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안테프리마 토스카나 2022 취재기 [3부] 베르나차 디 산지미냐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3월 24일 여기는 몬테풀차노 요새. 안테프리마 토스카나의 네 번째 구간인 몬테풀차노 마을의 관심은 온통 환경이슈에 쏠려있었다. 몬테풀차노 인근 지역에서 나오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 와인이 이탈리아 최초로 지속 가능한 등급으로 지정될 거란 뉴스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와인 규정의 효력이 미치는 언덕 전체가 그린 마크의 대상이 되는 친환경 와인 시대가 활짝 열렸다. 테루아 체질이 그린화가 된다는 소식에 이어 와이너리 방문객의 연령대가 젊어진다는 소식도 이슈로 떠올랐다. 겉으로는 두 소식이 독립적이고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나, 한 꺼풀 벗기면 정교하게 맞물린 축이 드러난다.
먼저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업계에 부는 트렌드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이탈리아가 사회격리 강화와 완화를 오가는 동안 이탈리아의 Z세대(20~25세)는 꾸준히 와이너리를 왕래했다. 이는 몬테풀차노 와이너리 연합인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 협회(이하 협회)가 자치 정부와 함께 75군데의 회원 와이너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밝혀졌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회원 와이너리의 93% 가 “Z세대가 와이너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Z세대가 선호하는 예약 경로는 와이너리 홈페이지(70%), 예약 플랫폼, 입소문( 12.5%) 순으로 Z세대가 인터넷에 강한 세대임을 과시했다. 인기 있는 테이스팅 옵션은 스토리 텔링, 양조 및 숙성시설 관람과 테이스팅을 한 데 묶은 상품이 81.3%를 차지했고 그 뒤를 테이스팅만 한다( 15.6%)가 이었다. 1인당 평균 비용은 30유로 이하(50%), 60유로 이하(40.6%), 61~100유로(9.4%) 순으로 나타났다. 가장 선호하는 와인으로는 로제 와인, 지속가능한 와인, 스토리가 있는 와인, 인터넷 구매가 가능한 와인을 들었다. 와이너리의 방문객 담당자에 따르면 Z세대의 와인 상식이나 이해력 수준은 중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Z세대의 와인 소비시장 진입은, 와인 생산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와인 소비가 줄고 있던 이탈리아 와인업계에 한 줄기 빛을 내비쳤다. 연령대로 봤을 때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이 와인에 근접하는 패턴 또한 독특하다. 경험을 중시하는 성향이 반영되어 와인이 생산되는 환경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앞서 이들이 선호하는 와인으로 “스토리가 있는 와인”을 꼽았다는 것은, 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Z세대는 환경 이슈에도 높은 관심을 표명해,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손을 보탤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컨셉트를 와인에 접목해 온 몬테풀차노 지역에 신세대가 출현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럼 몬테풀차노 와인이 가꾸어가는 녹색환경을 둘러보기로 하자. 한국에도 소량이지만 비노 노빌레 와인이 수입되고 있다. 꼭 Z세대가 아니어도, 맛집이나 와인 모임에서 이 와인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그린환경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이탈리아 최초의 지속 가능한 와인 등급
빠르면 12월 말에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 와인 등급이 이탈리아 최초로 지속가능 인증서를 받게 된다. 와인이 나오는 DOCG 등급 밭과 숙성시설을 아우르는 1,300헥타르, 그리고 동일한 효력이 미치는 DOC등급 로쏘 디 몬테풀차노의 550헥타르가 대상이다. 지속가능한 등급은 이탈리아 환경표준인 EQUALITAS 규정을 통과한 와인 등급에 수여하는 인증마크다.
지난 몇 년간 두 와인 등급의 효력이 미치는 곳에 있는 밭과 시설물은 환경기준에 맞게 개조가 이루어졌다. 와이너리 소관 건물의 70%가 태양광 설치를 완료했거나 설치 중이며 20% 의 와이너리가 폐수를 재활용하고 있으며 10%는 자가 지열 장비가 발생시킨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과반수 이상의 와이너리가 유기물 퇴비로 거름을 주거나 녹비작물을 가꾸는 등 화학퇴비 의존도를 줄여가고 있다.
