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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레드 와인 품종을 화이트 와인 양조방식으로 만든 로제 와인은 레드의 정열과 화이트의 냉철함이 공존한다. 레드 와인을 만드는데 필수인 테루아/영농기술/양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화이트 와인의 핵심인 천연 산도와 향미 추출에 정통해야 하므로 와인메이커에게 로제 와인은 까다로운 영역이다.


로제 와인의 홈그라운드는 단연 마리아주다.  여러분이 어떤 음식을 주문하든(디저트는 제외) 로제 와인의 맛과 충돌하거나 겉도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듯 로제는 화이트나 레드가 넘을 수 없는 맛의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두 와인이 메울 수 없는 갭을 채워준다.


로제 와인 양조의 핵심은 침용(maceration)이다. 침용은 으깬 포도 껍질을 포도즙에 담가두는 것을 말하며, 그 기간에 따라 로제 와인의 스타일은 큰 가지에서 여러 개의 작은 가지가 뻗어 나가듯 다양하다. 음식과 잘 결합하는 붙임성, 로맨틱한 핑크빛 컬러, 입안을 채우는 보디감도 다 침용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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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주요 로제 와인 산지. 흰색 동그라미 안이 살렌토 반도이며 이탈리아 로제 와인의 본산지다. 사진출처Turismo del Gusto>

 

 

이탈리아인은 침용 기간을 그들만의 스타일대로 낭만적으로 정의한다. 침용 시간이 12시간 이내면 ‘나이트 로제(Vino della notte)’, 24시간 이내면 ‘원 데이 로제(Vino di un giorno)’라 부른다. 나이트 로제는 막 수확한 포도를 자정에 침용시켜 해가 뜨기 전에 끝낸다.


나이트 로제는 보통 북이탈리아 생산자들이 선호하는 침용법으로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의 자연 경계인 가르다 호수(Lago di Garda) 주변이 본산지다. 가르다 호수 좌안의 발테네시 끼아렛토(Valtènesi Chiaretto, 그로펠로 품종으로 양조)와 호수 우안의 바르돌리노 끼아렛토(Bardolino Chiaretto, 코르비나와 론디넬라 품종 블랜딩)를 예로 들 수 있다. 연분홍빛과 살구빛이 돌며 흰 꽃, 복숭아, 레몬, 자몽 계열의 향과 드라이한 맛의 여운이 순하다. 눈감고 마시면 가벼운 화이트 와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섬세하다.


원 데이 로제는 12시간 이상 포도를 침용시키며, 그렇게 얻은 와인은 짙은 장미와 연어색을 띤다. 보통 남중부 이탈리아 로제 와인이 여기에 포함되며, 가볍고 영한 레드 와인이 선사하는 보디감과 복합적인 향을 풍기며 알코올 농도가 14도를 훌쩍 넘는 로제도 상당수다. 체라수올로 다부르조(Cerasuolo d’Abruzzo, 몬테풀차노 품종), 살리체 살렌티노(Salice Salentino, 네그로 아마로 품종), 카스텔 델 몬테(Castel del Monte, 봄비노 네로 품종), 치로(Cirò, 갈리오포 품종) 로제가 해당된다.


필자에게 이탈리아 로제 와인 중 가장 낭만적인 것을 고르라면 라크리마(Lacrima)를 꼽겠다. ‘눈물’이란 뜻의 라크리마 로제는 살렌토 지방의 뿌리 깊은 와인 전통이며 양조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화이트 와인에 가깝다. 수확한 포도송이를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무게에 눌려 포도즙이 흘러나온다. 이 때 눌린 포도에서 즙이 나오는 모양이 마치 눈에서 눈물 떨어지듯 해서 라크리마다. 눈물을 잠시 공기와 접촉시키면 산화가 가볍게 일어나면서 엷은 핑크색을 띄게 되고 이걸 재빨리 발효해서 라크리마 와인을 얻는다.


살렌토는 부츠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에서 굽 부분에 해당한다. 굽의 서쪽은 이오니아 해, 동쪽은 아드리아 해와 면하는 살렌토는 반도 안의 작은 반도로 바다와 인연이 깊다. 라크리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살렌토 반도는 현재 DOC등급에 지정된 11종의 로제 와인이 이곳에서 나올 정도로 로제 와인의 집산지다. 대부분의 로제는 네그로 아마로 품종으로 만들며, 블랜딩 할 경우도 네그로 아마로의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네그로 아마로는 네로 다볼라 품종과 더불어 덥고 건조한 남이탈리아 기후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토착화한 품종이다. 두 품종이 아무리 기후와 풍토 적응력이 뛰어나도 바다가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대표성을 띄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시칠리아와 살렌토로 불어오는 해풍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포도나무는 타거나 말라 죽었을 거다.

