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개성 그대로 느끼자
바르돌리노 와인
"Bardolino 와인은 수확한 연도 이듬해부터 2~3년 내에 마시는 와인이기 때문에 유통 기간 내에 와인의 맛과 향을 최선으로 담아낼 수 있는 양조, 숙성, 유통방법을 동원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한 와인전문가가 바르돌리노 와인시음회를 시작하면서 띄운 말이다. 즉, 수명이 짧은 와인이 유통기한이 다가오기 전에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담기냐 하는 것은 품종 고유의 맛과 향을 온전히 병에 담을 줄 아는 와인메이커의 재주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또한&apos명성 높은 고가의 와인은 다수의 노력과 최상의 생산사슬이 만들어낸 정수인 반면 가격이 저렴하고 어릴 때 마시는 와인은 그것에 못미치는 정성으로 만들었을 것’이란 통념이 꼭 들어맞지는 않음을 알리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그는 바르돌리노 와인 자체만 보더라도, 같은 품종으로 만들지만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 때문에 아마로네의 차선으로 선택하는 발폴리첼라 리파쏘(Valpolicella Ripasso)나 발폴리첼라 수페리오레(Valpolicella Superiore) 같은 와인이 아니라는 점도 덧붙였다. 바르돌리노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발폴리첼라 와인을 언급하는 것은 두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이 불과20km 떨어져있고 동일한 품종을 섞어 만든 블렌딩 와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블랜딩에 사용되는 적포도 품종은4~5종류이지만 선호되는 품종은 코르비나, 몰리나라, 론디넬라, 코르비노네의 네 가지이다.
비슷한 품종이 다른 개성을 갖게 되는 요인으로 토양, 양조스타일을 들 수 있지만 두 와인의 경우 가르다(Garda) 호수에서 출발한다. 잔잔한 호수가 일으키는 동풍은 가르다 호수 동안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개성이 다른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눈다.
바르돌리노 와인 지역으로 불어온 동풍은 밤과 낮의 일교차를 벌여놓고 라즈베리, 산딸기, 향신료 향과 산미가 두드러지는 와인으로 표현된다. 반면 발폴리첼라 언덕에서는 가르다의 동풍으로 포도를 건조시키는데, 그렇지 않을 때보다 와인이 과일, 꽃 향이 몇 배나 농축된 두터운 향기 층과 깊은 뒷맛을 지닌다.
참고로 가르다 호수는 표면적만 370km2, 북에서 남으로 52km, 해안의 길이는 346km, 수심이 평균 164m이지만 제일 깊은 곳은 346m에 달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함경북도를 위로 잡아 늘어뜨렸을 때의 한반도 지도와 비슷한 모양이며 시계방향으로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베네토, 롬바르디아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온화한 기후 덕분에 호수주변을 따라 무려 15종류의 와인이 생산되며 이탈리아에서 와인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가르다 호수는 음식과의 조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르돌리노 와인의 개성을 합리화한다. 호수에서 갓 잡아올린 민물생선을 굽거나 찐 요리와는 그만이고, 이런 생선요리와 마실 때 어울릴 수 있도록 최적화된 와인들이다. 그 예로 끼아렛토(로제와인)와 노벨로(햇 와인)를 들 수 있다.
발폴리첼라 와인지역은 알프스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이곳에 출몰하는 사냥짐승과 가축을 오래 익혀 만든 요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복잡한 양조법으로 만든 아마로네나 발폴리첼라 리파쏘 와인과는 마치 운명의 여신이 중매한 부부처럼 궁합이 맞는다. 두 와인이 태어난 곳의 지역 음식과 잘 맞으니, 와인이 식탁에 오르는 주요 이유인 음식궁합 측면에서 기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짧아 어릴 때 마시는 와인이라고 해서 와인의 역사마저 짧을 것이라 추측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기록에 따르면 발폴리첼라 와인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르돌리노 와인은 그보다 8세기 빠른 철기시대(기원전 900~200년) 때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바르돌리노 와인은 1963년 이탈리아 와인규정이 생긴 후 최초로 DOC로 지정된 와인 중 하나다. 이후 헥타르당 9천 헥토리터의 와인생산량 및 1년 숙성을 의무로 규정한 Bardolino Superiore DOCG와, 이 규정보다는 약간 느슨한 Bardolino DOC로 나뉘었다. 바르돌리노 DOC 규정에 따르면 생산량은 헥타르당 1만 3천 헥토리터로 제한되며 그 중 70%만 병입할 수 있다.
Bardolino DOC 와인은 다시 Bardolino Chiaretto, Bardolino Novello, Bardolino Chiaretto Spumante로 세분화된다. 총 16군데의 마을에서 생산되는데, 비교적 북쪽에 위치한 마을에서 생산된 바르돌리노는 이름에 Classico란 명칭을 추가로 붙인다. Bardolino Classico, Bardolino Chiaretto Classico, Bardolino Novello Classico가 그 예이다.
