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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농업을 위주로 하는 사회일수록 사람 손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부터 대가족을 이루어 살아왔다. 그리고 그 가족을 뛰어넘는 모임을 만들어 때로는 경제적으로, 때로는 품팔이로 서로를 도와왔다. 우리 역사에서 보이는 품앗이, 상조회 등이 그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고, 이렇게 열심히 땀을 흘려 만든 농산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또 다른 형태의 홍보성 이벤트를 마련했다. 청양 고추 아가씨, 목화 아가씨, 입장 포도 축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농경사회의 풍습은 사람 사는 곳이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럽 역시 근간은 농경사회 이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Confrerie라는 단체의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기 쉽지 않은 "꽁프레리"라는 단체는 일정한 지역 공동체를 기준으로 같은 농산품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의 모임이다. 최근에는 이것이 확대되어 그 주변 산업 관련자들도 함께 모임에 참여한다. 농사력과 관련된 각종 행사를 주관하고 서로의 친목을 다지며, 자기들이 만든 농산품을 홍보한다.

이런 단체의 기원은 다양하다. 종교적 이유일 수도 있고, 단순한 친교가 목적일 수도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 다양한 산품을 생산하게 되고, 그 하나하나의 산품을 홍보하고 그 생산자들이 한 데 모여 일정한 의식을 나누는 그런 성격의 모임이기에 그 하나하나가 유일하고 독특하다.

그러면서도 공통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교'의 정신, '축제'의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실질적인 목적인 '홍보'의 정신이다. 자기들의 생산품과 그 지역을 소개하는 홍보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상업적이지만은 않다. Confrerie에는 '흥겨움' 이 있으며, '의식'이 있으며, '웅장함' 이 있다. 이런 분위기가 없으면 Confrerie가 아니다.

오늘은 당연히 포도주와 관련된 Confrerie를 얘기하겠지만, 이 외에도 수많은 분야에서 Confrerie가 결성되어 있다. 물론 농업과 식음료에 관련된 Confrerie가 가장 많다. 빵, 치즈, 겨자, 과일 등등 모든 종류의 Confrerie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일류 요리 학교인 Cordon Bleu를 나온 학생들은 "꼬르동 블루 기사단"에 소속되어 학교의 명예를 선전하지 않는가.

어떠한 공식적인 규정도 없다. 각기 자기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조직하고 운영해 나간다. 그러나 대부분 연륜을 거듭할수록 일정한 형식과 의식을 갖추게 된다. 점점 형식적인 의례와 관광성 행사가 많아지므로 화려하고 독특한 의복과 다양한 상징물은 필수이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Confrerie들도 있고, 이름만 남아 있는 Confrerie들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것 만도 1000여 개에 이른다. 회원이 10여명 밖에 되지 않는 것도 있고, 수 천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그 중에 몇몇은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고, 그에 걸맞게 세계 각국에 외국 회원을 위한 지부도 두고 있다. 포도주와 관련한 Confrerie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르도 지역의 Commanderie du Bontemps de Medoc et des Graves 와 Saint-Emilion 의 la Jurade, 그리고 부르고뉴 지방의 Confrerie des Chevaliers du Tastevin 이다.

오늘은 먼저 보르도로 내려가 보자.

1. La Jurade (쥐라드)

1999년 여름에 프랑스 보르도의 Saint-Emilion을 방문하신 분들이라면, 멋지게 차려 입은 일단의 원로들이 도시를 돌며 하는 여러 가지 퍼레이드와 각종 행사를 보셨을 것이다. 바로 이 기사단의 800주년 기념잔치가 대대적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800 주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낯간지러운 것이, 사실 지금의 이 기사단은 1948년에 "재생"되었다. 그래도 보르도 지방에서는 최초의 Confrerie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1199년 당시 영국령이었던 보르도 지방의 Saint-Emilion 은 사자심왕 리챠드가 허락한 자치권을 재확인 받는다. "쎙테밀리옹의 시민 중에서 선발된 위원(Jurat)이 도시의 사법과 행정을 자치적으로 관할하는 특권"을 받았던 것이다. 이들 위원들은 도시 내부의 대소사를 집행하며, 포도주의 수확과 그 품질을 관리하였다.

22명으로 구성된 현대적인 쥐라드는 Libourne 지방 포도주 산업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지역의 대부분의 포도주 행사를 주관하며 후원한다. 슈퍼맨의 의상과 비슷한 긴 날개후드는 순백색으로 쥐라드의 순수성을 상징한다. 또한 보르도 칼라의 본의상은 백색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가장 간단하면서도 화려해, 이 후 모든 Confrerie 의상의 기본이 되었다. 여기에 백색 턱받이가 가슴까지 내려와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단순함에 '텃치'를 준다.

2. Commandrie du Bontemps de Medoc et des Graves

"꼬망드리 뒤 봉땅 드 메독 에 데 그라브" 라고 발음한다.
번역은 발음만큼이나 어렵다. "메독 과 그라브의 기사단" 쯤으로 번역해 두자.