 

살렌토 반도는 산이나 언덕 같은 방풍막이 없어 지중해 연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무사통과한다. 시베리아, 발칸반도에서는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중부 아프리카로부터는 덥고 습한 시로코 바람이 수시로 불어온다. 오죽하면 이곳 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피부에 스치는 바람결로 그날 날씨를 예상할 수 있다고.


네그로 아마로(Negro Amaro)는 2천 5백여 년 전 그리이스인들이  남이탈리아에 들여온 품종이다. 워낙 오래된 품종이다 보니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어원과 관련해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niuro mavro, ‘흑색’을 뜻하는 라틴어 niuru와 그리스어 mavro의 결합이다. 아마도, 네그로 아마로를 레드 와인으로 만난 애호가라면 흑색 반복설에 100%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네그로 아마로가 흘린 라크리마나, 침용 기간이 12시간 이내인 나이트 로제는 우아하고 기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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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nio 와이너리의 오너 겸 양조가 마씨밀리아노.  로제 와인 만드는 과정 중 원하는 색깔을 얻는 침용 과정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그의 시그니처 로제 와인은 알베렐로로 키운 네그로 아마로가 흘린 라크리마 즙을 발효해서 만든다>

 


귀한 라크리마 로제일수록 알베렐로(alberello)로 키운 네그로 아마로 포도에서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50년 간 살렌토에서 와인을 만들어 온 아폴로니오 가족의 4대손 마씨밀리아노에게 알베렐로에 대해 물었다.

 


“그리스인은 네그로 아마로를 전해주면서 알베렐로 재배법도 알려주었다. 그전에는 포도덩굴이 나무를 타고 자랐지만 알베렐로로 바꾸면서 포도나무는 사과나 배나무처럼 버팀목 없이 자라게 되었다. 다 자라면 60~80cm정도이며 그루당 열매가 두 세 송이 밖에 열리지 않아 포도 향미의 농축도가 높다. 키가 난쟁이라 해풍이 강해도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으며, 건조한 여름에는 스스로 물 사용을 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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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Apollonio 와이너리의 Diciotto Fanali, ②Buonsegna의 Danza della Contessa, ③Conti Zecca의 Venus, ④Calistro의 Negroamaro Rosato>

 


① Apollonio 와이너리의 Diciotto Fanali


빈티지: 2016
품종: 네그로 아마
알코올 도수: 14%


보통 로제 와인은 투명한 병에 병입하지만 이 와인은 숙성용 레드 와인 병에 담았다. 숙성에 적합한 로제 와인으로 숙성 절차와 기간도 숙성용 레드 와인처럼 복잡하고 길다. 라크리마즙을 아카시아 용기에서 발효한 후 같은 용기에서 12개월 숙성, 병 숙성 6개월을 거쳤다. 전체적으로 연어색이 돌지만 노란빛이 섞였다. 사과, 장미, 체리, 아몬드, 딸기향이 풍성하다. 경쾌한 산미와 소량의 타닌은 미디엄 보디의 구조감을 선사한다. 아몬드의 구수한 풍미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② Bonsegna 와이너리의  Danza della Contessa


빈티지: 2018
품종: 네그로 아마로(80%)와 말바시아 네라 블랜딩
알코올 도수: 12.5%


24시간 침용을 거친 후 시멘트 용기에서 발효, 숙성을 거쳤다. 체리, 라즈베리, 시트론 향이 상큼하다. 짠맛과 산미의 밸런스가 좋다. 은은한 타닌감이 와인에 생기를 준다. 

 


③ Conti Zecca와이너리의 Venus


빈티지: 2018
품종:  네그로 아마로 80% 외
알코올 도수: 11.5%


나폴리 출신의 귀족 가문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로, 1580 년에 살렌토에 이주하여 포도 재배에 전념해왔다. 전통과 현대의 기술을 접목해 성공한 와이너리이다. 320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연간 2백 8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부드럽게 압착한 포도를 12시간 침용한 후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와 시멘트 용기에서 숙성했다. 체리, 딸기, 사과, 생강, 타임향이 장밋빛 색깔과 잘 어울린다. 경쾌한 산미와 소량의 잔당이 혀를 매끄럽게 감싼다. 

 


④ Calitro와이너리의 Negroamaro Rosato


빈티지: 2018
품종: 네그로 아마로 100%(라크리마 로제)


와인 라벨의 꽃은 와이너리가 소재하는 마을 성당의 장미 창을 모티브로 했다. 흐린 살구색.  장미, 체리, 산딸기 향이 수줍게 올라온다. 청량감 있는 산미와 알코올이 적당해 마시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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