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코스로 된 식사를 할 때 어느 부분에 가장 큰 비중을 두시나요 ?
"뭐니뭐니해도 혀를 일깨워 주는 그 감각 ! 새콤하고 상큼함. 부드럽게 혀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애피타이저가 최고죠 !"
"무슨 말씀. 식사의 최고봉, 목적 중의 목적, 메인 디쉬를 빼 놓고 식사가 온전하게 이뤄질 수 있겠어요 ?"
"다 필요 없습니다. 일단 끝마무리가 좋아야 뭐든지 여운이 길게 남는 법이에요. 실컷 잘 먹어놓고 디저트가 이상하면 영 찝찝하다니까요 ?"
[애피타이저] [메인디쉬] [디저트]
어떤 부분에 점수를 가장 많이 주는 것이 정답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느끼셨겠지만, 이 와인의 세계에는 오직 '선호도'가 존재할 뿐이거든요.
지금까지 애피타이저나 메인 디쉬와 어울리는 와인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디저트와 그 와인에 대해서는 그 매치를 찾기가 어려웠었죠.
아무래도 디저트가 식사의 맨 끝이라는 인식 때문인 탓도 있을 테고, 혹은 좋은 와인을 만났는데 기왕이면 거하게(!) 식사와 함께 분위기 잡고 싶은 기분도 한 몫 했을 텐데요. 하지만 때로는 잘 차려진 디저트와 와인 한 잔이 열 메인 디쉬 안 부러울 때도 있답니다.
[잘 차린 디저트]
정말 그렇게 느끼게 되실 거에요 !
& 과일 디저트
과일을 베이스로 한 디저트도 설탕을 얼만큼 썼는지 과일을 받쳐주는 베이스(예를 들어, 클라푸티*1 와 과일 타르트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텍스쳐가 촉촉한지, 바삭한지에 따라 어느 와인이 더 잘 어울리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배로 만든 플랑 (Flan aux Peches)
[Flan aux Peches] 플랑은 일종의 타르트이지만, 그 텍스쳐가 타르트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촉촉합니다. 굉장히 단 디저트이기도 하구요. 이런 연유로 웬만한 와인을 매치시켜서는 '너 죽고 나 죽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 이런 경우에는 와인 역시 알맞은 당도를 가지고 있는 편이 낫죠.
Vendages Tardives(방당쥬 따르디브 : 늦은 수확) 와인은 어떨까요. 꿀렁꿀렁 달게 넘어오는 와인의 끝 맛에 미묘하게 느껴지는 산도가 충분히 플랑 디저트를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알자스 지방의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tztraminer)라면 배로 만든 플랑과 와인의 조화를 최대한으로 느낄[Flan aux Peches]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자스의 Vendanges Tardives
이 와인들은 포도의 당분 함유량이 최대에 이를 때 수확하여 만드는 것으로 리치 (요즘 중국집에서 후식으로 많이들 주죠 ? ^^) 맛이 많이 납니다. 끝 맛으로는 노란 과일들, 그러니까 복숭아나 푹 절여진 살구를 연상시키는 느낌이 있구요. '방당쥬 따르디브'는 '그랭 노블 (Selection grains nobles)'*2 보다는 당도가 낮기 때문에, 와인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산도와 디저트의 당도를 적당히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됩니다.
알코올 농도 역시 높아서 리슬링과 뮈스카의 경우는 14°, 게뷔르츠트라미너와 피노 그리의 경우는 15,3° 를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수확은 전부 수작업으로 진행됩니다.
Geuwurztraminer Burg Vendanges Tardives 1997 Jean-Michel Deiss
미네랄이 옅게 느껴지는 이 와인은 이국적인 향신료의 아로마로 가득 차 있다. 당도가 충분하면서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 산도가 인상적이다. 장기 보관 가능.
<Olivier Poussier 2000 세계 최고 소믈리에 대회 수상.>
산딸기 사블레 (Sable aux framboises)
산딸기 사블레 [Sable aux framboises] 산딸기 사블레는 디저트로서는 당도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블레*3 타르트가 입에서 바삭바삭 부서지고 산딸기의 새콤달달함이 입 안에서 환상적으로 섞이는 이 디저트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는 것은 섬세하면서도 당도와 산도를 잘 조화시키는 와인입니다.
Ruster Ausbruch 는 어떨까요.
오스트리아 Burgenland 지방의 이 와인은 산딸기, 체리 향 등을 느낄 수 있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 (botrytis cinerea)*4 를 겪은 피노 누와로 만들어집니다. 리터당 잔여당은 100~120g 정도 되고 적당한 탄닌이 산딸기 사블레의 지나친 당도를 잡아주면서 산딸기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framboises]역할을 하게 된답니다.
*Neusiedlersee Ruster Ausbruch
Rust 는 오스트리아 Burgenland 지방, Neusiedlersee 호수에 있는 마을입니다. Ausbruch 라는 말은 헝가리의 토카이(Tokaj) 지방에서 사용되던 aszu 라는 말과 뜻이 같은데요, 선별된 절인 포도 알갱이와 그 포도즙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헝가리 와인과 오스트리아 와인은 거의 비슷한 시기인 17세기쯤에 만들어졌습니다.
Ruster Ausbruch Pinot Noir 1999, Feiler-Artinger
호수 근처에 위치한 지형상 높은 습도와 늦가을의 높은 기온 덕분에 보트리티스 시네레아 (botrytis cinerea) 가 일어나기에 적합하다. 이 지역은 이런 연유로 므왈루(moelleux)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알코올 도수 13도, 잔여당은 110g 에 달하며 버찌향이 풍만한 와인이다.
디저트와 와인, 조금이나마 시도해 볼 마음이 드셨나요?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디저트의 왕은 초콜렛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또 부드러운 크림 디저트를 원하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그럼 다음 번에는 또 다른 디저트를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할까요?
1.클라푸티 : 촉촉한 빵 안에 과일이 박혀 있는 프랑스 제과의 일종.
2.Selection grains nobles : 직역하면 '완벽한 포도알 선택'이라는 뜻으로 포도의 당분함량이 최대에 이를 때까지 포도가 익기를 기다려 수확한 것으로 만든 와인. 기후조건이 좋은 해에만 생산이 가능하다. 당분 함량이 많아 스위트 와인이 된다.
3.사블레(Sable) : 타르트 반죽의 일종. 반죽 과정에서 모래(sable)처럼 부서진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4.포도알에 생기는 회색 곰팡이의 학명. 특정한 기후 조건하에서 고급 디저트 와인의 생산을 가능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