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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1947)'中>

와인을 대할 때 마다 필자는 이 싯귀를 떠올리곤 한다. 이는 떨어지는 국화 꽃잎을 보면서 이른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대던 기억을 떠올리는 시인의 다감성이 와인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와인 한 병을 위해 농부들은 일 년 내내 겨울철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해서 밭갈이, 잡초 뽑기, 곁 가지치기, 열매 솎아내기에 땀과 노력을 쏟는다. 그리고 농부들의 이러한 정성 속에 포도나무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여러 층의 토양으로부터 정갈한 물과 각종 영양분을 빨아 올려 알알이 고이 간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 포도가 수확되어 발효와 숙성의 과정에서 고유한 맛과 향까지 생성케 되니 와인이야말로 대지(大地)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순수한 생명수(生命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와인과 친숙했다. 기원전 6천년경 코카서스산맥 남쪽의 아란낫산 지방과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포도 나무의 기원은 시작되었고 그 후 3천여 년이 지난 이집트와 페키니아에서는 포도 재배기술과 와인 양조가 한 층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1천여 년이 한번 더 흘렀을 무렵 고대 희랍에서는 '디오니소스'라는 와인의 신이 탄생했고 성경에서 와인이 여러 번 언급된 이래로 2천여 년이 흘렀다. 이런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발전과 관심이 되어왔다는 것은 와인에 분명 와인만이 가진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혹자는 와인의 매력을 [건강론]을 들어 설명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이유로 그들의 음주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독주보다는 저알콜 중심의 순한 술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건강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지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일부 외신들에서도 와인의 의학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와인이 (특히 레드 와인) 우리 몸 안에서 해로운 콜레스테롤의 생성을 억제하는 등 고혈압과 심장병의 예방 및 치료 효과를 주며 피부암과 유방암의 발병율을 줄이는데 도움을 준다는 건강 효용론 쪽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발표 내용들은 점차 확산되어 가는 외국식습관- 육류와 덜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선호 형태와 맞물려 한국에서의 와인 보급을 더욱 손쉽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와인은 취하기 위해서 보다는 그리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마신다기 보다는 식사와 함께, 그 맛과 향을 즐기고, 그러므로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참된 [삶의 멋]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와인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하게 변화하는 황홀한 경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마시는 그 순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생성과 변화, 숙성의 전 범위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와인은 역사와 예술 그리고 심지어는 과학까지 깃든 실로 놀라운 대상이다. 와인에 들어가는 공정과 시간.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 상에서 즐기게 되는 와인은 의학적인 효과에서 마시는 와인과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와인을 음미한다는 것은 풋풋한 소녀에 비유될 수 있는 햇술의 거친 맛이 발랄하고 어여쁜 처녀로 그리고 나아가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으로, 또는 귀족 같은 완숙한 여인에 비유될 수 있는 섬세함과 완숙미로 숙성되는 모든 단계를 즐김을 의미한다. 이는 달리 선머슴에 비유될 수 있는 와인이 더벅머리 총각으로, 그리고 나아가 강건하고 강력한 영화배우 존 웨인 또는 섬세하면서 우아한 연기를 보여준 데비드 리븐에서 느낄 수 있는 귀족적인 느낌의 와인으로 발전되는 맛의 전모를 깊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가까운 데서 비유를 찾자면, 우리가 겆저리와 막 담근 김치의 맛에서부터 김장 김치의 그윽한 감칠 맛까지 전부를 그리고 그 각각을 다 즐기는 것에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처럼 다양하고 다채로운 와인을 단순한 양조의 산물이 아니라 신비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다양함을 [건강론]의 입장만 본다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명제만으로 와인을 풀이하려는 경향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져 보고 싶다.

한국은 풍토상 와인 생산에 적합한 포도가 나지 않아 와인과 친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8년의 서울 올림픽, 정부의 개방정책과 국제화 추진 노력, 크고 작은 다양한 국제회의의 개최 등의 영향으로 지난 10여 년 전부터 와인 소비량이 증가하였다. 1997년 말에 닥친 IMF위기가 국민의 소비환경을 위축시켰고 이는 와인의 소비량의 급격한 감소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서는 다시 소비량이 회복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증가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와 같은 소비의 증가는 향상된 경제 여건도 있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와인에 대한 소개나 다양한 와인관련 정보들이 고정적으로 소개하고 와인전문 매장, 와인 바, 와인 관련서적의 출간 등이 눈에 띄게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와인 전문가를 육성하는 '와인학교'도 여러 곳에 설립되었으므로, 와인을 건강이라는 극히 제한된 의미에서 즐기는 데서 나아가 와인을 그 자체의 매력으로 받아 들이게 될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와인에 대한 관심은 달리 한국민의 와인에 대한 잠재 기호성에 기인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민의 관심은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에 정확한 와인 정보를 요구할 것이며, 이와 같은 요구는 나아가 먼저 와인 세계에 입문한 자들의 노력과 기여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것이다. 와인 자체가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관심, 그리고 한국민의 와인에 대한 잠재 기호성. 그리고 와인 문화의 유입과 형성 앞에서 필자는 더한 책임 의식을 느끼며, 앞으로 한국민의 와인 문화가 아직은 법적인 규제를 받고 있는 와인 전자상거래의 문을 열고, 보다 활발한 와인 문화를 형성하고야 말 것 같다는 예상을 해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_마침표_]

[_이석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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