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일본인 남편과 함께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와인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와인 레이블에 ‘천·지·인(天·地·人)’이라는 한자를 담는 네고시앙 ‘루 뒤몽’의 대표 박재화(43)씨다. 그가 부르고뉴 와인의 바이블로 불리는 『부르고뉴 와인(Les Vins de Bourgogne)』을 번역 출간한 것을 기념해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1952년 프랑스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후 50년간 전 세계에서
출간된 전문 서적이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일본인 남편과 함께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와인을 만드는 박재화씨가 자신의 네고시앙 ‘루 뒤몽’에서 만든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부산의 한 대학에서 한국사 강사를 하던 박씨는 96년 프랑스로 떠났다. 뇌졸중으로 숨진 아버지를 대신해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마저
암으로 세상을 뜬 직후였다. 미술품 복원 공부를 하고 돌아와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였다. 떡장사를 하며 학비를 대주는 언니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선택한 곳이 기숙사가 있어 체류비가 적게 드는 디종의 부르고뉴대. 그는 “부르고뉴가 세계적 와인 산지인 줄도 몰랐다”
고 말했다.

남편 나카타 고지(37)는 프랑스어 초급반에서 만났다. 대학 시절 일본 도쿄에서 소믈리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카타는 박씨에게 와인을
소개했다. 그를 따라 찾아간 곳이 ‘아르망 루소’ 포도밭(도멘). 박씨는 “과음을 일삼던 아버지 몰래 술병을 장독대에 감출 정도로 술이라면 진저리가 났지만 이곳에서 시음해 본 뒤 와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술회했다.

진로를 바꾼 박씨는 나카타와 함께 부르고뉴의 소믈리에 전문학교(CFPPA)에서 수학했다. 두 사람은 2000년 7월 일본 투자자로부터 3억원을 받아 뉘셍 조르주에 네고시앙을 차렸다. 산이 많았던 나카타의 고향 오카야마와 거제도를 떠올려 ‘산의(of mountain)’라는 뜻의 ‘뒤몽(Dumont)’으로 이름지었다. ‘루(Lou)’는 박씨가 프랑스에서 인연을 맺은 소녀의 이름에서 따왔다. 연간 임대료 80만원에 빌린 작은 사무실과 와인 숙성용 오크통 70개를 넣을 수 있는 창고가 그들의 첫 일터였다. 루 뒤몽 레이블을 붙인 와인은 남편과 연을 맺은 일본 회사가 수입해줘 첫해 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박씨는 배낭에 와인을 담아 한국에 와 지하철을 타고 수입업체를 찾아다녔다. 남의 돈으로 차린 회사를 단둘이 운영하느라 안간힘을 썼지만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었다.

2001년 결혼한 박씨 부부는 2003년 루 뒤몽 와인의 레이블에 ‘天·地·人’ 한자를 담았다. 포도밭을 둘러싼 자연인 하늘과 땅, 그리고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을 포괄하는 ‘테루아 ’의 의미를 동양적으로 표현했다. 한자가 낯선 인쇄업체는 레이블 3만 장을 좌우를 바꿔 보내왔다. 하지만 투자액의 대부분을 좋은 와인 원액 구입에 쓰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맛을 내려고 오크통 숙성과정을 거쳐 선보인 루 뒤몽 와인은 프랑스 와인잡지에서 호평받기 시작했다. ‘프랑스·한국·일본 문화가 어우러진 와인’ ‘차(茶) 맛이 날까’ 등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부르고뉴 도멘 사이에서 ‘루 뒤몽이 어디냐’는 얘기가 회자됐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루 뒤몽 뫼르소’가 ‘천지인 와인’으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박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즈브레 샹베르탱에 사무실과 창고 등 와인 제조 시설과 거주 공간을 마련했다. 밭까지 딸린 8925㎡(2700평) 규모로, 20억원이 들었다. 박씨는 “사무실 직원 두 명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와인 만드는 일은 남편과 둘이서 한다”며 “양보다 품질을 지켜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루 뒤몽의 와인은 프랑스 유명 레스토랑 외에 일본과 한국·대만·홍콩에 주로 수출된다. 매출은 지난해 60억원을 돌파했다. 그는 “한국 젊은이들이 프랑스에서 와인을 배우고 만들며 사는 게 어렵지 않다. ‘못난이 박재화’도 하는데 꿈이 있다면 도전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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