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브리아 요리는 쿠치나 인 칸티나 (Cucina in Cantina)에게 맡겨라
파스타 한쪽 끝은 두껍고 펑퍼짐한데 반대쪽은 얇고 삐뚤거려도 상관없다. 강사가 만든 과자는 동그란데 내가 만든 것은 찌그러져도 부끄럽지 않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머리, 기름과 양념으로 얼룩덜룩해진 앞치마를 두른 내 모습이 처음에는 멋쩍다 . 그러다 야채를 다듬고 직접 반죽한 파스타 반죽으로 면을 뽑는데 몰입하다 보면 아이처럼 들뜬다. 이곳은 안토넬리 와인리조트가 운영하는 현장감 넘치는 쿠킹 클래스다.
한국의 국과 밥처럼 이탈리아 식탁에서 음식과 와인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흔히들 말한다. 가령, 와이너리에 가면 와인은 이런저런 음식과 궁합이 맞다고 말하지만 그건 상상 속의 궁합일 뿐 입안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필리포(리조트의 오너)는 아얘 와이너리에서 배우는 ‘쿠치나 인 칸티나’란 쿠킹 클래스를 개설했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움브리아 요리를 배우는데 와이너리만큼 적절한 곳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와인을 밀가루 반죽할 때 넣고 고기 삶을 때도 넣고 소스에도 넣어가면서 와인이 가진 양념으로서의 역할을 알아간다. 마치 한국의 쿡방이나 먹방에 보면 간장을 국에도 넣고 불고기에도 넣어 간장의 쓰임새를 배우는 것과 같다.
<호주계 이탈리아인 웬디 울스부룩이 쿠킹 글래스를 진행한다>
쿠킹 클래스는 4시간 동안 진행되며 세 명의 주부 강사팀이 이끌어 간다. 강사팀 리더는 호주계 이탈리아인 웬디 울스부룩(Wendy Aulsebrook)이다. 그녀에게 요리강사를 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움브리아에 여행 왔다가 움브리아 음식에 반해 이탈리아에 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웬디는 초보자가 알아두면 요긴한 쿠킹 노하우를 시기적절하게 알려주면서 클래스를 활기차게 리드해간다.
메뉴는 이탈리아 요리를 해본 적 없는 요치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짜여져 있다. 전채요리, 파스타, 메인과 곁들임 야채, 후식 등 4~5가지 요리를 가르친다. 배운 후 간단한 이탈리안 코스 디너는 나 혼자 뚝딱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도가 높은 메뉴들이다 . 레시피는 움브리아 산 농산물 사용이 원칙이지만 제철이 아니라 구할 수 없는 식재료는 이탈리아 농산물로 대신한다. 요리를 하면서 오븐 및 불 조절 방법, 이탈리아 허브 종류와 사용법, 움브리아 전통요리 특징, 계절 야채, 치즈와 살라메에 대한 간단한 상식도 익힌다.
<계절에 따라 메뉴는 바뀌지만 계절을 타지 않는 인기 종목은 다음과 같다(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탈리아텔레 생파스타 재료, 아스파라거스 오믈렛, 관찰레와 사프란 소스로 맛을 낸 탈리아텔레, 레드와인 참벨리네 비스킷, 레몬과 각종 이탈리아 허브로 양념한 닭 오븐구이, 토르타 알 테스토. 클래스가 끝난 후에는 음식별로 어울리는 4~5종류의 와인과 함께 시식한다>
토르타 알 테스토(Torta al Testo)는 움브리아식 샌드위치로 기본 레시피만 알면 어렵지 않게 집에서 만들 수 있다. 테스토(Testo)는 주철로 된 전통 팬이며 토르타는 달달한 케이크를 뜻하지만 전채요리의 경우는 짭짤한 맛이 나는 얇은 빵 만드는 레시피다 . 피자 반죽과 비슷한 재료를 써서 반죽과 발효를 하지만 피자는 오븐에서, 토르타는 프라이팬에서 굽는 게 다르다. 피자는 토핑재료가 겉에 드러나지만 토르타는 속 재료를 빵 안에 숨기고 있다. 전채요리에 속하지만 먹는 양에 따라서는 파니니(이탈리안 샌드위치)로도 적당해 활용도가 높은 음식이다. 테스토 팬 대신 바닥이 두꺼운 코팅 팬을 사용해도 괜찮다.
※ 레시피
1. 재료를 반죽해서 따뜻한 곳에 40분 놔둔다.
2. 반죽 크기가 두 배로 부풀어 오르면 밀대로 밀어 직경 28cm, 두께 0,5cm 로 편 다음 따듯하게 덥힌 테스토 위에서 굽는다.
3. 구울 때 모양이 뒤틀리는 걸 방지하려면 2번의 반죽을 테스토 위에서 펼치자마자 반죽 겉면에 포크로 구멍을 낸다.
4. 20분 정도 구운 다음 뒤집는다.
5. 구운 토르타가 식으면 반으로 자른 다음 슬라이스 한 살라메 햄과 치즈 조각을 채운다.
※재료 (6인분, 두 개의 토르타, 전채요리)
반죽: 밀가루 500g, 이스트 7g, 설탕 5g, 소금 5g, 올리브유 2 수저(40ml) 미지근한 물 250ml
채움 재료: 햄, 치즈 슬라이스
안토넬리의 다양한 와인
사그란티노 와인은 레드와인 중 타닌 양으로 독보적이다. 타닌이라면 떫고 쓴 맛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그란티노의 타닌은 잘 익은 고급 타닌이라 10년 이상 두었다 마시면 깊은 맛이 나고 남성적인 힘이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사그란티노의 인기에 가려 존재감은 덜 하지만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와 그레케토 화이트 와인은 사그란티노와 궁합을 맞추기에는 부담스러운 전채요리와 파스타의 가벼움과 어울린다.