포도가 와인이 되기까지 나무는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포도나무를 고정하는 말뚝, 오크통, 코르크 마개, 와인 케이스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협회는 회원 와이너리가 탄소 저감을 실천하는 숲에서 자란 나무로 만든 제품 사용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PEFC마크가 붙은 제품이 그 예인데, 해당 마크는 이탈리아 지속 가능한 산림 인증기관인 PEFC ITALY가 발행한다. 또한 인증기관과 협정을 체결해 와인 종사자를 대상으로 친환경 제품 세미나를 열 계획도 세웠다. 와인이 몬테풀차노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70%를 차지할 정도로 파이가 크다. 정규 및 비정규 종사자를 합쳐 2천 명이 와인업계에서 일할 정도로 지역 경제에 비중이 높다. 전체 인구의 13.8%에 해당하는 이들의 탄소저감에 대한 인식이 친환경 미래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미래 와인 ‘피에베 PIEVE’에 거는 기대
<UGA지도. 피에베는 품질 피라미드의 정상을 차지하는 틈새와인이다. 포도밭을 12군데 피에베로 구분했고 각 피에베마다 지명을 붙여줬다>
피에베 프로젝트가 론칭된 지 1년이 지났다. 피에베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레드 와인을 강타하고 있는 UGA(지명단위 추가) 트랜드를 도입한 몬테풀차노 버전이다. 와인은 토양이나 기후변화에 민감하며 이런 요소를 와인에 반영하려면 밭의 세분화가 먼저라는 주장이다. 2024년을 축으로, 이전에는 몬테풀차노 코뮤네에 속하는 8군데 마을(1300헥타르 포도밭)에서만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 생산을 허용했다. 피에베가 도입되는 2024년 이후는, 밭은 변함없지만 12군데로 쪼게 진다는 점이 다르다. 본 규정은 이탈리아 농림식품부 산하 와인 위원회에 보내진 상태로 2024년에 최종 승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안드레아 로씨 협회 회장에 따르면 40% 의 회원 와이너리가 피에베 타입을 도입하겠다고 표명했으며 이들의 셀러에서는 이미 2020년과 2021년산 와인이 숙성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도입될 36개월 숙성 의무에 대비한 발 빠른 움직임이다. 피에베는 ‘교회’를 뜻하며 이와 대응하는 현대 이탈리아 어인 끼에사(chiesa)와는 깊이가 다르다. 피에베의 첫 출현은 후기 로마시대와 롱고바드 시대에 닿아있다. 그 시절 다수의 행정단위가 존재했는데 그중 제일 작은 마을은 피에베로 구분했다고 한다. 피에베마다 교회가 있었고 이는 교회가 관할하는 마을로 의미가 확장된다. 잃어버린 지명과 경계선을 복구하기 위해 19세기에 작성된 레오폴디노 토지대장(Leopoldino Land Registry)을 철저히 검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4년부터 달라지는 게 뭘까?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의 현재와 미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피에베 타입의 라벨 예시. Pieve- 지명- Vino Nobile Di Montepulciano DOCG- Toscana순으로 표기한다>
2018 년 리제르바와 2019년 안나타 타입 시음 노트
시음회에는 올해초 출시된 70여종의 와인이 선보였다. 2019년산 안나타 타입과 2018년산 리제르바, 그리고 숙성연도가 좀더 오래된 빈티지로 시음 구색을 갖추었다. 2018년과 2019년은 기온이 판이했으며 이는 포도의 성장 스토리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포도 수확 시 채집한 샘플의 지표도 제각각이었다. 다행인 건, 포도는 자신이 겪은 날씨를 와인에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즉 당해 빈티지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거기다 농부가 예측불허의 기후에 대처한 즉흥 처방에 따라 와인의 개성은 무궁무진 퍼져나간다.
2019년 작황 요약 싹이 트고 개화하는 4월~5월 기온이 평년 수준을 밑돌았고 강수량도 예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포도 성장에 제동을 거는 요소로 작용해 5월 말에 측정한 포도송이 길이가 80cm 에도 못 미쳤다. 6월 초순에 기온이 갑자기 20도로 치솟았고 이후 일주일만에 포도는 성장 속도를 되찾았다. 5월 초의 잦은 비로 노균병 같은 곰팡이성 해충 경보에 빨간 불이 켜졌으나 서늘한 날씨가 전염 범위를 최소화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기간이 짧았고, 이때 개화시기와 겹쳐 낙화율이 급증했으며 일부 꽃들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는 송이 대비 포도알 수를 감소시켜 알맹이 틈새를 벌려 놓았고, 통기성을 높여 해충 번식을 억제하는 선순환을 낳았다.
7월까지 가속이 붙었던 성장 속도는 잦아든 강수와 평년기온을 되찾으면서 진정됐다. 8월~ 9월에는 평균 20~25도의 기온과 낮은 습도가 시너지를 일으켜 포도는 별탈 없이 완숙에 골인했다. 9월 25일에 개시한 수확은 10월 10일에 종료됐다.
