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중앙역에서 출발한 베네치아행 열차가 반시간쯤 달리면 가르다 호수가 시야에 들어온다. 호수 반대편에 탁 트인 포도밭이 등장하고, 한동안 레일을 따라 밭과 호수가 평행으로 달린다.
가르다 호수는 표면적과 담수량에서 이탈리아 최고다. 길게 늘어진 호수를 따라 세 개 주가 배를 맞대고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 호수권은 고유한 미세기후가 지배한다. 폭서, 폭한의 낌새가 보이면 호수는 온도 자정력을 작동시켜 수은주가 튀지 못하게 붙잡아 둔다. 여기서 멀지 않은 파다나 평원이 찜통더위로 시달릴 때 이곳의 기온은 보통 3~4도 낮아서 나오려던 땀이 쏙 들어간다.
사계절 온화한 이곳은 와인에게는 축복의 땅이다. 호수 남동쪽과 면한 둘레길에서 출발하는 도로를 따라 남쪽 길을 재촉하면 낮은 언덕이 나온다. 능선을 따라 고만고만한 마을 9군데가 모여있는데 쿠스토자 화이트 와인 산지다. 가장 높은 곳이라 해 봤자 150미터가 채 안 되는 산등성이를 올리브, 사이프러스, 포도밭이 모자이크처럼 덮고 있다. 쿠스토자 와인은 민물과 육지가 상존하는 이곳 토종음식과 잘 어울려 가스트로노미 와인으로도 통한다.
금년에 쿠스토자 와인이 DOC 등급에 오른 지 50 주년을 맞이했다. 이탈리아 와인 등급이 8년 먼저 공포되었으니 원산지 지정을 늦게 받은 편이다. 그러나 쿠스토자 와인의 뿌리는 깊고 단단하다. 구석기부터 신석기시대에 걸쳐 쿠스토자 지역은 호상가옥이 번성했다.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지구 최초의 야생포도로 알려진 비티스 실베스트리스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이후 다수의 고문서가 쿠스토자 와인을 기록했고 로마시대에는 와인 양조가 번창했다.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와인연구소 중에 하나인 코넬리아노 연구소는 쿠스토자를 베로나 주요 와인 산지로 격상시키기도 했다.
블랜딩의 귀재, 쿠스토자 와인
쿠스토자 와인은 이탈리아 블랜딩 전통의 거울이다. 가르다 호수는 더할 나위 없는 생태계지만 , 품종 작황은 매년 들쑥날쑥한다. 한 밭에 다양한 품종을 섞어 심으면 확률적으로 농사 실패율이 줄어든다. 여기에, 최소 다섯 종류나 되는 품종을 혼합해야 하니 개별 품종에 대한 완벽한 파악이 선행되지 않으면 블랜딩의 묘미는 별나라 이야기다. 이런 까닭에 쿠스토자는 조화로운 풍미가 빛을 발하고 복합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
주요 품종은 가르가네가, 트레비아넬로(토까이 프리울라노 품종의 방언), 비앙카 페르난다(코르테제 클론. 방언)이며, 블랜딩 시 최소 70%는 앞의 품종을 사용해야 한다. 단, 셋 중 어느 하나라도 45%를 초과하면 안 된다. 보조 품종은 말바시아,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리슬링, 피노 비앙코, 샤르도네, 만조니 비앙코(인크로초 만조니) 중에서 최대 30% 까지 섞을 수 있다.
쿠스토자 와인 타입과 특징
쿠스토자(혹은 쿠스토자 비앙코) , 리제르바, 수페리오레, 스푸만테, 파시토 등 다섯 개 타입이 있다. 숙성연도나 용기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으나 드라이 타입 와인( 쿠스토자, 리제르바, 수페리오레)은 다음을 준수해야 한다.
타입 | 최소 알코올(%) | 1헥타르당 최대 포도생산량 | 고형성분 |
쿠스토자, 쿠스토자 리제르바 |
11 | 13,000kg | 12.5 g/L |
쿠스토자 수페리오레 | 12,50 | 12,000kg | 20g/L |
타입별로 색상과 맛이 천차만별이다. 색깔은 노랑에서 황금색을 발하며 비슷한 색일지라도 톤은 각양각색이다. 어릴 때는 시트론, 흰 꽃, 허브향이 화사하며 산미가 비교적 높다. 짭짤함과 담백한 맛이 돌며 분위기가 발랄하다. 해산물과 생선 요리에 그만인 와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페리오 타입은 숙성 잠재력이 7~8년으로 늘어나며 향신료, 농밀한 열대과일, 슈크림, 페트롤, 부싯돌, 사프란 향이 짙다. 아몬드 풍미가 입안에 깔끔함을 주며 바디감은 적당하다.
