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출시로 알아보는
이탈리아 포도밭 등급의 현주소
<몬탈치노 산타고스티노 성당내 회랑을 개조해 만든 시음장에서 와인 저널리스트들이 올해 출시한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를 시음하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의 피에베 타입 출시에 즈음하여, 이탈리아 DOCG 등급 와인에 일고 있는 지명 세분화(subzone) 동향을 다룬 바 있다. 이 소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6월 16일, 끼안티 클리시코 컨소시엄은 맥락이 비슷한 협회 규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새 조항은 8군데 마을 연합인 끼안티 클라시코 생산지역을 11군데로 세분하되, 그란 셀레지오네 타입만 적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바르바레스코가 촉발한 지명 세분화 물결
토스카나 와인 지도를 다시 손 봐야 할지도 모를 토스카나 와인의 최근 행보, 그 진원지인 지명 세분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이 움직임은 이미 2007년 바르바레스코 컨소시엄이 지리 명칭 추가(MGA)를 신설하면서 4군데 마을을 66개의 포도밭으로 잘게 나눈 것이 시초다. 이후 바롤로의 11군데 마을은 181 개 밭으로, 로에로의 19군데 마을은 135개 밭으로 분할되었다. 이러한 지명의 핵분열을 두고 이탈리아 와인 규정은 UGA라 정의하며, 풀어쓰면 추가 지리 단위( Additional Geographical Units)로 번역될 수 있겠다.
이외에도 돌체토 디 디아노 달바, 소아베 수페리오레 와인도 UGA를 일찌감치 받아들여 라벨에 표기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피에베와 그란 셀레지오네 처럼 특정 타입에만 적용할 수도 있는데 코넬리아노 발도비아데네 프로세코의 리베(Rive)가 그렇다. DOC와인도 예외는 아니며 시칠리아의 에트나Etna Rosso는 선두 주자다.
여기서 알아둘 것은 UGA 사용 여부는 생산자 마음에 달렸다. 개인 땅이 UGA로 분류되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사적인 지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공들여 키운 밭 브랜드를 하루 아침에 버리기는 쉽지 않을 거다.
UGA 에 이름을 짓는 방식이 따로 있을까?
보통은 고유의 지명, 오래된 밭 이름, 밭 자체나 주변 농가의 스토리가 유력한 후보군이다. 그러나 일부 와인은 지명 앞에 특정 단어를 추가해 통일성을 유지한다. 예를 들면 로에로와 소아베 수페리오레는 비냐( Vigna, 밭을 뜻함), 돌체토 디 디아노 달바는 소리(Sori, 언덕 봉우리를 뜻함)뒤에 UGA를 붙인다. 경사가 급한 43개의 밭에서 나온 프로세코는 리베(Rive)를, 에트나 로쏘는 지역을 뜻하는 시칠리아 옛말인 콘트라다(contrada) 뒤에 따라온다.
UGA의 속과 겉
한 사람을 자주 만나면 그를 더 알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UGA의 처음은 포도 출처를 알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은 데 있다. 포도 출처가 분명한 이상, 수확 이후의 양조 과정은 롯트lot별로 처리되며 세부 과정은 기록에 남겨져 최종 등급 심사 때 제출해야 한다.
