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타쥬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일정이 조금 빡빡했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론(Rhone)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다.
처음 와인을 마시기 시작할 때 맛보았던 꼬뜨 로띠(Cote Rotie) 와인의 정열적인 후추향에 반해 와인에 빠져들기 시작했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여기까지 온 이상 론을 보지 않고는 차마 한국으로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론은 Northern Rhone 과 Southern Rhone 으로 나뉘어 지는데 나는 시간 관계상 북쪽의 에르미타쥬(Hermitage)만을 둘러보기로 했다.
에르미타쥬라는 이름은 은자의 암자(Hermitage)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남프랑스의 알비타 이교도를 무찌르는데 참여했던 십자군 기사였던 가스빠르 드 스테릴베르크가 자신의 잔혹했던 과거를 참회하기 위하여 이 마을에 은거하면서 암자를 짓고 포도원을 일궈 와인을 빚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자기가 빚은 포도주를 대접하곤 했는데 그 와인이 유명해져서 결국 이 지역의 지명까지 에르미타쥬가 되었다. 에르미타쥬의 정상에는 아직도 이 작은 교회가 남아있어 이 지역의 유명한 상징물이 되었다.
Tain l'Hermitage 기차역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로 한참을 넋이 나간 듯이 정지해 있었다. 기차역에서 올려다 본 에르미타쥬 포도밭의 모습이 너무나도 장엄하고 위풍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부르고뉴의 포도밭이 야트막한 언덕에 평화로이 펼쳐져 있었다면 에르미타쥬의 포도밭은 그 와인에서 느껴지는 정열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향처럼 포도밭 또한 급경사의 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에르미타쥬의 포도밭은 마치 당장이라도 기차역을 덮쳐버릴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르미타쥬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엠.샤푸티에(M.Chapoutier)를 방문하였다.
엠.샤푸티에의 직원은 친절하게도 포도밭까지 에스코트 해주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와인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엠.샤푸티에의 와인메이커는 기계가 포도밭에 들어가게 되면 그 고유의 토양과 자연환경을 망친다고 생각해서 모든 포도를 100% 손으로 수확한다고 한다. 포도밭은 심한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어 풍화나 침식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화강암질의 토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산의 기슭과 정상이 또한 각각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위치에서 수확된 포도를 따로 관리하며 각기 다른 와인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내가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보니까 비가 많이 왔는지 론 강이 넘쳐 건물이 많이 잠겼더라고 걱정하니까 다행히 포도 수확이 끝난 후 비가 와서 올해 빈티지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고 한다. 나는 침수된 지역의 주민들과 건물이 걱정되어 물어본 것이었는데(강변의 건물들은 2층까지 잠겨 있었다) 와인만을 염두에 둔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못해 지나친 게 아닌가 싶었다.
- 조 희 정 -
1. 축제의 와인, 보졸레
2. 에르미타쥬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3. 엠.샤푸티에(M.Chapoutier)
4. 에르미타쥬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