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_메인.jpg
 
 
 
 
2년 만에 다시 찾은 보르도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도로와 교량을 비롯해 도시 구석구석을 재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이에 따른 교통체증도 일상이 된지 꽤 된 듯 했다. 포도밭과 샤토, 기껏해야 시내에서 몇 발짝 움직여 본 것이 경험의 전부였던 기자에게 이러한 풍경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보르도가 오는 6월부터 한달 간 프랑스에서 열리는 2016 EURO(유럽축구 선수권 대회)의 개최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단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의 갑작스런 열띰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보르도가 아름다운 경치와 찬란한 유적 덕분에 “아키텐의 진주”로 알려져 있는 반면 프랑스의 파리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유명세가 덜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사실 보르도는 프랑스의 5대 관광도시 중 하나로 매년 5백만 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 1800 헥타르에 달하는 보르도 중심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도 지정되었다. 또한 인구 77만의 보르도는 프랑스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며 경제력과 고용률로는 프랑스의 도시 중 4위를 차지한다. GDP 성장률로는 3위 도시이며 연구 개발 부문 투자집약도에 있어서도 선두주자로 꼽힌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만큼 생활수준도 높다(bordeaux-tourisme.com).
 
 
bordeaux.jpg
 
 
이처럼 탄탄하고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동안 여유를 누리던 보르도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2016 EURO 개최 소식만은 아니었다. 피부에 와 닿는 두 가지 경제적인 현실은 보르도의 와인산업에 일종의 긴장감과 위기 의식을 가져왔고, 이는 문제 해결을 위한 와인생산자들의 적극적인 태도와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유례가 없는 치열한 경쟁과 자국 내 와인 소비량 감소라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여 와인산업 전반에 걸쳐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즈나 와인을 필두로 한 농산품 수출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는 프랑스(INSEE, 2013), 프랑스 내에서도 전체 와인 생산량의 15%를 그리고 AOC 와인 생산량의 25%를 생산하는 보르도의 와인생산자들은 그들이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wine growing area of France.jpg
 
 
치열한 경쟁
 
개별 와인 산지로 따지면 세계 10대 와인 산지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보르도. 이곳의 연간 와인생산량은 9억 병에 달하며, 프랑스 전체 와인 수출 금액의 24%를 보르도 와인이 차지한다(샴페인이 32%로 1위, 부르고뉴가 10%로 3위)(A Look at French Wine and Spirits Exports in 2014). 보르도 와인 중에서도 마고, 오 브리옹, 페트뤼스처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값비싼 와인을 포함한 고급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5% 남짓이며(금액으로는 20% 이상을 차지),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보르도 와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기본급 와인에 속한다. 앞서 언급한 심각한 문제의 당사자는 바로 이들 기본급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이다. 이들은 최근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데, 1960년대에 1인당 100리터였던 자국 내 와인소비량이 지금은 42리터로 감소했고 신세계 와인의 성장과 공급 과잉으로 인해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삼십 년간 포도원을 합병하여 규모를 늘려온 대형 샤토들은 이러한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로 샤토당 평균 포도원 면적은 1987년의 5헥타르에서 오늘날 16헥타르로 늘어났다. 반면 전체적인 와인생산자의 수는 2만 명에서 7천 명으로 줄었다. 이는 소규모 와인생산자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겨 주었고, 정상급 샤토와 소규모 와인생산자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여놓았다. 기본급 와인을 생산하는 이들이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르도 와인 연합에 따르면, 이들 중 과반수가 경제적 갈등을 겪고 있으며 종종 생산 비용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와인을 공급하라는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아시아 시장에서의 관심 덕분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상급 샤토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Factors and Trends Affecting the Bordeaux Wine Market).
 
