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대한

형식적인 질문과 형식적인 답변




글 _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필자는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지금 와인을 빈티지로 먹으려 하는데, 지금 먹기 좋을까요?

고가의 와인을 구매하는 애호가들 중에서 이제 서서히 빈티지에 대한 개념을 체득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이 물어오는 질문이다.와인이 빈티지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대개 이런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내마음속 솔직한답변은 “이미 마음으로는 그 와인을 먹고싶어 안달이 나신 것이니 그냥 드세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와인을 만날 기회가 올 것이니 지금 드시고 싶을 때 드세요”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은 드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은 “아마 반드시 열어야만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하는 답으로 대신한다.

사실 와인의 시음적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맛있을 때는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와인의 시음적기가 언제인지 궁금한가? 셀러를 열어보고 와인을 가만히 쳐다보자. 그리고모든 것을 떠나 곰곰히 마음을 가라앉히면, 지금이 시음적기인 와인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마음을 따라 가자.


저렴하고 맛있는 것 없나요?

미혼 남녀들이 배우자 감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가정해 보자. “성격만 좋으면” 혹은 “성실하면 되”. 처음엔 이렇게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다가 점점 대화를 통해 이상형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숨겨져 있던, 개인마다 제각기 다른 “성격이 좋다”라는 것의 요소들이 가득 차게 된다.

즉, 사람마다 판단하는 그 측정치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이는 개인적 차이기도 하나, 인간의 뇌는 어떤 하나의 사안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분리하고 분석한다. 가령 눈으로 하나의 장면을 보더라도, 색을 인지하는 영역, 테두리를 인식하는 영역, 움직임을 인식하는 영역 등 모든 영역들이 구분되어 존재한다. 그 각각의 영역에서 사람이 반응하는 정도는 각기 다르며.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들의 색감, 프랑스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빠져들어간다. “어떻게 저런 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따라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의 경제력과 취향이 그것이다.경제력에 따라서 저렴하다는 기준이 다르고,취향에 따라서 맛있다는 개념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일 경우가 아니라면쉽게 "이 와인이 저렴하고 맛있다"고 이야기하지 말기를.


이 와인의 시음적기는 언제인가요?

첫번째 질문과 유사하지만 그 맥락은 상당히 다르다. 대개 이 경우 지름신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묻는 질문으로, 가격이 싸길래 한 병 사두기는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시음적기가 아니니지금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언제쯤 이 와인을 마셔야 할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과거에 필자가 “지금이 시음적기이다”라는 글을 썼지만, 그것은 관념적인 개념에서 쓴 것이고,시음적기 이전에개봉했다해도 와인의 상태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노여워하지 말 것을 당부한 글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와인의 시음 적기는 알 수 없다.

단, 다음은 알 수 있다. 첫째, 저렴한 데일리 와인은 가급적 최근 빈티지를 마시자. 3~5년 이내에 마시면 좋다. 3~8만원 사이의 와인은 약 5~7년 정도 보관가능한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알코올이 매우 강할 경우(대개 14.5% 이상)인 경우에는 지금 마시기도 좋지만 굵고 짧게 산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약 12년 정도 유지가 되다가 어느 날 급전직하로 떨어질 확률이 높다. 13.5% 정도의 미디엄 바디 와인들은 보관상태가 적절할 경우 의외로 장기 숙성 가능한확률이 높다. 보르도 크뤼 부르주아 와인의 경우에도 알코올 도수에 따라서 10년을 훌쩍 넘겨 대단한 맛을 보여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와인의 시음 적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와인은 어떤 음식과 먹나요?

대개 와인 초심자들이, 그리고 와인과 음식의 조합을 많이 해보지 않은사람들이 많이 물어오는 질문이다. 이럴 때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짜파게티만 아니면 됩니다”라고. 그러나 사실 짜파게티라 하더라도 리슬링 같이 가볍고 산뜻한 와인들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 매운 라면과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이렇게 생각 해 보자. 적어도 맛을 해치는 와인은 없다고 말이다. 그래도 환상의 궁합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에이러한 완벽한 조화를찾아 사람들은 헤맨다. 필자는 와인과 음식을 매칭할 때 식재료보다는 사용하는 양념이나 주변 환경을 더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예를 들어수육은 화이트 와인이 잘 맞다. 일반적인 바비큐라 하더라도 그릴 향이 강하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싸고 가벼운 화이트가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오늘 시음회를 하려는데 어떤 순서로 할까요?

시음회를 하는 경우에 가장 난감한 것이 시음 순서다. 사실 필자는 다 열어두고 이것저것 마셔보는 스타일이지만, 와인을 처음 접하거나 배우는사람의 입장에서는그렇게 하면 와인의 맛을 구분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음 순서를 정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음의 원칙을 따라보자. 첫째,아주 달콤한 와인은 무조건 맨 마지막에 마시게 하라. 둘째, 스파클링 와인은 맨 처음혹은 맨 마지막순서로배치하라. 단 첫째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한다. 셋째, 로제 와인은 가급적 앞으로, 보르도는 가급적 뒤로 배치하라. 넷째, 비싸고 어린 빈티지일 수록 뒤로두며, 그 역치를 앞으로 둔다. 다섯째, 저렴하고 어린 와인일수록 앞으로 두고 이 역치는 가급적 내지 않는다(상했을 확률이 있으므로. 보졸레 말고 보졸레 누보를 10년 지나 마신다 생각 해 보자).

필자는 굳이레드와 화이트, 부르고뉴와 보르도, 이태리, 미국 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사이에 순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절히 맞추어 시음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그것이 순서다.


이 와인 맞춰보세요!

가장 당황스러운 경우는 지인들이 필자에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시키는 경우이다. 설사 생산 지역, 품종까지는 맞추더라도 정확한 빈티지까지 맞추는 것은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쉽지 않다. 특히 잘 숙성되고 베리향이 가득한메를로의 경우에는어린 빈티지의 피노 누아 와인과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지인들과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는 경우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하는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다만 신의 물방울과 같은 와인 만화에서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이슈로 다가온다. 필자 주변에는 천재적인 소믈리에들이 많이 있다. 그 분들의 와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진지하며, 그 와인의 하나하나를 평가하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한다. 그래서 와인 테이스팅은 시음이라기 보다는 노동에 가까우며, 1~2시간을 한 뒤에는 거의 탈진하게 된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 말이다.

와인을 블라인드 시음하는 것은 자신의 와인 지식을 뽐내려하는 것이아니라, 그냥 친구들과 가볍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단편으로서 편안하게 받아들이자. 참고로 필자의 정확도는 몇 % 정도 될 것 같은가? 빈티지: 60%, 품종: 30%, 지역: 20%, 이름: 10% 정도 될 것이다. 10%라면, 소가 뒷걸음 치다쥐 잡는 수준이니, 아예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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