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S

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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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임인년 호랑이 해가 밝았다. 미디어들은 앞다투어 신년 벽두부터 호랑이띠 셀럽을 발표하느라 야단들이다. 이 글에서는 호랑이 해에 등급을 획득하거나 등급 상승의 쾌거를 이룬 이탈리아 와인을 소개하려고 한다.
 

완숙한 포도를 말려 농축미를 극도로 끌어올린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와 레초토 델레 발폴리첼라는  2010년에  DOCG급으로 상향됐다. 화산 와인의 최고봉, 알리아니코 델 불투레 수페리오레와 루케 디 카스타뇰레 몬페라토 와인이  DOCG 명단에 이름을 올린 연도가 호랑이 해다. 화이트 와인의 바롤로란 별명이 붙은 가비( 1998년, DOCG로  승급)와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 (1974년  DOC 획득) 와인도  호랑이 띠다.


호랑이띠면서 가장 생산 면적이 작은 와인으로 루케 디 카스타뇰레 몬페라토(이하 루케 와인)를 들 수 있다. 스케일면에서 여타 와인에 밀리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를 확실히 보여준다. 카스타뇰레 몬페라토와 인근 6군데 마을을 끼고 솟아오른 언덕에서 자란 루케 포도가 원재료다. 면적은 다 합쳐 봐야 1.9 km2(190헥타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인 모나코 공국 크기와 동일하다. 생산자가  25명에 불과하며  1년 병입량은 기껏해야  9만 병을 넘지 않는다.  일단, 아로마층이 만개하면 연이어 샘솟는 향기가 감각을 매료시킨다.


루케의 희소성은 이름 자체에 있다. 즉, 루케가 지정된 밭의 경계선을 벗어나서 재배하면 유전자상으로 일치해도 루케라 부를 수 없다. 마치 회사가  자사 상표를 타사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상표등록을 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례로  와인 생산 경력만  150년이 넘는  스카르파 와이너리도  허락된 영역 밖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이름을 '루셰 Rouchet’로 바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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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케 디 카스타뇰레 몬페라토 와인 산지. 사진출처 www.destinazionemonferrato.it>

 

 


신비에 싸인 와인

 


향기로운 레드 와인  루케는  마치  붉은 망토가  흰색 옷을 가린 모스카토 와인 같다. 이런 연유로  중세 때부터 루케 재배가  번성하던  아스티 지방에서 조차 원산지가 이탈리아가 아니고 외래산으로 오해를 받았다. 신비에 싸인 루케의 기원은 2016년  포도 유전자 분석의 일인자인 안나 슈나이더 박사에 의해 밝혀졌다. 루케  염색체의 유전자 서열을 유전자 마커 기술을 이용해  조상 염색체를 추적했더니  크로아티나와  말바시아 아로마티카 디 파마의 교잡종임이 밝혀졌다. 타닌과  보디, 숙성력은 크로아티나 유전자에서, 아로마는 말바시아 아로마티카 디 파마 유전자에서 물려받았다. 후자는 보호품종으로 지정되어 상업화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루케가  토착품종임이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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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루케 품종. (우) 산 피에트로 레알토 San Pietro Realto  싱글빈야드.  언덕 정상에 자리 잡은  16세기 수도원인 산 피에트로 레알토를  본 따 포도밭 이름을 지었다. 베르사노 와이너리가 인수한 후 건물을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했다>

 


루케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시토 수도회가 숭배하던 성인 산로코San Rocco의 이름을 땄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자연스럽게 미사주나 종교 축일 축배주로 사랑받았다. 맛이 달았다고 하는데, 열매가 저장한 당을  완전히 알코올로 전환하는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 이전까지 루케는 바르베라, 그리뇰리노, 돌체토가 자라는 밭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고 통째로 섞인 채 와인이 만들어졌다.  


이즈음 루케의  판을  다시 짜 맞춰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루케의 돈 페리뇽,

돈 자코모 카우다Don Giacomo Cauda

 


1960년 초반, 돈 자코모 카우다 수도사는  주임 신부로 발령받아 카스타뇰레 몬페라토 마을로 온다.  와인으로 명성이 높은  마을  출신답게  수도사는 성당 소유  포도밭에 정성을 기울인다. 곧 그가 가꾼 밭에서 나온  포도로 빚은  와인이 자신이  알고 있던  맛과 풍미와 차이가 있음을 감지해 냈지만  그저 토양 탓으로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특성이  남다른  포도를  따로 분리해 양조를 시도한다.  와인이 내는 묘한 향기와  맛에 반한 그는 연구 끝에  루케 품종이 내는 조화 속임을 알아낸다. 평소 친분이 있던  묘목상의 도움을 받아  묘목  4천 그루를  육성했고  자비를 들여 포도밭도 구매했다. 이때가 1964년이고  피에몬테주 정부는 이때  조성된 밭을 ‘풍전등화 같던 루케를  구출해 낸 기념비적인 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이름을  교구 포도밭(Vigna del Paroccò)이라 지었으며  58년째 최고령  루케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 루카 페라리스 와이너리가 인수해 싱글빈야드 와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돌아가, 수도사는  루케 밭에 다른 나무는 심지 않았다. 수확한 열매는 당을 완전히 발효시켜 단맛을 거의 없앴다. 마을 축제나 모임이 열릴 때마다  단맛의 루케에 익숙한 교구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루케에 대한 집념은  와인 생산자들의  흥미를 유발했고 상업적 재배에 한걸음 내딛게 된다. 사람들은 그를 샴페인을 만든 돈 페리뇽에  빚대어 “몬페라토의 돈 페리뇽”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 