 
■품질과 가격에서 돌파구를 찾다
 
신세계 와인의 등장과 인기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와인생산자들 사이에 심각한 경쟁을 초래한 동시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기본급 와인을 만드는 와인생산자들은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들이 유럽 와인을 좀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과일 풍미가 짙고 숙성 초기에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신세계 와인의 스타일을 모방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레이블에 품종을 기재한 와인도 늘었다. 즉 유럽의 와인들이 전통에서 벗어나 모던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이들 와인의 품질도 덩달아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1949년에 설립되어 오늘날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조합으로 자리잡은 프로덕타 비뇨블(Producta Vignoble)의 수출 담당 매니저 알렉시 푸로(Alexis Fourault) 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보르도의 와인산업이 급속히 신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15년 사이의 일입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동유럽, 러시아, 중국 시장이 개방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한국에서도 20년 전 50만 병 팔리던 보르도 와인이 지금은 연간 3백만 병 이상 팔립니다. 보르도 와인 시장이 지금처럼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신흥 시장 덕분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시장이 이처럼 다양해지면서 보르도 와인의 품질, 특히 기본급 와인의 품질이 월등히 향상되었다는 점입니다. 여러 시장에서 신세계 와인과 경쟁하려면 품질 관리가 관건이기 때문이죠. 이는 보르도의 오랜 시장인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와인의 85%가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유럽의 경우 와인생산자들이 일관된 품질과 가격으로 와인을 공급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PRODUCTA.jpg
 
 
기본급 와인의 품질 향상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까? 프로덕타 비뇨블의 사례를 살펴보자. 국내외적으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음을 직시한 프로덕타 비뇨블은 지난 30여 년에 걸쳐 여러 가지 품질 관리 기법을 도입하여 획기적인 품질 향상을 이루었다. 거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양조장 설비를 개•증축한 것은 물론이고 품질 관리자를 상주시켜 포도밭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게 했다. 공인 기관으로부터 포도밭과 양조장 설비를 점검 받고 인증을 받는 것은 기본이다. 또한 품질에 따라 포도 매입 가격을 정하는 인센티브 제도는 포도 재배 시점에서부터 품질 관리가 이루어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PRODUCTA_.jpg
 
 
프로덕타 비뇨블은 보르도에만 네 개의 병입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덕분에 와인생산자들은 와인을 병입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장시간 이동할 필요가 없다. 장거리 이동은 자칫하면 와인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근거리에 병입 시설을 갖추는 것은 품질 관리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덧붙여 조합의 커다란 장점 중 하나는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양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생산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와인의 가격 거품을 걷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들 와인이 가격경쟁력을 가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UNI-MEDOC.jpg
 
 
■보르도의 고급 와인은 난공불락?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시장 경쟁에서 보르도의 고급 와인은 난공불락의 존재일까? 5대 샤토를 위시한 보르도의 그랑 크뤼 와인은 누구나 열망하는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높은 가격, 한정된 공급, 거대한 수요가 가져다 주는 이점 또한 마음껏 누려왔다. 혹자는 이들이 보르도 와인산업 전반에 걸쳐 후광 효과를 가져오는 유익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소테른에 위치한 그랑 크뤼 샤토 다르쉬(Château d’Arche)의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제롬 코송(Jerome Cosson) 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랑 크뤼 샤토들은 보르도 와인 역사의 산 증인이며, 보르도 와인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입니다. 소비자들에게는 와인의 품질과 가치를 보증하는 존재이고요. 한마디로 그들은 보르도 와인산업에서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1855 등급(1855 Bordeaux Classification) 지정 당시 그랑 크뤼 등급은 보르도에서도 최고의 테루아를 보유한 샤토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 때 최고로 선정된 테루아는 지금도 변함없이 최고로 여겨집니다. 또한 샤토들이 그랑 크뤼 등급을 획득한 이후 나태해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 명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워낙 막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DARCHE.jpg
 
