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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와인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기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와인을 권하는 편이다. 하지만 “와인만 마시면 머리가 아파, 과실주라 그런가 봐” 또는 “와인은 나랑 안 맞는 술인 것 같아” 라며 와인을 거부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두통의 시달림 없이 수 년째 와인을 마셔왔기에, “자주 안 마셔서 그래, 자주 마셔봐” 라며 그들을 회유하지만 결과적으로 독한 소주와 배부른 맥주에 참패하고 만다. 두통 때문에 맛있는 와인을 함께 마시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와인과 두통에 관한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두통을 유발하는 주요 용의자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것은 바로 무수아황산이다. 와인은 포도의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이 과정에서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무수아황산을 첨가한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와인병 뒷면에 무수아황산 포함이라는 표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수아황산은 유황화합물의 일종으로, 일부 방부제로 사용되며 와인이 산화작용에 의해 식초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와인은 무수아황산을 포함하고 있는데, 자연적으로 생성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발효 마지막 단계에 첨가한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와인과 두통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스트롬 서먼 상원의원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와인의 후면 라벨에 ‘무수아황산 함유(Contains Sulfites)’라는 문구를 표시하도록 하는 법규를 만들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한 병에 함유된 무수아황산의 양이 참치 캔이나 견과류 한 봉지에 들어있는 무수아황산의 양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참치 캔이나 견과류에는 이런 경고 문구를 표시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통 와인 한 잔에 10mg, 말린 살구 50g에 112mg의 무수아황산이 함유되어 있으니, 표기되지 않았을 뿐 말린 살구가 와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무수아황산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참치 캔이나 말린 살구를 먹고 두통에 시달린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와인에만 적용되는 무수아황산 함유 명기 법규 때문에, 와인을 마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통의 원인을 무수아황산 탓으로 돌린다.("Wine Headache? Chances Are It’s Not the Sulfites")
실제로 무수아황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1% 미만에 불과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만성 천식환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 와인에 포함된 무수아황산이 두통을 일으킬 확률은 매우 낮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와인을 마신 뒤 따라오는 두통의 원인이 단백질이나 히스타민 등 와인에 함유된 다른 성분 때문일 지도 모른다. 또는 레드 와인의 타닌이나 알코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민한 와인애호가들 중에는 무수아황산을 함유하지 않은 와인을 찾는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산화 방지 역할을 하는 무수아황산이 전혀 첨가되지 않는다면, 와인이 시장에 유통되는 순간 빠르게 산화가 진행되어 와인 식초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자 역시 무수아황산이 들어있지 않은 와인을 몇 차례 시음해 보았는데 왠지 입맛이 심심하고 산화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시음한 와인 중에는 호주의 컬트 와인으로 알려진 몰리두커(Mollydooker)도 포함되어 있는데, 몰리두커의 와인메이커는 무수아황산을 대체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수 차례 실험 끝에, 스낵에 사용되는 자연보존제인 질소가 무수아황산을 대체하기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무수아황산 대신 질소를 넣은 이 와인은 민감한 와인애호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편, 몰리두커의 와인메이커는 질소를 함유한 와인을 잔에 따르는 요령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와인의 마개를 열고 와인 잔을 절반 정도 채울 만큼 따른다. 2) 와인을 마개로 다시 막고 병을 흔들어준다. 이 때 와인에 용해되어 있던 질소가 미세한 기포의 형태로 떠오르는데, 3) 마개를 열어 기포가 병 밖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2)~3)의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한다.("Do the Mollydooker "Shake"") 이렇게 하는 이유는, 와인 속의 질소를 제거하면 입 안에서 느껴지는 와인의 질감이 훨씬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남부 론의 샤토 드 보카스텔(Chateau de Beaucastel)을 소유하고 있는 페랑 가문(Perrin Family) 역시 무수아황산을 넣지 않고 와인을 만든다. 그들은 와인 속의 효소 때문에 와인이 산화된다는 것을 발견했고, 포도를 특정 온도에서 짧게 가열하면 이 효소를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포도를 으깨기 전 약 90초간 섭씨 80도의 뜨거운 파이프에 통과시키는 페랭 가문의 기술은 1951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무수아황산을 함유하지 않은 와인을 만드는 와인생산자들이 여럿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무수아황산이 두통을 일으킨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무수아황산 때문에 두통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수아황산이 들어있지 않은 와인을 마셨을 때에는 두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지 직접 비교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와인에 따른 오해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는 와인애호가로써, 명쾌한 해답이 담긴 연구결과가 하루라도 빨리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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