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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Domain de la Romanée-Conti) 회사의 로마네 꽁띠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며 제일 비싼 세계 최고의 레드와인이다.

로마네 꽁띠는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통제 명칭(AOC)의 4.5에이커(1.81ha) 면적의 포도원으로, 빈약했던(poor vintage) 1990년에는 헥타르당 22헥토리터 밖에 생산을 못 하였고 이는 연간 약 400 케이스에 해당하는 양으로 전 세계 로마네 꽁띠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대단히 미미한 양인 것이다.

이보다 풍년(good year) 이었던 1999년에는 576케이스로 정확히 6,917 병을 생산하였고 그 당시 미국의 한 와인 전문 상점의 리스트에 1,300 불로 가격이 기재되어 있었으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빈티지에 따라서 출고가의 2배 내지 3배 혹은 그 이상을 호가하는 와인이다. 하지만 최고 상태의 로마네 꽁띠를 마실 기회를 갖는다면 매우 행복하고 황홀할 것이다.

이 와인은 삐노 느와 품종을 기본으로 양조한 와인으로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순수하고 가장 귀족적이고 그리고 가장 우아한 와인이다. 감미로운 음료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부르고뉴 와인의 감정에도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본느 로마네(Vosne- Romanée)는 뉘쎙조르쥬(Nuits St George)지역 바로 북쪽에 인접해 있으며 꼬뜨 드 뉘(Côte de nuits)의 6개 그랑 크뤼 지역 중에서 제일 훌륭한 지역이다.

이 본느 마을은 큰길에서 수백미터 떨어져 있는 조그마하고 조용한 동네이다. 그리고 동네의 중앙은 광장으로, 한 쪽에는 작은 교회가, 교회의 맞은 편 쪽에는 읍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 광장 건너쪽 동네의 서북쪽으로 나 있는 소로를 따라 걷다 보면 로마네 쌩 비방(Romanée-Saint Vivant) 포도원의 입구에서 갑자기 멈추게 되는데, 이 지역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쉽게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의 회색 철문을 발견할 것이다.

건물 왼쪽의 사무실 지하에는 주요 포도주 저장실이 있고, 길 건너 차고같이 보이는 이름 모를 건물 밑에는 바렐이나 혹은 카스크 통에서 숙성을 시키는1년차 와인 저장 창고가 있다.

이 1년차 포도주 저장 창고에서 반대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제2바렐의 저장 창고로 사용하기 위해서 근래에 장만한 쌩비방의 큰 저택에 도달하게 된다. 메독의 주요 포도원의 샤또, 혹은 본(Beaune)의 네고시앙들의 과도하게 치장된 양조장과 이 곳의 분위기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이 곳에는 네온의 불빛도 없으며 현란한 광고판도 없다. 예약을 하고 포도원을 방문하는 내방객은 친절히 영접하지만 불쑥 찾아오는 일반 관광객은 사양한다.

이 작고 복합적인 저택 이외에 포도원에는 사무실과 포도주 저장 창고와 재배지의 큰 재산을 이루는 기반이 있다. 본 로마네 지역에서 로마네 꽁띠에 가장 가까운 포도밭은 이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로마네 쌩 비방이다. 로마네 쌩 비방 포도원 위의 경사지는 조그마한 곳으로 로마네 꽁띠 자체 포도밭으로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언덕은 바른쪽으로 돌아 구부러져 동남쪽보다 동북쪽으로 지형이 가파르게 리쉬부르(Richebourg)쪽으로 흐른다. 왼쪽으로 라 그랑드 뤼 (La Grande Rue) 지역을 이루고 있는 좁은 포도나무 군락을 건너면 라 타쉬(La Tache) 경사면에 이르게 되고 다시 정상쪽으로 경사가 진다.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사(社)는 라 로마네 꽁띠(4.5 에이커, 수령 53년) 와 라 타쉬(15에이커, 수령51년 1,390케이스 ) 두 지역의 포도밭을 단독으로 전부 소유하고 있다.