프랑스가 크뤼 제도 시행 시 밭의 가치를 순위로 매겼다면, 이탈리아 경우는 과거부터 도입시점까지 ‘밭마다 고유의 풍미를 내더라’는 경험적 데이타가 깔려있다. 밭의 덩치는 줄어드나 여러 성분 함유율은 불어나는 추세다. 고형성분, 알코올 도수와 오크 숙성 기간이 강화되어 품질이 눈에 보인다. 한편, 토착품종 선호도도 심화되고 있는데 외래 품종을 제외하고 토착품종 비중 상향을 의무화 하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탈리아는 등급이 5백여 개나 되며 토착품종은 알려진 것만 최소 1천여 개에 이른다. 여기에 세세한 규정 변동까지 가세하면 소비자의 정보 흡수력이 더디어져 혼란만 가중될 거란 우려를 낳고 있다. 최악의 비판은 ‘와인 값을 부풀리는 편법이 아니냐’다. 사실 바롤로 와인은 새 빈티지의 출고 가격이 해마다 오르고 있으며 밭 거래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소비자들 눈에도 밭을 표기한 라벨은 고급스럽게 비치며, 생산자 입장에서도 내 포도밭이 UGA에 속하면 그걸 숨길 이유는 없다. 남들 다하는데 나만 부정하면 기본급 와인이나 클라시코 블랜딩으로 하향 조정됨은 물론 마진폭 감소도 각오해야 한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의 경우
현재까지 부르넬로 생산자들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알려진 바가 없다. 와이너리 자체적으로 밭 구분 작업이 현재 진행형이며 비냐와 셀레지오네(Vigna, Selezione) 타입은 싱글빈야드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1998년에 부르넬로 와인 생산에 뛰어든 티에찌 와이너리( Tiezzi Enzo & Monica)의 얘기를 들어보자.
“몬탈치노 생산자들은 이웃한 와인(끼안티 클라시코, 비노 노빌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어요. 몬탈치노 와인은 작은 밭에서 소량 생산에 만족하는 가족 와이너리가 만들어 갑니다. 각자 포도밭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으며 그 특성이 잘 드러나는 와인에는 밭 이름을 붙이죠”.
<티에찌 Tiezzi와이너리의 모니카, 엔조 부녀>
브루넬로가 초연한 이유
록다운 후유증으로 경기가 휘청거렸던 올해 1분기에도 부르넬로 판매량은 작년 대비 37%나 증가했다. 몬탈치노 땅 면적은 310 km2 로, DOCG에 등록된 포도밭은 14%인 4천 3백 헥타르에 불과하다. 즉 희소 법칙에 따라 고객을 찾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생산자 자발적으로 밭 구분 작업을 끝낸 지가 꽤 됐으며,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일 때 갈등, 시간, 비용이 드는 소모전은 피하고 싶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최근에는 DOCG급 포도밭 면적을 동결한다는 결정이 나와 부르넬로의 희소성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28회 벤베누토 부르넬로(Benvenuto Brunello) 안테프리마 이모저모
벤베누토 부르넬로 행사가 산타고스티노 성당에 부속된 회랑을 개조한 시음장에서 열렸다. 5월 16, 17일 양일간 열린 본 와인 미디어 시음회는 2016 년 안나타와 2015년 리제르바를 합한 212여 종이 선보였다. 작년 2015 안나타 타입이 우수한 빈티지로 호평을 얻었기에 올해도 많은 기대를 모았다(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와인이 가장 맛있을 때는 와인이 우아함과 조화로움을 겸비했을 확률이 높다. 필자는 새 와인을 혀 안에 굴리면서 작년 빈티지의 기억을 더듬어 냈는데 마치 두 빈티지가 용호상박 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군더더기 없는 과일 아로마, 고유 향을 피우다가 다른 향과 화합하는 여유로움이 흘렀다. 농축미는 와인 보디를 부풀리거나 미세향을 가리지 않았다. 또한 어린 와인과 숙성 와인이 서로 양보한 듯 생동감과 편안함이 어우러졌다.
시음할수록 이런 느낌이 확고해져서, 혹시 생산자들이 와인 스타일을 미리 정해놓고 이에 들어맞게 와인을 만든 게 아닌지 싶을 정도였다. 후에 탈렌티(Talenti) 와이너리의 오너 리까르도 탈렌티 씨와 면담 뒤 나의 추측이 억측임을 알았다.
“두 빈티지는 작황이 기록적으로 좋을 때 와인 속성을 비치는 거울과 같아요. 숙성력의 지표인 pH, 고형성분, 총산도, 페놀 화합물이 예년 수준과 같아요. 수령이 늘고 있는 산조베제 나이가 큰 기여를 했고 생산자의 다년간 양조 경험이 시너지를 냈어요.”
