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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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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필자가 소믈리에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피에몬테 DOCG 등급 와인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이 때 로에로(Roero)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자신이 직접 와인등급을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비올로 와인의 이름을 정할 때 이들은, 최근 들어 등재된 로에로(Roero DOCG)보다는 비록 한 등급 낮지만 1970년부터 이미 친숙해진 네비올로 달바(Nebbiolo d’Alba DOC)를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단, 특정 연도의 날씨가 나빠 포도의 품질이 규정 수준에 미달해 등급을 하향하는 경우, 그리고 등급을 유지하거나 올리는데 들어가는 경비와 세금이 부담스러워 자발적으로 탈퇴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6년 3월, 로에로 등급 탄생 12주년을 기념하는 “Roero Days”가 해당 와인 콘소시엄 주최로 열렸다. 와인애호가와 와인업계 종사자들의 참여가 예상을 훨씬 웃돈 2,200여 명에 달해 관계자들도 놀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행사의 꽃은 자유시음(Banco d’Assaggio)이였는데 60여 군데의 생산자가 참여해 300여 종의 로에로 와인을 선보였다. 총 102명의 와인 생산자 중 60군데가 참가해 60%의 참여율을 기록했는데, 4년 전만 해도 Roero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것 을 꺼려하던 그들의 낯가림을 알고 있기에 커다란 반전으로 여겨진다.
 
생산자조차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이름, 이탈리아는 물론 한국에도 친숙하지 않은 로에로 와인. 먼저 로에로 와인의 네 가지 타입을 알아보는 것으로 친해지는 것은 어떨까. 이탈리아에는 현재 74종류의 DOCG등급 와인이 있는데 프랑스 품종(카베르네 프랑, 메를롯)으로 만든 Colli di Conegliano를 제외하고 로에로는 토착품종으로 만든 와인 중 유일하게 화이트와 레드 와인이 나란히 DOCG 에 올라있다. 화이트 품종 아르네이스로 양조했으면 Roero Arneis, 네비올로로 만든 것은 Roero 이며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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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로 와인을 설명하려면 역설적으로 바롤로 와인에서 시작해야 한다. 두 와인 모두 네비올로 100%에 가까운 순도 높은 와인이지만 오크 및 병 숙성을 끝낸 후 시장에 출시되는 순간부터 차이는 벌어진다. 올해 선보이는 네비올로 와인은 2012년 빈티지의 바롤로, 2013년 빈티지의 로에로다. 바롤로의 향기는 월등하지만 타닌, 산도가 불안정해 입 안에서의 느낌은 거칠지만 로에로의 향은 바롤로 수준에 버금가면서도 타닌, 산미가 부드럽고 정돈된 느낌을 주기에 어린 네비올로 와인의 선입견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이 때문에 현지 소믈리에들은 “젊을 때 마시는 바롤로”라고 로에로 와인을 단언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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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올로 품종이 다른 품종보다 개화가 빠르고 성장은 더디기 때문에 한랭과 서리에 취약하다고 생산자들은 투덜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몬테 주 전체에서 재배된다. 원산지에 불문하고 어린 네비올로의 향기는 비슷하지만 입안에서 산과 타닌이 따로 또는 서로 합하여 일으키는 껄끄러움에서 차이가 난다. 입 안에 와 닿는 거친 느낌대로 네비올로 와인의 순서를 나열하면 카레마, 돈나스, 레쏜나, 로에로, 겜메, 가티나라, 바롤로 순으로 강하다.
 
