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 그에대한 비판과 칭송 총망라
“로버트 M 파커 주니어라는 와인 테이스터의 혀는 와인업계에서 아인슈타인의 두뇌와 다름없다.”
엘린 매코이의 평전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와인북스)는 대학생 때 처음으로 고급 와인을 접했던 로버트 파커가 금세기 최고의 와인평론가로 자리매김한 과정 및 파커에 대한 와인산업계의 비판과 칭송 등을 망라한 책이다.
훗날 아내가 되는 동갑내기 여자친구 패트리시아의 18세 생일날 파커는 처음으로 와인을 맛보았다. 만취한 파커는 미래의 장인에게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집에 당도했고, 화장실 변기로 착각해 옷장 안을 토사물로 어지럽혀 놓았다. 제대로 된 와인과의 만남은 21세 때였다. 프랑스로 유학간 패트리시아를 만나기 위해 택한 프랑스 여행에서 파커는 와인의 매력을 깨닫게 된다. 신혼집 거실에 벽돌과 널빤지로 임시 셀러를 만들어 12.8도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바람에, 추위에 약한 패트리시아는 에스키모로 보일 정도로 스웨터를 겹겹이 입고 생활했다고 한다.
변호사로 일하던 파커는 결국 와인 평론가의 길을 택한다. 마침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와인 붐이 시작됐으니, 적합한 선택이었다. 파커는 뉴스레터 ‘볼티모어-워싱턴 와인 애드버케이트(The Baltimore-Washington Wine Advocate)’를 발행하며 경력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이 뉴스레터에서 그 유명한 파커의 100점 만점 점수체계가 시작된다.
와인 비평가로서 파커의 경력에 분수령이 된 건 1982년산 보르도 와인이었다. 이에 대해 파커는 “운명이 나에게 미소지었다”고 말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82년 빈티지에 대해 “당신의 재정 상태가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진정한 와인광이라면 지금 혹은 2년 후에 이 와인을 손에 넣고 싶어할 것”이란 자신만만한 평가로 파커는 단숨에 입지를 공고하게 굳힌다. 변호사 생활을 청산한 파커는 1주일에 90시간을 와인에 바쳤다. 미각이 둔해지는 걸 막기 위해 하루에 물 5ℓ를 마셨고, 감기나 코막힘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비타민C를 섭취할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파커에게는 지지자만큼이나 반대자도 많았다. 채점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또 높은 점수를 받은 와인의 수요가 상승해 가격도 올라가게 된다는 우려도 있었다. 와이너리들이 파커의 취향에 맞춰 와인을 생산하려 든다는 문제도 있고, 비판적인 한 마디로 졸지에 된서리를 맞은 와이너리 관계자들의 불만도 드높았다. 그러나 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에게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99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정도로 파커는 와인업계의 거물로 자리잡았다.
매코이는 한 장을 할애해 파커에 대한 비평을 정리했다. “와인에 대한 파커의 순수한 열정과 기쁨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와인을 즐기는 것이 엘리트 속물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파커의 성공은 한 사람이 옳다는 확실성에 일부 기인한 바가 있음은 확실하다. 지킬 가치가 있는 전통과 와인 스타일이 단순히 한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폐기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와인을 점수로 매기는 것은 과학적인 용어로 말하는 농담이라 생각하며, 와인을 경험이 아니라 경쟁으로 바꾸어 놓아 와인의 품질이나 즐거움에 대한 생각을 오도한다고 본다. 파커는 와인의 민주화를 주장했지만 구할 수 없는 와인을 발표하는 엘리트 전문가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파커는 와인업계를 변화시켰다. 또 다른 와인의 황제는 결코 없을 것이다.” 이병렬 옮김. 이효정 감수.
이고운 기자(ccat@heraldm.com)
출처: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7/10/15/200710150087.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