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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Stephane SON (sonwine@daum.net)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1999년 귀국 이후 중앙대학교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 한국 와인 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 와인연구소>를 설립,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와인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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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책임지는 3가지 직능 분야가 있다. 그중 한 파트는 수입 파트로서, 아직까지 한국 와인 시장의 절대 수량은 외국 주요 산지에서 생산 수입되는 와인이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손진호의 와인피플 칼럼을 열며, 지금까지 수입업계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인터뷰 해 왔다. 그런데 똑같이 중요한 다른 파트가 있으니, 바로 소믈리에와 와인숍 오너들이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고객을 직접 상대하며 와인을 판매한다. 특히 소믈리에는 레스토랑이나 전문 와인바에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최전선에서 와인을 전파하는 와인 전도사이다. 멋진 제복을 입고, 소믈리에 배지를 달고 활동하는 이들은 얼핏 밖에서 보기에는 대단히 화려하고 멋있게만 보일 수 있지만, 업장의 문을 열고 마감을 하는 모든 순간이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인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다.
 
본 칼럼은 대한민국 대표 소믈리에들의 여러 면모를 살피고 증거 하며, 한국 와인산업을 성장시킨 최선봉 일꾼으로서 이들에게 합당한 오마주를 보내고자 기획하였다. 한 업장의 직원으로 소개할 수도 있고, 오너라면 해당 업장의 특성과 함께 소개할 것이다. 첫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당연히 누구를 먼저 인터뷰 할까였다. 나이 순으로…? 경력 순으로..? 아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순으로…? 이런 나의 고민을 말끔히 날려 준 타이틀이 하나 있으니, 바로 한국 소믈리에 협회장이라는 직함이었고, 여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진 않겠다 싶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새로운 칼럼 손진호의 쏨-열전 첫 인터뷰 대상자는 상민규 협회장이 되었다. 그는 서울 강남의 학동사거리 인근에 한 와인 바를 가진 오너 소믈리에이기에 그의 홈그라운드에서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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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살기 위해 선택한 직업, 소믈리에
 
뜨거운 여름의 태양 볕을 피해 한달음에 뛰어 올라간 2층의 와인바는 다소 어두웠는데, 그 어둠이 시각적인 시원함을 주었다. 부드러운 미소로 반갑게 맞이하는 상민규 대표, 자주 본 얼굴이지만 오늘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다. 상민규 소믈리에 하면 나는 먼저 파마머리가 떠오른다. 인터뷰 첫 부분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 파마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역시나 필자와 똑같은 이유(?)로 파마를 했다고 한 그는, 파마 덕분에 좀 더 부드럽고 서구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듯하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갖는 외형적인 화려함과 서구적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디캔터 안에서 피어 오르는 노란 튤립 같은 와인의 향기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호텔학과를 선택했다는 상 대표는 호원대학교 호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산학 실습 중 알게 된 그랜드 힐튼 호텔에 취직이 되었다. 이곳에서 7년간 호텔리어로 근무하면서 서비스 업계의 잔뼈가 굵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서비스업이 인정을 잘 받지 못하였고 육체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인생을 변화시킬 새로운 전기를 모색해야만 했다. 그때 한 선배로부터 와인에 대한 비전을 듣고 그는 96년부터 와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일본에서 해마다 발행되는 『세계 주류 대백과 사전』을 보면서 독학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호텔에서 하우스와인으로 사용했던 페폴리 Peppoli 와인부터 시작해서 와인 맛을 보기 시작했다니, 그야말로 유럽 와인의 정통이자 기초인 끼안띠 와인부터 시작한 셈이다. 차근차근 와인 지식을 준비한 그는 때마침 청담동에 불기 시작한 레스토랑 오픈 붐에 맞추어 시안이라는 레스토랑의 창립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카페74를 거쳐, 강남역의 바인시티에도 근무하였고 이런 다양한 경험을 인정받아 드디어 상민규 소믈리에와 이름을 같이한 까사델비노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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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델비노와 상민규
 
