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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I. 스포츠와 와인의 만남.

1990년대 이후, 와인의 꾸준한 음용이 건강에 기여한다는 몇 가지 보고서들이 나오면서 "와인은 건강 주류" 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는 확산되었다. 사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 사실이 "효과"를 보려면, 몇 가지 유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규칙적으로 적은 양을 들라는 것이고, 밝은 마음으로 삶에 임하라는 권고를 하고 싶다.

정신적으로 건전한 생각, 그리고 육체적으로 땀 흘리는 운동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불노장수다. 후후, 좀 심했나?? ^^*

바로 이런 의미에서 양재동의 '스포타임'은 독특하다.

물론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런 류의 스포츠센터는 장안에 수두룩하다. 그러나 와인을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스포타임'은 또 다른 공간이다.

90년대 초반, 이 곳에서 욜씸히 땀을 흘리던 몇 몇 스포츠댄싱 멤버들이 와인클럽을 만들었다. 땀흘리고 나서 갈증나면 "게도레이~" 나 맥주가 제격일 듯 한데…웬 와인??!!

이렇게 이 그룹이 와인을 "대안"으로 선택한데는 베스트 와인의 이석기 고문의 공이 컸다. 그는 이 그룹에서 가장 열렬한 와인애호가 이다.

그는 기분이 좋으면 와인을 마시고 기분이 나쁠 때도 와인을 마신다. 혼자 있을 때도 마시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꼭 와인을 내놓는다. 갈증날 때도 찾지만, 식사 때는 어김없이 와인을 마신다. 누구나 다 그렇듯 고급 와인을 좋아하지만 보통 와인도 사랑한다.

이러한 그의 열정이 이 중년의 스포츠댄싱 그룹으로 하여금 "와인" 이라는 우아한 소재로 모임의 품격을 높였던 것이다.

바로 이들의 땀과 와인사랑이 배어 있는 곳, 그 곳에서 제4회 베스트와인 아카데미가 캘리포니아 와인을 만났다.

II. 서부의 땀과 태양, 캘리포니아 와인

캘리포니아 와인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나라식품의 노력과 수준이 한층 오늘의 시음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오늘의 와인설명은 나라식품의 허동조 이사가 맡았다. 준수한 용모에 부드러운 말솜씨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격을 드높여 주었다.

앗! 그런데… 해프닝 돌출!

베스트와인의 은광표 대표가 허동조 이사를 소개하면서 '세계 소믈리에 챔피언' 이라고 소개하였던 것!

그러나 허 이사는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이 '위기'를 잘 넘겼으며, 그의 겸손함에 주변에서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짝짝짝~

1. Stag's Leap Wine Cellars, Sauvignon blanc, 1999, Napa Valley.

정말 사슴이 뛰놀던 곳이었을까? 소비뇽의 독특한 풋내음이 뛰는 사슴의 몸짓처럼 팔짝팔짝 뛰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의식한 듯, 약간의 비중감이 Terroir 를 전해 준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난 이 와인이 좋았다. 뿌리가 명확하기에…

뉴질랜드에서 명절 차 귀국했던 귀빈 Ginny KIM 이 100% 소비뇽이 아닌 것 같다고 한 이유도 이해가 간다. 뉴질랜드의 강한 야생성을 가진 '소비뇽 블랑크' 와 같겠는가!

밝은 노란빛, 연한 개나리색이라고 할까? 황녹색 뉘앙스와 어울린 팔레트가 아름답다.

상큼한 첫 향은 소비뇽의 그 맛, 두번 째 그 향은 달콤한 꽃향~ 소비뇽~

어릴적 즐겨 부르던 "바밤바" 노래 그대로다. 구수한 팥 향이 초록 들판의 야생과 만났다.

그 들판은 이름모를 들꽃이 가득 핀 싱그러움을 담고 있는데...

2. Chateau St.Jean, Robert Young Vineyard - Chardonnay, 1997, Alexander Valley.

허동조 이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 와인은 "배달사고" 로 오늘 여기 나왔다는 것이다. 원래는 보통 샤르도네를 선보일 예정이었는데, 배송 직원이 실수하여, 보다 등급이 높은 이 리저브급 와인이 나왔던 것이다.