다른 4개의 그랑 크뤼는 리쉬부르(Richebourg) (8.7 에이커, 수령 34년 1,231 케이스), 로마네 쌩 비방(Romanée-St Vivant) (13 에이커, 수령 31년,1,071 케이스), 그랑 데세조 (Grands échézeaux) (8.7 에이커, 수령 51년 839 케이스), 에세조(échézeaux) (11,5 에이커, 수령 36년, 1,220케이스) 이며 이 외에 이 회사는 1,6에이커의 몽라세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랑 크뤼 화이트 와인 몽라세를 년 300 케이스 생산한다. (1999년 생산량 기준, 2003년 수령기준)

18세기 후반의 아베 쿠르테페(Abbe Courtepe)와 그에게 전적으로 반향한 20세기의 카미레 로디에르(Camille Rodier) 두 사람의 단정적인 본느-로마네의 평이 "이 빌라지에는 평범한 와인은 없다."라고 하듯이 이 지역의 와인은 훌륭하며 현재 대단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동남쪽 혹은 동쪽의 면으로 배수가 잘 되는 경사, 본래 어린상암의 토양, 이회토 토대위에 철분이 많은 석회석, 조약돌과 암석, 해발 약 250-300 사이에 경작한 포도나무, 포도밭 경사의 정상에 방풍림을 식수하여 서쪽과 북쪽의 바람을 막아주는 것 등은 포도 재배자가 최고의 훌륭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경사 중간 부분의 그랑 끄뤼 지역은 대부분 전부가 좋은 지역이다.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는 이 노른자위 땅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 날 도멩은 약 1세기 전에 자끄 마리(Jacque Marie)와 뒤보 블로세(Duvault-Blochet) 부부가 함께 일구어낸 재배지이다. 그러나 재배지의 설립자들은 당연히 이 재배지의 더 오랜 역사를 알고 있다. 초창기 라 로마네 꽁띠 자체의 역사는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8세기 반 동안 이 재배지의 소유주는 9명이었다.

12세기에는 베르지라는 이름의 세력있는 지방 부호 가문에 종속되었고, 1232년에는 베르지 가문의 알렉스(Alex)재배지 내의 르 클루 드 본느(Le Cloux de Vosne) 라고 알려진 토지 일부를 쌩 비방의 대 수도원(Abbey of Saint Vivant) 근처의 시토(Citeaux)에 기증하였다. 대체로 거의 정확히 400년 후인 1631년 로마네 재배지는 무슈 크루넴부르그(Monsieur de Croonembourg)에게 매각되었다.

크루넴부르그 가문은 재배지의 이름을 로마네로 바꿀 것을 결정하고 로마 통치 시대의 어떤 명확한 증거가 있는지 혹은 포도 재배 과학이나 기술을 첫 번째로 버건디에 전래시킨 사람의 정확한 정보는 어떤 것인지를 참작하였다. 크루넴부르그 일가는 또한 그 이웃 라타쉬(La Tache)를 매입하여 그들의 소유 하에 두었다. 1760년 크루넴부르그 가의 필립(Philippe)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앙드레(Andre)는 그의 재배지를 매각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 결과 이미 버건디에서 훌륭한 포도원으로 인정받은 라 로마네(La Romanée) 의 소유주가 되기 위해서 큰 경합이 벌어졌다. 얼마 후에 단지 두 경쟁자,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과 왕의 먼 혈족인 부르봉가의 루이 프랑스와 꽁띠왕자(The prince de Conti) 만이 링에 남았다.