까사델비노 시절에 그는 자기의 역량을 최고도로 단련하게 된다.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와인바였고 고객들의 수준도 높았기 때문에, 이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와인 실력은 일취월장 하였다. 특히 2006년과 2007년의 소펙사 소믈리에 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이 대회들에서 입상하여 프랑스 와인투어를 가게 된 것이 그의 와인 지평을 넓혀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보르도, 알자스 등 당시 한국 시장에 많이 들어와 있는 고급 양조장들을 직접 보면서 현지 오너와 대화를 나누었던 경험을 그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때 그가 만난 특별한 양조자와 특별한 와인 샤또 테르트르 로트뵈프 Tertre-Rôteboeuf (오너 프랑수와 밋자빌 F.Mitjavile)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와인의 거성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장장 5년간 까사델비노의 터줏대감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운영 능력과 인적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하였던 것 같다. 5년의 기간 동안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았을까마는, 그가 느낀 최대의 보람과 희열은 바로 부르고뉴 피노와 관련된 스토리였다. 2007년 부르고뉴의 고급 피노 누아가 다양하게 들어오기 시작할 때, 한 수입업체에서 대량 거래 조건으로 좋은 가격으로 줄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경영진에서는 반대했지만 상 대표가 자신 있게 관철하여 와인을 사들였고, 그 피노를 다 판매하여 회사에도 큰 수익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큰 보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상민규=피노 누아" 라는 등식이 나왔을 정도였다니…
 
 
<뱅114>를 오픈하다
 
이름이 특이해서 물어 보았다. 프랑스어로 와인을 뜻하는 단어 뱅 Vin 과 강남구 청담동 1-14번지에 위치하여 고객들이 기억하기 쉽게 뱅114 로 명명하고 오픈하였단다. 물론 114가 전화번호 안내 번호인 것처럼 와인의 안내 번호라는 의미도 있다. 2010년 3월, 리먼 사태 이후 한국의 와인 시장이 많이 힘들어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상 대표는 과감하게 오너 소믈리에라는 새로운 타이틀에 도전하였다. 올해로 5년을 넘어 6년째로 접어 드니 경영은 안정권에 접어 들었다고 보는데, 주요 고객층은 패션, 광고, IT산업, 럭셔리 업계 등으로 고객층이 두텁다. 연예인 중에는 박진영이나 김수로, 수지 등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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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 구조는 테이블과 룸 위주의 다른 와인바와는 달리 바 Bar Top 위주로 디자인되어 있어 고객과의 소통이 원활하여 친밀성이 용이할 듯하다. 뱅114가 고가 와인 매출이 높은 대표적인 와인바라는 소문이 있는데, 아마도 업장의 구조 상, 어디서도 오너나 소믈리에들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기에 여기서 형성된 신뢰가 매출의 기본 바탕이 되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소통은 신뢰를 낳고 신뢰는 주머니를 연다.
 
업장 마케팅의 기술을 묻는 나의 질문에, 특별한 것은 없고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 것에 모든 최선을 다한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도 이 업장을 찾느라 몇 번 고생했거니와, 2층인데다가 간판도 뚜렷하지 않고 입구도 골목 쪽으로 나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 들어 오는 고객들은 거의 없을 듯하다. 결국 단골 고객이나 소개받아 내방하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바에 앉아 소믈리에와 대화하며 와인을 이해하고 즐기는 단골 애호가들이 많다는 얘기다. 내가 인터뷰하러 들렸을 때도 대부분의 고객들이 바를 우선적으로 찾고 있었다.
 
이쯤에서 뱅114에서의 에피소드 하나. 베테랑 소믈리에인 그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나 보다. 부드러운 보르도 와인을 원한 고객에게 물리스 Moulis 지역의 샤또 뿌조를 추천했는데, 1시간 후 엄청난 타닌과 풀보디감을 나타냈을 때의 당혹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와인의 빈티지가 2005년이었다. 한번은 드라이하고 무거운 와인을 원한 고객에게 반대로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추천했는데, 그 고객은 오히려 피노의 섬세함과 복합미에 반하여 그 이후로 피노만 찾게 되었다고 한다.
 
뱅114에는 김지혜, 정락미 두 여성 소믈리에가 함께한다. 필자가 인터뷰를 위해 여러 번 방문했을 때마다 이들의 세련되고 차분한 서비스에 매료되었다. 뱅114의 명성에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찾아갈 때마다 느낀다.
 