 
그의 말처럼 보르도의 고급 와인들은 보르도 와인 전체에 고급스런 이미지를 부여하며 성배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천정부지로 솟은 이들 와인의 가격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0년대의 위대한 빈티지 중 하나인 2005의 경우, 쏟아지는 찬사와 아시아 시장으로부터의 폭발적인 관심이 맞물려 가격이 평소보다 68%나 올랐다. 가격을 두 배나 올린 샤토들도 있었다(Factors and Trends Affecting the Bordeaux Wine Market). 2005에 필적할 만한 품질을 보여준 2009와 2010 빈티지의 경우에도 샤토들은 당연시하며 가격을 올렸고, 이에 아시아 시장만 믿고 폭리를 취한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앞선 빈티지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2011 빈티지의 선물 가격마저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하자, 여기저기서 보르도 선물 시장의 붕괴를 자초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례 없이 높은 가격 때문에 1등급 샤토를 제외한 나머지 그랑 크뤼 샤토들은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샤토는 애초에 책정한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하거나, 좋은 빈티지 와인에 팔리지 않은 와인을 묶어 파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재고를 처리해야 했다. 이러한 관행은 소매상에 와인을 납품하는 네고시앙 사이에서도 종종 목격된다("Bordeaux 2011: Merchants selling Rieussec at a loss, blaming negociant ‘bundling’", 샤토 라피트 로칠드(Château Lafite Rothschild)와 샤토 리외섹(Château Rieussec) 와인을 묶어 파는 것에 대한 소매상의 불만을 다룬 Decanter의 칼럼). 한편, 높은 선물 가격은 와인을 구입한 투자자들에게도 손실을 안겼는데, 런던의 대표적인 와인 중개소 Liv-ex에 따르면 지난 8개 빈티지 중 5개 빈티지가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긴 것으로 나타났다(decanter.com). 2005, 2009, 2010에 이어 2000년대의 위대한 빈티지 중 하나로 평가 받는 2015의 가격은 어떨까. 와인 전문 매체들은 지난 2014 빈티지에 비해 10-20%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하지만, 샤토들이 가격을 책정하여 공개하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십 년 만에 찾아온 완벽한 빈티지 2015
 
“2015년이 품질과 수확량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킨 뛰어난 해(outstanding vintage)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보르도의 저명한 양조학자 드니 드부르디유(Denis Dubourdieu) 교수는 보르도의 샤토 디켐에서 열린 2015 빈티지 설명회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2015년은 위대한 레드 와인이 생산되는데 필수적인 다섯 가지 조건이 모두 맞아떨어지는 해였기 때문이다.
 
1) 개화(flowering)가 이른 시기에 빨리 이루어질 것
2) 착과(fruit-set) 시기에 물이 부족할 것
3) 열매의 색이 변하는 시기에 줄기 성장이 멈추고 과실 성장이 이루어질 것
4) 열매가 익어가는 시기에 건조하고 온화한 날씨가 이어질 것
5) 수확 시기에 온화한 날씨가 이어져 곰팡이나 희석의 위험이 없을 것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15년은 2005년 이후 십 년 만에 ‘뛰어난 해가 되기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해이다.
 
 
VINTAGE CHART.jpg
 
 
2015년 날씨의 특징은 8월에 내린 단비가 고마울 만큼 아주 건조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산도가 다소 낮지만 잘 익은 타닌이 이를 보완하여 와인은 조화롭고 균형을 이룬다. 또한 건조한 날씨 덕분에 포도의 풍미가 희석되거나 곰팡이 피해를 입을 염려가 없어 생산자는 원하는 시기에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생산자들은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와인의 스타일에 따라 수확시기를 조절할 수 있었고 이는 생산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와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는 2015 빈티지 와인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N PRIMEUR.jpg
 
 
*엉 프리뫼(En Primeur) 기간 동안 세계 각지의 와인 상인들과 평론가들이 보르도의 최근 빈티지(올해의 경우에는 2015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 샘플을 시음하기 위해 보르도로 모여든다. 엉 프리뫼는 보르도 와인의 선물 거래(futures)를 개시하기 위한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이며 해당 빈티지에 대한 초기 평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아래 영상은 올해 열린 엉 프리뫼 현장을 짧게 편집한 것이다.
 
 
 
 
WINE TASTING.jpg
 
 
드부르디유 교수가 2015 빈티지를 매우 뛰어난 빈티지라고 강조했던 것은 엉 프리뫼 시음회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네다섯 시간 동안 60개가 넘는 와인을 시음해도 전혀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와인들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시음회에 참가한 와인전문가들 사이에서 특히 높은 호응을 얻은 지역으로는 포므롤, 생테밀리옹, 페삭 레오냥, 마고를 꼽을 수 있다(수확기에 메독 북부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렸는데 이 지역들은 예외다). 이 중에서도 포므롤 지역 와인에 대한 평가가 유독 좋았는데, 샤토 캉트메를(Château Cantemerle)의 총괄이사인 필립 당브랭(Philippe Dambrine) 씨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최근 몇 년간 빈티지들을 살펴보면 보르도 우안에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2015 빈티지는 다릅니다. 포므롤과 생테밀리옹 지역에서 뛰어난 와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거든요. 여기서 한 가지, 소비자들이 빈티지 평가를 참고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보르도 좌안과 우안은 날씨와 테루아 모든 면에서 명백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보르도 좌안에 대한 빈티지 평가를 보르도 전체에 대한 빈티지 평가인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드라이 화이트 와인의 경우 건조하고 온화했던 2015년의 날씨로 인해 잘 익은 과일 풍미를 느낄 수 있으며 산도는 적당하면서도 날카롭지 않다. 간간이 이국적인 열대 과일의 풍미를 드러내는 와인도 찾아볼 수 있다. 소테른-바르삭 지역에서 생산되는 스위트 와인은 집중도가 있고 신선하며 풍성한 질감과 화려한 풍미를 드러낸다. 2015 빈티지는 양과 질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해로 평가 받는데, 이곳에서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데 필수 요소인 귀부균(noble rot)이 포도밭 전체에 균일하게 퍼졌고 포도가 빨리 익어 9월 말에 대부분의 수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Crus bourgeois.jpg
 
