 그는 포도원을 손질하고 관개 시설을 준설하였으며, 12헥타르의 포도밭에는 포도나무를 새로 심는 작업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당시 보르도 포도주 양조협회 이사이자 프랑스 와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보르도 대학의 에밀 뻬노(Emile Peynaud) 교수를 고문으로 임명하고 그의 컨설팅하에 생산된 1978년 빈티지의 와인으로 샤또 마고의 대변신의 막을 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André Mentzelopoulos 는 자신의 노력의 충분한 결실을 보지도 못한 채 1980년 66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그의 노력은 그의 미망인과 딸 꼬린느(Corinne)에 의해 멋지게 계승되었으며, 이들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당시 우리는] 아버지가 이룩해 놓은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도록 방치해둘 자격이 없었다." "우리는 자존심 조차 버린 채 노력해 오늘날의 마고를 만들었다." 이들이 이룩한 성공과 이에 들어간 피나는 노력은 갈채를 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이 계승해 가꾼 샤또 마고의 포도원(약 75헥타르)에는 현재 까베르네 소비뇽 75%, 까베르네 프랑 2∼3%, 멜로 20% 그리고 쁘띠 베르도 2∼3%가 재배되고 있다. 그리고 이 포도로 매년 3만 상자 정도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Andre Mentzelopoulos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까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을 늘리고 멜로의 비율은 낮추어 보다 견고한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랑 방(Grand Vin:각 와이너리의 일등급 와인) Chateau Margaux외에도 샤또 마고에서는 second wine(와이너리의 이등급 와인으로 개별 레이블로 생산되는 와인) 빠비옹 루즈(Pavillon Rouge)를 생산하고 있다.
샤또 마고의 레드 와인은 포도 수확 이후 약 2년간의 발효 숙성 과정을 거쳐 늦여름 혹은 가을에 병입된다. 이 같은 병입 시기를 도입하는 것은 마고 소구역의 본질을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즉,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비율을 높이고 장시간의 발효 숙성과정을 도입하는 것은 마고의 특유의 매끄럽고 복합적인 섬세함에 오랜 생명력을 더하고 보강하는데 꼭 필요한 견고한 맛의 뼈대와 식감을 샤또 마고의 와인에 담아내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이밖에도 샤또 마고는 빠비옹 블랑(Pavillon Blanc) 이라는 레이블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레드 와인이 중심이 되고 있는 메독 지방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Pavillon Blanc은 마고 마을에서 서쪽으로 2 Km떨어진 비르후가스(Virefougasse)의 12 헥타르의 조그만 포도밭에서 재배되는 포도를 사용하여 생산된다. 기존에는 쎄미용과 소비뇽의 비율이 각각 50%인 와인이었으나, 한동안 이 품종들이 다른 품종으로 대체되거나 아예 재배되지 않은 시기가 있어 잠시 생산이 중단 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1977년 다시 생산되게 되기 시작하면서 품종을 100% 소비뇽 블랑으로 바꾸어 사용하였으며, 알리에(Allier) 오크통에서 발효를 시켜 다음 해 여름 병입하는 full body 화이트 와인으로 생산된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마고의 뒤에는 능력 있고 대단히 영향력인 Corinne Mentzelopoulos, Philippe Barre, 1983년에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나무통에서 와인의 숙성"이란 논문을 쓴 젊은 실력가 Paul Poutallier 그리고 현명한 조언자인 귀재 Emile Paynaud 교수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있었기에 200여 년 전 토마스 제퍼슨의 극찬 "샤또 마고를 프랑스 최고의 와인"이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고 100년전 아르망 다마이약(Armand d`Armailhacq)3을 매혹시킨 향기를 꾸준히 뿜어낼 수 있는 것이다.
[_이석기_]
1. Clive Coates, Grands Vins : The Finest Chateaux of Bordeaux and Their Wines, UCP1995.
2. 5년전 라피트는 120 만 프랑에 매각된 바 있었다.
3. Armand d`Armailhacq는 뽀이약의 5등급 샤또 소유주이자 이 지역 와인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