 
<뱅114>의 와인 리스트
 
와인 리스트는 매우 묵직하며 대단히 클래식했다. 내가 좋아하는 미색 종이에 글씨도 크고 글씨체도 판독이 명료했다. 몇몇 와인바들은 디자인만 중요시하여 펄 바탕에 글자 크기도 매우 작은 경우가 많은데, 와인바는 밤에 영업하기에 어두운 곳에서 글씨를 읽어야 하는 중년 고객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와인 포트폴리오를 살펴 보았다. 전문 와인바로서 600여 종의 리스트를 자랑하며, 다른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와인이 유난히 많았다. 보르도 그랑크뤼 등 고급 와인에서부터, 특히 샤또 뿌조, 샤또 푸르까스 뒤프레 등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을 많이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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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대표는 특히 샴페인과 부르고뉴 와인에서 가장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필자가 본 것은 샤또 테르트르 로트뵈프의 5개 빈티지 컬렉션과 "100 points wine selection" 이라고 하여, 와인스펙테이터(WS)나 와인애드버케이트(WA) 등에서 100점 만점을 받은 와인 9종이 영웅처럼 포진되어 있었다. 또한 375ml 반병짜리 와인 리스트도 꽤 되었다. 와인숍에는 더러 있으나 와인바에는 드물다. 한 병을 마시기 부담스러운 고객을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와인 리스트에 관한 한 상 대표의 철학은 명료하다. 가능하면 직접 와인을 시음한 후 선정한다. 그리고 리스트를 매월 바꿔주는데, 살아 있는 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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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114>의 음식
 
뱅 114를 운영하는 상 대표의 긍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오너-소믈리에로서 일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의 성공 이면에는 남모르는 협력자가 있다. 바로, 설립 때부터 함께한 이명수 셰프이다. 그는 특급 레스토랑 뺨치는 요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필자가 맛본 몇 가지 음식의 소감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큼지막한 참소라가 살짝 튀겨져 가득 들어간 로제 소스의 참소라 구이. 참소라의 질감은 정말 탱탱한데, 문제는 다소 평이할 수 있는 로제 소스, 그런데 소스를 자세히 보면 생마늘 즙이 군데군데 들어 있어 이 부분을 먹으면 입맛을 짜릿하게 돋구어준다. 고객에게 선택권을 준 기가 막힌 레시피다. 또 다른 음식은 알리오 올리오 링귀니면 파스타. 생면으로 만든 이 파스타는 면발을 도톰하게 뽑아서 퍼지는 것을 방지했고 알단테로 잘 익혀 나와 꼬들꼬들했다. 녹색 채소와 붉은 토마토의 색상 조합도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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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먹은 사프란 소스의 리조또. 이른바 리조또 알라 밀라네제다. 이렇게 잘 만든 사프란 리조또는 정말 오랜만이다. 롬바르디아 포강 평원에서 자란 현지 햅쌀을 가져 와 만든 듯한 식감을 어떻게 한국 쌀로 재현해 내었을까?! 그리고 화려하고 정열적인 사프란의 쟈메이카 옐로우 컬러는 식욕을 마구 돋구었고, 사프란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그 특유의 쌉싸래한 미네랄 풍미가 압권이었다. 이번 인터뷰 내내 천천히 마시고 있는 샤또 무사르 블랑과도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마지막 요리는 찹쌀순대구이. 뱅114의 대표 메뉴다. 한국식 순대를 요리로 승화시켜 유럽 정통 와인과 어울리게 만든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데도, 셰프는 졸인 발사미꼬를 듬뿍 뿌리고 코팅하듯 가볍게 팬에 튀겨 내어 풍미와 식감에서 유러피언의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허브로 비린내를 잡았고, 아스파라거스, 버섯을 가니쉬로 배치해서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식감을 잡아 주었다. 뱅114는 이제 단순한 안주를 제공하는 와인바가 아니라 내실 있는 명품 음식을 내는 와인 레스토랑이다. 이 모든 음식을 만든 이가 이명수 셰프다. 그가 창립 멤버라니, 더욱 감사하다. 방송국에서 냉장고를 부탁할까 봐 두려워진다.
 
