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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과연 일등급 와인 중에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가능할까? 최상급 와인 중에서 특정 와인을 편애(?)하는 것은 개개인의 취미요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와 같은 등급 개념을 심어주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이 아마도 1855년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 등급 구분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등급 구분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져진 Mouton Rothschild와 Lafite Rothschild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1855년 등급구분 당시 1등급으로 선정된 라피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제2편에는 Mouton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

물론 그랑 크뤼급 와인 생산지와 다른 급 와인 생산지에서 나는 와인이 같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와인의 품질을 가늠하는 데 있어서 각 해의 와인에 들어가는 정성과 헌신의 정도 및 각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양조 방법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각 재배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어느 시점에서 좋지 않은 와인이나 또는 가격에 합당치 못한 와인을 생산되었는지를 지적하는 것은 와인 애호가들의 마땅한 아주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1855년 등급분류에서 1등급 와인 중 최고로 분류된 라피트가 특히 더 우리의 상상력에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에 이곳 와인이 일등급 와인으로 분류되게 된 경유를 되짚어 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와인 값을 기준으로 등급을 정하는 것은 와인 생산자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1855년 와인 브로커들이 와인이 지닌 고유의 우수, 우월성 보다는 5등급의 분류를 와인 값 순서로 했다고 한다.

라피트가 등급분류 이전부터 오브리옹, 마고, 라투르와 더불어 유명했다는 사실은 18세기 말(1741-1774) 와인 브로커인 Tastet과 Lawton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높은 가격에서 증명된다. 이밖에도 Wilhelm Franck 의 1845년 등급 분류와 가격표에서도 Lafite가 19세기 초반부에 다른 일등급 와인보다 더 높은 값에 팔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 Thomas Jefferson이 1787년 5월에 메독 지방을 방문하고, 이 지역 샤또들의 등급을 마고, 라투르, 오브리옹 다음에 네 번째로 라피트로 잡은 것을 보면, 19세기 초 이 와인들이 판매되던 높은 가격이 와인의 품질을 꼭 대변하는 것 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라피트의 와인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를 거쳐, 1855년 무렵이 되서야 그 우수한 품질을 달성하게끔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라피트는 1811년을 기점으로 라피트 와인의 품질이 향상되어, 1815년에 이를 맛 본 Guillaume Lawton1은 일등급 셋중 Medoc에서 가장 우아하고 오묘한 맛의 와인이라 극찬할 정도였다.

1695년 당시 라피트의 소유주였던 Segur(세구르)가의 상속인인 Alexandre de Segur와 Latour의 상속녀인 Marie Therese de Clauzel와의 결혼으로 당대 가장 훌륭한 두 포도원이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두 포도원의 명성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Nicolas Alexandre가 포도의 왕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훗날 Louis 15세로부터 후작의 작위까지 받은 Nicholas의 사망으로 1755년 Lafite와 Latour는 다시 분리되고 만다.

그 후 Lafite는 1784, 1786, 1797, 1800과 1816년에 각각 새로운 주인을 맞는다. 이 후 1821년에도 Lafite의 소유권이 Mme Barbe Rosalie Lemaire에게서 영국의회 의원이며 은행가인 Samuel Scott에게로 넘어간 사건이 있었다고 전하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사건/계약은 사실상 허위(거래)였다고 한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서 Cyril Ray는 그의 저서 [Lafite]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시 나폴레옹 법전이 장자 상속법을 금지하여 Lafite도 부득이하게 여러 명에게 배분상속 되어야 했다.

그러자 재산이 분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Mme Lemaire와 그녀의 세 딸들은 이를 전부 아들 Aime에게 상속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대책을 세울 필요를 느꼈다. 결국 이들은 명의상의 거래를 꾸며 아들에게 재산을 통째로 넘겨주려고 했으나, 1866년 상속자를 남기지 않고 Aime가 사망하는 바람에 이 사실이 결국 누이들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고 Lafite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이를 구입한 사람이 Jacob Rothschild이다.

