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통장을 스치는 월급처럼 가버릴지도 모를. 그 사이 동반자 미세먼지는 얼마나 기승을 부릴 것이며 찐 베이지 연 베이지 깔별로 장만한 트렌치코트는 몇 번이나 꺼내 입으려나 모르겠지만, 그래도 꽃이 피고 지는 동안 로제 와인은 종류별로 마셔 주리라 다짐해보는 봄이다. 인파가 무서워 벚꽃 축제에는 못 껴도, 벚꽃 닮은 와인은 마셔야지. 아! 낮술약속도 잡아야 하고. 피크닉은 어디로 가나. 그래서 지금은 이런 질문이 필요한 때다. “꽃이 필 땐 어떤 와인이 좋을까?” 지문에 답이 있듯 계절에 답이 있다. 외투와 걸음이 가벼워질 때는 와인도 가벼운 쪽으로. 오후의 태양이 늘어질 때 햇살이 투영되도록 밝은 술을 고르고 봄의 향이 나는 것들을 골라보자. 본보기가 될 와인 셋을 추려봤다. 하나 더 귀띔하자면, 여기 이 와인들은 벚꽃 피는 4월, 꽃 커버를 쓰고 홈플러스에서 기다릴 거라 한다. 

 

 

BBR&Belcolle-투명커버 수정.jpg

<벨꼴레 모스카토 다스티, BBR 프로방스 로제>

 

 

봄의 향기를 와인으로 마셔요.

벨꼴레 모스카토 다스티 Bel Colle Moscato d'Asti


모스카토에는 영원히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사랑스러움 같은 것이 있어서, 대체로 사람들은 한번쯤 모스카토와 사랑에 빠지기 마련이다. 딱 봄바람 같은 와인이랄까. 모스카토를 생산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벨꼴레는 1970년대 후반 프랑코 폰티그리오네와 카를로 폰티그리오네 형제 그리고 쥬세페 프리올라가 설립한 와이너리다. 이들의 잠재력을 주시하던 이탈리아 아스티의 명가 루카 보시아가 2015년 벨꼴레를 인수하면서는 다시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포도가 가지고 있는 향을 와인으로 고스란히 옮기기 위해 최신의 설비를 사용하여 이 모스카토 다스티를 만든다. 그렇게 태어난 이 와인은 오렌지 꽃, 아몬드, 푸른 사과, 잘 익은 복숭아 등의 향을 풍기며 봄을 부른다. 달달하게 기분 좋은 와인이지만 적절한 산도가 있어 달콤함과 상큼함이 잘 어우러진다. 알코올도 5.5도로 맥주 수준. 봄에는 낮술이지 한다면, 그 낮술엔 이 와인이 제격이다. 

 

 

벚꽃엔딩 같은 와인,

BBR 프로방스 로제 (BBR Provence Rose)
 

벚꽃이 흐드러지는 날에는 어떤 와인을 오픈하는 게 좋을까. 프로방스 로제를 이길 만한 답은 없으리라. 그것은 계절과 와인의 깔맞춤. 어찌 보면 벚꽃엔딩 만큼 빤한 선곡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의 조합 또한 나오기 힘들다. 가격 따지고 기품 따지고 고르고 골라보면, 이 만한 게 없다 싶은 와인이 BBR 프로방스 로제다.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 줄여서 BBR로 불리는 영국의 유명 와인 유통업체가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내는 와인이다. 1698년 문을 연 BBR은 영국 왕실이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제도인 ‘로얄워런트’를 받았고, 1909년부터 지금까지 영국 왕실에 와인을 납품하고 있다. 한마디로 몹시 믿을만한 안목을 지니고 있단 말씀. 특히 이 와인은 BBR이 홈플러스와 손잡고 출시한 ‘더 머천트’ 시리즈로 가성비 좋기로도 유명하다. 프랑스의 남부 지방, 꼬드 드 프로방스에서 자란 그르나슈, 쌩쏘, 시라, 무베드르 등의 포도를 블렌드해 만든 와인으로 프로방스 로제 특유의 옅은 살구 빛을 띤다. 와인은 꼭 저같이 예뻐서 라즈베리나 크랜베리 같은 상큼한 베리 향에 섬세한 꽃 향, 더불어 은은한 향신료 향이 배어난다.

 

 

머천트로제.jpg

 

분홍 꽃이 피었습니다.

더 머천트 로제 The Merchant's Rose


로제 와인의 소비가 높아지는 해외에서는 “로제가 오직 봄을 위한 와인이란 생각은 버려”라고 충고하지만, 그 속뜻을 헤아리면 봄에는 로제가 기본이란 이야기가 되겠다. 대체로 로제 와인은 화이트 와인보다는 바디감이 좋고, 레드 와인보다는 상큼한 편이라 음식 매칭의 스펙트럼도 넓은 편이다. 특히나 피크닉의 단골메뉴인 샌드위치, 샐러드, 김밥이랑은 실패가 없으니 그야말로 봄을 위한 와인이다(단, 드라이 로제!). 로제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앞서 소개한 BBR의 제품 중에 하나 더 소개하면, 더 머천트 로제가 있다. 이번에는 스페인산이다. 프로방스 로제가 살구빛이라면 이 와인은 좀 더 ‘분홍분홍’하다. 스페인에서 로제 와인을 만들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로컬 품종 가르나차 100%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로제 와인에 기대하는 요소요소들을 아주 잘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풍부한 과일 향. 특히 딸기 향이 잔잔하게 퍼지는데 그 위로 화이트 페퍼 향이 살랑살랑 나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글_ 강은영/ 와인리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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