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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세계 명품들은 그 이름만으로 품질을 말한다. 좋은 와인들도 그 이름으로 품질을 말한다. 프랑스 보르도의 일등급 와인 중 샤또 오브리옹1 도 그렇고 그 이름을 사용하는 샤또 라미씨옹 오브리옹, 라투르 오브리옹 그리고 라빌 오브리옹 모두 그 이름에서 이미 품질과 역사 그리고 이를 일구어낸 소유주들의 와인 열정을 대변한다. 오브리옹의 이름으로 하나된 이 와인들의 역사 속에서 이들 와인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자.

샤또 라미씨옹 오브리옹(Château La Mission Haut-Brion)

1855년 와인 등급 분류와 그 이전의 비공식 와인등급 분류가 철저히 시가(時價)를 기준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최근에도 와인의 등급 구분이 실 거래가와 많이 틀릴 수 없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어떠한 기준을 도입하건 간에 일등급과 이등급 중간에 위치하게 되는 와인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 중간 지점에 위치한 와인이 샤또 라미씨옹 오브리옹이다.

그러나 이 와인은 절대 "중간"만가는 와인은 아니다. 라미씨옹의 와인 가격은 항상 2등급의 상품 가격의 1.5배이고 일등급 가격의 4분의 3가격이다. 만약 와인 애호가들 조차 와인을 가격으로 구분한다면 라미씨옹 오브리옹은 어떤 카테고리로 라미씨옹을 분류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단언컨데 라미씨옹 오브리옹은 가격만으만 평가될 와인은 아니다.

유명한 샤또 오브리옹(Haut- Brion) 같이 라미씨옹(La Mission)의 포도원 또한 16세기 전반부에 탄생하였다. 1540년 라투르의 영주(Lord of La Tour)인 루스텡 루이(Louis de Roustaing)는 보르도의 와인 상인인 레스토냑 아르노(Arnaut de Lestonnac)2 에게 샤또 주변의 땅을 매각하였다.

레스토냑 아르노는 오브리옹이 위치한 그라브(Graves)가 포도재배에 탁월한 잠재 능력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1540년까지 꾸준히 토지를 매입해 포도 농원을 조성하는 등 오직 와인에만 생애를 바친 사람이다.

그의 와인 열정은 아르노 아들 피에레 (Pierre)에게도 전수되었으며 1607년에는 그 경영권을 비롯한 와인에 대한 열정이 아르노의 손녀이자 보르도 의회 의장이었던 구르기 마르 앙트와네(Mare-Antoine de Gourgues)의 부인인 레스토냑 오리브 여사(Dame Olive de Lestonnac)에게까지 전수된다.

그녀의 유언으로 라미씨옹의 포도농원을 보르도 성직자 회의 의장이었던 장 드 폰트네이(Jean de Fonteneil) 수사에게 주어지며, 1682년 폰트네이의 상속자 중 몽시노르 브르몽 루이(Monsignor Louis de Bourmont)가 포도 농장을 선교회의 사제집회 의장인 시몽(R.P Simon)에게 넘겨 준다.

성 라자르회로 알려진 라미씨옹의 수도자 형제단은 1634년 바울 성 빈센트에 의해 형성되었다. 파리에 설립된 성 라자르 대학의 분회인 보르도 라자르 분회는 산림을 개간하여 포도 농원을 확장하였고 라미씨옹의 노트르담 성당(Notre Dame de La Mission)으로 조그마한 예배당을 건축하여 1698년 8월 26일 봉헌하였다.

이 성당의 설립으로 이전에는 그저 소유주에 따라 달리 불리던 이 포도원과 이 곳의 와인 이름이 라미씨옹 오브리옹(La Mission Haut-Brion)으로 불리게 된다.

