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eau Belle-Brise1
와인은 개체로서의 인격(와인격의 준말^^)을 갖춘 살아있는 존재라고 할까?
살아있는 자연이 살아있는 인간의 손을 빌려 빚은 살아있는 개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실 지구상의 모든 와인은 각기 존재가치와 그 이유를 달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와인은 보다 더 이러한 "느낌"에 다가가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데, 지금 소개할 이들 와인이 바로 그 부류에 속한다.
Bio-Dynamic, 자연이 만드는 와인
B.C. 몇천년 전에 처음 와인이 만들어진 이후로, 인류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그랬듯' 더 나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이 21세기의 초엽에 우리는 '짙고 찬란한 와인의 색상에서 풍겨나오는 힘찬 복합미를 느끼며 그 농축미와 강한 인상을 목젖까지' 가져 갈 수 있게 되었다.
17세기 초엽 까지의 보르도 와인이 "Claret" 라고 불리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이 발전은 실로 엄청난 것이며, 우리는 그 품질에 감탄하며 아낌없이 카드를 긁는다. 이러한 개가는 생산자의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어서 시장(market)이 그것을 요청하고 가격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즉, 우리 와인애호가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힘"의 경쟁은 와인의 몸집 불리기를 일으키고, 여러 가지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을 거스르며 과도한 개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었다. 그래서 비닐이 등장하고 화학비료가 뿌려지고 하늘엔 헬기까지 동원되었다. 이렇게 수확된 포도는 냉난방이 통제된 편안한 아파트에도 들어갔다가 시커먼 나무통 속에도 들어갔다가 하며, 자기 개성을 잃고 콘트롤 된다.
자~ 이쯤에 이르면, 이러한 무한경쟁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일견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일군의 무리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의 외침을 듣게 된다.
이들은 밭에서 화학비료를 없애고, 인공구조물들을 걷어 내었다. 잡초를 살려 두고, 퇴비를 준다. 트랙터 대신 말을 이용하고, 사람의 손길을 포도나무가 느끼게 해 준다.
어떤 부류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확량 감소라는 희생을 감수하고 포도나무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훈련을 시킨다. 농약의 사용을 최소화하며, 천적을 이용한다. 때로는 점성술까지 동원되어 우주의 기운을 이용한다. 달이 뜨고 지는, 기울고 차는 원리까지 농사일에 응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단계를 Bio-Dynamic 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름마저 거부하고 그냥 소박한 "Natural wine", "태고적의 와인" 뭐~ 이런 표현에 만족한다. 소박한 건지 유난을 떠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제 이 와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할 때가 되었다.
한 시골 소년의 꿈, 그를 위한 서정시
피레네의 장중한 산바람이 그 마지막 갸날픈 숨결을 돌리는 땅, Armagnac.
그 숲과 그 골짜기에서 황금빛 고동을 불던 소년이 있었다. 그가 이 고동들을 불어댔다면 그 이유는 2가지, 하나는 자기 영지의 양떼들을 모으기 위해서 일테고, 또 하나는 자연의 기운을 모으기 위해서 였겠지...
그 때의 그가 양떼를 모으기 위해 뿔고동을 썼다면, 이제 50줄에 가까운 그는 "자연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그 고동을 힘차게 불고 있다.
소년은 부친의 뜻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도회지로 법률을 공부하러 떠났고... 물론 그는 공부중에도 주말이면 고향으로 돌아와 흙을 만지고, 포도를 가꾸었다네. 그래서 소년은 말하곤 했지.
"내 몸은 Paris에 있었으나 내 마음은 Armagnac에 있었다네."
졸업 후의 그가 파리의 유수한 은행에서 "세속"을 만지고 있을 때도, 그는 고향의 "포도밭"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 청년은 말하곤 했지.
"내 몸은 비록 은행에 있지만, 내 사랑은 포도밭에 줄줄이 걸쳐 있다네."
가문과 부모를 위한 명예와 의무를 무사히 마쳤을 때, 그는 자랑스럽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 올 수 있었지. 13세 소년의 꿈은 이제 Armagnac의 한 포도원에서 다시 꽃피게 되었다네. 그리고 그 꿈은 Pomerol 까지 이어져...
Chateau Belle-Brise
나는 이제부터 Henri-Bruno de Connu de la Fontaine de Coincy라는 와인생산자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데, Henri-Bruno 는 그의 이름이고, de Connu de la Fontaine de Coincy는 그의 성이다.
우와!! 성 한번 길다.
그렇다. 유럽 족보학을 좀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귀족의 출신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13세기부터 이 가문은 군대와 금융, 예술 등 각 분야에서 국가의 중요 직책을 맡아왔단다.
파리의 잘 나가는 은행을 그만두고, 고향 Armagnac에서 역시 선구자적인 방법으로 뛰어난 아르마냑 증류주를 만들던 Henri-Bruno는 친구의 권유에 의해 보르도 뽀므롤 지역의 한 포도밭을 구입하게 된다. 1991년의 일이다.
