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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와인업계의 일원이 되기 전 필자는 알토맨이란 ID를 사용하며 천리안상의 와인 동호회인 "코르크 따개가 없는 마을"의 시삽을 하고 있었다. 매월 시음회를 준비하며 와인에 대해 나름대로 체계적인 접근을 할 수 있었고, 와인사랑을 키워나가던 소중한 시기였다.

그 사랑이 키가 훌쩍 커버렸을 때 나는 안정적이었던 전 직장 생활을 접고 와인계에 뛰어들게 되었다. 업계에 투신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모 백화점의 와인샵의 매니저가 이런 말을 건댔던 것이 기억난다.

"정말 깜짝 놀랬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이 바닥이 어떤지 알려 드렸을텐데.."

역시 그러했다. 어느 정도의 시각 차를 감안 했음에도 와인 애호가로서 바라보던 와인 샵과 실제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체험적으로 느끼게 된 와인 샵은 사뭇 달랐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와인샵은 무척 바쁜 곳이라는 것이다. 고객에게는 쉼터와 재충전을 위한 여유를 제공하는 곳이 와인샵 이지만 내부적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각종 이벤트와 시즌 준비로 여념이 없다.

다음으로는 와인샵 근무가 상당히 체력을 요한다는 것이다. 물건 정리나 디스플레이를 바꿀 경우 상당히 많은 물건들을 들어 옮겨야 한다. 특히나 보졸레 누보 출시 때는 수십 수백 박스의 누보를 매장에 쌓아 날라야 하는데 누보 애호가들에게는 기다려지는 그 날이 샵 근무자들에게는 매우 괴로운 날이 아닐 수 없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

바삐 일하는 중에 일어난 즐겁고 보람된 일들은 있기 마련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날 중 하나여서 물동량도 자연 크게 마련인데 필자가 일하는 곳은 백화점내의 와인샵이라 필요한 물건을 개점 시간 이전인 아침에 받게 된다.

평상시는 젊고 튼튼한 영업사원들이 배송을 담당하는데 그날 아침에는 상무님, 부장님 두 분이 선물 보따리를 든 산타처럼 잔뜩 와인을 싣고 오셨던 것이다. 그리곤 와인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와 작은 선물을 전하고 가셨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지라 우선은 놀라고 다음으론 행복감을 느꼈다. 남들 쉴 때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자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이번에는 손님과 관련된 일이다. 와인샵은 보통 손님들께 무료로 와인을 시음할 기회를 드리곤 하는데 손님이 데리고 온 어린 아이가 시음잔을 만지작 거리다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난감해 하는 아이를 안심시키고 사태를 수습한 후에 굳이 잔값을 치르시겠다는 손님을 그냥 보내드렸다.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백화점 측으로부터 필자가 CS(고객만족) 우수사원으로 뽑혔단 말을 들었다. 그 손님께서 백화점에 엽서를 보내시어 그 날 일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신 것이었는데 참으로 뿌듯함을 느꼈었다.

국내 와인소비 패턴의 문제점

이번엔 와인을 판매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무엇보다도 와인 소비가 상당히 편향되게 이루어 진다는 점을 들겠다. 그 이유는 역시 무엇보다 와인에 대한 기본지식이나 정보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례로 필자가 근무하던 매장에서는 부르고뉴 와인이 상당히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네고시앙이 다르지 않는 이상 언뜻 보기에는 마치 하나의 와인처럼 보이기 쉽고 세부지역에 대한 이해가 적은 상태에서는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것이 이유라고 생각된다.

또한 필자는 이름을 외우기 쉬운 특정 와이너리나 지역의 와인이 아니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와인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고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네고시앙 와인을 여기저기서 질 떨어지는 포도를 모아 만든 한 마디로 '잡술'이라고 표현하시는 고객의 얘기를 듣고는 와인이 갈 길은 아직도 멀었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었다.

그리고 몇 가지의 포도 품종이 시장을 독식하는 현상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레드 와인의 까베르네 소비뇽, 화이트 와인의 샤르도네의 인기가 지나치게 높아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다른 품종들이 외면 당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라 하겠다. 또한 판매가 특정 시기에 너무 집중되어 이루어 지는 것 역시 문제로 볼 수 있다.

현명한 소비를 위하여 (고객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

와인이란 것이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고객이 원하는 그 제품이 정확히 샵에 없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 와인 샵이나 장기로 삼는 품목들이 있게 법.


구석 구석 잘 살펴보면 그 가게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게 마련이다. 때론 샵 직원들 조차 가치를 잘 모르는 숨은 보물들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눈에 잘 띠는 특정 브랜드의 와인이 없다고 해서 곧바로 발길을 돌리기 보다는 한번 더 눈길을 주시고 판매 직원들에게 물어봐 주시는 여유를 가져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와인샵이 앞장서야 할 일들

작금의 전 세계적 와인소비의 Trend는 "Less Money For More Value"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이는 질적으로는 동일수준 또는 그 이상을 원하면서도 비용지출은 줄이겠다는 것을 뜻한다.

당장의 매출을 위해 마진이 좋거나 고가의 와인들을 우선 판촉하기 보다는 고객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주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즐거운 저녁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머리를 함께 맞대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경험상 그렇게 정성을 다해 대접한 고객은 후일 다시 찾아 주시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렇게 경제적인 소비를 유도하여 와인 대중을 늘리고 고객에게 생활속의 작은 행복과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야 말로 와인샵에게 맡겨진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진정한 명품들과 숨은 진주를 함께 갖추어 매니아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내게 있어서 와인샵은 와인의 향기가 어린 문화공간일 뿐만 아니라 땀 냄새 진득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현장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Young Vine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깊이 있고 복잡미묘한 좋은 와인을 만들수는 없지만 언제고 Grand Vin을 빚어낼 수 있을만큼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때쯤이면 내 와인사랑도 보다 더 영글어 있으리라.

끝으로 짧은 경험과 부족한 글 재주를 가진 이 사람에게 한국의 와인샵 근무자를 대표해서 속 얘기를 들려주도록 기회를 주신 베스트와인에게 감사드리는 바이다. [_마침표_]

- ㈜나라식품 유통팀장(매장 담당) / 前 Maison du Vin 샵 매니저 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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