Jacob을 시작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라피트의 시대가 열리는데, 그는 Rothschild 가문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Mayer Amschel Rothschild의 5아들 중 막내였다. 그의 아버지 Mayer Amschel Rothschild(1744-1812) 는 1744년 독일 후랑크 후르트의 유태인 강제 거주지역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1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 대신 희귀 동전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이었다.

후에는 수입업을 시작하여 커피, 설탕, 와인을 취급하는 젊은 실업인이 되었으며 다량의 모직, 면사, 밀가루를 취급하기도 했다. 종국에는 군대에 식품, 의복, 말을 공급하는 군납업자가 되어 많은 부의 축적을 할 수 있었다.

Mayer Amschel은 희귀 동전 장사를 하면서 영향력 있고 부유한 젊은 수집가이며 후에 Hesse-Kassel의 Wilhelm Ⅸ 황태자가 된 이를 만났고, 종국에는 유럽 제일의 부자였던 그의 도움으로 Rothschild家를 크게 번성시킨다.

Mayer Amschel의 다섯 아들 중 맏이만 아버지와 후랑크후르트에 남고, 나머지는 비엔나, 나폴리, 파리와 런던으로 가서 은행을 개설한다. 이처럼 전 세계로 뻗어나간 Amschel의 이 다섯 아들은 이 가문의 문장에 표현된 부채꼴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5개의 화살로 상징되며, 이 도안은 훗날 이들이 구입하게 될 Lafite의 상표로 등록되게 된다.

롯드쉴드 가문은 1815년 월터루 전쟁 때 나폴레옹에 대항해서 싸운 연합군(영국의 웰링톤 공작 군대)에 전쟁자금을 제공하였고 영국정부의 수에즈운하 취득에 자금을 일조 하기도 하였으며 불란서에 철도를 세우는 데도 기여를 했다.

1822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루그 황제에게서 롯드쉴드가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세습할 수 있는 남작의 작위를 수여 받았다.2 그 시점으로부터 롯드쉴드가의 행운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서 무통과 라피트의 구입 즈음해서는 황금시대를 맞이하고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다섯 아들 중 셋째 Nathan과 다섯째 Jacob, 두 아들이 가장 재능이 있었는데 Nathan(그의 아들 Nathaniel이 1853년 Brane-Mouton을 구입해서 Mouton Rothschild로 샤또 이름을 변경함)은 영국에 정착하고 Mayer Amschel의 막내아들 Jacob (그의 이름을 후에 James로 바꿈)은 파리에 정착한 후 1868년 Château Lafite를 구입하였다.

Rothschild가의 창시자 Mayer Amschel이 지금의 Mouton Rothschild의 여주인인 Philippine과 Lafite Rothschild의 대표자 Eric의 6대조 조상이 되는 셈이다.

Baronne Philippine de Rothschild(Mouton)의 모든 주식이 Baroness Philippine와 그녀의 세자매(한가족)가 소유로 되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Domaines De Barons de Rothschild(Lafite)는 1868년, Chateau Lafite를 구입한 Baron James의 1명의 증손과 6명의 고손에게 주식의 1/6 혹은 1/12로 분산되어 있으며 이들이 차례로 번갈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974년 이래로 현재까지 파리 로쉴드 가문의 남작 Eric이 대표자이다.

Domaines Barons de Rothschild(Lafite)는 Château Duhart-Milon(두아르 밀롱), 쏘테르느의 Château Rieussec(리유색), 뽀므롤의 Château L`Evangile(레방질)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DBR 로고의 네고시앙 브랜드와 전세계에 3,000 에이커가 넘은 포도농원이 DBR(Lafite)의 소유 내지 관리하에 있고 랑그독, 칠레, 포르투갈, 캘리포니아, 워싱턴에 진출해 있으며, 아르헨티나와 이태리에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DBR(Lafite)의 1999년 총 생산량은 약 140만 케이스 즉, 1억2250만 달러에 이른다.