매년 2월마다 양조가와 소믈리에로 이루어진 전문가 패널이 빈티지 점수를 발표한다. 2018년은 패널로부터 별 5개를 받았는데 이는 빈티지 순위의 최정상인 “예외적으로 뛰어난 빈티지(exceptional vintage)”를 뜻한다. 패널 멤버가 수확 시 폴리페놀 성숙도, pH, 산미를 측정한 기술적 값과 알코올 및 유산 발효를 마친 와인을 시음한 후 내린 평가다. 기술적 평가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와인 색깔은 진하고 밝은 빛을 발한다. 알코올 느낌은 과하지 않고 바디와 직결되는 폴리페놀과 불휘발성분은 이상적인 범위에 들었다. 와인의 보전성과 신맛을 결정하는 산도와 pH도 적정 범위에 포함되었다.”
<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 2019 빈티지. 좌측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라 차를리아나 La Ciarliana, 테누타 발디피아타 Tenuta Valdipiatta, 빌라 산탄나 Villa Sant’Anna, 일 몰리나초 Il Molinaccio 와이너리>
2018년 빈티지 시음노트 자두, 체리, 라즈베리, 오렌지 껍질, 계피, 제비꽃, 허브 등 산조베제의 고급스런 향기가 돋보인다. 색상은 흐린 붉은색에서 짙고 검붉은 색까지 다채롭고, 잔을 흔들면 와인 눈물이 천천히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타닌은 매끄럽고 잘 짜인 구조에서 오는 집중도가 느껴진다. 산미는 신선함과 원만함을 두루 갖추었고 과일의 뉘앙스가 배어있다. 타닌과 산미가 한데 어우러진 우아함이 돋보이며 미네랄 풍미가 더해져 견고한 바디가 강조된다. 숙성 초기지만 풋풋한 매력을 발휘하고 있어,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의 순수함을 알고 싶다면 2018 빈티지가 정답이다. 일부 와인은 포도 아로마와 식물 뿌리, 계피, 향신료의 복합적인 풍미를 뽐낸다. 긴 여운과 응축미를 겸비하고 있으며 단단한 골격이 빛을 발한다.
2018년 작황 요약 2월~7월 사이 비가 800mm 내렸다. 이곳의 연평균 강수량이 900mm임을 감안할 때 비가 포도 성장기의 초중반(싹-개화기- 초기 변색기)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빗물을 흡수한 땅이 지표면 온도를 끌어내려 포도가 개화하고 열매를 맺는 데 애를 먹었다. 또한 뿌리가 미네랄 성분을 흡수하는데 지장이 많았다. 물을 흡수한 산조베제 알맹이는 크기를 부풀렸으며 송이도 탱탱했다. 보통, 송이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으면 통기성이 나빠져 보트리티스균이 침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다행히 7월~8 월에 접어들면서 강수일이 줄었고 일조량도 적당해 습도가 낮아졌다. 9월~ 10월의 쾌적한 날씨는 포도의 완숙을 촉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내린 비로 인해 수확량이 평년 수준의 85% 를 밑돌았다. 수확은 9월 말에 개시해서 10월 초에 종료했다.
2018 빈티지는 별 5개를 받으며 “예외적으로 뛰어난 빈티지”란 평가를 얻었다. 색은 짙으나 어둡지 않다. 알코올 농도는 중상으로 높았고 산도와 pH는 적정 범위 안에 들었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 2018 빈티지. 좌측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빌라 산탄나 Villa Sant ‘ Anna- 라 콤바르비아 La Combarbia- 파넷티 Fanetti- 레 베르네 Le Bèrne 와이너리>
시음 노트 2018 빈티지는 전반적으로 맛과 질감이 독보적이다. 타닌 강도와 농축미는 2019에 비해 덜하지만 편안한 질감, 우아함, 밸런스가 돋보인다. 타닌은 무난하고 산미와 미네랄 풍미의 화음이 뛰어나다. 부드러운 타닌이 혀를 타고 입안을 감싸며 뒷맛은 어린 타닌이 주는 긴장감이 서려있다. 잘 짜인 구조가 주는 단단함도 버티고 있어, 숙성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성이 좋다. 깊은 맛과 숙성된 부케를 발산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나 2018 빈티지는 기다림의 시간을 줄여 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감초, 민트, 끼나 껍질 향이 먼저 올라오며 장미, 제비꽃, 낙엽의 감미로운 향이 코를 감싼다. 타바코, 흑연, 감초의 원숙한 향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