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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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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전문가를 꼽으라면 스웨덴 출신의 리하르트 율린Richard Juhlin을 들 수 있다. 그는 여섯 군데의 샴페인 하우스에 별 다섯 개 만점을 주었는데, 그 중 RM은 자크 셀루스Jacques Selosse와 다비드 레클라파David Léclapart 단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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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연료가 비었다는 빨간 경고등이 들어온 지 무려 1시간 동안 식은 땀을 흘리며 비 오는 산길을 찾아 헤매다 도착한 Montagne de Reims의 Trepail 마을. 이곳은 피노 누아로 유명한 Ambonnay와 Bouzy의 동북쪽에 위치해있지만, 토양 자체는 샤르도네가 잘 자라는 Cote des Blancs의 특성을 보이는 마을이라 한다.
 
마을에 도착한 후에도 하얀 페인트로 칠한 모퉁이집를 돌고 돌아 제자리걸음을 하고서야 다비드 레클라파의 메종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 흔한 상호나 간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10cm 정도의 파란색 문패가 전부인 대문을 설마...하는 마음으로 두드린 후 비로소 닿을 수 있었던 소박한 샴페인 메종. 차를 몰고 왔다면 분명 그냥 지나쳐버렸으리라. 그리고 이 작은 힌트는 다비드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잡다한 집기와 기물들이 질서 없이 널브러진 허름한 창고 같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일본어와 중국어로 쓴 편지와 엽서, 액자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연예인이 받는 팬레터같다고 했더니 통역하는 이가 “팬레터가 맞다”고 한다. 벽에는 각종 양조 세미나 포스터, “Vis Parker”라고 쓴 포스터, MONDOVINO(세계 와인산업의 상업주의와 몰개성 경향을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포스터들이 가득한데, 다비드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듯 했다. 그의 공간은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이라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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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샴페인 시음이 시작되었다. 사실 사전 지식 없이 그의 메종을 방문했던 터라 큰 기대감은 없었다. 게다가 그가 누추한 지하 창고에서 샴페인 몇 병을 꺼내오더니 “이건 하루 전에, 저건 이틀 전에, 그리고 이 녀석(아티스트)은 닷새 전에 열은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내심 놀랐고 ‘우리를 무시하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1시간 정도 지난 후 필자는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포도에 무언가를 첨가한다는 것은 테루아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포도를 완벽하게 익혀서 좋은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어떤 비범함이 느껴졌다. 와인메이커와의 인터뷰는 그의 와인을 온전히 이해해야만 대화의 깊이가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사물의 물성 너머에 존재하는 테루아와 생명을 연구하는 사상가나 철학자를 대하듯 와인메이커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이런 인물의 와인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창 밖으로 흩뿌리는 빗줄기마저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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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레클라파는 Montagne de Reims의 Trepail에 자리한 3헥타르의 포도밭에서 매년 11,000병 정도의 샴페인을 생산한다. 사실 3헥타르에서 11,000병은 적은 소출이다. 그는 이를 두고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으로 샴페인을 만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비드의 집안은 4대째 포도 농사를 해왔는데,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수확한 포도의 대부분을 내다 팔고 남은 소량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1998년부터 다비드는 수확한 포도를 내다 파는 대신 직접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그는 농생물학을 전공하면서 Rudolf Steiner의 책을 통해 유기농과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에 심취했다. 졸업 후에는 Epernay에 있는 유기농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996년에 가업을 이어받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도멘을 설립한 초기 2년 동안은 포도를 수확해서 네고시앙에 팔았고, 1998년에 직접 샴페인을 병입, 판매하려 했으나 INAO로부터 퇴짜를 맞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1999년, 다비드가 마침내 세 가지 뀌베cuvée를 만들어 선보이자 전세계 샴페인 애호가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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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한 초기에 다비드는 지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또다른 잘 알려진 RM 샴페인 하우스 Fleury로부터 고형거름을 가져다 썼다. 지금은 직접 만든 소뿔거름을 사용한다. 그의 포도밭은 2000년에 Demeter 바이오 다이나믹 인증을, 2001년에 Ecocert 바이오 다이나믹 인증을 받았다. 달의 주기까지 고려하여 포도밭을 관리하는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의 맹신자지만, 실제로 그는 자신의 상식과 직관을 더 믿는다고 말한다. 포도밭에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와인의 품질이 달라진다는 철학과 테루아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춥고 서늘한 샹파뉴 지방에서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을 고집스레 고수하고 있다.
 
