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리서치와 컨설팅 기관( Nomisma-Wine Monitor)이 성인1 천 명에게 물었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가 질문이었다. 이에 응답자의 35%가 ‘토스카나산 고품질 와인’, 25%가 ‘지위의 상징’으로 답변했다. 응답자는 중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36~51세 사이의 남성이며 학력은 대졸이나 박사학위 취득자다. 월수입이 2천5백 유로 이상에다 미식투어를 즐기며 한 주에 와인 한 병은 기본이라 응답했다. 이들은 특정 와인을 구입하기 전에 정보를 검색하고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이하 부르넬로)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최신 빈티지 한 병을 사려면 40유로는 지불해야 한다. 10유로 안팎이면 가성비 좋은 와인을 배부르게 마실 수 있는 이탈리아인들 눈에 부르넬로는 준럭셔리로 비추어질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자신이 속한 지역산 와인을 최고로 치는 이탈리아적 애향주의를 고려할 때, 부르넬로를 찾는 주 고객은 와인의 지역 연고를 따지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며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와인 애호가임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 2014년산 부르넬로의 공식 시음회 <벤베누토 부르넬로 Benvenuto Brunello 2019>가 열렸다. 48개월의 숙성을 마친 부르넬로 시판에 앞서 와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행사다. 숙성 잠재력이 적어도 30년인 부르넬로를 다섯 살 되는 해에 뚜껑을 열고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그러나 공식행사에 떠도는 코멘트나 빈티지 점수는 무게를 지니고 있어 와인 판매와 직결된다. 특히 작황이 좋지 않았던 2014년 부르넬로를 고를 때는 유익한 기준이 된다.
본 행사에는 2014년산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외에 2017 년산 ‘로쏘 디 몬탈치노’, 1996년부터 새로 도입된 산탄티모, ‘모스카델로 디 몬탈치노’ 디저트 와인도 가세해 와인의 다양성을 과시했다.
악재와 호재는 종잇장 차이
2014년은 “숙련된 양조 경험과 포도밭 관리능력은 흉년을 이긴다”는 상식이 통한 해였다. 포도가 익는 여름에 큰 비가 자주 내렸고 평균기온이 낮았다. 타닌과 폴리페놀의 완숙도가 낮고 산도는 날 선 칼날 같았다. 여름의 이상 저온 현상때문에 수확 종료 시기는 9월 말~10월 말로 늦춰졌다. 한 부르넬로 생산자는 2014년 수확철을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때는 기후온난화 전이라 여름이 서늘했고 10월에 수확하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생산량은 예년 수준보다 30% 떨어진 6백만 병으로 줄었다.
상당수의 생산자들은 수확시기를 늦추면서 포도 품질을 높이려 했다. 비온디 산티(Biondi Santi)와 살비오니(Salvioni) 와이너리는 부르넬로 생산을 포기했다. 질 낮은 부르넬로를 생산하느니, 등급이 한 단계 낮은 ‘로쏘 디 몬탈치노’ 와인의 품질을 높이자는 의도였다.
일부 생산자들은 가지치기와 포도송이 선별을 통해 최상의 품질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발효기간과 온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부르넬로의 품질을 지키려 했다.
<벤베누토 부르넬로> 행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2014년 산 부르넬로가 균형 잡히고 우아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근육, 힘, 30년이 지나도 건재한 숙성력 등의 부르넬로 전통 수식어는 들리지 않았다. 부르넬로 와인 컨소시엄이 매년 실시하는 빈티지 평가에서 2014년은 별 다섯 개 만점에 3 개를 받았다.
로쏘 디 몬탈치노의 경우, 2017년은 2014년과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가뭄이 심하고 고온이 기승을 부려 수확을 앞당겨야 했다. 수확 시 당도가 높아 알코올 발효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부르넬로와 비온디 산티 가족
여기는 1860년대 몬탈치노. 클레멘티 산티는 자주 가는 포도밭에서 특정 산조베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돌연변이일거라 추정되는 산조베제를 오크통에서 숙성해 봤다. 맛을 보니 일반 산조베제 와인에는 없는 힘과 숙성력이 느껴졌다. 클레멘티의 발견이 부르넬로 와인으로 실현되는 것은 외손주가 성인이 된 후에나 가능했다. 클레멘티 산티의 딸은 비온디 가문의 남성과 결혼했고 그들 사이에서 페루초(Ferruccio)가 태어난다. 두 가문의 결합으로 태어난 페루초는 성인이 되자 성을 비온디 산티로 개명하고 외할아버지의 실험을 이어간다. 현재 비온디 산티 와이너리의 건물인 테누타 그렙포(Tenuta Greppo) 주변의 포도밭에서 페루초는 산조베제 그로쏘(Sangiovese Grosso) 클론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때 몬탈치노에 포도 역병인 필록셀라가 기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페루초는 새 클론에 미국산 대목을 이식해 필록셀라에 대한 내성을 보강했다. 후에 식물학자들은 이 클론을 포도 품종 분류법에 따라 BBS -11로 분류했다. BBS는 Brunello Biondi Santi 첫 자음을 조합한 단어로 가족성이 품종명이 된 드문 사례다. 한편, 페루초의 와인은 대중의 와인취향과 거리가 있었고 몬탈치노 토양이 포도경작에 적당치 않아 대중과 생산자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페루초는 이에 개의치 않고 와인 전문가를 불러 시음회를 열고 와인의 강인한 숙성력을 알렸다.
