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가는 길 : Terroir 수업
3월30일.
갑자기 추워진 날씨. 꽃샘추위라고들 하는데…
아마도 봄 꽃의 그 예쁘고 선명한 색상과 오묘한 향은 '시련'을 통해서 단련되나 보다.
중앙대 교정 오전 10시 40분. 따뜻한 커피 향내는 기다림 속에 잔향으로 남고, 잠시 후 우리는 오손도손 45인승 버스에 파묻혀 고속도로에 올랐다.
햇볕은 쨍쨍, 유리창은 반짝 !
불광동 이 사장님은 올해 처음인 듯한 '썬글래스' 쓰시고 한껏 분위기를 잡는다. 나중에 날씨가 어떻게 변할 지 지금 그는 모르리라.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3월30일의 "펑펑" 눈을 만났다, 우째 이런일이…)
교실에서 Terroir의 이론을 강의하며 열심히 기후와 그 변덕에 대해 설명했었는데, 이것을 정말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 포도나무의 싹이 나왔을 때 이런 날씨를 만나면 그 해 빈티지는 정말 걱정되겠다.
판교 인터체인지를 지나 용인휴게소에서 얼큰한 가락국수… 크~
장호원 톨게이트를 나와 10여분. 우람한 탱크와 잘 다듬어진 정원이 효모 냄새와 함께 우리의 시야에 들어 왔다.
" 빵빵, 우리 왔어요~ "
II. 맥주의 역사
맥주는 보리를 싹을 틔어 호프, 효모를 첨가, 발효시켜서 만든 탄산가스가 함유된 알코올도수 4~9도의 술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전 중동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민족이 최초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만든 맥주는 보리를 건조하여 분쇄하고 그것으로 빵을 구워낸 후 그 빵을 부수고 물을 부어 자연발효시킨 것으로 원시적인 제조방법이었다.
당시 와인이 소량 생산되어 귀족층들이 주로 마셨던 반면, 일반 서민들은 대량 생산되는 맥주를 즐겼다고 한다. 그 후 맥주는 포도재배가 여의치 않은 독일, 벨기에 등 동,북부유럽과 영국에서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맥주를 만들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맥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일본 맥주가 들어왔고… 과거 국민소득이 높지 않았을 때는 맥주는 일반대중이 소비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술이었다, 마치 지금의 와인처럼??
이제 국민적 대중주로 자리잡은 맥주시장은 날로 발전하며 희로애락의 자리에서 우리의 목젖을 시원하게 적셔주고 있다.
III. 맥주와 와인, 우리는 사촌 !!
효모가 당분을 분해하여 알코올과 가스를 생산하는 기본 과정은 와인과 대동소이하다.
30여 일간의 제조공정이 끝나면 저온살균과정을 거쳐 일반맥주로, 비열처리 과정을 거쳐 생맥주로 구분되어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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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프 |
호프는 맥주의 향과 쌉쌀한 맛을 낼 뿐 아니라 맥주의 거품을 보다 좋게 만들며, 맑고 깨끗하게 해 준다.
이 맥주의 거품은 맥주중의 탄산가스가 방출되는 것을 막아주고 산화를 억제하는 덮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때문에 맥주는 거품의 형상과 그 지속성이 중요하다.
일부 생맥주 집에 가면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거품을 없애려고 주전자에 따로 맥주를 부어 잔 가득 채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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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조된 호프 |
맥주는 직사광선이 없는 선선한 장소에서 보관하여야 하며, 병 입 후의 진화 개념이 없고 탄산성 음료이기에 빨리 마실수록 좋다.
맥주가 제 맛을 낼 수 있는 온도는, 여름은 4~8도, 겨울은 8~12도, 봄가을은 6~12도 이다. 무조건 차게 마시면 감각이 마비되어 맥주의 단점은 커버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점을 즐길 수 없게 된다. 어쩌면 화이트 와인과 똑같은지…
맥주 역시 각 브랜드마다 특이한 글래스를 가지고 있다. 어찌나 예쁜지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것들을 모으고 싶은 유혹(?)에 빠질 정도이다. 그러나 시음과 관련하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잔의 청결상태! 기름기가 없어야 거품이 잘 형성되며 오래 유지된다.
자, 그러면 공장에서 직접 마시는 생맥주의 맛은 어떨까 …
IV. 밍크 목도리의 귀부인
산골 계곡의 돌바위 사이사이로 흐르는 물살이 장애물을 만나 이루는 물거품과 소용돌이.
첫 분출은 그러하였다, 꼭지에서 나오는 생맥주가 250 cc 장에 채워지는 그 첫 모습은.
연한 호박색 액체는 잔 벽에 형성되는 이슬방울에 반사되 더욱 매력을 발하고 있다. 쉼 없이 생성되는 기포는 스파클링 와인을 연상시키며 솟아 올라 거품의 바닥을 때려준다.
농밀한 흰 거품은 호박색 신비를 간직한 채, 때로는 그 자체의 미모를 과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맥주의 청량감을 지키는 충실한 보호막의 구실에 충실하기도 한다.
" 아니, 잠깐 ! "
이렇게 희디 흰 색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맥주의 그 호박색이 너무나도 잘게 부서진 산화 (散花)의 표현일까? 새하얀 밍크의 그 윤기 나는 털빛처럼 둥그렇게 또아리를 틀고 있다.
흠~
스큼한 효모의 발효향. 와인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화려하지 않은 향 속에 부드러운 바나나 향이 잠겨 있고… 오래된 찬 버터의 향, 씁쓸한 호프 그 자신의 향이 끝을 마감한다.
카~
역시 맥주는 목젖을 만족시키는 음료이다.
맥주의 산도 역시 낮지는 않은데 (pH 4), 호프의 쌉쌀함이 균형을 맞추어 주어서, 첫 느낌은 '청량감' 그 자체이다. 와인으로 치면, 자몽의 그 청량감과 그 쌉쌀함에 비유할까?
미세한 기포는 알코올도수 낮은 맥주의 파워에 기여한다. 목젖을 자극하며 뒤로 빠지는 강한 인상과 함께 맥주가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을 충일하게 느껴본다.
커피, 초콜렛, 발삼향을 뒤로하고
마지막 뒷맛을 씁쓸하게 장식하며 깔끔하게 사라지는 6000년의 역사.
그러나 그 긴 역사는 내 안에서 너무도 빨리 이해되었던 모양이다.
돌아오는 고속도로.
"으~ 기사 아저씨, 빨리 휴게소에 좀 세워주세욧~ !!"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