1980년, 루케가 복원된 장소인 카스타뇰레 몬페라토 지명을 붙인  루케 디 카스타뇰레 몬페라토 와인이 탄생했고  DOC 등급을 받는다.  2010년에는  프리미엄  와인 요건을 통과해  DOCG로 등급이 상향된다. 

 


루케의 직관적인 매력

 


루케 와인의 향을 맡으면 딸기, 핑크 장미, 바이올렛, 체리, 후추, 계피 등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향들이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레드 와인인데 떫은맛과 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타닌이  구조를  단단히  잡아주는 기둥 역할로 숨기 때문이다. 아로마  품종이 그렇듯 당 비축력을 제압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알코올 도수는  최소 13.5도에,  15도인  경우가 다반사다. 이때 산도는  진정효과를 발휘한다. 과한 알코올이 일으키는 유질감이나  열기를 잠재운다.


루케 디 카스타뇰레 몬페라토는 지구상에서 단 25명만 생산한다. 이들은 루케 생산자 협회를 출범시켰고 품질을 위한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루카 페라리스  회장은  협회의 목적을  밭 관리 개선책과  하이엔드 양조법을 개발하는 등  프리미엄급 동반 달성에 두고 있다. 반면, 향기의 미묘한  뉘앙스나 테루아 해석, 브랜드 스타일은 생산자의 자율성에 맡긴다. 


루케가 잘 자라는 곳의 토양은 일명 아스티 몬페라토라 불린다. 2백만 년~ 7백만 년 전 사이에  바다에 잠겨있던 해저가 융기해  형성됐다. 입자 크기가  모래알과 점토 중간 정도로 가늘고  석회석이 섞여있다. 땅 기온이 차갑고  배수력이 뛰어나 아로마 물질 합성에  그만이다. 언덕 평균 고도는 120~350미터에  남쪽을 바라보며 일교차가 심해서 와인의 산미가 싱그럽다. 시음 적기는 수확 후  5~6년 내이며,  2020년에 승인을 얻은 리제르바 타입은 숙성력이  좀더 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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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Bersano, Cantine Sant’Agata, Goggiano, SR Agricola 와이너리>

 


베르사노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San Pietro Realto

(2020 빈티지. 알코올  14도) 


산 피에트로 레알토 싱글빈야드에서 자란 열매를 골라 담았다. 산 피에트로 레알토는 16세기에 지은 수도원이었으나 베르사노가 인수한 후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했다.  밭 주위를  숲이 둘러싸고 있으며 루케 외에도 베르사노의 시그니처 와인인 그리뇰리노와  바르베라가 자란다. 해발 250미터의 정남향 구릉지는 모래와 점토가 지반을 이루며 서늘하고 배수성이 뛰어나다. 제임스 서클링, 디켄터, 루카 마로니 같은  와인 매거진이  90점 이상을 주었다. 이른 새벽에  손 수확한  15년 수령의 루케는  알코올 발효 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병 숙성을 거쳤다. 딸기, 복숭아, 체리, 핑크 로즈, 바이올렛, 후추의  천연 아로마가 향기롭다. 비 내린 뒤 숲이 발산하는 이끼향, 제라늄의 은은한 여운이 맴돈다. 싱그런 산미와 순한 타닌이 잘 어우러져  밸런스가 돋보인다. 

 


칸티네 산타가타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Na Vota

(2020 빈티지. 알코올 14도)


1990년부터 루케 와인에 투신한 오너 가족의 내공이 드러나는 와인이다.  네 군데 밭에서 자란  포도를 블랜딩했다. 압착한 포도를 보름간 알코올 발효와 침용을 한 다음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옮겨 숙성했다. 딸기, 복숭아, 체리 같은 달콤한 과일과  후추, 바닐라, 장미 향기가 다채롭다. 여운에 부싯돌 향기와 흙 향이 깃들어 있다. 아삭거리는 산미와 타닌이 입 안을 매끄럽게 감싼다. 풍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밀도감이 있다.

