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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으로의 회귀, AMPHORA



“지나친 오크 풍미에 질렸다.”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크뤼 클라세 5등급 샤토 퐁테 카네(Pontet-Canet)를 소유하고 있는 알프레드 테세롱의 말이다. 십여 년 전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도입하여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켰던 테세롱은, 와인에 미치는 오크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지난 3년 간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제작된 암포라에서 와인을 양조하는 실험을 해 왔다. 그 결과 2012년 빈티지 와인의 15% 가량이 암포라에서 양조된 후 출시되었다. 이로써 퐁테 카네는, 와인 숙성에 암포라를 사용한 보르도 최초의 샤토가 되는 셈이다. 테세롱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숙성시키는 암포라에는 자갈이, 메를로를 숙성시키는 암포라에는 석회암과 진흙이 약간 들어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암포라는 오크처럼 와인의 풍미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와인이 과일의 풍미를 드러내는데 더욱 기여한다고 덧붙인다.(Pontet Canet Adopts Amphorae for 2012)

진흙을 주로 사용해서 다양한 사이즈로 만들어지는 암포라는 발효뿐만 아니라 숙성 과정에서도 사용되며, 레드와 화이트 와인 모두 암포라에서 양조 가능하다. 포도를 암포라에서 발효시키는 방식을 도입한 대표적인 선구자로, 이탈리아 북부 프리울리 지역의 와인생산자 요스코 그라브너(Josko Gravner)를 들 수 있다. '슬로베니아의 자유분방한 히피 군단 중 리더’로 묘사되는 그라브너는, 1980년대 이후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발효와 숙성을 거친 부르고뉴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오다가, 2000년대에 들어 스타일을 과감히 바꾸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면에서 인위적인 간섭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 일환으로 1997년부터 조지아産 암포라를 사용하여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하였고, 2001년 빈티지 암포라 와인을 최초로 출시하였다. (‘이탈리아 와인가이드’, 2010)

암포라에서 만들어진 그라브너의 화이트 와인은 풍미와 색이 짙고 타닌의 떫은 맛을 지닌다. 불과 며칠 전 기자가 시음한 그라브너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 "Anfora" Ribolla Gialla 역시 마찬가지였다(아래 사진).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을 연상시키기듯 맑고 깊은 황갈색을 띤 이 와인은, 부드러운 감촉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우며 단단한 구조감을 선보였다. 또한 어렴풋이 사과와 흰 꽃 향이 느껴지지만 약간 씁쓸한 뒷맛과 함께 다소 중성적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암포라 와인을 최초로 대면하던 그 순간에는, 흐르던 전류가 갑자기 끊기기라도 한 것처럼 한동안 머리 속이 깜깜했던 것이 사실이다. 계속 향을 맡고 맛을 보아도, 이 와인의 독특함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굳이 변명하자면, 스테인리스와 오크에 길들여진 입맛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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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볼라 잘라(Ribolla Gialla) 품종으로 만든 요스코 그라브너의 화이트 와인. 리볼라 잘라는 프리울리에서 가장 오래된 토착 품종 중 하나로, 그리스에서부터 슬로베니아를 거쳐 프리울리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발효시키지 않은 달콤한 리볼라 포도즙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에 인기가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볼라는,'죽은 자의 날’에 마시던 달콤한 Torbolino(토르볼리노)를 생산하는데 사용되었다. 리볼라 잘라는 단일 품종으로 또는 다른 품종과 혼합되어 양조되는데, 옅은 황갈색을 띠며 신선하고 높은 산미를 지닌 드라이한 와인을 만들어낸다.(‘이탈리아 와인가이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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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보르도의 퐁테 카네나 프리울리의 그라브너 뿐만이 아니다. 스테인리스탱크나 오크통의 대안으로 암포라를 도입해 온 와인생산자들은 이미 상당수 존재해 왔으며, 이들의 암포라 와인은 2000년대 들어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코르시카에 클로 카나렐리(Clos Canarelli)를 소유하고 있는 이브 카나렐리는, 암포라를 사용하면 와인이 산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산화황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2005년부터 암포라 와인을 실험해 온 도멘 비레(Domaine Viret)의 필립 비레 역시, 암포라를 사용한 이후로 이산화황을 비롯한 어떤 첨가제도 사용하지 않으며, 이로써 와인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한다.비레의 영향을 받아, 보졸레 지방의 브루이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장 클로드 라팔루(Domaine Jean Claude Lapalu) 역시 적은 양의 와인을 암포라에서 양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암포라에서 양조한 와인들이 기존의 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드러내며, 맛이 더 깨끗하고 미네랄 풍미가 도드라진다고 설명한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에서 코스(COS)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주스토 오키핀티는, 2007년 이후 작은 용량의 오크통 대신 콘크리트 탱크, 대형 오크통, 암포라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암포라 내에서도 와인이 숨을 쉴 수 있으며, 와인의 풍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암포라의 장점을 꼽는다.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의 잘 알려진 와이너리 포라도리(Foradori)는 70여 개나 되는 암포라를 소유하고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엘리자베타 포라도리는 암포라 와인이 선사하는 깔끔한 풍미를 강조한다.이 외에도 암포라 와인을 만드는 와인생산자로는 이탈리아 캄파냐 타우라시 지방의 루이지 테세(Luigi Tecce), 이탈리아 시칠리의 프랑크 코넬리슨(Frank Cornelissen), 포르투갈의 알렌테호(Vinhos do Alentejo) 와이너리, 크로아티아의 카볼라(Kabola) 와이너리 등이 있다.("Wine producers have started making wine in amphora.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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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Spectator의 간판격 칼럼니스트인 맷 크레이머는 그의 글 “Just Say No Oak”에서, 오크 풍미의 유무가 와인의 스타일에 얼마나 큰 차이를 불러일으키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비자들은 와인의 오크 풍미에 익숙하다. 따라서 와인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이렇듯 익숙한 맛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무언가 참신하고 독창적인 와인을 마시고 싶은 소비자라면, 간단히오크 풍미가 없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2001년 빈티지 카스텔로 디 리스피다 암포라(Castello di Lispida Amphora) 와인을 마시면서 느꼈던 경이로운 자극들, 이를테면 짙은 미네랄과 꽃 향, 촘촘한 질감, 독특함 등을 떠올린다. 그리고마침내 와인생산자를 만나게 된 그는 암포라를 쓰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와인생산자가 내놓은 두 가지 대답은 다음과 같다.

“실용적인 부분에서, 우선 암포라를 사용하면 침용 기간을 늘릴 수 있고, 통기성이 있어서 약간의 산소도 유입 가능합니다. 또한 오크만큼 적나라하게 와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다소 철학적인 표현으로 들리겠지만, 포도는 흙에서 그 생명을 키웁니다. 암포라는 흙을 구워 만들고요. 포도를 암포라에서 양조하는 것은 그 기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포도가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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