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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음을 실감하는 것은 따사로운 햇살이나 무딘 바람 때문도, 행인들의 가벼워진 옷차림 때문도 아니다. 이른 오후 나른한 기분과 함께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그제서야 비로소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된다. 심할 때는 의식까지 몽롱하게 만들어버리는 봄의 마술. 다행히도 단 한 모금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와인이 있으니,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産 화이트 와인이 그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와인을 만든다고? 물론이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포도 재배 역사는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세시대에는 다른 와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수도사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았다. 다만 1990년대 중반까지 오스트리아 와인은 대외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와인전문가들은 오스트리아가 유럽 중동부에서 가장 풍미가 독특하고 흥미로운 와인을 생산한다는데 동의한다.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와인은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와인의 순도(purity)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자연히 오스트리아의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의 타고난 풍미를 명확히 드러내려 노력하며, 그런 이유로 화이트 와인의 오크통 발효처럼 풍미를 덧붙이는 기법은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신중을 기한다.


오스트리아 화이트 와인의 특징 오스트리아 포도밭 면적의 3분의 2는 청포도 품종이 차지한다. 대표적인 청포도 품종으로는 리슬링이나 샤르도네 같은 국제 품종과 고유 품종인 그뤼너 벨트리너를 들 수 있는데, 전체 포도밭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그뤼너 벨트리너가 압도적이다. 오스트리아의 화이트와인은 대부분 드라이한 스타일로 양조되며, 덕분에 힘과 우아함 사이에서 경이로울 만큼 놀라운 균형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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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의 특징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은 종종 바닐라 뉘앙스와 복숭아 등의 핵과일 향으로 시작해서 폭발적인 백후추 향으로 마무리된다(위 이미지는 그뤼너 벨트리너 품종의 여러 가지 아로마를 보여주고 있다). 와인의 스타일은 포도가 자란 토양과 수확량 등에 따라, 가볍고 산도가 높은 스타일에서부터 잘 익은 과일 풍미가 짙게 드러나는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그녀의 칼럼에서 "고급 와인 애호가라면 오스트리아 와인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잘 나가는 레스토랑이라면 와인리스트에 최소한 오스트리아의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 한 종쯤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뤼너 벨트리너와 어울리는 음식 그뤼너 벨트리너는 어울리는 음식의 범위가 매우 넓다. 촘촘하고 강건하며 적당한 무게감과 균형, 힘과 세련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아시아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생선이나 육류 요리, 전채 요리, 딤섬이나 스프링롤 등등 실로 다양한 음식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은 음식의 풍미를 해치지 않으며, 높은 산도가 신선하고 상쾌한 맛을 더해 식욕을 제대로 돋운다. 숙성을 통해 산도가 잘 다듬어진 (단, 오크 풍미는 없어야 한다) 와인일 경우 한식처럼 감칠맛 나는 음식과 완벽한 조합을 이룬다.


국내에 유통 중인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 몇 가지 대표적인 브랜드를 살펴보면, 아래 사진 왼쪽부터 Hillinger(비노파라다이스 수입)Huber Markus(LB와인 수입), Schloss Gobelsberg(나루글로벌 수입), Ott(레드 슈가 수입) 등이 있다.

Hillinger의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은 가벼운 보디감에 녹색 사과를 연상시키는 신선한 산도와 은은한 백후추 향을 지니고 있으며 해산물이 들어간 샐러드나 핑거 푸드 또는 초밥 등과 잘 어울린다. 7도 정도의 온도로 시원하게 해서 마실 것을 권한다.

Huber Markus의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은 맛있는 산도와 유연한 질감 그리고 짙은 풍미가 특징인데, 오스트리아의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이들에게 반드시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Schloss Gobelsberg의 와인은 잘 익은 과일 향이 짙고 입 안에서 풍성한 과일 풍미가 명료하게 드러나며 품종 특유의 신선한 산도가 느껴진다. 이 와인 역시,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에 대한 첫걸음을 떼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Ott의 와인은 자연주의에 기반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만들며, 향수를 뿌린 듯 향기롭고 미네랄의 뉘앙스가 드러나며 질감이 놀랍도록 매끈하다. ‘한 차원 높은’ 또는'다면적인’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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