쿠스토자 기후와 토양
<베네토 지도. 파란색 부분은 가르다 호수, 주황색 부분은 쿠스토자 지역 ,붉은색 부분은 베로나 >
쿠스토자 언덕은 반원형 극장에 비유된다. 이는 신생대 4기(플라이스토세, 258만 년~1만 년 전)를 뒤흔들었던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빙하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던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가르다 호수를 덮쳤다. 빙하기에는 호수 최남단 깊숙이 빙하가 퍼졌고 얼음에 떠밀려온 물질은 호수 언저리에 쌓였다. 이를 모레인 언덕이라 하는데, 형태가 마치 호수 무대를 에워싼 관중석과 흡사해 반원형 극장이란 별명을 낳았다.
토질은 자갈, 석회석, 모래, 점토로 이루어져 있으나 모래가 좀더 많아 배수력이 우수하다. 또한 신생대가 끝나면서 풍화와 강물이 실어 나른 흙이 유입되어 토양층이 두꺼워졌다. 비는 가을과 여름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늦여름과 초가을에 호수에서 이는 바람은 포도의 성장 속도를 늦추어 아로마가 충분히 깃들고 산미의 신선도를 끌어올린다.
쿠스토자, 가스트로노미 투어의 최적지
포도밭을 따라 굽이치는 자전거 도로와 승마 루트를 돌면서 자연 풍광을 즐기다가, 괜찮아 보이는 맛집을 발견하면 이곳 별미와 와인을 주문하고 유유자적하는 가스트로노미 투어에 그만이다. 쿠스토자는 관광명소 근접성도 뛰어나 만토바, 베로나, 시르미오네 호수 궁전이 차로 30분 거리 내에 있다.
‘노도 다모레 Nodo d’Amore’ 축제가 열리는 6월은 가스트로노미에 심취할 수 있는 최적기다. ‘사랑(다모레)의 매듭(노도) ‘이란 뜻을 지닌 이 축제는 토르텔리노와 쿠스토자 와인을 감미롭게 묶었다. 장소는 보르게토 마을, 민초 강에 지어진 14세기 비스콘티 다리다. 다리 위로 식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데, 그 길이가 무려 1 km나 된다. 축제 중 60만 개 토르텔리노가 위장과 함께 사라진다고 하는데 인근 60군데 레스토랑에서 공수해 온다.
<토르텔리노. 정식 이름은 토르텔리노 디 발레조 술 민초. 사랑의 매듭 토르텔리노라고도 한다. 고기 소를 종이 장처럼 얇은 밀가루 반죽이 감싸고 있다. 비스콘티 공작 조카의 시샘에 휘말려 강에 투신한 연인의 전설을 담고 있다>
< 쿠스토자 납골당 Ossario di Custoza>
쿠스토자 납골당 Ossario di Custoza 도 꼭 가봐야 할 명소다. 쿠스토자에서 치열한 전투가 여러 번 벌어졌는데 납골당은 1,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군인들의 뼈를 보관하고 있다. 지하에 4800여 개 뼈가 안치되어 있다. 박물관도 있으며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멋진 뷰가 펼쳐진다.
지난 6월 5일, 쿠스토자 와인 DOC 등급 50주년을 맞아 WHITE & GOLD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부제목이 ‘쿠스토자 와인, 시간에 도전하다’였던 시음회에 선보였던 와인들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와인은 완숙한 순서대로 수확한 포도를 알코올 발효와 숙성을 따로 했고 병입 직전에 블랜딩 해서 만들었다.
Custoza DOC 빈티지 2020
(알비노 피오나 Albino Piona와이너리)
가르가네가(40%),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20%), 트레비아넬로 (15%), 비앙카 페르난다( 15%) 품종으로 만든다. 알코올 도수는 12도. 수확한 포도를 저온침용한 뒤 알코올 발효를 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하는 도중 복합미를 얻기 위해 효모 앙금과 와인을 접촉시켰다.
와인은 산사나무, 아카시아, 재스민 향이 향긋하며 사과, 레몬 같은 풋풋한 향이 어우러진다. 산미가 높아 청량감이 돋보인다 . 짭짤한 맛이 풍미를 드높인다.
Custoza DOC 빈티지 2020
(레 텐데 Le Tende 와이너리)
가르가네가, 비앙카 페르난다,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트레비아넬로 (비율 무표시) 품종을 사용했고, 알코올 발효를 마친 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4개월 간 효모 앙금과 와인을 주기적으로 저어주며 숙성했다.
마가렛, 라임, 사과, 망고향이 화사하며 슈크림 향이 감미로움을 더한다. 산도가 신선하며 라임, 사과 내음이 입안을 산뜻하게 한다. 바디감이 적당하며 산뜻함도 겸비해 마실 때 즐겁다.
Custoza DOC 빈티지 2020
(코르테 가르도니 Corte Gardoni 와이너리)
가르가네가(40%), 트레비아노 토스카노(20%), 트레비아넬로(20%), 비앙카 페르난다 (10%), 기타 품종(10%)을 사용했고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4개월 숙성했다. 알코올 도수는 12.5도.
