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S

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Berlin Wine Trophy, Asian Wine Trophy, Selezione Del Sincaco,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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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의 테러리스트란 혹평을 받았던 캄파니아 스토리즈 대면 시음회 장면. 우려를 불식시키고 성공리에  마쳤다>

 

 

 

프롤로그

 


수확 시즌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 와인계는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COVID- 19의 기세에 눌렸던 와인 관련 행사들이 숨통을 트게 됐다. 태생적으로 모임과 대화 자리에 끼기 좋아하는 와인을 비대면 우리에 가둬놨으니 일말의 틈만 보이면 뛰쳐나갈 수밖에...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The Show Must Go On이라는 곡에서, 할 일은 해야 한다며 그의 특기인 옥타브를 높였다. 고인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캄파니아 스토리즈(캄파니아주 새 빈티지 와인을 공개하는 행사)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는 ‘쇼’였다. 다행히 바이러스 감염의 온상이 될 거란 예상은 빗나갔지만 필자가 행사 중 겪었던 몇 개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에 진땀이 난다.


의외의 불편은 감염 노출 위협이 아닌 안면 식별에서 왔다. 모두들 아랍 여자처럼 마스크 베일을 쓰고 다니니 구면과 초면 구분이 쉽지 않았다. 평상시 동료의  제스처와 드러난 이마 부위를 궁합 맞혀 본다. 구면임이 확인되면 인사를 나눌 차례다. 이탈리아식 뺨 키스나 허깅을 했다가는 일급 바이러스 전파자로 낙인찍힌다. 대신 이탈리아 최애 방역 인사인  ‘팔 뒤꿈치 마주 찍기’로 센스를 발휘한다. 


시음장 입구의 체온측정기를 지날 때는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할 때에 견줄 만큼 오금이 저린다. 지각임이 분명해도 뛰지 않았고 입장 전에 화장실로 직행해 찬물을 얼굴에 끼얹은 건 비밀이다. 한 번은 스푸만테가 목젖을 심하게 건드려 기침 폭발 사태가 일어났다. 시음장의  눈총 화살이 온몸에 꽂힌다. 참을수록 터지는 눈치 없는 기침은 강제 퇴장당해 병원에 실려가는 상상으로 치달았고 일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비대면 시대의 대면 행사는 일장일단을 되뇌이게 한다. 거리두기 의무는  40인 정원 버스를  20인으로 반토막 냈으니 공항리무진 버스의  쾌적함이란 호박이 넝쿨째 떨어진 셈이다.  ‘NO 마스크, NO 탑승, 손 소독 PLEASE!’를 외치는 기사 아저씨. 언제 버스기사님이  나의 건강을 이렇게  챙겨 준 적이 있던가!  그분이 소독한 등받이 식탁, 손걸이, 좌석 커버에서 풍기는 알코올 냄새가 샤넬 넘버 5 향수보다  더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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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툼의 그리스 유적지. 헤라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50년 앞서 지어졌다. 사진 © Wikipedia>
       

 

 

캄파니아의 작은 그리스

 


페스트균조차 박멸시켜 버릴 기세의 버스는 캄파니아주 제2의 항구도시 살레르노를 지나 칠렌토 지역에 들어선다. 티레니아 해안선과 방향이 같은 서해안 도로는 드넓은 모래사장과 그 위에 줄을 맞 춘 파라솔 열을 지나친다. 9월 초 해안은 해수욕을 가능케 하는 캄파니아주 더위와  관광산업 저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칠렌토는 현지 주민이 붙인 이름이고 행정상으로는 살레르노 지방(province)이 정확하다. 이곳의 수도는 페스툼Paestum이며  외국인은 파에스툼이란 지명에 익숙하다. 현지인과 대화할 때 발음에 유의할 것. 타지인은 들리는 대로 발음한 것뿐인데 정색을 하고 페스툼으로 정정해준다. 페스툼의 곰삭은 자존감은 불손함을 허락한다.


페스툼은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와  함께  축성 당시의  형태가 잘 보존된  양대 그리스 신전이다. 도리아 기둥 서너 개가 남은 옛터나 붕괴진 건물을 복원한 감질나는 유적이 아니다. 신전 공사는 이탈리아  허리 밑부분이 마그나 그라이키아 제국의 영토였을 때 착공했다. 가장 먼저 완성된  헤라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50년 앞서 지어졌다. 캄파니아 인기 관광루트인 나폴리, 아말피 해안, 카프리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아테네나 시칠리아로 물 건너가지 않아도  고대 그리스를 향유할 수 있어  근접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리스가 남긴 그리스 맛

 

                                                     
페스툼은 그리스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맛도 선사한다. 페스툼 와인과 칠렌토 와인이 그것인데, 간단하게 품종명을 따서 피아노Fiano와  알리아니코Aglianico 로 통용된다. 품종 어원을 기록한  자료들은 두 품종이 그리스가 원산지임을 주장한다. 피아노는 어원이  아피아 Apia로  거슬로 올라가며 아피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발견된다. 알리아니코는 ‘그리스로부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ellenico 가 어원임을 들어 그리스 품종의 근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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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툼, 칠렌토 와인은  캄파니아주 최남단이 생산지다(사각형 안)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으로  두 곳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스 품종이란 이유만으로  캄파니아  품종으로 전향된 건 아니다. 열매를 적게 맺지만 강인한 풍토 적응력이  여럿 이유 중 최우선이다. 화산토양, 미세하고 단단히 뭉쳐있는 점토와 석회석 토양, 느슨한 결합력을 갖는 모래토를 가리지 않는다. 작열하는 태양을 머금은 습한 해풍을 쐰 포도는 아로마 품종으로 오인될 만큼 향기롭다. 티레니아 해의 위력은 열매 속 염도 치를 높여  얼얼한 맛으로 구체화 된다. 


