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풍경
달랑 두 장만 남은 달력이 걸려있는 11월의 와이너리는 한 해 마감준비로 한창이다. 탐스런 포도를 달고있던 녹색의 포도나무는 이즈음 단풍색깔의 색동옷으로 갈아입은지 오래다. 한 여름 가지가 휠 정도로 포도가 달려있던 나무는 새 먹이용으로 남겨논 포도 몇 송이가 달려 있거나 성탄절 때 먹을 파네토네 빵에 넣을 포도가 건조되고 있다.
내년 초에 출하될 와인은 이미 발효가 끝나 숙성실로 옮겨졌으며 유독 사과산이 높은 와인은 난방이 되는 발효실로 옮겨져 유산발효 중이다. 한 해 수입이 정점인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멀지 않기 때문에 와이너리 식구들은 선물세트 준비와 와인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바쁘다.
알바를 뒤로 하고 아스티 방향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산 다미아노 다스티’에서 70년째 와인을 생산하는 폰테(Ponte) 가족은 압력탱크만 보면 미소 짓는다. 9월 초에 압력탱크에 주입된 모스카토 와인은 2차 발효를 막 끝냈고 몇 일 지나면 여과된 후 병입 될 것이다. 핑크색 연 꽃이 새겨진 라벨을 붙인 모스카토 병속에 갖혀있던 배, 골든사과, 흰장미, 사루비아 향기는 1.7기압으로 분출하는 탄산가스에 밀려나오게 된다. 이 순간을 상상하면 폰테 삼형제는 모스카토 병에 부착할 새 라벨 디자인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던 일이 탄산가스 포말처럼 사라진다.
동료 와인생산자들처럼 아르네이스, 바르베라, 네비올로 와인을 생산하는 폰테 가족도 올 해는 포도작황이 좋았던 해로 기억할 것이다. 내년의 작황이 금년에 버금가려면 겨울에 할 일이 태산이다. 증조 할아버지가 심었던 바르베라의 수명이 다해 올해 초 새 묘목으로 교체했는데 다행이도 뿌리가 잘 내려줬다.
첫 눈이 내리기 전에 상태가 나쁜 포도나무를 뽑아내고 늦가을 바람에 엉킨 가지를 잘라내고 철선에 묶어야 한다. 포도나무가 얼지않게 뿌리주위에 흙을 북돋아 주어야하고 올 봄에 과실을 맺은 열매가지 중에서 윤기가 돌며 눈이 둥근 모양의 충실한 열매어미가지를 고르는 가지치기도 해야한다. 겨울철 포도나무 단속은 포도밭에서 평생 일해 온 주제페 할아버지 몫이다. 이젠 성장한 아들들이 와인 양조와 경영을 도맡아 하지만 포도밭 일은 꼭 할아버지 자신이 해야 성이차다.
주제페 할아버지의 취미는 트러플 캐기다. 양조시설 규모에 비해 보초 서는 개의 수가 좀 많은 듯 하지만 그중에는 트러플 사냥개가 몇 마리 섞여있다. 할아버지는 코가 가장 예민한 레지나를 데리고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가서 화이트 트러플을 캐온다. 올 여름 비가 적게 내려 트러플이 흉년이지만 건조한 여름 덕분에 포도농사가 대풍임을 흡족해하는 식구들과는 희비가 엇갈린다. 작년에는 제법 큰 놈을 많이 캐서 고객에게 선심을 썼건만 올 해 트러플은 신통치않아 식구들 식탁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뜨거운 계란후라이에 금방 갈은 트러플을 뿌린 “우오보 알 테가미노” 요리와 마시는 바르베라 맛이 그만이다.
이탈리아의 초겨울은 스위트와인 준비로 바쁘다. 잘 익은 포도를 통기성이 좋은 건조실로 옮겨와 꼬득꼬득 잘 말려서 파시토 와인(스위트 와인)의 재료로 쓰려는 아파시멘토(appassimento)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발폴리첼라 계곡의 찬 바람 아래 놓인 코르비나, 코르비노네 적포도는 레초토의 복합적인 달콤함의 전신이다. 칭궤테레 앞바다의 염기 머금은 바람을 맞으며 탈수, 건조를 반복하는 베르멘티노, 보스코 청포도는 샤케트라 와인의 과거다.