와인은 자몽, 복숭아, 파인애플, 아카시아, 자몽 , 사과향이 싱그럽다. 산미가 적당해 식감이 좋고 짭짤한 맛이 밸런스를 잡아준다. 아몬드를 깨물 때 흘러나오는 고소함과 쌉쌀함이 매혹적이다.
Custoza DOC Superiore 2019 빈티지
(쿠스토디아 칸티나 디 쿠스토자 Custodia cantina di Custoza 와이너리)
가르가네가, 트레비아넬로,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비앙카 페르난다, 만조니 비앙코(비율 무표시) 품종을 사용헀다. 부드럽게 압착한 포도즙을 잠시 저온 침용한 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와 숙성했다. 알코올 도수 13.5도.
와인은 투명한 노란색을 띤다. 시트론 계열 향이 상쾌하며 재스민, 송진 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고소한 호두 향도 섞여 있다. 해조류의 짭짤한 맛과 어우러진 산미가 기분 좋게 혀를 감싼다.
Custoza DOC Superiore 빈티지 2018
(빌라 메디치Villa Medici 와이너리 )
가르가네가,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비앙카 페르난다, 트레비아넬로(비율 무표시) 품종을 사용했다. 부드럽게 압착한 포도즙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2개월 숙성했다. 알코올 도수 13도.
와인은 짙은 노란색을 띠며 복숭아, 살구, 시트론 아로마와 사프론, 커리, 재스민의 매콤한 향이 이국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축축한 이끼, 부싯돌, 허브향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보디감도 적당하며 섬세한 구조와 밸런스가 돋보인다.
Custoza DOC Superiore 빈티지 2018
( 숨마 고르고Summa Gorgo 와이너리)
가르가네가, 비앙카 페르난다. 트레비아노 토스카노(비율 무표시) 품종을 사용했다. 페놀 완숙이 정점에 달하는 10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수확했다. 알코올 발효 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효모 앙금과 접촉한 상태로 5, 6개월 숙성했다. 알코올 도수는 13%.
와인은 짙고 청아한 노란색이 돈다. 허브, 부싯돌, 망고, 샤프란 향이 감미롭다. 오크 숙성은 안 했지만 바나나와 슈크림 향이 난다. 산미가 경쾌하며 잘 다듬어진 구조가 무게감을 실어준다.
Custoza Doc Superiore San Pietro 빈티지 2016
(레 비녜 디 산피에트로Le Vigne di San Pietro 와이너리)
가르가네가, 트레비아넬로,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비앙카 페르난다, 만조니 비앙코 품종을 사용했다. 8~10일 기간을 두고 알코올 발효한 후 5백 리터 크기 오크통에서 6 개월 숙성, 병 숙성을 6개월 했다. 알코올 도수는13도.
와인은 망고, 슈크림, 바나나, 복숭아, 샤프론, 송진, 자몽 , 레몬, 산사나무, 허브향을 연이어 발산한다. 산도가 높으면서도 원만함을 지녀 식감이 뛰어나며 여러 가지 풍미가 조화를 이룬다.
Custoza DOC Superiore Ca’ del Magro 빈티지 2015
(몬테 델 프라 Monte de Fra’ 와이너리)
가르가네가,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비앙카 페르난다, 만조니 비앙코(비율 무표시) 품종을 사용했다. 가르가네가 품종만 시멘트 탱크에서 7~8개월 숙성했고 나머지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효모 앙금과 접촉시키면서 숙성을 했다. 알코올 도수는 13도
와인에서 망고, 골든 사과, 살구, 복숭아의 달콜한 농밀함이 퍼진다. 생강차의 매콤함과 셰리주 풍의 견과류도 느껴진다. 산도와 짭짤함이 곁들여져 밸런스가 돋보인다. 보디감도 지니며 중후함이 있다.
Custoza DOC Superiore 빈티지 2014
(에리안토 메네고티 Elianto Menegotti 와이너리)
비앙카 페르난다(50%), 가르가네가(50%) 품종을 사용했다. 수확한 포도는 48시간 저온침용했다. 시멘트 용기에서 8개월 간 효모 앙금과 접촉시키면서 숙성한 뒤 병입 후 6개월 숙성했다. 알코올 도수는 13.5도.
와인은 골드색이 영롱하다. 라임, 아스파라거스 , 민트 향이 짙다. 짠맛이 담백하며, 산도와 결합해 균형이 잘 잡혔다. 무게감이 적당하며 드라이한 맛이 입안을 깔끔하게 해 준다.
Custoza DOC Superiore 빈티지2013
(아메데오 카발끼나 Amedeo Cavalchina 와이너리)
가르가네가, 비앙카 페르난다, 트레비아넬로, 트레비아노 토스카노 품종을 사용했다.
와인은 바질, 올리브 잎, 송진, 타임, 바닐라, 페트롤 향이 어우러지며 뚜렷한 개성을 지닌다. 열대과일, 시트론 향이 생생하다. 경쾌한 산미는 아몬드 풍미를 도드라지게 한다. 다양한 맛은 깊이를 더하여 품격을 높인다. 또렷한 산미는 생동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