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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매년 11월이 되면 몇 주 동안은 보졸레 누보가 전세계인의 입술을 적시며, 고대 이래 계속되어온 박카스 축제를 연상케 하는 축제가 펼쳐진다.


애호가들은 의식을 치르듯이 시계 바늘이 자정을 치기를 기다리며 즐거워하고, 포도주 제조자들은 만들자 마자 들어 오는 돈을 만지며 즐거워 하고….


가장 상품화한 포도주, 가장 매스컴을 타는 포도주, 보졸레 누보는 이렇게 오버랩된다.

보졸레 누보의 탄생

토양과 품종과의 조화는 늘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포도 재배의 한 화두인데, 화강암의 땅위에서 자란 갸메(gamay) 가 주는 신선함과 활기, 과일향 가득한 개운함은 그 화두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보졸레 누보는 "탄소침용 발효법 (semi-carbonic fermentation)" 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여 만들어 진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터지지 않은 싱싱한 포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기계 수확은 배제된다.

보통 발효는 포도즙의 당분과 효모가 만나 이루어지는데 반해, 보졸레 누보의 발효는 효모의 개입 없이 포도알의 내부에서 효소와 산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밀폐된 포도알 내부에서의 화학작용에 의해 미량의 알코올과 독특한 향, 부드러운 색상을 얻는다.

보통 4~5일의 짧은 추출과정 끝에 껍질을 제거한 후 다시 발효를 계속하기에 드라이한 루비빛 레드와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햇술은 꼭 보졸레 지방에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루아르 지방에서도 만들고, 론 지방에서도 만든다. 그 제조법이 특이하기에 거의가 다 비슷한 맛과 향이 난다. 단지 갸메의 홈그라운드에서 만든 보졸레누보가 그 감칠맛과 상큼한 향이 다른 곳보다 뛰어남은 부인할 수 없다.

보졸레 누보의 유래

보통 "nouveau" 라 함은 해당 수확에서부터 다음 수확 전까지의 포도주를 말한다. "primeur" 라 하면, 해당 수확에서 그 이듬해 봄까지 (그 날짜는 국가별로 정함) 유통되는 포도주를 말한다. 따라서 "Beaujolais nouveau" 는 실제로는 "Beaujolais primeur" 이다.

프랑스에서 현재의 품질관리시스템(AOC)이 작동하기 이전에는, 발효만 끝나고 포도주가 만들어지면 바로 시판할 수 있었다. 이런 포도주를 "Bourrus" 라고 불렀다. 그런데 AOC 시스템 이후, '12월15일 이후 시판 가능'의 기준이 생기게 되었고, 1951년에는 12월15일 이전에 출시할 수 있는 포도주를 특별히 규정하였다. 1

이들은 "Vin de cafe" 라고 불렸는데, Beaujolais, Cotes-du-Rhone, Macon blanc, Gaillac, Muscadet 등이 있었다. 물론 좋은 품질은 아니었다. 그래서 1967년에 몇가지 보완규정이 만들어졌다. 휘발성산이 0,6g 을 넘지 못하며, 잔여당분도 2g 이하 여야 했다. 그리고 심사위원회의 시음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Beaujolais 같은 경우는, 여기에 더하여, 알코올 13% vol 이하, 유산변이 이행, 합당한 색상 등의 규정이 추가되었다. 이리하여 보졸레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2

보졸레 누보의 작명철학

원래 햇포도주는 "뱅 드 프리뫼르(Vin de primeur)" 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첫 술, 이른 술, 햇 술이란 뜻이다. 프랑스 전역에서만도 수 십 가지의 프리뫼르 포도주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이름이 좀 길고 발음하기 쉽지 않은 점이 있다.

자~ 한번 발음해 보자, "프리뫼르~~ -_-".
나야~ 뭐~ 프랑스에서 7년을 살았으니까 못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어려운 발음일게다. 반면, "누보(nouveau)" 라는 이름은 얼마나 미끈한가. 기억하기도 쉽게 두 자 인데다, 우리 말의 접미어인 "~보" 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큰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졸레 프리뫼르가 보졸레 누보 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졸레 협회의 공식 선전 포스터에서도 "누보" 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잔디밭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몇 년 뒤엔 자연스레 길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보다.

보졸레 누보 테이스팅

보졸레 누보는 그 제조 특성상 바로 마셔 소비하는 가벼운 포도주이다. 4~6일 간의 짧은 침용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포도주의 멧집을 잡아줄 탄닌과 그 형제들이 별로 없다. 순하고 부드러운 여린 놈이다. 벌써 2~3달 지나면 시큼한 맛이 더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 향이 발랄하고 상큼하고 화려하나 오래가지 않는다.

금방 껍질을 깐 바나나의 달콤함, 여성분들 손톱의 매니큐어향의 산뜻함, 풍선껌의 후레쉬함, 각종 햇과일이 담겨있는 영국캔디향… 이런 향들이 잔 안에 가득!!
입안에 담으면… 새콤한 첫 느낌과 풋과일을 씹는 듯한 산도와 풍미를 주곤 가뿐하게 목젖으로 넘어가는 포도주! 그래서 "감칠맛" 이라고 표현한다.

알코올의 뜨거움도 탄닌의 거침도 없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순수하고 정갈하며 소박한 포도주이다.

Beaujolais Nouveau est arrive !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오는 햅쌀, 햇과일.. 그리고 햇포도주. 포도주는 오래 묵어야 제 격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보졸레 누보는 '역설' 이며 '이변'이다. 만들자 마자 바로 마셔야 하며, 그렇게 가볍게 만든다.

보졸레 누보가 일반 포도주들과 다른 가장 특이한 점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출시한다는 것이다. 즉,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을 기해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법적 규제는 없지만 생산자와 판매자, 소비자 모두가 이 규율을 지키며 새로운 문명현상을 만들어간다.

가게의 창유리에 묻은 선전 포스터의 이국적 느낌과 함께, 시차로 인해, 유럽의 가장 먼 곳부터 터지는 코르크 따는 소리는 보졸레 축제의 절정을 이룬다.

본 고장 프랑스에서도 각 와인동호회 별로 특정한 장소를 정해놓고 보졸레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몇 명이서 각기 추렴을 하여 다양한 보졸레 누보를 시음하는 것이다.
" 올해 보졸레누보는 예년만 못한 것 같애~?? " 하며 말이다.

이제... 이러한 축제가 우리나라에까지 상륙했다.
거리의 주류샵과 백화점 마다 보졸레누보를 알리는 예쁜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영문을 전혀 모르는 아저씨들은 지나가며 어리둥절 바라보고, 와인애호가들은 기쁨으로 예약을 하기도 한다. 더구나 올해는 서울 한구석에서 대규모 축제를 기획한다는 소문이다.

항상 그렇듯 서구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이 축제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와인을 사랑하는 우리의 임무이며, 이 땅에 바람직한 와인문화의 꽃을 피우는 초석이 될 것이다. 남의 나라 따라하기가 아닌 한 농산물의 탄생과 출시를 기념하기 위한 진정한 축제가 되길 기원해 본다.

깊어가는 가을녘… 올해는…산사의 단풍길에서… 이 햇포도주를 마시고 싶다. [_마침표_]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


1. AOC 급에 속하는 포도주는 12월15일 이후에야 출시할 수 있는게 규정이다. 그러나 primeur 포도주는 11월15일부터 출시할 수 있다.
2. 원래 Beaujolais primeur 는 Beaujolais-Villages 지역의 화산토 토양에서 생산되었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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