2ha 정도니깐 Romanée-Conti 보다 약간 더 크겠다. 그때까지 그 포도주는 아무도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 "포도밭"은 달랐다. 지표층과 하부토의 기묘한 성분이 이 지역의 일반적 구성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구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태반이 형성되어 있었다. 더구나 포도나무는 가장 이상적인 수령인 35년, 딱 품에 안을 작업공간... 이 하얀 도화지위에 Henri-Bruno는 자기 양조철학을 그리기 시작했다.
포도가 포도주가 되도록 자연스럽게 놔두기... 정~ 비켜 나가면 살짝 엉덩이 때려주기... 뭐~ 이런 정도라고나 할까? ^^
한 나절 뚝딱~ 잘 익은 포도송이를 따서...
온도통제 없이 자연효모... 지 혼자 발효하게 내버려 두고...
나무향이 강하지 않게 몇 년 쓴 넉넉한 크기의 오크통을 적절히 섞어...
시간을 두고... 중력에 떨어진 앙금들을 제거할 뿐... 포도주를 피곤하게 하는 그 어떤 정제과정도 없다.
이렇게 해서 반 나절만에 병입 완료되는 20,000 여 병의 와인. 이들 와인들은 프랑스 대통령궁이나 수상관저, Lucas Carton, Grand Vefour 등과 같은 미슐랭 *** 급 레스토랑에 입고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Château Lafite의 복합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Non!!
Château Haut-Brion의 매력과 견줄 수 있기 때문일까? Non!!
Château Margaux의 섬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Non!!
Screaming Eagle의 파워를 능가하기 때문일까? Non!!
바로 앙리 브뤼노의 순수함 때문이다.
그의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처럼 "멍청"하거나, 그처럼 "순수한" 사람들이다.
모두들 "Power!! Concentration!! Color!!"를 외칠 때 그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멍청이" 임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한독와인의 김사장이 수입했을 수 밖에...
Honor et Modestia !!
사실 이렇게 장황히 그의 이력과 철학을 소개하는 이유는 곧 이어 소개할 그의 와인에 대한 시음에 테이스팅 포인트를 잡아주기 위함이다.
와인을 테이스팅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색상을 분별하고, 향기를 맞추고, 질감을 느끼는 일인가? 그러면 와인을 음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명마와 기수가 둘이 될 수 없듯이, 명견과 그 주인이 하나일 수 밖에 없듯이, 와인도 와인을 만든 생산자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Henri-Bruno의 "멍청함"은 와인에 까지 이어진다.
"흐흐흑, 불쌍한 와인 ㅠ.ㅠ"
그래서 첫 입에 그의 와인은 상대적으로 순하고 싱겁고 개성이 없다. 둘째 입에서는 부드럽게 넘어가고 거침이 없지만... 셋째 입에서는 "이 가격이 맞어??" 하고 놀랜다. 물론 부정적인 놀램이다. 찐한 색감으로 애호가를 기죽이지도 못하고 간간히 피망과 후추향만 고개를 들 뿐, 향으로도 "움메~기죽어!", 맛에서도 파워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니 영락없는 보통와인이다.
앞에서 내가 이 와인을 시음할 때의 테이스팅 포인트를 달리하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 와인을 "자연"의 관점에서 음미해야 한다. 마치 항생제와 소염제 없이 병마와 싸워야 하는 인간을 비교해 보자.
자기를 엄습하는 각종 질병과 재해, 곤충과 벌레, 바이러스에 홀로선 포도나무는 주인을 원망한다. 원망하면서 멍들고 상처 받지만 그는 자생력을 한편으로 키워나간다. 자연의 단점까지 받아들인 포도나무는 이제 자연을 자기 포도알 속에 잉태한다.
그 투쟁의 기쁜 명예(Honor)를 담은 포도알은 절대 무리하지 않으며, 겸손하다(Modestia). 그 와인은 애호가의 눈을 부시게 하지 않으며, 코를 현란하게 하지도 않고, 입에 자극을 주지도 않는다. 나는 이 와인을 마실 때, 이미 그 안에서 무엇을 찾고자 함을 포기했다. 다만 Belle-Brise 가 나에게 무엇을 건네고자 하는가에 주의를 기울여 보았다.
"아니? 손교수!! 통역하고 소란스런 그 와중에서 어떻게 이런 명상을..??"
"하하하, 제가 반쯤 남은 1998년 와인을 몰래 꼬불쳐 놨었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3시간 후에 다시 시음했습니다요~~~ 자정 넘어... 만상이 잠들었을 때...
그 때서야 Belle-Brise 가 깨어나더군요, 명예롭게(Honor)... 다소곳이(Modestia)... "
산들바람이 붑니다.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
1. Belle-Brise는 "미풍 (美風)" 이라는 뜻이다. 조미료가 아니예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