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겨울이 물러가고 있다. 봄향기와 함께 온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로 양성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연대를 독려하고 각 분야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날이다. 다른 산업들처럼 와인 비즈니스 또한 오랫동안 남성들의 요새였다. 여성이 합법적으로 와이너리를 소유하거나 와인 양조를 도맡을 수 있는 방법은 배우자의 사망에 의한 유산 상속이 거의 유일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La Grande dame’이라 불리는 Veuve Clicquot의 Barbe-Nicole Ponsardin으로, 샴페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업적을 남겼다.
이후 와인세계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받아들였을까? 여성 와인메이커나 여성 소유 와이너리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적은 편이다. 2020년 Wine Intelligence에 따르면 전세계 와인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평균 비율은 약 40%로 와인메이커, 포도 재배자, 소믈리에, 마케터 등 다양한 직업들을 모두 포함한다. 또다른 자료에선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읽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여성 수석와인메이커의 비율이 2011년 10%에서 2020년 14%로 소폭 상승했음에 와인업계의 유리천장도 굳건함을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여성이 소유한 와이너리 또한 4%에 불과하다.
먹구름 속 햇빛이 숨었다고나 할까? 2018년에 이탈리아에서 실시한 Cribis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관리하는 와이너리는 약 73,700개 와이너리 중 4분의 1 이상이다. 또한 스페인 리아스 바이아스 지역 와이너리의 절반 이상에서 여성 와인메이커들이 활동 중이다. Ayala, Maison Perrier-Jouet 같은 전통적인 샴페인 하우스에서도 처음으로 여성 셀러마스터를 영입했다. 이제서야 여성 와인메이커의 비율이 약 10%에 이르렀는데 이런 경향은 부르고뉴, 루아르, 알사스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와인세계에 영감을 준 그녀들을 만나다
Lalou Bize-Leroy
수식어가 필요없는 부르고뉴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이자 Domaine de la Romanée-Conti(이하 DRC)의 전 공동 소유주.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확립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1992년에 DRC를 떠나 본인의 도멘, Domaine Leroy와 Domaine d’Auvenay를 운영하고 있다.
Corinne Mentzelopoulos
보르도 그랑크뤼 일등급 와인, Chateau Margaux의 오너. 70년대 재정적 위기에 빠진 샤토를 인수하고 재건에 온 힘을 쏟은 아버지의 작업을 멋지게 완성했다. 추락했던 샤토의 명성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는데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Helen Turley
위대한 캘리포니아 와인메이커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 Heidi Peterson Barrett, Mark Aubert 등 이름난 컬트 와인메이커의 스승격이다. Pahlmeyer, Bryant Family, Colgin 등 유명 와이너리에서 컨설팅했고 현재 본인의 와이너리, Marcassin Vineyards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사전예약을 해야 맛볼 수 있다는 와인, 그 사전예약조차도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Cathy Corison
뉴욕 타임즈의 와인평론가 Eric Asimov가 "오늘날 나파 밸리에서 가장 위대한 카베르네 소비뇽 생산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 1978년 UC Davis에서 양조학 석사 과정을 마쳤고
Yverdon과 Chappellet Vineyards에서 경력을 쌓은 후 1987년에 자신의 첫 번째 와인을 생산했다. 캘리포니아가 컬트와인으로 떠들썩할 때도 신선한 산미를 가진 우아한 스타일을 고수했다.
Diana Cullen
배우자 Kevin과 함께 서호주 와인 산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74년 첫 빈티지 와인을 선보인 이후 Diana Cullen은 수석 와인메이커로서 유기농법과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도입했다. 와인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 호주와인협회의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다. 현재 딸, Vanya Cullen이 어머니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Louisa Rose
약 20년 동안 Yalumba의 수석 와인메이커로 일하며 호주 최초로 비오니에 와인을 상업적으로 만들었다. 2014 호주 최고의 와인메이커로 뽑혀 주목받았고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를 블렌딩하는 Yalumba의 100년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있다.
Laura Catena
아르헨티나의 톱 와이너리 Catena Zapata의 이사이며 Luca, La Posta wines와 Domaine Nico의 오너. 와인 생산지 멘도사와 아르헨티나의 주요 품종 말벡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1995년 Catena Institute of Wine을 설립했고 아르헨티나 와인 가이드, Vino Argentino와 세계에서 유명한 포도밭을 모아 놓은 Gold in the Vineyards의 저자이기도 하다.
Marilisa Allegrini
베네토에 기반을 둔 가족 와이너리, Allegrini의 CEO. 볼게리에 Poggio al Tesoro, 몬탈치노에 San Polo 같은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립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했다. 오늘날 와인시장에서 Allegrini 브랜드가 거머쥔 인기와 지위는 모두 그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밖에도 Alessia Antinori(Antinori 26대째 와인메이커), Emily Faulconer(Carmen/칠레), Katerine & Julia Jackson(Jackson Family Wines/미국), Vitalie Taittinger(Taittinger/프랑스) 등 2세들이 가업을 잇는 경우가 예전에 비해 늘고 있다. 더불어 와인업계에서 종사하는 여성 근로자들을 주축으로 협회를 조직하고 연대함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의 각도를 조정하는데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