<사그란티노>
그레케토(grechetto)와 트레비아노 스폴리티노(trebbiano spoletno)는 움브리아의 토착품종이다. ‘그리스’란 뜻의 그레케토는 이탈리아 남부가 그리스의 지배를 받을 때 그리스인이 전해준 품종이다. 움브리아는 그레케토 품종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지녀 오래전부터 향기로운 그레케토 와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안토넬리 그레케토 와인은 영롱한 노란색을 발하며 시트론, 복숭아, 아몬드 향을 싱그럽게 피운다. 산미의 균형이 뛰어나며 짭짤한 맛이 스며 있어 토르타 알 테스토와 근사하게 어울린다.
<그레케토 와인(좌),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우)>
그레케토가 지중해성 화이트라면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는 근육질과 묵직한 느낌을 지닌 육지 화이트다. 트레비아노 와인은 가볍기 때문에 애호가들로부터 도외시된 점이 없지 않다. 허나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는 트레비아노와는 친적 지간이지만 몬테팔코 기후와 토양에 흡수되어 사그란티노의 개성을 띤다.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에서 레드 와인 풍미를 얻으려면 몇 가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먼저 오크통에서 이뤄지는 발효 전에 으깬 포도송이를 잠시 침용한다 . 후에 오크통 밑에 가라앉은 효모와 수개월간 접촉하게 놔두면 와인이 황금색을 띠게 되고 아몬트, 시트론, 열대과일, 스파이스 향이 뚜렷하고 강렬해진다.
<왼쪽부터 몬테팔코 로쏘,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Chiusa Di Pannone Sagrantino>
안토넬리는 세 종류의 사그란티노 와인을 선보이는데 그 중 정상은 CHIUSA DI PANNONE SAGRANTINO와인이다. CHIUSA DI PANNONE는 포도밭명이자 이 밭에서 재배된 사그란티노 포도로만 양조해서 만든 와인이름 이기도 하다. 오크통에서 30개월 숙성하며 병입 전에 시멘트 용기에서 6개월간 안정시킨다. 타바코, 젖은 나뭇잎, 커피, 민트, 오렌지, 체리 향의 임팩트가 놀랍다. 풀보디의 묵직함, 강건한 타닌, 경쾌한 산미가 느껴진다.
30~40년 전만 해도 사그란티노 와인은 달콤하게 마셨다. 지금의 맛으로 변한 건 이탈리아를 강타한 드라이 와인의 유행을 비켜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꼭 유행 탓만은 아니지만 파시토 와인은 일손과 시간이 많이 들어 생산량이 매우 적고 움브리아를 벗어나면 구하기 힘든 희귀 와인이다 . 이탈리아 스위트 와인의 대부분이 화이트 품종에서 온 황금색 파시토인데 비해 사그란티노 파시토는 검붉은 빛을 발해 흑진주로도 불린다.
<사그란티노의 흑진주, 몬테팔코 파시토>
파시토와 드라이한 맛을 가르는 기준은 자연건조(아파시멘토)에 있다. 사그란티노의 일부는 자연 건조실로 옮겨 습기가 적정 양으로 증발될 때까지 말린다. 보통 2개월이면 건포도 알보다 조금 큰 크기로 쪼그라들어 파시토 양조에 적당한 상태가 된다. 그 이후는 드라이 와인 공정과 비슷하다. 안토넬리 파시토는 25헥터리터 오크통에서 12개월 숙성, 시멘트 용기에서 18개월 안정한 후 병입 한다. 체리, 베리 쨈, 오렌지 껍질, 스파이스 향이 풍성하다. 달콤한 맛에 녹아있는 타닌은 드라이한 맛에서 감지되는 타닌과는 다르다. 혀를 조이거나 떫다 식의 촉감 영역을 벗어나서 타닌의 느낌이 단 맛의 정도를 결정한다.
"웬디의 움브리아 요리 한마디"
그녀는 움브리아 요리를 그린과 심플로 정의한다. 가급적 식재료의 본래 풍미를 살리기 위해 소화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익힌다. 움브리아 녹색 들판에서 자라는 올리브 오일, 올리브 열매, 체치콩, 렌틸콩, 보리는 움브리아의 소울푸드로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주민들은 텃밭을 가꾸고 거기서 나온 무공해 야채로 건강식을 즐긴다. 숲은 블랙 트러플의 보고로 제철에는 트러플로 맛을 낸 요리가 식탁을 향기롭게 한다. 콩을 자작하게 끓여 만든 레구미 스프, 올리브 열매와 레드와인에 익힌 돼지고기, 양, 콜롬바 요리는 움브리아의 맛이다. 양젖으로 만든 노르차 페코리노 치즈는 순한 풍미를 내며 소젖으로 만든 카초타, 모차렐라, 리코타 치즈는 담백한 맛이 부드럽다.
토스카나처럼 무염 빵을 먹는데 삼면이 육지라 소금이 귀해서 소금 넣지 않고 제빵 한 게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빵에 넣는 소금을 아껴서 살루미나 치즈에 넣었는데 무염 빵과 함께하면 간이 잘 맞는다. 노르차(Norcia) 프로슈토, 판체타, 롬보(돼지 허리살) 살루미는 움브리아의 특산품으로 엑스트라 버진유, 페코리노 치즈와 함께 필수 쇼핑아이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