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와인 아카데미는 지난 6월 9일 국내 와인 애호가들과 보르도 프리미에 그랑크뤼 5종(Ch. Lafite Rothschild, Ch. Latour, Ch. Mouton Rothschild, Ch. Margaux, Ch. Haut-Brion)의 수평시음회를 개최하였다. 과거 샤또 딸보나 샤또 라투르에서 주관했던 수직 시음회2 는 여러 번 있었으나 수평 시음회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와인 애호가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진행되었던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보르도의 프르미에 그랑 크뤼, 즉 1855년 파리 박람회에 출품한 보르도의 와인 등급 중 1등급 5종3을 빅 화이브 와인(Big Five Wine) 혹은 Royal Family Wine이라고 부른다. 이번 Big Five의 테이스팅 노트는 지난 수평 시음회의 시음 순서인 Ch. Latour, Ch. Lafite Rothschild, Ch. Mouton Rothschild, Ch. Margaux, Ch. Haut-Brion의 순서로 정리해 본다.
1. Chateau Latour
》Chateau Latour의 1997년 날씨조기 성숙이 기대되는 특별한 해가 될 거라고 하였지만 실제로 수확은 불규칙적인 개화와 8월말까지 이어지는 폭풍우로 상당히 늦어졌다. 다행히도 9월에는 좋은 날씨가 이어져서 좋은 조건에서 수확할 수 있었다.
늦겨울과 봄은 4월까지 포근하고 건조한 날씨를 보였다. 결국 포도나무의 성장은 일찍 시작되어 3월 중순에 첫순이 보였다. Chateau Latour의 최고급 와인 Grand Vin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포도가 재배되는 "Enclos" 에서는 5월 5일에 개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5월 하순에 큰 비가 내려 6월 에는 전반적으로 개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수정율 또한 낮았다.
포도의 숙성기는 다소 이른 7월 7일경에 시작되었으나 8월의 잦은 폭풍우로 고르게 숙성되는 것이 어려웠다. 많은 강수량은 포도알을 부풀게 했고 이즈음해서 찾아온 뜨겁고 습기가 많은 아열대 기후가 포도나무를 무성하게 자라게해 포도가 익는데 방해가 되는 여러 병을 유발시켰다.
이 때문에 8월말 Cabernet Sauvignon4 은 상당히 불규칙적인 숙성정도를 나타냈다. 한 그루에 달려 있는 포도 송이들도 그 숙성정도가 달랐거니와 심지어 한송이 안에 있는 포도알들도 각각 그 숙성 정도가 달랐다.
다행히도 9월초에 좋은 날씨가 돌아와 한달 내내 날씨가 좋았다. 9월의 찌는 듯한 더위는 포도를 잘 익을 수 있게 하여 9월 8일부터 25일까지 수확을 할 수 있었다.
》포도 품종 배합
: Cabernet sauvignon 75%, Merlot 20%, Cabernet franc 4%, Petit verdot. 1%
》시음노트
1997년 Chateau Latour의 색은 아름다웠으나 다른 해의 라투르와 달리 다른 일등급 와인 4종과 비교해서 좀 엷은 색을 띠고 있었다. 블랙체리, 커란트, 그을린 오크향이 느껴졌으며 견고한 탄닌과 함께 중간 정도 질감이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뒷맛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으며,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좋은 와인이었다.
》정복자 같은 와인이다
이번 수평 시음에서 색과 밀도가 작년 12월 3일 수직 시음 때 보다 좀더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와인이 6개월 더 숙성이 된 이유도 있겠으나 수직 시음과 수평 시음의 차이점이 아닐는지....
2. Chateau Lafite Rothschild
》Chateau Lafite Rothschild 의 1997년 날씨
1997년이 보르도의 지난 5년 중 가장 특이한 빈티지라고 여겨졌지만 꼭 그러지만도 않았다.
7월말까지는 자연 조건이 너무나 좋아 모든 것이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9월초까지도 숙성이 덜 되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은 상태였다. 포도 꽃이 피고 약 4개월 후에는 수확이 가능한 것인 일반적이지만, 1997년에는 1달이상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였다.
수확기간이 길어져 중간중간 무성하게 자라 성장을 가로 막는 잎파리를 솎아주어야 했다. 정상적인 추수 기간은 8월말에서 9월 중순이나 예기치 않게 찾아온 열대성 기후로 8월말 1주간은 과실의 성숙이 멈춰져 수확이 더 늦어졌다.
어떻게 보면 1997년은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생산량의 일부분을 손해 볼 줄 아는 용기와 인내력을 보인 농부가 보답을 받는 고결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포도 품종 배합
: Cabernet sauvignon90%, Merlot 10%
》시음노트
진한 심홍색의 와인으로 블랙 커란트, 커피, 카라멜의 복합적인 향이 나며, 매력적이고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진한 질감을 느낄 수 있으며 부드러운 식감을 지니고 뒷맛이 비교적 긴 특이한 와인이다.
》우아한 와인이다
잔의 가장자리(rim)의 색이 예년에 볼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진한 것은 침용기간을 평상시의 24일에서 7일로 줄었다고는 하나 까베르네 소비뇽의 배합비율이 평년보다 20% 더 증가 한 것이 주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피?까베르네 프랑의 배합이 전무(0%)하고 메를로의 배합 비율이 평년보다 적은 것이 또다른 이유가 될 듯 하다.