오늘의 이 기사단이 현대적으로 재건된 것은 얼마 안되지만, 그 전신은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이다.

▶Henri Martin
중세 때, 한 교단이 지금의 Saint-Laurent de Medoc 근처의 Benon 이라는 곳에 교회를 건립하였다. 포도재배와 포도주 양조, 판매는 곧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이들은 자기들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 만족치 않고, 주변 마을의 포도 농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며 도와주었고 농민들을 보호해 주었다. 교단은 곧 이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단의 정신과 활동이 재현된 것은 2차 대전 직후이다.

2차 대전 후, 메독의 포도주 산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빈티지도 좋지 않았고, 메독 포도주는 판매가 부진했다. 부르고뉴의 Confrerie des Chevaliers du Tastevin은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Saint-Emilion 에서는 Jurade가 창설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 동안은 포도주만 열심히 생산하면 되는 줄 알았었는데, 이제는 메독 포도주를 "널리 알릴" 홍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947년 공식 기구인 CIVB(보르도 포도주 협회)가 발족되자, 곧 이어 민간 단체인 한 모임이 만들어졌다.

1949년 메독의 관광자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자그만 모임이 그 시초가 되었고, Saint-Julien의 Henri Martin이라는 사람이 총대를 메었다. 그는 메독 지역의 독특한 도구인 '봉땅'(Bontemps)을 기사단의 상징물로 선정했다.

9세기에 Jean-Odule Paulin d'Esquet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점착 침전 정제법(Collage)에 쓰이는 달걀 흰자를 넣고 휘젓는 통을 발명했다. 만든 사람의 이름을 따서 갸스꼬뉴 지방어로 "desquet" 라고 불렀다. 프랑스말로는 "Bontempt"이다.

와인 생산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면서, 간단하고 단순한 이 도구가 기사단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것이 또한 기사단 회원이 쓰는 모자의 모델이 되었다. 적포도주에 젖은 포도주색 나무통과 그 안에 들은 부풀은 달걀 흰자...

어떻게 생겼을까요?? (상단의 모자를 보면 이해할 것임)

내역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멋진 모자이지만,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 흰자가 거품을 내며 부풀어 오른 영락없는 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기사단답게 의장 또한 화려하다.

벨벳으로된 보르도 칼라 옷에 오른쪽 어깨에 내린 수견을 걸친다. 수견의 색깔에 따라, 녹색(옥색)은 메독 지방 회원, 황금 녹색은 그라브 지방 회원을 뜻한다. 왼쪽 가슴엔 회원을 상징하는 큼지막한 뱃지를 달고 있는데, 중앙에 "bontemps"의 모형이 있고, 그 주위에 C.B.M.G. 네 글자가 적혀있다.

"기사단"은 포도주와 관련한 세가지 직업 종사자들의 모임이며 협회이다. 와인생산자 (Wine maker), 와인브로커(Courtier), 와인상인(Negociant)이다. 와인생산자는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며, 와인브로커는 와인과 와인생산자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서, 와인상인들은 경제활동의 연결자로서 전 세계에 보르도 와인을 알리는 각각의 역할을 다한다.

기사단은 또한 어떤 기회이든 가장 최고의 인물만을 회원으로 맞이한다. 기존회원의 추천(대부 대모 제도)이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명예회원을 임명하기도 한다. 각국의 정치인이나 연예 스타 등도 그 대상이다. 작년 보졸레누보 행사 때, 프랑스 대사관에서 보졸레 지방의 Confrerie 대표가 탤런트 김지호를 명예 보졸레 기사단 회원으로 선정한 것이 좋은 예다.

기사단은 메독과 그라브 지방 그리고 전 보르도 지방 포도주의 명예를 위해서 활동한다. 아울러 한 공동체로서, 기사단 각 멤버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형제애를 발휘한다. 이들의 활동은 다양하다.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로는

- Saint-Vincent(1월) : 포도주의 수호성인을 모시는 포도 재배 농군과 와인 메이커들의 축제.
- Fete de la Fleur(6월) : 포도가 잘 맺혀 잘 익기를 바라는 축제.
- Ban des Vendange(9월) : 그 해의 포도수확의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기사단은 각종 모임과 접대, 포상, 특별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보르도 포도주의 프로모션을 위하여 활동하며, 세계 각 지역의 "보르도 기사단"을 만들고 이들과의 연락을 통해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일본, 세네갈, 영국,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 지회가 건설되어 있다.1

다음 호에는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따스트뱅 기사단'에 대해 살펴보면서, 부르고뉴 와인의 프로모션과 와인산업에 대해 알아보겠다.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


1. 한국에서는 연일의 정치오 회장이 기사단의 멤버이며, 꺄브드뱅의 유안근 사장이 2001년 6월말의 VINEXPO 행사 때, 기사단에 추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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