 
그랑 크뤼 와인과 몇몇 컬트 와인 덕분에 고급 와인 하면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보르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와인들은 앞서 지적했듯이 보르도 와인 생산량의 5%에 불과하다. 보르도 와인의 대부분은 AOC 보르도(AOC Bordeaux), 보르도 슈페리에(Bordeaux-supérieur), 크뤼 부르주아(Crus bourgeois)를 비롯한 기본급 와인이 차지한다. 와인생산자들이 신세계 와인과의 경쟁을 의식한 이후로 이들 와인의 품질은 더욱 향상되었으며, 흔히 말하는'가격 대비 품질 좋은 와인(value wine)’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특히 2015와 같이 뛰어난 빈티지의 경우, 굳이 그랑 크뤼 와인처럼 비싼 와인이 아니더라도 크뤼 부르주아급 정도의 와인이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해당 빈티지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그랑 크뤼 샤토들이 생산하는 세컨드 와인도 마찬가지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보르도의 위대한 빈티지를 경험하는데 반드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다.
 
 
 
※WineOK.com의 보르도 빈티지 관련 기사
 
 
 
 
보르도 와인 추천
 
 
 
샤토 캉트메를_1.jpg
 
■샤토 캉트메를 1982
Château Cantemerle 1982
 
한여름 무더위가 길게 이어졌던 1982년은, 잘 익은 과일 풍미가 풍성하고 농도가 짙으며 화려한 와인을 생산했던 해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와인을 마신다면 숙성을 통해 매끈해진 질감과 절제된 듯한 우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십 년 넘게 숙성 가능한지의 여부는 와인이 얼마나 균형 잡혀있는지에 달려있는데, 그 점에서 이 와인의 균형감은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샤토 다르쉬_1.jpg
 
■ 샤토 다르쉬 1997
Château d’Arche 1997
 
1997년은 몇몇 정상급 와인생산자들이 빼어난 소테른 와인을 생산한 빈티지이다. 이 와인들은 지금 마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앞으로도 40년 정도는 더 숙성 가능하다. 샤토 다르쉬의 와인도 그 중 하나이다. 지금 이 와인을 마신다면 짙은 황금빛과 폭발하듯 퍼지는 살구, 복숭아 향에 매료되고 뒤이어 대리석 같은 질감과 관능적인 풍미에 또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닭고기나 송아지 요리에 곁들이기에도 무리가 없을 만큼 산미가 뛰어나고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샤토 퐁테 카네_1.jpg
 
■ 샤토 퐁테 카네 2008
Château Pontet Canet 2008
 
2008 빈티지는 보르도 와인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드러내는데, 폭발적인 과일 풍미나 화려함보다는 중간 정도의 보디감에 생기 있는 산도가 특징이다. 또한 비싸지 않은 편이라 좋은 생산자의 와인을 고르면 가격 대비 뛰어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랑 크뤼 샤토 퐁테 카네의 2008 빈티지가 바로 그러한 경우다. 이 와인은 짙은 색, 세련되고 복합적인 풍미가 화사하게 드러나며 입 안에서 매끄러운 질감을 선사한다.
 
 
Smith Haut Lafitte.jpg
■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 2010
Château Smith Haut Lafitte 2010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2010 빈티지를 “대단한 품질을 보여주며, 2009 빈티지의 힘과 2008 빈티지의 신선함을 모두 갖추었다”고 평가한다. 해당 빈티지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 역시 눈 여겨볼 만한데, 여러 샤토들 중에서도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는 매년 꾸준히 높은 품질의 와인을 선보이는 곳이다. 높은 산미에도 불구하고, 겹겹이 펼쳐지는 와인의 풍미와 매끄러운 질감은 마시는 이들에게 매력적이기만 하다.
 