 


고자노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Fiurin

(2020 빈티지, 알코올 15도)


손이 많이 간 루케다.  압착 전에, 껍질 세포벽을 채우고 있는 안토시아닌과 아로마를 신속하게 우려내기 위해 저온에서 3일간 침출했다. 알코올 발효를 일주일간 거친 뒤 시멘트 탱크에서  6개월, 병 숙성을 3개월 했다. 맑은 루비색이 매혹적이며 딸기, 체리, 허브 향을 피운다.  바이올렛과 장미향이 고혹적이다. 향기가  입안에서 그대로 전달된다. 상큼한 산미, 타닌은 유연하며 구조가 빈틈없다. 알코올이 15도지만 뜨거움이나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SR Agricola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2020 빈티지)


네 군데 밭에서 자란 루케를 블랜딩해 만들어 조화미가 돋보인다. 짙은 루비색을 띠며 피망, 후추의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선명하다. 부싯돌, 장미, 민트, 정향이 천천히 코를 감싼다. 타닌의 첫 느낌은  순하며 입안에 번지면서 미각을 긴장시킨다. 톡 쏘는 산미가  청량감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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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Tenuta dei Re, Bava, Poggio Ridente, Bosco, Luca Ferraris 와이너리>


 

테누타 데이 레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2020 빈티지 . 알코올 14도)


150년 역사의 양조 저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10헥타르 밭 중 정남향에 토질이 이상적인 밭에서 완숙한 포도를 일일이 선별 수확해서 만들었다. 저온 알코올 발효를 끝낸 와인을 시멘트 탱크로 옮겨 10개월 간 두었다.  블랙베리, 체리, 후추, 제라늄, 딸기 향을  풍성하게 피운다. 여기에 부싯돌, 허브, 장미, 바이올렛이 겹쳐진다. 산도가 뛰어나며  매끈한 타닌이 매력적이다. 아몬드 풍미가 감칠맛을 곁들인다. 식감이 섬세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바바 와이너리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2019 빈티지. 알코올 13.5도)


알코올 발효와 색소 추출 기간을  짧게 가졌고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잠시 숙성한 후 출시했다. 체리, 라즈베리, 장미, 후추 같은 품종 특유의 아로마를 피우는데 개별 향보다는 조화로움을 중시했다. 계피, 막 딴 허브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적당한 산미, 편안함을 주는 타닌은  집중력도  갖추고 있다. 빈틈없는 구조가 돋보인다.
 

 

포조 리덴테 유기농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2019 빈티지. 알코올 13.5도)


산 마르자노 싱글빈야드에서 거둬드린 포도를 알코올 발효, 침용 (빈티지에 따라 최소 8일  최대 20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숙성 순서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후추향만 나다가  20분이  경과하자 체리,  라즈베리, 눅눅한 이끼 향으로 변했다. 타닌이 번지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상큼한 산도와  쌉쌀함이 밸런스를 이루며  매끈한 질감이 인상적이다.

 


보스코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Oltrevalle

(2019 빈티지, 알코올 14.5도)


포도 수령이 최소 4년부터 최대 20년까지 다양한 블랜딩 와인.  5개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머문 뒤  3개월간 병 안에서 안정을 취했다. 질감이 유려하며 산미가 생동감 있다.  타닌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매끄러운 감촉은 기품 있다. 장미향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루카 페라리스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Vigna del Parrocò

(2019 빈티지.  알코올  15도)


1964년 돈 카우다 수도사가 심은 4천 그루 묘목이 성인목으로 자랐다. 수령이 58년 된, 루케 중 최고령이다. 알코올 발효가 끝난 와인의 20%는 5백 리터 프렌치 오크에서, 나머지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9개월 숙성한 후  블랜딩  해서 다시 병 숙성을 6개월 가졌다.  장미, 딸기, 바이올렛 , 자두 향이 은은하다. 향기는 짙지 않지만 서로 잘 어우러져 복합미에 충실하다. 산미가 생생하며 알코올과 잘 결합해 매끄러운 질감을 낸다. 타닌에 긴장감이 서려있고  적절한 보디도 겸비하고 있다.

 


칸티네 산타가타 와이너리의
Ruchè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Genesi

(2016 빈티지. 알코올 15도)


2020년에 리제르바 타입이 도입되었는데, 와이너리 오너는 리제르바가  나올 걸 예측하고 미리 그 기준에  맞추어 만들었다. 완숙한 포도를 포도밭에 20일 간 더 둠으로써 농축미를 끌어올렸다. 바리크에서 30개월,  병에서 6개월 숙성을 거쳤다. 기존의 루케가 자연적인 아로마 표출에 집중했다면 이 타입은  부케와 임팩트가 볼 만하다. 가죽, 토양, 애니멀 뉘앙스, 체리 잼, 블랙베리, 딸기 잼이 농밀하고 커피, 카카오, 견과류 향이 뒤를 잇는다. 산미가 원만하며 보디가 중후하며 깊은 맛을 낸다. 입안을  채운 타닌은 혀 밑에 묵직하게  깔린다. 산미와 타닌의 밸런스가 뛰어나고 검붉은 과실의 여운이 완성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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