왕이 확실히 최후의 조정자 이긴 하지만 그 당시 왕은 퐁파두르 부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했고, 퐁파두르 부인이 왕의 미움도 받고 있을 때여서 아마 그녀가 왕에게 평소보다도 적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 이러한 결과는 퐁파두르 부인의 유감에도 불구하고 왕의 대리인 프랑스와 졸리의 덕으로 꽁띠 왕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포도원의 가격은 천문학적인 금화(8,000 리브르(livres)) 였으며 여기에 세금은 쌩 비방의 대 수도원장에게 계속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그 후 왕자는 La Romanée에 그의 이름을 덧붙여 Romanée-Conti라 명하였다. 이 일로 퐁파두르 부인은 버건디를 포기하고 샴페인의 즐거움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꽁띠는 그의 재배지에서 생산한 모든 와인을 그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서 따로 보관하였다. 불란서 혁명동안 꽁띠는 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포도원은 정부로부터 몰수당하여 1793년 국유재산으로 매각 처분되었다.

구입자는 파리인인 리콜라 드페르 드 라 누에르(Nicolas Defer de la Nouerre)로 파리 상류사회에 알려진 인사였다. 그 후 1819년 소유권은 다시 이전되었다. 새로운 소유주는 한때 나폴레옹 은행의 은행가였던 줄리앙 우브라(Julien-Ouvrard)로 그 당시 버건디의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의 소유주이다.

포도원의 가격은 한 번 더 대단히 오른 78,000프랑에 거래되었으며 이 금액을 헥타르당 환산하면 45,000 프랑으로 그 시대에 샹베르땡(Chambertin) 라 타쉬, 리쉬부르의 가격보다 3배 이상의 값이었다고 하니 다시금 로마네 꽁띠의 진귀함, 고귀함, 황홀함을 되새기게 된다.

1809년 로마네 꽁띠의 소유권이 최후로 변경되었다. 새로운 구입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뒤보 블로세로 프랑스 혁명 이래로 버건디의 가장 훌륭한 포도원의 소유주였다. 그는 리쉬부르와 에세조 지역에 소작지나 포도원을 취득하여 대부분 현재의 재배지를 만들었으며 또한 그의 재배지는 볼네(Volnay)에 도멩 드 라 푸스도르(Domaine de la Poussedor)를 포함하여 꼬뜨 도로(Côte d`Or) 전 지역으로 확장하였다.

La Tâche란 단어는 프랑스 사전에 의하면 단지 일(Work) 이란 뜻보다는 일에 따른 보수란 뜻을 의미한다. 라 타쉬는 이 특정한 포도원의 힘든 일을 시간제나 일용직보다는 도급제로 위탁하여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한다.

18세기 한 기록에 의하면 라 타쉬 또한 크르넴부르그 가문의 소유였으며 프랑스 혁명 전 한때 라 타쉬는 샤피뜨르 드 뉘(Chapitre de Nuits)의 소유였다. 한때 라 로마네 꽁띠는 시장 외에서 큐(Queue (주:400리터)) 높은 가격인1,200 프랑에 판매되었다. 보르도의 토노(tonneaux)1와 같은 버건디 측정 수치나 통메장 제품은 실지로 없다. 그러나 피에스(Piece) 228리터의 오크통 2개가 "큐" 와 대등한 양이다.

1791년 M 마레이(Marey) 가문이 라 타쉬를 매입하였으며 또한 로마네 쌩 비방(Romanée Saint Vivant)의 일부를 소유하였다. 이 포도원은 1933년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가 취득하였다. 로마네 쌩 비방은 Abbey of Saint Vivant에서 이름을 작명하였다. 중세기 시대의 소유주 역시 현재의 로마네 꽁띠이다.

쌩 비방 대 수도원이 13세기 중엽에 기부금의 일부로 부분구입하여 소유주가 되었다. 그리고 꼬뜨 드 뉘(Cote de Nuits) 에서는 규모가 큰 농원의 소유주이고 또한 포도나무 뿌리진디병(Phylloxera) 의 확산 전에 오뜨 꼬뜨(Hautes Cotes)의 넓은 지역에 포도나무를 많이 식수하였다.