3. Chateau Mouton Rothschild
》Chateau Mouton Rothschild 의 1997년 날씨
1997년은 1월말 평균 온도가 예년보다 높고 건조하고 더운 날씨여서 Chateau Mouton Rothschild에서는 3월초부터 포도나무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포도의 꽃은 장소와 포도 품종에 따라 개화와 착색 시기가 다르다. 꽃의 평균 개화시기는 5월20일에서 24일이고 포도의 착색은 7월 24일에서 8월 1일이었다. 착색은 포도 품종 마다 차이가 있으나 1997년에는 평년보다 15일 빨리 착색이 이루어졌다. 8월 한달 동안은 뜨겁고 습기가 많은 기후를 보였으며 특히 3일간은 습도 100%의 아열대 기후였으나 적절한 병충해의 조처로 수확에는 별 이상 없이 우수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상 기후로 포도의 성숙을 불완전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포도의 성숙이 균일치 않아서 양질의 수확을 위해서는 최적의 숙성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였다. 다행히도 날씨는 9월에 다시 좋아져 별다른 무리없이 수확이 이루어졌다.
》추수기간 : 9월 11일에서 30일
》포도 품종 배합
: Cabernet Sauvignon 82%, Merlot 13%, Cabernet Franc 3%, Petit Verdot 2%
》시음노트
보기 좋은 진한 심홍색을 띠는 와인이었다. 강한 블랙 커란트, 블랙베리 그리고 바닐라 및 구수한 토스트의 복합 향이 느껴졌다. 이 와인은 우아하고 잘 익은 탄닌과 오크 맛이 느껴지는 중간 질감(medium-bodied)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뒷맛은 진하고 부드러웠으며 어려운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맛과 향이 좋은 와인이었다.
》무통에는 공명 (Resonance)이 있다.
Tom Stevenson 은 그의 저서 The New Sotheby's Wine Encyclopedia 에서 무통을 묘사하는데 라투르에 사용된 술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무통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다만 무통의 와인 색이 라투르의 와인 색인 서양 자두색보다 좀 더 진하다고 하였다. 이를 역으로 살펴보면 이번 그랑 크뤼 테이스팅에서 가장 색이 진한 것이 무통이고 그 다음이 라투르가 되어야하지만, 무통의 색은 라피트와 비슷했으며, 라투르의 색은 오히려 라피트의 것보다 더 엷었다.
이러한 색의 시음 비교는 이날의 수평시음에서만 밝혀지는 것이 아닌지...
4. Chateau Margaux
추수는 9월 10일에 시작되었으며, 다른 사또에서와 마찬가지로 추수기 내내 좋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1997년이 기후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한 포도 선정으로 샤또 마고는 맛의 강렬함과 우아함 사이의 균형을 잘 산출해 냈다.
》포도 품종 배합
: Cabernet Sauvignon 75%, Merlot 20%, Cabernet franc / Petit Verdot 5%
》시음노트
대단히 신선한 향과 감미로운 탄닌 때문에 이 와인은 이미 마실 시기가 되었으나 조금 더 인내가 필요하며 15년 더 기다려도 좋다고 본다.
커란트 체리 바닐라 향의 특성은 우아하고 매끄러운 탄닌과 신선한 뒷맛이 긴 중간 정도의 질감에서 더 진한 질감사이의 와인이다.
》콜로라투라(Coloratura) 하다.
시음회 준비 과정 중 미리 샤또 마고와 오브리옹을 비교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와인을 마셔보지 않고 색깔과 향만으로 두 와인을 구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5. Chateau Haut-Brion
대단히 진한 진홍색(Garnet)의 와인으로 유쾌하고 심오한 복합적인 향을 가졌으며 대단히 탄닉한데도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룬 medium-full bodied 사이의 질감을 가진 뒷맛이 긴 와인이었다.
》오브리옹은 우아하고 조화롭다
시음을 끝내고
와인은 움직이는 타깃이라고 표현된 바 있듯이 와인은 포도 농장의 떼루아르(terroir)에 따라, 그리고 마시는 사람의 개성과 기호에 따라, 또는 마시는 시기에 따라 와인 맛이 다르게 느껴지고 한 순간도 정지하지 않는 변화 무쌍한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랑 크뤼의 다섯 와인 또한 신봉자들을 각각 보유하고 있음이 베스트 와인 프리미에 그랑 크뤼 시음 결과로 입증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음에 참석한 와인 애호가의 각 와인에 대한 선호도(1차 와인 시음 평가 내용 : Blind Tasting)는 다음과 같다.
》각 와인의 추천 회수 별
- Chateau Margaux(27표)
- Chateau Lafite(27표)
- Chateau Haut-Brion (24표)
- Chateau Latour (24표)
- Chateau Mouton Rothschild (23표)
보르도의 Big Five Wine을 동시에 같이 수평 시음을 함으로 각각 따로 시음을 할 때 보다는 각 와인과의 비교가 쉬우며(물론 어려운 점도 있지만) 또한 각 와인의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수평 시음의 중요한 점은 시음을 불가능하게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비교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는 데 있는 것이다.
포도주가 주는 즐거움은 지적인 즐거움과 감각적 즐거움이 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한가지 있다면 지적 즐거움인데 여기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포도주의 진정한 가치를 나타내는 감각적 즐거움 즉 즐기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즐거움 또한 포도주 음미에 속하는 것이다.
포도주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아는 척 하기 쉽다. 물론 지식이 많을수록 포도주를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끝없이 궤변적인 말을 하는 것은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포도주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포도주를 배로 즐길 수 있다.
[_이석기_]
1.Horizontal Tastings 은 같은 빈티지 (포도 수확년도)의 다른 샤또(양조장) 의 와인이나 혹은 다른 지역의 와인을 시음하는 것을 의미한다.
2.Vertical Tastings은 각기 다른 빈티지의 같은 샤또의 같은 와인이나 같은 타입의 와인 혹은 같은 지역의 와인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3.Ch.Mouton Rothschild 는 1973년 일등급으로 승급되었다.
4.Cabernet Sauvignon: 보르도 메독 와인의 베이스가 되는 적포도 품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