매년 이맘때 즈음 아파시멘토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곳은 토스카나다. 토스카나 와인규정대로 생산되는 빈산토만 최소 이십여 종류이고 가족들만의 비법으로 만드는 홈메이드 빈산토까지 친다면 밤하늘의 별 만큼 빈산토는 많다. 잔 곡선을 타고 느릿하게 흐르는 조청빛 빈산토가 풍기는 꿀에 절인 과일, 헤즐넛, 밤 꿀, 땅콩 카라멜, 에스프레소 향기에 반한 것은 ‘알베르가쵸(Albergaccio)’ 레스토랑이었다.
마키아벨리집 정문과 5미터 떨어진곳에 있는 토스카나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옛날에는 호스테리아(hosteria)라 불렀는데 일화에 의하면 이곳 지하는 마키아벨리집 지하 양조장까지 이르는 비밀통로와 연결되있다. 이 통로를 빠져 나와 호스테리아에 온 마키아벨리는 동네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긴 밤을 보냈다고 한다.
1513년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장 자격으로 유럽강대국에 파견되어 각 국가의 정세를 모국에 알리던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 추방령이 내려진다. ‘줄리아노 데 메디치’ 암살계획을 주도한 역모꾼중의 하나라는 누명 때문이였다. 쫓겨난 마키아벨리는 산탄드레아(Sant’ Andrea)에 있는 부친의 농가에서 1527년 사망할 때까지 지낸다. 그의 인생 후반기의 거주지는 그가 살던 16세기 초반의 원래 모습대로 보존되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한때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마키아벨리에게 산탄드레아 농가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는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박물관 정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투박하지만 윤이 나는 나무 책상에서 그의 필작 “군주론 Il Principe” 과 “로마사 논고”를 쓴것도 이 시기이다. 책을 쓰면서도 틈틈이 집 주변에 있는 가문소유 포도밭과 올리브 밭에 나가서 농사도 거든다고 친구 벳토리(Francesco Vettori)에게 쓴 편지는 전한다.
마키아벨리가 관리하던 밭은 27헥타르 정도였는데 폰탈레 포도밭(Vigna di Fontalle)으로 불렀다. 작은 우물(fontalle)이 있는 밭(vigna)이란 뜻인데 포도밭 한 가운데 청정한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Fontalle 가 있는 포도밭이 현재는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지역 이므로 마키아벨리 시절에도 산조베제 와인이 생산되었을 것이다. 오백 년이 지난 후 같은 밭의 ‘Vigna di Fontalle‘ 산조베제 와인이 마키아벨리가 마셨던 것과 맛, 향이 비슷한지는 알 길이 없다. 벳토리에게 보낸 편지중 어디에도 맛에 대한 묘사가 없었으니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지하 양조장은 비좁은 길을 통과한 것에 의문이 들 정도로 거대한 보떼로 가득차 있다. 어떤 방에는 1세기도 넘는 것도 있고 다른 방의 새 보떼에서는 5세기 전처럼 와인이 숙성되고 있다. 마키아벨리 시절의 보떼는 이제는 기록에서만 찾아 볼 수 있게 됐지만 정남향의 솔라티오(Solatio) 포도밭을 관리하던 타니 (Tani)가 빚은 산조베제가 이 안에서 숙성되곤 했다.
마키아벨리 생가에서 피렌체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 지붕에 솟아있는 부르넬레스키 돔이 잘 보인다. 이 돔을 보며 불운했던 천재는 메디치군주가 그를 다시 피렌체로 불러줄 날을 기약없이 기다렸다. 마키아벨리가 죄수 신분을 잠시 잊고자 출몰하던 옛 호스테리아는 말린 제비꽃, 럼 주에 절인 체리, 달콤한 스파이시, 타바코, 젖은 흙냄새가 거침없이 올라오는 부드럽고 강인한 타닌의 산조베제가 그리운 애주가로 붐빈다.
* 필자의 말: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침착하게 대처했던 진정한 어른들과 함께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