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의 새 남작과 그의 작품
샤또 렝쉬바즈(Chateau Lynch Bages)
샤또 렝쉬바즈는 보르도의 포도원들이 등급별로 구분된 1855년 당시에는 5등급으로 분류된 뽀이약 지역의 포도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무도 샤또 렝쉬바즈를 5등급 와인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와인 전문가들에게 렝쉬바즈는 그랑크뤼 1등급 와인과 견줄 수 있는 우수한 품질을 대변하는 이름으로 통한다.
1920년대까지도 샤또 렝쉬바즈는 뽕떼까네(Pontet-Canet), 바따이에(Batailley)와 그랑쀠 라꼬스뜨(Grand-Puy-Lacoste)보다 질이 떨어지는 와인이었으나 까즈(Cazes) 가문의 3대에 걸친 노력 끝에 오늘날 우수한 품질의 인기 있는 와인이 되었다. 이 샤또의 와인은 그랑크뤼 1등급 와인과 비교되기도 하고 샤또 무똥 로쉴드(Chateau Mouton-Rothschild)과 비견되기도 할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 받고 있다.
렝쉬바즈가 무통처럼 명확한 특성을 가지지 못할지라도 다른 뽀이약의 그랑크뤼 와인보다는 분명 우수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와인 애호가들의 칭찬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와인의 경매 거래가가 메독의 그랑크뤼 2 등급 와인의 가격과 같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경매가를 기준으로 와인의 등급을 매겨본다면 샤또 렝쉬바즈는 분명 특 2등급(Super Second) 와인일 것이다.
와인전문 저널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는 1994년 12월 15일호에서 "보르도의 과거와 현재의 최고 와인들 Bordeaux`s Best - now and then"을 다루면서 80년대의 최고의 빈티지(해) 8개(82, 83, 85, 86, 88, 89, 90)에 대한 와인의 평균 점수를 기본으로 보르도의 가장 좋은 재배지 50곳을 선정했다. 이때 선정된 곳 중에서 샤또 렝쉬바즈는 보르도의 5대 귀족 중의 하나인 샤또 라뚜르보다 한 등수 위인 6위를 차지했고, 렝쉬바즈의 1985 빈티지 와인은 이 저널이 뽑은 1988년 최고 와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렝쉬바즈의 이름은 뽀이약 남쪽 내륙에 위치한 아주 오랜 역사를 갖는 작은 마을인 바즈(Bages)에서 유래되었다. 보르도로 향하는 주 도로에서 불과 몇 백 미터 이내에 위치한 바즈 마을은 뽀이약 지방 남쪽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야산 위에 있다. 마을의 좌측에는 지롱드 강의 황토물이 흐르고 더 멀리 남쪽에는 라뚜르의 탑과 농원이 보이기도 하는 소박하고 평온한 곳이다.
전경에는 쎙랑베르(Saint -Lambert)와 도보(Daubos)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배후에는 샤또 뒤아르 미롱 로뜨쉴드와 샤또 그랑쀠이 뒤까스가 자리한다. 우측에는 계속되는 농원들이 쎙로랑으로 향하는 도로까지 이어져 있으며 그 뒤로 더 많은 농원이 펼쳐져 있다.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바따쥐(Batages)였고 라마크 영주의 봉토였다고 17세기경 라피트 토지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1728년 보르도의 상인인 베르나르 데장(Bernard Dejean)으로부터 기엔주의 재무관 피에르 드루이앙(Pierre Drouilland)이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에르는 1749년 사망하였고 그는 그의 생전에 그의 재배지 Batages의 소유권을 그의 딸 마리 안(Marie Anne)에게 주려고 했지만 그의 남동생 자크 그레고와르(Jacques Gregoire)에게 양도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일년 후 그의 형을 따라 사망하게 되니 토마스 렝쉬와 1740년에 결혼한 그들의 여동생 엘리자베스에게 상속이 되어 비로소 이 토지가 렝쉬가문으로 이전되었다.
렝쉬 가문은 노르만 정복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12세기에는 아일랜드의 분가로 골웨이(Galway) 지방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아일랜드 국가 도처에 확산 거주한 것으로 기록된다.