196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다. 국빈만찬에 축하주로 나온 1955년 산 비온디 산티 부르넬로를 맛본 여왕은 매우 흡족해 했다. 이때부터 부르넬로 와인은 국내외에 알려진다. 몬탈치노에 포도밭 면적과 생산자가 늘어나면서 이탈리아판 골드러시에 비견될 만한 개발 붐이 분다.
페루초가 양조한 부르넬로는 아직도 건재하다. 1994년 Decanter 잡지의 와인 기자, 니콜라스(Nicholas Belfrage)는 1881년 산 리제르바를 시음했다. 그는 113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완벽했다며 10점 만점을 주었다. 현재 비온디 산티 셀러에 보관되어 있는 최고령 빈티지는 1882년산 (재고 2병)과 1891년산 (5병)이다. 1927년부터 비온디 산티 가족은 코르크 마개를 교체하고 자연 소실된 와인을 보충하는 토핑업(Topping Up)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개봉한 김에 와인 상태도 점검하는 이 행사에서 백 살도 더 되는 두 와인의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판명됐다.
<사진제공 :비온디 산티 와이너리>
개인의 집념과 노력으로 만든 와인이 성공을 거두어 아이콘이 되는 예는 많다. 그러나 와인의 성공이 가문의 영광을 뛰어넘어 와인과 생산지역이 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비온티 산티 가문과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은 이를 해냈다. 1980년, 부르넬로 와인 규정(DOCG 제9조 A항 1호, 지역정보, 인간 기여 부문)에 다음의 문구가 삽입된다.
“클레멘티 산티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선구자다. 1869년에 열린 지역 와인 경연대회에 출품한 1865년 산 Vino Scelto(Brunello)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몬탈치노에만 있는 것
1966년에 DOC등급이 확정된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은(이하 부르넬로) 이탈리아 와인 규정이 제정된 후 DOC등급에 오른 8대 와인에 속한다. 이어 1980년에는 DOCG 등급으로 상승한다. 1헥타르당 허용된 포도 수확량은 8 천 kg이하이며 이를 양조과정에 투입했을 때 얻는 와인은 5,200리터를 넘을 수 없다. 750ml 와인 병으로 환산하면 7천여 병이다. 의무적인 오크 숙성 기간은 최하 2년, 병 숙성은 최소 4개월, 와인 숙성 기간만 최소 48개월이다. 포도를 수확한 해를 기준으로 5 년 후에 시판한다. 즉 소비자가 2019년 현재 가장 젊은 부르넬로를 구입하려면 2014년 산을 고르면 된다. 리제르바의 경우는 숙성기간이 1년 더 길다(총 6년).
1980년도에는 몬탈치노 지역의 포도밭에서 재배되는 산조베제 그로쏘 포도의 상태에 따라 부르넬로를 두 종류로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장기 숙성에 적당한 포도는 기존의 부르넬로로, 구조감과 아로마가 뛰어나지만 향미의 정점은 수확 후 5년 내로 줄어드는 로쏘급 부르넬로다. 1983년에 로쏘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 DOC)가 탄생했으며 포도밭과 병입 장소가 부르넬로 와인과 일치한다. 1헥타르당 포도 수확 허용량은 9천 kg, 최소 알코올 농도는 12%다. 수확한 해를 기준으로 2년 후에 시판한다.
1996년에는 산탄티모(Sant’Antimo DOC) 와인이 몬탈치노에 합세한다. 앞의 와인이 토착품종에 중점을 두었다면 산탄티모 와인은 프랑스 품종 와인이다. 화이트 품종 와인으로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피노 그리조가 있으며 레드는 메를롯,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다. 이 품종들을 건조해 전통 오크통에서 숙성한 산탄티모 빈산토(Vin Santo ) 스위트 와인도 있다.
몬탈치노는 부르넬로로 명성을 얻기 전에 모스카델로(Moscadello di Montalcino)로 알려졌다. 모스카토 비앙코가 주 품종인 스위트 와인으로 비발포성(Tranquillo), 약발포성(Frizzante), 수확을 늦추어 농축된 맛이 두드러지는 벤뎀미아 타르디보( Vendemmia Tardivo) 타입이 있다.
