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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세째날

새벽 4시 30분에 잠이 깨졌다. 시차 때문인지 저녁에는 졸립고 아침에는 일찍 잠을 깬다. 다시 자기도 뭐하고 해서 날이 밝을 때까지 새로 산 와인책을 보았다.

이 책은 프랑스와인들(주로 보르도, 부르고뉴, 론지방)을 빈티지별로 현재 팔리고 있는 가격표시를 해 놓은 책이다. 물론 와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특징들, 그리고 빈티지별 평가 및 보관기간등도 짧게 기술되어 있지만 주로 가격을 보기 위한 책이다. 예컨데 DRC의 RICHEBOURG'98의 가격은 299유로(약 42만원), '97은 229유로(약32만원)이다.

이것들은 프랑스에서의 평균 소매가격이라고 하는데, 와인을 구매할 때 상당한 참고가 된다.

또 하나의 책은 [CLASSEMENT DES VINS DE FRANCE 2003]이다.

이 책은 'LA REVUE DU VIN DE FRANCE'라는 프랑스 제 1의 와인잡지에서 수석 와인 평론가로 있는 Michel Bettane가 프랑스 와인을 등급별로 분류해 놓고 빈티지별로 점수를 매긴 것이다. 예컨데 CH.MARGAUX 2001 : 8.5점, 2000 : 10점만점, 1999 : 9점…..

이 책의 또 한가지 포인트는 1855년 보르도등급을 떠나서 미셸 베딴느 개인적으로 등급 분류를 해 놓은 점이다. 1등급에는 기존 5개 샤또(LATOUR, LAFITE, MOUTON, MARGAUX, HAUT-BRION)에 LEOVILLE LAS CASE와 COS D'ESTOURNEL을 추가해 놓았다. 또한 CRU BOURGEOIS인 SOCIANDO MALLET는 3등급에, HAUT-MARBUZET는 4등급에 올려 놓았다. 물론 기존 등급에서 내려간 와인들도 많다.

7시에 아침식사하는 카페를 찾았다. 호텔에서도 아침식사는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파리의 명물을 찾고 싶었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르 푸케(Le Fouquet's)라는 카페와 라뒤레(Laduree)라는 살롱뒤떼(Salon du The)가 있다. 두집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의 명물이다.

푸케가 보다 대중적이라면 라뒤레는 좀 더 클라식하다.
보다 대중적인 푸케보다는 라뒤레로 가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샹젤리제 거리에 나갔다. 라뒤레는 대리석 바닥에 고풍스런 천정화가 중후하고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이 집의 명물은 '마카롱'이라는 과자이다. 13가지 ?恥瓚?동그란 과자들 속에는 진한 크림이 듬뿍 들어 있어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색상별로 맛이 다른데, 맛만 보려면 4가지 색상의 맛에 5유로 정도이다. 다른 과자 맛도 보고 싶으면 부르타뉴 전통과자인 '퀴니 아망'을 먹어 보는 것도 괜찮다.


이런 과자들은 생과일 주스와 잘 어울린다.

아침 식사후 곧바로 벼룩 시장(Marche aux Puces)으로 갔다.


파리의 벼룩 시장 중 파리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남쪽에 있는 방브 벼룩시장이다. 방브 벼룩 시장은 아침 8시30분이면 문을 열기 때문에 사람들이 붐비는 오후시간 보다는 아침이 좋다. 시장은 말 그대로 일반 보도에 펼쳐져 있는 노천 시장이며 꼭 서울의 황학동 분위기다. 상품은 고가구, 그림, 장식품, 액세서리, 완구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있으나, 막상 사려고 하면 살만 한 것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래된 와인 스크류 같은 것도 있었으나 너무 낡아 살 수가 없다. 잔뜩 기대하고 갔던 아내도 아무 것도 못 건지고 그냥 왔다.

어쨌든 오전은 시장에서 보내고 점심은 베트남 식당을 찾았다. 베트남 음식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친숙한 음식이다.

베트남 음식 중 흔히 월남 쌀국수로 불리는 '포'는 오랜 시간 우려낸 국물에 면과 얇게 저민 소고기, 야채를 넣어 만든 것인데, 민트나 우리나라 방아잎 같은 향과 맛을 주는 베트남 채소가 들어가 독특한 맛을 낸다.
이 베트남 국수는 국물이 시원하여 파리의 한국인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이 아침 해장국으로 즐겨 이용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파리의 베트남 식당은 아침부터 하는 데가 많다.
우리가 간 곳은 파리 13구 차이나 타운 쪽에 있는 '포 14'(Pho 14).


노천에 나와있는 테이블까지 꽉 차있어 잠시 기다렸다가 겨우 손바닥만한 2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으나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파리의 베트남 국수는 요즘 서울에 있는 베트남 국수와는 그 맛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첫째 그 국물이 훨씬 진국이며, 면 또한 흐물흐물한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쫀득쫀득한 맛이 있다. 아마도 월남쌀과 우리쌀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서울의 많은 베트남 음식점들이 요즘 고전하고 있는데 이 제대로 된 맛을 낼 수만 있으면 얘기가 달라질텐데…

오후 시간에는 백화점 구경을 갔다.
백화점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오 쁘랭땅(Au Printemps)이 가장 고급이었는데, 갈르리 라파이에트(Galerie Lafayette)가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유명 브랜드를 대거 끌여들여 현재는 명실공히 파리 최고의 백화점이다. 이 갈르리 라파이에트에는 '와인도서관(Bibliotheque des Vins)'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상당히 큰 규모의 와인샵이 있다.