시간이 흘러도 오래 기억되는 와인이 사람마다 있을 거다. 필자에게는 갓 출시한 부르넬로가 그랬다. 지면상 다 소개할 수 없음이 유감스럽고 몇 가지만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
<2016 안나타 타입, 좌측부터 카밀리아노, 카나리끼오 디 소프라, 콜레마또니,리돌피, 포데레 레 리피 와이너리>
카밀리아노 Camigliano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Paessaggio Inatteso 2016
라즈베리, 블랙베리, 자두의 달콤한 향기와 장미, 유칼립투스 향이 발랄하다. 상큼한 산미와 순한 타닌이 어우러져 질감이 유려하다. 영한 부르넬로의 섬세함과 생생함을 만끽하기에 적당하다.
카나리끼오 디 소프라Canalicchio di Sopra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La Casaccia 2016
자두, 체리, 딸기, 라즈베리, 민트, 정향, 오렌지 향을 발한다. 풀보디의 깊은 맛, 여기에 녹아든 산미는 생동감 그 자체다. 빠르게 번지는 타닌의 속도감, 잘 잡힌 구조는 안정감을 준다.
콜레마또니Collemattoni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2016
민트, 체리, 라즈베리 ,민트의 향긋함, 아니스와 삼나무향은 이국적인 정취를 지닌다. 경쾌한 산미와 유려한 질감이 만날 때 콘트라스트가 돋보인다. 산미, 짭짤함,타닌의 조화와 세련미를 갖추었다.
리돌피Ridolfi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2016
농익은 체리, 라즈베리, 딸기, 정향, 타바코, 라벤더 향이 감미롭다. 서서히 입안을 조이는 타닌의 힘, 그 뒤에 매끄러움이 혀를 감싼다. 딸기와 라즈베리의 향기로움이 입안에 감돈다.
포데레 레 리피 Podere Le Ripi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Amore e Magia 2016
갓 딴 라즈베리, 딸기, 블랙베리의 생생함과 장미, 바이올렛, 재스민, 허브 향이 향연을 펼친다. 타닌, 산미, 쌉쌀함이 하나되는 조화로움과 잘 다듬어진 골격이 몰입감을 높인다.
<2015리제르바. 좌측부터 반피, 카사노바 델레 체르바이에, 코르데 디 파포네, 카치 피콜로미니 다라고나,에리아 파라쩨시 와이너리>
반피 Banfi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Riserva Poggio All’Oro 2015
루비색에 오렌지 섬광이 비친다. 낙엽 , 버섯, 주니퍼 베리, 향신료, 체리 잼의 세련된 향을 피운다. 14.5도의 알코올은 산도와 어우러져 차분한 부드러움을 준다. 잘 다듬어진 타닌의 질감에서 절제된 오크 숙성이 엿보인다.
카사노바 델레 체르바이에 Casanova delle Cerbaie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Riserva Vigna Montosoli 2015
야생화 , 삼나무, 정향, 아니스, 카카오, 가죽 향이 스며나온다. 풀보디와 산미의 밸런스가 돋보이며 타닌이 섬세하다. 마치 실제로 오렌지를 깨문 듯 오렌지 향의 여운이 길다.
코르테 디 파포네 Corte di Pavone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Riserva Vigna Poggio Molino Al Vento 2015
매콤한 향신료, 감초, 후추, 재스민, 타바코 향이 감미롭다. 격조 높은 풀보디, 혀에 와 닿는 결이 유려하다. 타닌이 천천히 입안에 번지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카치 피콜로미니 다라고나Ciacci Piccolomini D’Aragona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Riserva Vigna di Pianrosso 2015
체리, 라즈베리, 자두, 오렌지, 감초 , 삼나무, 흑연 향이 화사하며 향기의 지속력이 길다. 단단한 구조가 지탱하는 밀도감, 혀 밑에서 입천장으로 퍼지는 타닌의 힘이 기품 있다.
에리아 파라쩨시Elia Palazzesi 와이너리의
Brunello di Montalcino DOCG Riserva 2015
타바코, 커피, 버섯, 체리, 오크 향이 다채롭다. 후추, 민트의 매콤함이 세련되었다. 산미의 원만함과 알코올이 화음을 이룬다. 타닌은 다소 떫지만 2~3년이 지나면 순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