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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좋은와인'으로 이어지는 계단>

 

 
출근길,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익숙치 않은 광경이 눈길을 끈다. 바닥에 붉은 색으로 큼지막하게 와인병이 그려져 있고, 방향을 가리키듯 아래로 향하는 골목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호기심에 계단을 따라 내려가보니 [옥수동 와인샵 좋은 와인], [투 핸즈 화방]이라고 적힌 간판 두 개가 낮은 담벼락에 나란히 걸려 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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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이야, 와인샵이야?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니 잠깐 혼란스럽다. 와인 병과 박스가 여기저기 쌓인 것을 보면 와인샵이 분명한데, 가게 안쪽은 커피숍처럼 꾸며져 있고 천장과 벽은 그림으로 가득하다. 이 때 누군가 와인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옥수동 와인샵 좋은 와인]을 운영하는 양경훈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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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까지 여의도에서 와인샵을 운영하던 양 대표는 올해 초 옥수동으로 거점을 옮겼다. 그런데 그 계기가 사뭇 남다르다. 어느 날, 평소 예술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그에게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하며 누군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옥수동 한켠에 동료 화가들과 함께 공방을 운영 중인데 그곳에 와인샵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다.

 

 

 

아뜰리에로의 초대

 

 

"우리 공방을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살롱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그런 장소 말이죠. 그럴려면, 그림 외에도 문화적인 코드를 지닌 다양한 아이템들이 갖춰져야 하는데 와인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와인샵 운영 경력 9년차의 양 대표에게 이런 제안은 의아하게 들렸다. 원하는 와인을 구매한 후 떠나면 그만인 와인샵이 과연 살롱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의구심은 공방 한켠에 와인샵을 오픈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히 사라졌다.

 

양 대표는 와인을 사러 온 사람들이 벽에, 천장에 걸린 그림을 구경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낯선 이들과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와인과 미술이 이들 사이에서 교류의 매개체가 되고 있음을 말이다.

 

미술에는 문외한이라고 고백하는 양 대표는 [옥수동 와인샵 좋은 와인]을 운영하면서 와인과 미술 사이의 공통 분모를 발견해 가고 있다. 이 둘 모두 자연과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며 누군가 오랜 공을 들여 만든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와인과 미술에 부여하는 의미나 가치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도 둘 사이의 공통점이다. 뿐만 아니다. 둘 다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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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옥수동 와인잔치'

 

 

지난 4월, 코로나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옥수동 와인샵 좋은와인]에서 3일 간 열린 '옥수동 와인잔치'는 천여 명이 참석하며 대성황을 이루었다. 약간은 촌스러운 듯하지만 정겹게 들리는 '옥수동 와인잔치'는 와인을 시음하고 살 수 있는 일종의 동네 와인장터다. 일반적인 와인장터와는 다르게, 와인과 함께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원한다면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날 판화가 14점이나 팔렸다.

 

'옥수동 와인잔치'는 옥수동이라는 동네에 문화적인 컨셉트를 가미하고 싶다는 양 대표와 작가들의 의지에서 비롯된 축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옥수동 와인잔치'를 열어 와인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거리감을 좁히고 이 둘을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되어왔던 격식과 편견들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선택과 집중

 

 

양 대표는 국내 와인 유튜버들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와인디렉터 양갱]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지난 해 9월, "혜성처럼 나타난 와인 유튜버, 와인디렉터 양갱"이란 글에서 그의 유튜브 채널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 2만 명이던 구독자 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현재 7만 명에 육박한다. 이 속도라면 올해 안에 십만 구독자 수를 달성해서 유튜브 실버 버튼을 받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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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누구나 팔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잘 팔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양 대표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와인샵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운영자 중심의 와인리스트를 고객 중심의 와인리스트로 바꿨다. "내가 고른 와인이니 살 사람은 사시오"의 일방적인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의 취향과 선호도를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와인리스트를 구축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와인리스트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와인, 와인초보라도 쉽게 고르고 즐길 수 있는 와인들이 대폭 늘었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선택과 집중 전략을 고수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예를 들면, 1만 명의 불특정 다수보다 1천 명의 특정 고객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와인샵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고객과의 네트워크를 위주로 관계를 넓혀가면 그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기억하는 것이 용이해지고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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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비자들은 편의성, 가격 등의 이유로 대형마트에서 와인을 주로 구매한다. 그런데 대형마트 대부분의 매장들이 동일한, 한정된 와인만 취급하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와인의 다양성을 발견해 나가는 즐거움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옥수동 와인샵 좋은와인]같은 와인전문샵들이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와인전문샵은 와인 구색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1:1 고객응대가 가능해서 취향에 맞는 와인을 고르기도 훨씬 수월하다. 회전율이 빨라서 와인 가격에도 거품이 덜 낀다.

 

오늘 저녁 당장 마실 와인을 사기 위해 차를 끌고 대형마트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집에서 입던 편한 옷차림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동네 와인샵의 문을 열어보자. 생각보다 좋은 와인을, 생각보다 좋은 가격으로 만나는 뜻밖의 즐거움을 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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