프랑스 혁명때에는 버건디 지역 모든 교회의 농원 소유주들이 포도 농원을 싸게 팔아 치웠는데 로마네 쌩 비방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포도원의 일부를 뉴지방의 마레 몽지(Marey-Monge)에게 91,000 프랑에 팔았다. 1966년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DRC)는 포도원의 경영권을 인계받았고 그 때 이래로 이 농원 소유분의 약 반을 취득하였다. 종국에는 1988년 9월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DRC)는 로마네 쌩 비방 전부(13에이커)를 취득하였다.

오늘 날 가문의 많은 가족들을 대표하여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의 공동 관리자로 있는 오베르 빌레느(Aubert de Villaine)는 자끄 마리와 뒤보 블로세 두 부부의 현손(5대손) 이다.

빌레느는 1942년 7월 뒤보 블로세의 또 다른 후손으로부터 소유지의 반을 구입한 앙리 르르와(Henri Loroy) 그리고 그의 아버지 앙리(Henri) 의 곁에서 1964년부터 재배지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빌레느는 옥세 뒤레스(Auxey Duresses) 지역에 있는 르르와 회사에서 미리 실습을 하였다. 그는 1973년 부시장으로 있었던 브즈롱(Bouzeron) 시에 그 자신의 소유지를 취득하고 그 때 이후로 부르고뉴 알리고떼(Bourgogne Aligoté)에서 분리된 브즈롱 통제 명칭(AOC)의 신설을 위해 배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그의 아버지 사망 후 수년동안 오베르 빌레느의 상대인은 라 루 비즈 르르와(Lalou Biz Leroy) 였다. 두 사람 중 한쪽 빌레느는 학자다운 면이 있고 다른 쪽 라 루 비즈는 현란한 면이 이들의 현저한 차이였다.

1992년초에 중역 회의실의 반란이 있었다. 그리고 비즈 여사는 공동 관리자의 직책에서 해임당했다. 라 루 비즈 여사의 이임후 라 루의 여동생 폴린 (Pauline)의 큰 아들 샤를 로쉬(Charles Roch)를 공동 관리인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한달 후 비참하게 샤를은 교통 사고로 사망하였다.

그의 동생 앙리(Henri)가 사망한 형의 자리를 이어 받았는데 그의 금년 나이는 39세이며 뉘 생 조르쥬(Nuits-Saint-Georges) 재배지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 재배지에는 핵타르당 1명 꼴의 총 25명의 상설 고용인이 있다. 매년 추수때 타 인력을 빌리지 않고 이 상설고용인을 포도 수확팀(60명)에 보충하여 8일 내에 로마네 꽁띠의 추수를 끝마친다. 수확량은 실지 부족하지만 지금 그 지역에서는 과잉 생산으로 평이 나 있다.

1980년에는 수확량이 헥타르당 40헥토리터에 도달하였으며 이 빈티지 외에도 1959, 1970, 1972,1 973년에도 이와 비슷한 수확량을 보였다. 그러나 품질이 전연 뛰어나지 못했으며 평균 수확량은 헥타르당 30.8 헥토리터에 불과 하였다. 오늘 날 다른 곳에서도 거의 반에 가까운 수확이 표준이다. 풍년인 1989년 조차도 재배지의 수확량은 헥타르당 32헥토리터에 불과하며 1990년에는 단지 헥타르당 30헥토리터였다.

로마네 꽁띠 재배지는 포도 수확을 늦게 하는 것이 자랑이다. 이는 다른 재배자들이 수확을 시작한 후 적어도 1주일 때로는 2주일의 늦은 수확기간이다. 1978년 도멩 드 라 로마네 꽁띠는 버건디의 모든 재배지가 추수를 끝낸 뒤인 10월 16일 까지도 추수를 시작도 하지 않은 좋은 실례가 있다.