라미씨옹의 샤또는 성당이 건축된 이후 1713년에 지어졌으며 18세기에 그라브(Graves) 지역의 2등급으로 손색이 없는 와인의 생산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라미씨옹은 보르도 와인 시장에서 매독의 일등급을 제외하고 그 어떤 와인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 되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정부가 라미씨옹을 몰수하였으나 1792년 마르시알 빅토르 바랑(Martial Victor Vaillant)이 라미씨옹을 매입하여 다시 개인의 소유로 돌아온다. 이 당시 라미씨옹은 약 15헥타르의 포도원이였으며 연간 생산량은 약25 톤노였다. 1845년 프랭크의 기록에 의하면 라미씨옹은 5등급이었으나 1860 대후반에 와서는 메독의 2등급과 같은 가격에 매매되었다.

샤또 라미씨옹 오브리옹의 현대 역사는 월트너家(Woltner)와 더불어 시작한다. 이는 1919년 포도농원을 구입한 프레드릭 월트너(Otto Frederic Woltner)와 그의 아들 앙리 월트너(Henri Woltner)를 기점으로 가장 큰 발전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보르도 대학에서 포도주 양조를 공부하고 온 앙리 월트너와 더불어 프레드릭은 라미씨옹에 기술시대를 도입하였다. 그는 보르도에서 제일 먼저 발효통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사각철 발효통을 설치하였으며 또한 라빌 오브리옹의 화이트 와인의 품질을 개량하였다.

또한 그는 저온 발효(Fermentation Froide)를 주창한 열렬한 옹호자였다. 저온 발효란 레드 와인에서 30ºC 이상의 고온 발효와 대조되는 용어로 26ºC에서 28ºC 미만에서 발효가 이루어지는 방법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상대적으로 고온 발효를 하면 와인 색의 깊이를 더할 수 있지만, 35ºC 이상이 되면 효모가 그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와인의 휘발성 향과 맛에 손실을 가져온다. 게다가 본래 금속 발효통은 나무 발효통과 달리 표면에 틈이 없어 완벽한 청결을 유지하기 쉽고 세균이 번식할 여지가 없으며 또한 와인의 산도에 의한 부식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점이 있다.

월트너가 제창한 이 저온 발효 방법은 온도를 최대한 낮춤으로 와인의 향과 맛 손실의 감소와 향 생성 화합물을 유지시키는 효과를 가지며 오늘날에도 최상의 맛과 향을 표현하려는 와인 양조자들이 도입하고 있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프레드릭 그리고 그의 아들 앙리에 이르기까지 월트너家는 라미씨옹 오브리옹 뿐 아니라 샤또 라투르 오브리옹에도 그들의 와인 열정을 쏟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오브리옹 家"의 또 다른 역사적 흐름 즉, 샤또 라투르 오브리옹의 역사와 만나면서 이루어진다.

샤또 라투르 오브리옹(Château La Tour Haut - Brion)

중세기에 샤또 라투르 오브리옹(Château La Tour Haut - Brion)은 라투르 로스텡(La Tour Rostaing) 혹은 라투르데스기방(La Tour d`Esquiveng) 이라고 부르는 귀족의 영지 일부였다고 사료된다. 로스텡은 중세기 말기 제일 먼저 고품질의 포도를 재배한 가문이었다. 1540년 라투르의 영주였던 루이 로스텡(Louis de Rostaing)은 오늘날의 라미씨옹 오브리옹 일부 포도 농원이었던 아래드제이(Arredjehuys) 포도농원을 소유하였다.

19세기 라투르의 소유주인 카이루(Cayrou) 형제들은 라투르(La Tour) 이름에 오브리옹(Haut-Brion) 이름을 붙여 La Tour Haut-Brion이라고 하였다. 1850년 유명한 저자 Cocks and Feret는 라투르 오브리옹의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추가하여 이 농원의 생산량은 25바렐(1바렐225L)이라고 진술하였다.