 

에필로그

 


페스툼과  칠렌토 와인 생산자들은 관광지의 후광을 톡톡히 누린다. 판매량의  60~80%는 관광객들로 부터 온다. 후광은 한편으로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홍보를 따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팔리니 주경계 밖을 탐낼 이유가  없었다. 그리스와 끈이 닿는 역사에 비해  칠렌토 와인은  DOC 원산지 등급 승인을  1989년에,  페스툼 와인은 그보다  느린  2004년에  IGP를 받았다.


아래에서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에 안주하지 않고  품질로 홀로서기 한 두 생산자를 소개한다.

 


San Salvatore 1988 . 산 살바토레 1988 와이너리

 


호텔사업과 버팔로 모차렐라 치즈로  성공을 거둔  주제페 파가노 씨가  2005년 설립했다. 불혹에 접어든 주제페 회장이 던진 마지막 카드로, 필드에서 익힌  사업 감각을 와인 용광로에 녹였다. 23.5헥타르 크기의 포도밭은  페스툼과 이웃하는 마을에 모여있으며 유기농법으로 가꾸어진다. 주력 와인인  피아노와 알리아니코는 선이 굵고 직선적이며 지중해의 이국적 정취를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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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Trentenare,  Pian di Stio,  Gillo Dorfles 와인>

 


Trentenare IGP Paestum Fiano  2019

(피아노 품종. 알코올 13도)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6개월 숙성했다. 복숭아, 무화과, 귤, 금작화(genista), 잔디 향이 잘 어우러진다. 아몬드 여운이 입안에  진하게 퍼지며  짭짤함이 무게감에 기여한다.

 


Pian di Stio IGP Paestum Fiano 2019 
(피아노 품종. 알코올 13도)


숙성 방식이 위 와인과 같으나 포도밭 고도가 550~650미터에 달한다. 사루비아, 청사과, 라임향에 페트롤 향이 겹친다. 선명한 산미는 다채로운 맛을 선사한다. 

 


Gillo Dorfles IGP Paestum Aglianico 2015 
(알리아니코 품종.  알코올 14.5도)


산 살바토레가 매년 출시하는 연작 와인이다. 화가 Gillo Doffles가 매년 작황을 시각적으로 함축해 라벨로 보여준다. 흑자두, 체리, 감초 향이 감돌다가 향신료, 건초, 오크향이 뒤따른다. 매끄러운 타닌은 입안을 서서히 조여 오면서  묵직함을 남긴다. 

 

 


칸띠네 바로네 Cantine Barone 와이너리


페스툼에서 내륙 쪽으로  20km 달리면  풍경은 산촌으로 급변한다. 겉옷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되고  어묵 국물의 훈훈함이 그리운 쌀쌀함이 공기에 서려있다. 현지인들은  찬 음식인  모차렐라나 생선보다는 숙성한  까초까발로 치즈나 고기를 주식으로 삼는다.


16년 전 다른 직업,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세 친구는 모두의  꿈이 와인임을 확인하자 동업 와이너리를 세운다. 포도밭 터를 루티네 마을로 정한 데는 플리쉬 토양의  이점이 컸다. 점토와 석회석 결합 층인데  여름 가뭄기에도 포도뿌리 주변 토양은 축축하다. 일교차가 심해 수확적기가  9월과  11월에 몰려있다. 9월에 수확한 포도로는 아로마 위주의 기분 좋은 와인을, 11월에 거둔 포도는 오래 놔둘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와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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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Una Mattina, Vignolella,  Pietralena, Primula Rosa 와인 >

 


Una Mattina Fiano Biologico 2019
(피아노 품종. 알코올 13도)
포도밭과 태양, 라벨 이미지가 보여주는 메타포다. 기상한  세 친구의  눈에 비쳤으면  하는 첫 풍경들이다. 깔끔하며 세련된 복숭아, 서양배, 레몬, 들꽃 향을 피운다. 산뜻한 산미, 짠맛과 아몬드 풍미가 남기는 여운이 정갈하다. 

 


Primula Rosa IGT
(알리아니코. 알코올  14%)


연보랏빛이 식탐을 부른다. 달콤한  딸기, 라즈베리와  핑크빛 장미 향이 화사하다. 상큼하나 신맛이 적절한 산도와 감칠맛 도는 쌉쌀함이 여운의 끝을 늘린다.

 


Pietralena Cilento Aglianico 2018

(알리아니코. 알코올 14도)


라즈베리, 체리, 장미, 후추 등의 아로마 향을  피운 뒤 숲의  습함, 말린 들꽃, 감초 향이 따라온다. 매끄러운 타닌, 타닌이 스친 후  와인의  강건함과  힘이 입안에 맴돈다.

 

 

 

※ 이 글은 "캄파니아 와인의 양대 지존. 이르피니아와 산니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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