로에로 와인 생산자들은 그들의 와인이 ‘바롤로와 다름’을 알리는데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그 노력은 나름대로 결실을 거두었다. 로에로 와인이 Nebbiolo d’Alba로 불릴 때만 해도 로에로 지역은 랑게의 북쪽 귀퉁이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DOCG등급 네비올로가 생산되는 랑게의 이웃으로 대등한 위치를 갖는다. 마치 1세기 전 영농학자 카바짜(Domizio Cavazza)가 바롤로 영역에 속해있던 동북쪽 세 마을을 따로 분리해 바르바레스코 와인의 서막을 열었던 것과 비슷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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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롤로와 다름’은 타나로 강으로 확장되는데 로에로, 바롤로 구분 없이 그저 랑게라 불리던 땅 덩어리가 남북으로 나뉘어진 일화다. 이 일화는 로에로 와인과 친해지려면 한 번은 들어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다. 랑게의 젖줄인 타나로는 20만 년 전만 해도 남에서 북쪽으로 흘렀었다. 같은 시기에 타나로 강 동쪽에는 서쪽으로 세력을 뻗어가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타나로 강에 근접했고 결국 두 강은 합류했다. 이 합류 지점이 바로 알바였고 그 때문에 알바는 남북으로 갈라진다. 남쪽은 랑게로 남아 있었지만 강 북쪽의 새 땅은 로에로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새 타나로 강은 물살이 매우 빨라 로에로 지역을 깊숙이 침식했는데, 이렇게 파여 드러난 부분을 로케(Rocche)라 부른다.
 
로케는 로에로의 볼거리이지만 이곳의 토양의 성분을 알려주는 지리교과서 노릇도 한다. 모래와 자갈, 모래와 점토가 주성분이며 간혹 석회암과 조개 화석이 섞여있기도 하다. 크고 작은 알갱이로 된 모래는 연결상태가 헐겁기 때문에 이곳에 자란 네비올로에 장미, 비올라, 체리향기와 매끄러운 타닌과 산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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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로는 귀족 가문 이름을 빌렸으며 이 가문이 지배하던 19군데 마을이 로에로 와인 지구가 되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와인처럼 특정와인이 탄생된 곳이 와인이름으로 흡수된 경우다.
 
아르네이스(Arneis)는 파보리타(favorita),모스카토(moscato)와 더불어 로에로 및 랑게에서 재배되는 몇 안 되는 화이트 품종이다. 로에로에서 생산된 아르네이스이면 로에로 아르네이스(Roero Arneis DOCG), 그 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랑게 아르네이스(Langhe Arneis DOC)다. 아르네이스가 이곳 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경이지만 랑게의 주요 화이트 와인이 된 데에는 부르노 쟈코사, 체레토 , 카스텔로 네이베 등 네비올로 고수들의 역할이 컸다.
 
아르네이스는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 또는 ‘말괄량이’의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카날레(Canale) 마을에 위치한 Reneysium 포도밭의 이름이다. 어근의 변화를 거쳐 레네지오(Renesio)로 정착했고 현재는 말비라, 마테오 코레자, 몽끼에로 카르보네 등 로에로 와인의 선구자들이 이 포도밭의 주인이다.
 
아르네이스는 배, 야채, 사과, 복숭아의 두드러진 향기를 가지며 이 향기는 직선적이다. 보통 오크 숙성은 하지 않지만 와인에 복합적인 향과 그 향을 농축하려고 효모 숙성(Sur Lie)을 한다. 모래 함량이 높은 포도밭에서 재배된 아르네이스는 앞서 언급한 향기와 더불어 미네랄 향이 나며 어떤 아르네이스는 소비뇽 블랑으로 착각할 만큼 비슷한 향기를 가진다. 피에몬테의 다른 화이트 품종(코르테제, 에르바루체, 파보리타, 티모라쏘)과 비교해 산도가 낮기 때문에 보디감, 미네랄, 꽃 향기는 나지만 신맛이 과히 높지 않은 와인을 선호한다면 아르네이스가 제격이다.
 
로에로 와인은 젊다. 30대의 프란체스코가 회장인 로에로 와인 컨소시움, 젊은 두 미녀 자매가 이끌어 가는 티발디 와이너리,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졸지에 와이너리를 혼자 이끌어가야 했고 이를 멋지게 해낸 미망인 오르넬라의 마테오 코레자 와이너리, 그리고 로에로 와인에 만족하지 않고 바롤리스트(Barolist)에 도전하는 다몬테 형제의 말비라 와이너리 등 로에로 와인에 일생을 거는 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필자가 와인을 배우기 시작할 때 여덟 살이던 로에로 와인. 둘 다 와인의 세계에 발을 들여 논 시점이 비슷하기에 동반 성장 중이라 더욱 친근하다. 작은 거인 로에로, 너의 성장을 지켜볼게!
 
 
※ 사진제공: Consorzio Tutela Ro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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