포도 송이가 양조장 제경실에 도착 즉시 분류된다. 포도 송이가 컨베이어 벨트에 부어지면 규칙적이고 주도 면밀하게 썩은 송이나 덜 익은 포도를 골라 내기 위해 자세히 점검한다. 이 기술은 1977년 처음 버건디에 소개되어 그 이래 지금까지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지만 단지 버건디 지방에서만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훌륭한 포도만이 훌륭한 와인을 연출할 수 있다."는 오베르 빌레느의 말이다.

다음은 포도송이, 줄기등 모든 것이 발효통으로 보내져 발효통에서 과즙은 껍질, 씨와 함께 20일동안 때로는 1달 가까이 발효한다. 발효의 온도는 예전에는 섭씨 30-32 사이의 온도를 적정 온도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섭씨 29-30사이의 온도가 표준이다.

와인은 병입 전 16개월에서 20개월 동안 쌩 로멩(Saint-Romain)의 프랑스와 프레르(F rancois Fréres) 의 새 오크에서 전적으로 숙성을 하였지만 점점 증가하여 오늘날은 보쥬(Vosges) 오크통만을 사용한다. 오크통의 숙성도 점점 길어진다.

1990 빈티지 와인이 1992년 4월에 병입 되었다. 이러한 정성을 다하는 분류의 장점은 와인을 가능한 오래도록 재강(lees)과 함께 유지시키는 것이다.

찌꺼기 분리는 1979, 1980, 1981년 같은 해에는 여러 번 실시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단 한번 실시한다. 와인을 맑게 순화시키는 청징 작용은 항상 시행하지는 않으나 1982년을 제외하고 1985년까지 배럴당(228리터) 계란 흰자위 4개분을 사용하여 청징하였다.

1982년의 병입은 사전 여과 없이 카스크 혹은 카스크별로 구식 전용의 무거운 병에 직접 병입하였다. 오늘 날에는 전체 Cuvee(탱크 혹은 나무통)의 와인을 사전 혼합 한 후에 언제라도 발생할지 모를 병 속 변화를 제거하기 위해 병입 전에 5내지 6카스크통의 와인을 동시에 배합한다.

레드 와인의 두 에세죠(Échézeaux) 중에서 특히 그랑 데세죠(Grands Échézeaux)는 더 비싸고 강한(Burly) 와인이다. 강한 와인이란 숙성이 안되었다던가 향이 짙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두 와인은 가끔 고귀함이 모자라며 때로는 포도 나무 줄기의 탄닌 맛이 강하다는 뜻이다.

로마네 쌩 비방(Romanée Saint Vivant)은 뮤지니(Musigny) 보다 더 가볍고 더 순하며 더 우아하고 더 여성스럽다.

토양에 이 회토와 점토 비율이 많은 리쉬브르(Richebourg)는 고귀하고 복합적이고 밀도 있는 풀바디 와인으로 오래 보관이 가능한 훌륭한(big) 와인이나 우아함이 좀 부족하다.

라 타쉬(La Tâche)는 최고 품질(Classic)의 고귀하고 품격 있는 와인으로 무똥 롯드쉴드(Mouton-Rothshild)의 최고 품질(Classic) 수준과 같다고 한다면 로마네 꽁띠(Romanée-Conti)는 라피트(Lafite) 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2

로마네 꽁띠는 훌륭한 감칠맛 조화로운 균형 응집된 복합적 향, 고귀한 품질, 매력적으로 세련된 우아한 와인이다.

여기에 총평으로 한마디 더....

라 타쉬의 부드러운 "Velvet"보다 로마네 꽁띠의 매끄러운 "Silk"의 식감이 더 황홀하다.

[_이석기_]


1. 1tonneaux=900L, 225Lx4=1200Btl

2. 까다롭고 어려운 버건디 와인보다 쉽고 친숙한 보르도 와인과의 대조로 라타쉬와 로마네 꽁띠의 품질 비교를 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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