<몬탈치노 지역 지도. 수도는 북동쪽에 있는 몬탈치노다. 흑점과 번호는 부르넬로 와인 생산자와 위치를 나타낸다>
몬탈치노 자연환경과 기후
몬탈치노 지역은 크기만 2만 4천 헥타르에 달하며 15%인 360헥타르가 포도밭이다. 사각형인 몬탈치노 지역의 서쪽 방향으로 40km 가면 티레노해, 동북 방향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아펜니노 산이 있다. 남동쪽에 뻗어 있는 아미아타 산(Monte Amiata, 해발 1740m)은 기습 폭우, 우박을 막아준다.
몬탈치노만큼 강의 축복을 받은 땅이 있을까! 사방에 강이 흐른다. 옴브로네 강은 몬탈치노 북부를 흐르다 서남 방향으로 꺾어진다. 몬탈치노 남서에서 남동 방향으로는 오르차 강이 흐른다. 오르차 강은 북남 방향으로 전진하던 앗소강과 합류한 뒤 아미아타 산 방향으로 물길을 바꾼다.
대체로 지중해성 기후나 바다와 산 중간에 위치한 이유로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는 포도밭도 있다. 연강수량은 700mm 이내이며 봄과 늦가을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겨울에는 4백 미터 넘는 고지대에 가끔 눈이 내린다.
토양과 와인 종류
몬탈치노 토양은 다양성으로 좁힐 수 있다. 다양성의 중심축에는 갈레스트로(galestro)와 알베레제(alberese) 토양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 생산자들은 이를 이회토라 한다. 점토, 미사, 사암이 뼈대를 이루며 그 틈을 석회석이 메우고 있다. 산조베제 그로쏘 품종과 궁합이 잘 맞는 약알칼리성 토양이다. 토스카나산 산조베제 와인은 둘 중에 하나이거나 둘 다 섞여 있는 토양에서 올 확률이 높다. 산미와 타닌이 높고 보디가 탄탄한 와인에 적합하다.
둘 다 토양 입자의 크기와 비율은 비슷하지만 외부 힘에 다르게 반응한다. 갈레스트로는 손에 쥐고 힘을 가하면 먼지를 내면서 부서진다. 비에 젖거나 햇볕에 쬐이면 결 따라 부서지는데 이때 흙 안에 갇혀있던 미네랄 성분이 빠져나와 땅에 스며든다. 알베레제는 갈레스트로가 딱딱하게 굳은 상태로 바람과 비에 쪼개지지 않는다.
몬탈치노 언덕은 해발 120~650m 내외이며 부르넬로가 재배되는 곳은 언덕 중턱과 중상부에 몰려있다. 이곳 경사면에 앞서 말한 토양이 몰려있으며 여기를 벗어나 심은 포도는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냉풍을 맞을 수 있다.
몬탈치노의 토양은 아래와 같이 크게 네 종류로 나뉘며 토양별로 부르넬로의 개성이 미세하게 변한다.
<북서지역>
포도밭 면적 대비 숲 면적이 넓다. 언덕 중상부는 갈레스트로와 알베레제 토양, 하부에는 충적토가 쌓여있다. 티레노해에서 불어오는 염기를 흡수한 포도는 와인에 쌉쌀한 맛을 준다. 타닌의 질감이 부드럽고 날카로움이 중간 정도의 산미를 띤다. 붉은 꽃, 스위트한 과일향이 우아하다.
<북동지역>
대륙성 기후에 가까우며 수확철이 가장 늦다. 북풍 트라몬타나(tramontana)가 불면 춥고 건조하다. 트라몬타나가 여름에 불면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며 포도가 곰팡이에 감염될 확률이 줄어든다. 갈레스트로와 알베레제 토양이 교대로 쌓여있으며 언덕 상부로 갈수록 석회석과 사암의 비율이 높다. 장미, 체리, 라즈베리, 감귤 향이 부르고뉴 피노 스타일과 닮았다. 타닌의 결이 매끈하며 산도가 산뜻하고 부드럽다.
<남서지역>
매우 덥고 건조하며 수확철이 가장 빠르다. 티레노해가 불과 40km 거리에 있어 별명이 ‘지중해 부르넬로’다. 갈레스트로에 화산토가 섞여있다. 말린 무화과, 감초, 오렌지 향을 조화롭게 풍긴다. 알코올이 높으며 타닌은 강건하지만 질감이 부드러워 마시기 좋다.
<남동지역>
근접한 아미아타산이 바람과 한냉을 막아준다. 아미아타 산은 사화산으로 몬탈치노 토양에 섞여있는 화산토의 원인이다. 일교차가 심하며 바람이 자주 분다. 농축된 아로마와 타닌의 묵직함이 입 안을 꽉 채운다. 여운이 길며 높은 알코올은 유질감과 풍만함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