보르도, 부르고뉴, 론등 지역별로 섹터가 나뉘어져 있고, 맨 안쪽에 있는 Vins de Millesime(Old Vintage Wines) 코너에는 와인 애호가라면 눈이 번쩍 뜨일 Old Vintage들이 진열되어 있다.

LATOUR'29, ROMANEE CONTI'45, MUSIGNY'59…. 가격은 포숑보다는 싸고 라비니아 정도 되는 것 같다.

백화점 구경으로 다소 피곤해진 우리는 호텔에 돌아와 좀 쉬다가 저녁 식사하러 나갔다.
저녁식사는 한국에서 한 달 전에 예약해 놓은 프랑스 식당이다.


세느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레 부키니스트(Les Bookinistes)라는 이 식당은 기 사브와(Guy Savoy)라는 유명 주방장이 요리하며 미슐렝 별 두개 짜리 레스토랑이다. 7시에 예약이 되어 있어 7시 5분 쯤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저녁 식사는 보통 8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나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아페리티프를 물어 본다. 키르(Kir), 키르 르와얄(Kir Royal), 샹파뉴등 대여섯가지를 얘기하면서…

끼르 르와얄을 주문하니 그다음 까시스(Cassis), 뻬슈(Peche 복숭아), 플랑브와즈(Flamboise 라스베리)등 또 한 너댓가지를 나열한다.

까시스와 복숭아를 각 각 한 잔씩 시키고 나니 그제서야 메뉴판을 3개 갖다 준다.
2개는 음식 메뉴판이고 하나는 와인 메뉴판이다.


끼르는 보통 까시스라는 열매에 화이트 와인을 블랜딩 한 것이고 끼르 르와얄은 화이트와인 대신 샴페인을 블랜딩 한 것인데, 까시스 대신 복숭아나 산딸기 등으로도 만든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끼르 르와얄은 샴페인의 톡톡 쏘는 맛에 과일 맛이 듬뿍 들어가 그 새콤달콤한 맛이 식전주로는 제격인 것 같았다. 아페리티프 안주로는 올리브가 나왔다.

와인 리스트를 보니 종류도 많았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시킨 것은 GEVREY CHAMBERTIN'00. 가격은 61유로.
그랑크뤼나 프르미에 크뤼가 아닌 것을 감안하면 꽤 비싼 편이었다.

음식들은 예상했던 대로 예쁜 접시에 아름답고 맛깔스럽게 장식되어 나왔다. 우리가 시킨 음식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앙트레로 주문한 아스파라가스 요리였다. 삶은 아스파라가스에 화이트 와인 소스와 크림소스를 곁들여 부드러우면서 감칠 맛이 있었다.

그제서야 식당 안은 빈자리 없이 꽉찼고 레스토랑은 활기를 띄었다.
식당내부는 주로 현대적인 회화와 소품들로 장식되어 모던한 분위기를 주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니 9시 30분. 배부르고 졸린다는 아내를 끌고 다시 와인바 한 군데를 더 갔다.

파리에서 와인 매니아에 가장 알려져 있다는 '윌리스 와인바(Willi's Wine Bar)'는 오페라 근처에 있었다.
빈자리가 없다는 것을 2분쯤 기다리니 카운터 앞 바 쪽에 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와인 리스트를 주는데 한 눈에 전문가들이 오는 와인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잔으로 마실 수 있는 와인의 종류가 약 40여가지(샴페인 포함). 종류도 다양하고 내용도 알찼다.

PULIGNY MONTRACHET'00 'LES TREMBLOTTES' DOMAINE HUBERT LAMY와 VOSNE-ROMANEE'99 'LES BEAUX MONTS' 1er CRU DOMAINE RION을 1잔씩 시켰다. 각각 13.5유로, 14.5유로였다.


메뉴에는 맛있는 음식들도 많았는데 배가 불러 전혀 시킬 수 없었다.
기본 안주로 약간의 감자칩과 쪽파 칩이 작은 접시로 하나 나왔다. 파를 튀겨서 칩으로 만든 것은 처음 보았는데 별미였고 감자칩보다는 그 쪽으로 자꾸 손이 갔다.


와인은 둘 다 액설런트였다.
쀨리니는 화려한 열대 과일향 특히 파인애플 향이 나며 톡 쏘는 맛도 살아 있고 뒷 맛은 달콤했다. 본느 로마네의 레보몽은 말린 자두나 건포도향에 고소한 호두향도 나고, 탄닌은 부드러웠으며 맛도 꽤 섬세한 편이었다.

본느-로마네 '레보몽' 1등급 도멘 리옹'99.
옆자리에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와 남자가 앉아 시음하면서 열심히 노트하고 있었다.
와인병을 보니 나와 같은 본 로마네 였다.

첫날 갔던 와인바 레끌뤼즈는 보르도와인 밖에 없고 일반 와인 애호가를 위한 곳이라면, 오늘 갔던 윌??병?매니아를 위한 곳이었다.
또 한가지 느낀점은 파리의 와인바들은 음식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와인바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만 마시는 경우가 많으나, 이들은 언제나 음식과 함께 즐기는 것 같다.

- 정 재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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