그는 모든 와인의 품질은 포도밭에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포도 수확은 포도가 완숙할 때 이루어지며, 수확한 포도는 토착효모로 발효시킨다. 와인은 이듬해 8~9월까지 효모앙금과 함께 숙성시킨다. 또한 그는 와인을 정제, 여과, 도사쥬(dosage, 당분을 첨가하는 과정)하지 않는다. 도사쥬를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테루아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단, 2001년과 2007년처럼 날씨가 매우 나빴던 해에는 예외적으로 아주 적은 양의 도사쥬를 시행했다.
 
다비드 레클라파 샴페인의 또 다른 특징은 그 해 수확한 포도만 사용해서 만드는 빈티지 샴페인이란 점이다. 즉 서로 다른 해에 만든 와인들을 섞지 않는다. 그저 (자금과 공간 부족으로) 최소 3년간 숙성시킨 후 출시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해 레이블에 빈티지를 표기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도 레클라파 샴페인의 빈티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는데, 레이블에 ‘v10’이라고 적혀있으면 그것은 2010년에 수확한 포도만 사용해서 만든 빈티지 샴페인임을 의미한다.
 
지금에야 도사쥬를 전혀 하지 않은 샴페인이나 바이오 다이나믹 샴페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1999년부터 이 두 가지를 실천해 온 그에게는 인생의 전부를 건 위험천만한 도전이었으리라. 오늘날 각광받는 바이오 다이나믹 샴페인의 구루, 앙셀렘 셀로스Anselme Selosse와 다비드 레클라파 같은 테루아 신봉자들은 "샴페인은 죽은 땅이 아니라 살아 있는 땅에서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연 그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했다.그리고 세계의 미식가와 와인애호가들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식탁에서 이들의 샴페인을 칭송한다. 춥고 서늘한 샹파뉴에서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으로 만든 샴페인, 산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도전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미 등, 샴페인의 선지자들이 만들어 낸 놀라운 성과에 그저 경외감이 앞설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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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다비드 레클라파는 네 가지 샴페인을 만드는데 L'Amateur (샤르도네만 사용, Amateur(아마따흐)는 ‘애호가’를 의미), L'Apotre (샤르도네를 오크 배럴에서 양조, Apotre(아포트레)는 ‘사도’를 의미), L'Artiste (샤르도네만 사용 Artiste(아티스트)는'예술가’를 의미) 그리고 피노 누아로 만드는 Astre가 그것이다. 모든 와인의 이름은 알파벳의 첫 글자인 A로 시작한다. 뒷면 레이블에는 Pureté(순수), Énergie(에너지), Plaisir(즐거움), Écologie(환경)라고 적혀 있는데,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포도로부터 순수함을 끌어내고, 흙으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자손을 위해 환경을 보호하고, 와인을 마시는 이들에게 기쁨을 전한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와인을 마실 때의 즐거움 그리고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활짝 웃는 그의 미소에서 소년 같은 해맑음이 느껴졌다. 욕심 없이 살아온 인생이라서 갖게 되는 절대적 평온함 같은 것이다.
 
샴페인에 있어서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샴페인>의 저자이기도 한 리하르트 율린은 “다비드 레클라파의 샴페인은 여타의 샴페인과 달리 매우 드라이하고 자극적이며 심지어는 톡 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순수하고 수정처럼 맑으며 부드럽까지 하다”라고 평한다. 또한 리하르트 율린이 선정한 <최근 100년 간 만들어진 정상급 샴페인 100개> 중 2000년대 이후에 생산된 샴페인은 다비드 레클라파의 샴페인이 유일하다. 현재 국내에는 수입사 비노쿠스를 통해 다비드 레클라파의 2013 빈티지 L'Amateur, 2010 빈티지 L'Artiste, 2010 빈티지 L'Apotre, 2011 빈티지 Astre가 유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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