스위스 제네바의 Baron Benjamin de Rothschild家는 DBR(Lafite)의 1/6의 주식외에도 Château Clake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염두에 둔다면 이 가문이 누리고 있는 부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와인 Lafite도 이 가문과 같은 궤도를 걸었다고 할 수는 없다. 60년대와 70년대를 걸쳐 근 20년 동안 Lafite 와인은 무차별적인 재배와 엄격하지 못한 선별과정을 거쳐 생산이 되었고 이때 생산된 사실 2급품 와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Grand Vin으로 판매되었다.

이처럼 정성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과거의 명성에만 의존했다는 것은 이미 Lafite의 대표인 Baron Eric도 시인한 바있다. 엄격히 말해 Lafite의 품질을 본괘도에 올려놓은 것은 1976년, Eric이 Second Label, Moulin Du Carruades3로 별도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라피트는 메독, 뽀이약의 최북단에 위치한 약 250에이커의 포도농원을 소유하는 1등급 중 제일 큰 샤또이다. 라피트의 토양은 본래 4미터 두께의 두터운 석회암 자갈 층으로 이루어져있다.

라피트나 무통의 포도농원은 비슷한 토질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와인 스타일이 다른 것은 포도품종 비율의 차이 때문이다. 라피트는 가장 큰 경쟁자인 무통과 비교하여 볼 때 Cabernet Franc 품종보다 Merlot를 1/5 정도 더 많이 재배 한다.

라피트의 포도나무들의 평균 수령은 약 50년이다. 라피트의 포도원에서 재배되는 포도품종의 비율은 Cabernet Sauvignon 70%, Cabernet Franc 10%, Merlot 20%이지만 매년 작황에 따라 와인 배합의 비율은 변동된다. 예를 든다면 Lafite의 75년 산 Grand Vin에는 Merlot가 24%였던 반면, 1971년산 Grand Vin에는 Merlot가 10% 밖에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요즘도 Cabernet Franc 대신 Merlot을 더 재배하는 추세다.

라피트의 총생산량은 매년 변화가 커서 16,000와 45,000케이스 사이다. 하지만, 요즘은 와인 생산의 25%에서 50%까지도 파기하면서까지 평균 생산량 23,000케이스를 유지하여 와인의 우아하고 오묘한 맛을 관리하고 있다.

이처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생산된 와인들은 산, 탄닌과 알코올의 비중 등의 적정한 비율과 상호작용으로 오랜 생명력을 유지한다. 최근 라피트의 생명력과 탁월한 맛은 1858, 1864, 1865, 1870, 1875년산 Lafite에서 여전히 기대할 수 있는 좋은 맛을 다시금 살려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Lafite의 쎌라에는 이미 200년이 지난 1797년의 와인이 소장이 되어있다고 하니, 그 맛을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고 그 동안 더욱 발전하는 맛을 지닌 Lafite.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과연 무어라고 할 수 있을까?

Guillame Lawton은 1815년 라피트를 "가장 우아하고 오묘한 맛" ("The most elegant and delicate of flavour")이라고 표현한 바 있고 이를 Cyril Ray는 간단히 두 단어로 "완전한 균형" ("Perfect balance")라고 다시 적절히 표현했다. 라피트에 대한 총평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문구를 기반으로 우리들은 라피트의 맛과 역사의 깊이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폄과 동시에 올바른 판단을 시도해 봄이 어떨까…

[_이석기_]


1. Guillame Lawton는 와인 브로커 Abraham Lawton의 아들이다. 이 아들은 유명한 와인 저술가이며 "Lawton`s Classification of 1815"도 분류해 낸 인물로 당시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2. 이때 수여받은 남작의 작위는 Lafite에서 사용하는 공식명칭 Domaines de Barons de Rothschild(Lafite) 에도 나타나있다.

3. 이 와인은 1985년에 다시 Carruades로 그 이름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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