1669년 이 가문에 태어나 존 렝쉬는 그 당시 프랑스 3대항구 도시 중 하나인 조그마한 보르도 항구 도시에 정착하여 모직물과 가죽 무역상을 시작하여 유명한 무역 상인이 되었다. 존 렝쉬는 1709년 그 고장의 아름다운 처녀 기이메트 콘스탄트(Guillemette Constant)와 결혼하여 토마스(Thomas)와 장아서(Jean Authur) 두 아들이 있었으며, 1710년 렝쉬 가족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1740년 렝쉬의 아들 토마스가 엘리자베스 드루이앙(Elizabeth Drouilland)와 결혼하고 그들의 아들 장 밥티스트(Jean Baptiste)가 명목상 렝쉬바즈의 소유주가 된다. 1785년경 토마스의 사망 후에는 장 밥티스트의 남동생 미쉘(Michel)이 가족 농원의 대부분을 돌보았으며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 치하와 복고시대의 혁명기간 동안 유지관리 하였다.
미쉘이 뽀이약에서 와인을 주조하는 동안 렝쉬 가족들은 뽀이약의 렝쉬무싸(Lynch Moussat)와 마고 라바드 지역의 도작(Dauzac) 포도원을 구입하였다. 하지만, 1835년 장 밥티스트의 사망과 1841년 미쉘의 죽음으로 렝쉬바즈는 1824년 스위스 와인 무역 상인인 세바스띠앙 쥐린(Sebastian Jurine) 에게 30만 프랑에 매각된다. 이로써 이 포도원에서 1749년부터 75년간 전개되었던 렝쉬 가문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쥐린의 아들 앙드레 루이(Andre Louis)때에도 샤또 렝쉬바지는 와인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앙드레 루이의 사망과 함께 1865년 제롬 모리스(Jerome Maurice)와 앙리 카이루(Henri Cayrou) 두 형제에게 325천 프랑에 팔리게 된다. 이들 형제들은 보르도의 와인 도매상이자 보르도의 유명한 포도 재배자들이었으나, 이때 역시 렝쉬바즈는 그 우수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포도원은 모리스의 딸에게서 비알가의 장군 펠릭스(General Felix de Vial)로 이전되었으며 다시 1939년 265천 프랑에 장 샤를를 카즈(Jean-Charles Cazes)에 매각되었다. 장 샤를르 카즈는 1934년 렝쉬바즈의 소작농이 되고 1938년 구입한 이후 95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샤또의 와인에 혼신을 다 바친 인물이다.1
실질적으로 카즈 가족이 양조를 총괄한 것은 1934년부터지만 1937년 이후에서야 와인 레이블에 카즈의 이름이 단독으로 게재될 수 있었다. 양도가 완전히 이루어진 1939년 2월 23일까지는 레이블에 펠릭스와 카즈의 이름 모두를 사용해야 했다.
장군 펠릭스는 농원에 기거하지 않았고 불황을 맞아 농원을 유지관리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장군은 카즈에게 무료 임대를 제안했고 이에 장 샤를르는 동의했다. 이때 포도원의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아서 가장 좋은 구획에서도 감자만이 겨우 재배될 정도였다. 하지만 카즈의 노력으로 1934년 작황과 와인이 성공적이었으며, 1934년 와인의 명성에 힘입어 1938년에는 이 포도원을 구입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의 아들 앙드레(Andre)가 1966년 재배지의 경영권을 양도 받았고 그 후 1973년부터는 그의 아들 장 미쉘(Jean Michel)과 함께 재배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앙드레는 뽀이약에서 보험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 미쉘이 재배지의 총책임자라고 해도 될 것이다.