 
소믈리에는 나의 천직
 
상민규 대표는 2014년에 2년 임기의 한국 소믈리에 협회장에 당선되어 이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협회는 1988년 설립되었고 약 500명 정도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모두 현직에서 일하는 소믈리에로 구성되었다. 이 점에서 여타 소믈리에 단체와 다르다. 협회의 활동으로는, 주류 박람회에서 소믈리에관을 운영하고 와인수입사와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며 와인 산업에 공헌한다. Sommeliers Best Choice 라는 품평회를 만들어 2015년 2월에 첫 품평회를 열었고 와인 평가와 소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협회가 한국 소믈리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산업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상민규 대표에게 와인 산업은 그의 삶의 터전이고 소믈리에는 천직이다. 그는 한국 와인 산업의 미래 전망을 폭발적이진 않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다양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고, 더욱 더 많은 전문 소믈리에가 각광 받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업장의 매출을 올려주고 고객을 만족시키고 자기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 멋진 소믈리에"라고 말하는 그는, 훌륭한 소믈리에가 갖추어야 할 자질로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고객에 대한 봉사, 와인에 대한 애정, 동료에 대한 헌신. 소믈리에의 삶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오너 소믈리에게는 그런 것은 없다. 있다면 가게를 접으면 된다."라고 단호하고 시원하게 대답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 15년 정도 더 오너-소믈리에로서 일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본인의 와인 이력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억에 남는 인물을 묻자, 상 대표는 외국의 유명한 소믈리에나 생산자가 아니라 업계 동료인 이종화 소믈리에를 꼽았다. 가장 오래된 와인 친구이자 와인에서 최고의 동반자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음 인터뷰 대상자가 결정된 셈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Domaine dAuvenay가 한 해에 35병만 만드는 Criot-Batard Montrachet를 마실 것이라는 상민규 소믈리에. 지천명 知天命의 나이를 향해 가는 그가 떼루아 Terroir와 하늘의 이치를 모두 섭렵하는 최고의 소믈리에가 되길 기원해 본다.
 
< 상민규 소믈리에와 함께 한 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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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Musar Blanc, Gaston Hochar, Bekaa Valley, Lebanon, 2004
샤또 무사르 블랑, 레바논
 
 
와인 중에는 한 달에 2~3번 이상 마시는 와인도 있고, 어떤 것은 수년에 한 번씩 마시게 되기도 한다. 샤또 무사르 블랑, 이런 와인이 대표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가격이 비싸서도 아닌데, 구하기 힘들어서일까? 이런 와인들은 평소엔 잊고 있다가 불현듯 접하면 엄청난 감동을 받곤 한다. 그야말로 폭풍 감동의 와인이다. 샤또를 붙였으나 보르도 와인은 아니고, 거기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열사의 중동, 레바논의 와인이다. 1930년, 그 이름이 레이블에 나와 있는 가스똥 호차르 씨가 설립하였고, 1959년부터는 최근 작고하신 세르쥬 Serge 씨가 생산해 왔다. 레바논 해안 산맥 뒤편의 베카 밸리 내부에 포도밭이 있는데, 1980년대 레바논 내전 때도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토착 품종인 메르와흐 Merwah, 오바이데흐 Obaideh 는 태생적으로 산화에 좀 약한 측면이 있는데,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화이트 올빈이거나, 이탈리아 프리울리의 자연주의 와인 느낌이 난다.
 
18K 골드 빛깔의 영롱함이 눈부신, 잘 익은 살구 색상이다. 다소 뉴트럴한 초반 풍미를 날려 보내면, 은은한 모과향과 구수한 너트향이 서서히 올라온다. 잘 익은 살구와 꽃향기가 충만한 가운데, 살짝 의도된 산화 느낌이 뱅 존느 Vin Jaune 같기도 하다.
 
더운 중동 출신이라 너무 차갑게 하면 자기를 보여 주지 않는다. 우린 14℃ 정도로 마셨다. 미디엄 풀보디, 신선한 산미, 충만한 질감과 농밀한 밀도, 가벼운 알코올 감에 반 병 넘어 다 마셔도 몸이 편하다. 전체적으로 정결하고 우아한 여인의 고아한 자태를 닮았다. 그래서…울 어머니 팔순 식탁에 꼭 올려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먹은 음식은 앞서 언급한 Risotto alla Milanese 이다. 그 전형적인 노란 색상과 사프란 특유의 알싸한 미네랄 풍미가 이 와인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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