Bardolino (Classico 포함)라고만 표기된 것은 스틸 와인, 허용 품종을 부드럽게 압착한 후 몇 시간만 침용시켜 색깔을 우려낸 것은 Chiaretto 로제와인, 짧은 시간 침용한 포도즙을 재발효하여 탄산가스를 얻은 것은 Chiaretto Spumante 이다. 두 와인 모두 침용시간에 따라 양파껍질색 또는 코랄색이 도는데, 흰살 민물고기 요리와 같이 식탁에 놓이면 보는 것만으로 입 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음식과 와인 색의 궁합이 잘 맞다.
노벨로(Novello)는 탄산가스 침출법으로 만든 햇와인으로 포도를 수확한 해의 11월 둘 째주면 이미 와인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출시된 후 이듬해 봄이 지나기 전에 마시는 것이 보통이며, 바르돌리노 노벨로는 이탈리아 노벨로 와인 중 처음으로 DOC를 획득했다.
바르돌리노 와인은 사용하는 품종, 헥타르당 생산량 등의 규정을 따라야 하지만 숙성기간이나 방법은 생산자의 재량에 맡긴다. 평균 4개월에서 1년 정도 스테인리스스틸탱크에서 숙성된 후 병에서 짧게 안정화를 거친 뒤 유통된다.
■ Cantina Castelnuovo Bardolino DOC 2013
수백 만년 전 알프스에 쌓여있던 빙하가 녹으면서 운반해 온 입자가 작은 모래, 자갈 등이 쌓여서 낮은 언덕을 형성했는데, 그곳에서 자란 세 가지 품종(코르비나, 론디넬라, 몰리나라)을 블렌딩해서 만든 와인이다. 스테인리스스틸탱크에서 4개월 숙성시키며 알코올 도수는 12% 정도이다. 투명한 루비색을 띠며 누구라도 금방 느낄 수 있는 작은 과일, 후추 향이 깔끔하게 올라온다. 산미와 짭짤한 맛이 신선하며 타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Giovanna Tantini, Bardolino DOC 2012
코르비나와 론디넬라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들며 스테인리스스틸탱크에서 6개월의 숙성, 병입 후 3개월의 안정화 과정을 거친다. 늦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향과 맛의 폭과 깊이를 높였으나, 안토시안이 감소해 색깔이 거의 어린 네비올로 수준이다. 첫 번째 와인에 비해 좀더 농축된 라즈베리, 딸기, 후추향에 마른 나뭇잎, 흙 냄새가 섞여서 난다. 맡은 향기는 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으며 잇몸을 살짝 조일 정도의 타닌이 느껴진다.
■Piona Bardolino DOC 2012
코르비나(60%), 론디넬라(20%), 몰리나라(15%)를 블렌딩해서 만든 와인이다. 수확한 포도는 15일간 침용을 거친 후 알코올 발효와 유산 발효를 마치며 4개월간 스테인리스스틸탱크에서 숙성된다. 포도밭은 철을 함유한 모레인 토양으로 금속 냄새도 느껴진다. 감초, 사프론, 작은 과일(라즈베리, 딸기, 체리) 느낌은 잘 만든 어린 피노 누아 와인을 연상시킨다.
■Villa Cordevigo, Bardolino Classico DOC 2014
Cavaion Veronese에 위치한 점토와 석회암 비율이 높은 모레인 토양으로 이루어진 모르론고 포도밭(Vigna Morlongo)에서 재배한 코르비나(55%), 론디넬라(30%), 코르비노네(15%)를 사용했다. 부드럽게 압착한 포도는 침용, 발효를 거쳐 1년 동안 작은 스테인리스스틸탱크에서 숙성된다. 체리, 딸기 향이 지배적이며 타닌이 약하지만 부드럽게 입 안을 스친다. 균형잡힌 산미와 짠 맛의 느낌은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Guerrieri Rizzardi, Bardolino DOC Tacchetto 2014
코르비나(80%), 메를로(10%), 론디넬라(10%)를 블렌딩해서 만들며 6개월간 스테인리스스틸탱크에서 숙성시킨 와인으로, 알코올 도수는 13% 정도다. 과일 향이 강한 품종을 재배하기에 알맞은Tacchetto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다. 10% 정도 소량의 메를로를 첨가해 앞의 와인들에 비해 중간 톤의 루비색을 띠며 알코올의 뜨거움도 살짝 비친다. 어린 바르돌리노의 아로마가 진하게 나며 타닌은 어김없이 섬세하다.
■Casaretti, Bardolino DOC Classico, 2014
코르비나(60%), 론디넬라(30%), 몰리나라(10%)를 블렌딩해서 만들며 5개월간 스테인리스스틸탱크에서 숙성시킨 와인으로, 알코올 도수는 12.5%이다. 후추, 작은 꽃, 와인 발효 향 등이 조화롭다. 타닌과 날카로운 산미, 와인의 풍미를 높이는 씁쓸함은 참치스테이크와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