1974년 보르도 와인 산업은 또 한번의 불황을 겪었으며, 샤또 렝쉬바즈의 책임자들은 현대화된 기술과 기계의 도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현대화 작업에 들어갔다. 1976년은 다니엘 로스(Daniel Lose)를 총 기술책임자로 채용하고 양조의 전과정에 필요한 최첨단 기계와 장비들을 새롭게 들여왔다.2 설비의 개,보수는 1989년에서야 완성이 되었으며, 그 사이에 샤또 렝쉬바즈는 꾸준한 품질의 향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샤또 렝쉬바즈 포도원은 배수가 잘되는 가론강의 찰흙과 모래 자갈이 하층토를 구성하고 있고 오래된 포도나무 뿌리가 땅속 6-8 미터까지 뻗어 자랄 수 있는 무른 경지질의 토양을 갖는다. 약 80ha에 이르는 경작지는 두 개 지역에 나뉘어져 있다. 포도원 한 곳은 샤또와 D2 도로 사이 바즈 마을에 직접 인접해 있으며 다른 곳은 뽀이약에서 아래 바따이(Batailley)와 그랑 쀠 라꼬스뜨(Grand Puy Lacoste)로 향하는 도로 조금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 포도원의 연 평균 와인 생산량은 다른 메독 지역의 포도원과 비교했을 때 전혀 적은 양이 아닌 약 300-350톤노3 이다. 포도 품종은 여타 다른 Medoc의 유명 재배지와 마찬가지로 까베르네 소비뇽 75%, 메를로 15%, 까베르네 프랑 10%과 약간의 쁘띠베르도를 재배하고 있다. 포도는 전량 손으로 수확하고 와인은 온도 조절 장치를 갖춘 35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발효된다. 그리고 12-15개월간 오크통에서 숙성된 후 병입된다.
샤또 렝쉬바즈는 입안에서는 무게감, 강건한 탄닌과 함께 풍부한 맛을 나타내며, 높은 알코올의 훈훈함과 매력적인 과일향이 느껴지는 와인이다. 그리고 동시에 강렬한 부케와 응집력을 특색으로 꼽을 수 있는 와인이다.
양조된 포도주가 그랑방(Grand Vin: 주 와인)의 표준 품질에 미달될 때는 제2 와인인 샤또 오 바즈 아베루(Chateau Haut Bages Averous)으로 출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샤또 렝쉬바즈에서는 블랑 드 렝쉬바즈(Blanc de Lynch Bages) 란 이름으로 1990년부터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쎄미용(40%)과 소비뇽 블랑(20%)에 무스카델 품종을 배합하여 오크통에서 양조하는 이 와인은 레드 와인이 중심이 되고 있는 뽀이약 지방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와인이다.
다시 렝쉬바즈를 이끌어간 장 미셀 카즈 이야기로 돌아가면 프랑스 제2의 보험 회사인 악싸(Axa)가 피숑 바롱 농원을 인수하였다. 이때 악싸 보험회사의 자매회사로 악싸 밀레짐(AxaMillesime)사가 창설되면서 렝쉬바즈(Lynch bages)의 소유주인 장 미셀 카즈(Jean Michel Cazes)를 관리자로 채용하였다.
크로드베베아(Claude Bebear)와 장 미셀 카즈는 같은 1935년 생으로 학교 동창생이다. 크로드 베베아는 장미셀 카즈가 지난 10년 동안에 렝쉬바즈의 품질을 이미 특 2등급의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카즈를 피숑 바롱의 관리인으로 임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악싸 밀레짐은 뽀이약의 " 삐숑롱그빌 바롱(Pichon - Longueville Baron)을 비롯하여 마르고의 깡뜨낙 브라운(Cantenac Brown), 쏘떼른의 쉬뒤로(Suduiraut), 뽀모를의 쁘띠빌라쥬(Petit Village) 등 훌륭한 포도원을 매입하였으며 장 미셀 카즈는 2000년까지 이들 재배지를 관리하였다.
요즈음 그는 렝쉬 가문 소유인 뽀이약의 렝쉬바즈(Lynch Bages), 쎙떼떼프의 옴드페즈(Ormes de Pez), 그라브의 빌라 밸래르(Villa Bel Air) 등의 훌륭한 포도원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뽀이약의 코르데이안 바즈(Cordeillan Bages)라는 샤또와 호텔과 레스토랑을 소유 운영하고 있다.
와인 저널 와인 스펙테이터가 보르도의 새로운 남작 "New Baron of Bordeaux" 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미셀 카즈. 카즈, 그가 지난 15년간 훌륭한 와인으로 많은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듯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좋은 와인을 생산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이석기]
1. 그는 렝쉬 바즈를 구입한 1-2년 후 쌩떼스떼프의 샤또 레오름 드 뻬즈(Chateau Les Ormes de Pez)를 구입했고 여기에서도 탁월한 양조 능력을 보여주었다.
2. 샤또 렝쉬바즈에서는 새로운 설비들과 함께 과거 장비들을 같이 전시하고 있어 이 곳 와인 양조의 역사를 체험해 볼 수 있다.
3. 기록에 의하면 1977년에는 총 생산량이 50토노에 불과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