웬 횡수냐~ 하면서 맛 본 스테판.

먼저 그 은은한 향취에 놀라고 그 절제된 단아함에 놀라고 그 향의 깊이와 파워에 또 한번…

밝은 골드 칼라에 은은히 그러나 확실히 번지는 오렌지 껍질향과 야생꿀 그리고 우디…

가히 코의 오르가즘을 만족시키는 "nose" 였고, 입안에서 정리되는 깔끔함 역시 돋보였다. 캘리포니아 샤르도네의 준수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

미국와인이다, '샤또 세인트 진' 이라고 발음하자.

3. Hawk Crest, Cabernet-Sauvignon, 1997.

매 한 마리가 매섭게 노려 본다. 숫사슴을 사냥하려 하는가... 그러나 사실은 사슴과는 이복 형제. Stag's Leap 의 세컨드 와인 격.

이탈리아와 프랑스 쪽에서는 개똥지바퀴, 종달새 등이 레이블에 등장하는데 비하면, 가히 미국다운 레이블 디자인이다. 그 노려보는 눈은 초 강대국의 눈 일 수도 있고, "부시시"한 눈일수도 있다.

와인은 그 눈매처럼 날카롭지 않지만, 신선하고 상큼한 기본 캘리포니아 와인의 전형이다. 순수한 과일 향이 돋보인다.

그러나 잠시 파묻은 코를 내면, 동물적인 비릿함이 잔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사슴 한 마리가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4. Chateau Souverain, Cabernet-Sauvignon, 1997, Alexander Valley.

"Souverain" 은 불어로 군주, 지배자... 최고의, 지상 (至上)의...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적인 질서가 세계를 주름잡아도 포도주에 있어서는 프랑스와 불어가 기죽지 않는다. 그래서도 와인의 세계가 좋다. 절대강자가 없기에, 다양함을 즐길 수 있기에...

이 와인을 맛 본 사람은 샤또 이름이 말 뿐임은 아님을 단방에 알 수 있다. 진한 루비빛 색상에 담고 있는 과일 향의 신선한 향취와 맛갈스런 육질감이 뛰어난 그야말로 "최고"를 지향하고자 하는 와인이다. 어떤 면에서는 뒤에 나온 Markham 과 견주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주 빼어난 와인이다.

5. Markham Vineyard, Cabernet-Sauvignon, 1997, Napa Valley.

나라식품이 심혈을 기울여 수입한 마크햄 와인이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 최근에 소위 부티끄 와인의 반열에 들어간 와이너리이다. 허동조 이사의 설명대로 힘보다는 부드러움이 감도는 와인이다. 그러나 입안에 머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파워가 전해져 온다. 전체적인 농밀도와 비중감이 알코올과 잘 균형을 이루었던 느낌.

Markham 이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을 가지고 고객을 만나야 하는 책무에 어깨가 무거운듯...



III. 테이스팅을 마치며... : 캘리포니아 와인의 위상

미국에서 본격적인 포도주 생산의 출발점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멕시코를 통해 들어 온 프란치스코 선교사들은 본격적인 유럽식 포도재배의 전통을 심어 주었으며, 19세기 중반 고급 유럽 품종의 도입은 미국 포도주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 후 1919년부터 1933년 사이의 금주령 등 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오늘의 튼튼한 토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는 "문화적, 경제적 부가가치를 내재한 포도주"라는 의미에서의 미국 포도주 역사는, 20세기의 중반 무렵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특히 최근 30년 사이에 미국의 와인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품질이 뛰어난 캘리포니아 와인은 이미 구세계(유럽대륙)의 그랑 크뤼(Grand cru)들과 경쟁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캘리포니아 와인의 등장은 세계 와인산업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으며, 이후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소위 말하는 신세계 와인 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미국은 아직도 성장가능성이 무궁한 와인 생산 국가이다. 와인산업에서 캘리포니아 지역이 차지하는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지만 (미국 와인의 9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워싱턴, 오레곤, 뉴욕 등도 유명한 와인 산지이며, 이 광활한 대륙의 각기 다른 지형과 토양, 기후 만큼이나 다양한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다양한 와인들이 선을 보여 이미 가격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캘리포니아 와인을 대신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 중앙대 소믈리에과정 교수 손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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