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참이 곧 비어 있음
글 _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 우리는 잔에 코를 먼저 들이민다. 그러면 그 와인 잔 속에 모여 있는 향을 코로 빨아들이고, 신경세포는 그것을 감지하여 우리의 뇌에 전달한다. 우리는 그것을 와인의 아로마라고도 부른다(이 글에서는 향이라고 지칭하자). 그 향이 우리 눈에 보이는가? 아마도 엄청난 원자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면 그 향이 실질적으로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이 좁은 시력으로는 도무지관찰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 향은 거기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향을 “인식”한다.
존재하되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 머리 위의 공기를 허공이라고도 부르지 않던가?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과연 진공,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초신성이 폭발하고 나면 그 에너지의 1%만이 빛과 여러 입자로 퍼져 우주로 흩어진다. 그러나 나머지 99%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우주 공간은 텅 비어있는 공간일까 아니면 진공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일까?
인간의 영혼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유물론적 사관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관점인데, 사실 유물론은 매우 과학적이다. 즉, 관찰이 불가능하고 증빙이 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간주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래서 유물론적 사관에서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바깥을 보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이 단순히 기관들의 유기적인 조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란 말인가? 유물론적 관점에서 그래서 영혼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설명되지 않으므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지금 물리학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비어 있음이 비어있느냐”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의 연구들은 그 빈 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입자로 가득 차 있다는 가설로 접근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감지를 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만 우주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나머지 99%의 에너지가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풀어야 하는 문제는여전히 오묘하기 그지없다.
와인을 성분으로 해부하면 (유물론적 관점에서는) 정형화될 수 있다. 그래서 포도원은 Technical Sheet에 산도나 알코올 등 각종 성분에 대한 것을 기재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와인이기 때문에,결국 정교한 훈련을 받은 테이스터가 사람의 몸을 도구로 그 와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 과정을 거쳐 와인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존재를 실체화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을 뿐, 와인에는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과학이 영혼의 존재를 밝히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입증되고 일반화된다면 영혼이라는 것마저도 물질의 범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실 물질과 물질이 아닌 것에 대한 구분마저도 의미가 없어지게 될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떠나서 자신의 개성을 찾고, 그 개성에 맞는 세상의 어떤 것을 좆아서 살아간다. 그래서 제각각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이 추상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한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변은 빈 것 같아도 가득 차 있는 것이고, 가득 차 있어 보여도 원자의 단위에서 보면 실상 그것은 텅 비어있는 것이다. 극미세의 세계와 전우주의 큰 테두리가 하나의 범주로 합쳐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단지, 와인의 아로마 사이를 헤엄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와인 한 잔, 와인의 아로마, 그리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모든 교감 하나하나가 가득 찬 텅 빈 공간 속에서 와인과 내가 하나로 섞여가는 묘한 물리적 과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