 
사토 크로크_1.jpg
 
■ 샤토 르 크로크 크뤼 부르주아 2010
Château Le Crock Crus bourgeois 2010
 
위대한 빈티지에는 모든 등급의 와인들이 평균 이상의 품질을 보여준다. 샤토 르 크로크는 그랑 크뤼 2등급 샤토 레오빌 푸아페레(Leoville Poyferre)를 소유한 큐블리에 가문이 만드는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이다. 큐블리에 가문의 다른 와인들과 마찬가지로 천재 양조가 미셸 롤랑의 컨설팅 하에 생산된다. 깊이감, 복잡한 풍미, 적당한 무게감 그리고 생생한 산미를 갖춘 이 와인은 2010년이 위대한 빈티지임을 증명해 보인다. (비노 파라다이스 수입)
 
 
아르노장_1.jpg
 
■ 아르노장 보르도 슈페리에 2014
Arnozan Bordeaux Supérieur 2014
 
보르도 슈페리에 등급 와인에 적용되는 기준을 준수해서 만드는 와인으로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엄선한 포도밭에서 자란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한다. 와인은 깊은 루비빛을 드러내고 보디감이 있으며 복잡하고 풍성한 아로마와 함께 잘 익은 과일 풍미, 꽃 향, 향신료, 은은한 오크 풍미를 드러낸다.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보르도, 잠에서 깨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보르도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도로와 교량을 비롯해 도시 구석구석을 재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이에 따른 교통체증도 일상이 된지 꽤 된 듯 했다. 포도밭과 샤토, 기껏해야 시내에서 몇 발...
    Date2016.05.02 글쓴이정보경
    Read More
  2. 디저트 그 이상의 와인, 소테른 Sauternes

    프랑스 보르도에는 오로지 스위트 와인 생산에만 전념하는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지역이 존재하는데 소테른(Sauternes)과 바르삭(Barsac)이 그곳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최상급 스위트 와인은 잘 익은 살구의 풍성함이 입 안에서 폭발하듯 쏟아지고 꿀이 넘쳐...
    Date2016.04.20 글쓴이정보경
    Read More
  3. 신화를 따라 떠나는 그리스 와인

    여행자들의 버킷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동시에 현대 와인 문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 역사가 5천년이 넘는 그리스 곳곳에서 신화 속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는 육지의 80%가 산이나 구릉지대...
    Date2016.04.20 글쓴이박지현
    Read More
  4. 와인월드에 떠오르는 다크 호스, 그리스 와인

            “그리스의 얼굴은 열 두 번이나 글씨를 써넣었다 지워버린 팰림프세스트이다.” (※palimpsest, 양피지가 귀했던 시절에 원래 문장을 긁어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기를 반복한 것)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에 대해 한 ...
    Date2016.04.18 글쓴이박지현
    Read More
  5. 봄과 함께 찾아온 그뤼너 벨트리너의 향기

    봄이 왔음을 실감하는 것은 따사로운 햇살이나 무딘 바람 때문도, 행인들의 가벼워진 옷차림 때문도 아니다. 이른 오후 나른한 기분과 함께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그제서야 비로소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된다. 심할 때는 의식까지 몽롱하게 만들어버리는 봄의 마...
    Date2016.03.15
    Read More
  6. 샴페인 전문가 피터 림과 함께한 RM 샴페인 세미나

    샹파뉴 전체 포도밭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대를 이어 이곳에 살아온 포도재배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샹파뉴의 포도밭 가격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포도밭을 구입하여 와인을 만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샴페인 전체 생산량의 2/3를 차지하는 샴페인 하우스들이...
    Date2016.03.09
    Read More
  7. 프랑스 와인의 엘도라도, 루시옹

    10월 중순, 일주일이라는 짧은 여정으로 다녀 온 프랑스 남부의 루시옹(Roussillon)은 기자에게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뺨을 때리는 거센 바람, 그리고 그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키 낮은 포도나무 등의 기억을 심어 놓았다. 하지만 루시옹을 떠올릴 때 가...
    Date2015.11.0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 44 Next
/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