1858년부터 1884년까지 라투르 오브리옹의 소유주였던 루이우작(Louis Uzac)은 재배지를 많이 개선하였다. 그는 주택과 고용인의 숙소 등을 다시 건축하였고 조그마한 탑을 복원하였다.(La Tour). 1890년 빅토르 쿠스토(Victor Cousteau)는 라투르 오브리옹을, 1903년에는 라미씨옹 오브리옹을 매입하였다. 그 당시 기념으로 미국에서 수입하여 식수한 세쿼이아(Sequoia) 나무는 정원에 짖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아직도 라투르 오브리옹을 찾는 사람들을 평화롭게 편안하게 맞이하고 있다.

샤또 라미씨옹 오브리옹은 빅토르 쿠스토가 1919년에 프레드릭 월트너(Frederic Woltner)에게 팔았지만, 라투르 오브리옹은 그가 죽은 후에야 월트너家에게 넘어간다. 라투르 오브리옹의 소유권이 어떻게 이전이 되었느냐에 대한 설은 다양하지만, 그 중 가장 가슴 따뜻한 이야기는 쿠스토의 미망인과 월트너 여사와의 우정에 관한 것이다.

1923년 쿠스토가 사망 이후 그의 미망인 마리는 당시 사회의 숨막힐 듯한 억압을 그녀의 이웃 월트너 여사와의 우정을 통해서 잊을 수 있었고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유언을 통해 1935년 사또 라투를 오브리옹을 월트너 여사에게 남겼다고 한다.

라미씨옹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는데 보필을 했으며, 아름다운 우정의 결과로 라투르 오브리옹 마저 받은 앙리 월트너는 라미씨옹에서 포도나무와 함께 전생애를 보내고 50주년이 되는 전날밤인 1974년 10월 사망하였다. 그 후 1983년말 라미씨옹과 라투르 오브리옹은 말하자면 길을 건너 큰집의 손에 넘어갔다. 구입자는 샤또 오브리옹(Château Haut-Brion)으로 매입가격은 7천5백만 불에 82년과 83년도의 와인 총수익 2천만불을 더한 금액이다.

샤또 라빌 오브리옹(Château Laville Haut - Brion)

1611년 제일 처음 이 특이한 화이트 와인의 농원을 매입한 소유주 라빌 마리(Marie de Laville)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샤또 라빌 오브리옹은 다른 샤또들이 그러하듯이 수세기 동안 가문 소유 포도 농원이었다.

역사와 함께 라빌의 소유주도 바뀌며, 여러 소유주의 관리를 통해 현재의 와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1825년부터 1912년까지 이 농원을 관리한 피에레 데이비드 부스카세(Pirre David Bouscasse), 그리고 그에게서 다시 이 농원을 매입한 네오폴드 비본(Leopold Bibonne). 그리고 1983년 다른 오브리옹家의 샤또들이 월트너 家에서 디롱의 소유로 넘어갈 때 샤또 라빌 오브리옹도 도메인 크레렝스 디롱(Domain Clarence Dillon)으로 통합되게 된다.

라빌 오브리옹은 부르고뉴 최고의 그랑크뤼 화이트 와인과 어깨를 견줄만한 실지로 최정상 품질의 그라브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라빌의 농원은 1920년초까지 라투르 오브리옹 농원의 일부분이었다. 토양의 자갈은 한층 적고 반면 점토는 한층 많기 때문에 품질 좋은 적포도 생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후 1923년부터는 적포도 대신 청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화이트 와인이 생산된 1928년에는 라미씨옹 오브리옹의 레이블을 부착하였으나 1931년에 이를 바꿔 샤또 라빌3 로 표기했었다. 이후 다시 한번 레이블이 바뀌어 지금의 Château Laville Haut - Brion 레이블이 되었다. 오늘날 연 생산량은 약 17토노(1Tonneaux =100Box)로 60%의 쇼비뇽 브랑과 40% 의 세미용을 배합하여 라미씨옹4 에서 양조 입병을 하고 있다.

라미씨옹 오브리옹과 라투르 오브리옹의 와인들

라미씨옹 와인은 참으로 특이한 와인이다. 라미씨옹은 이웃의 오브리옹 와인과는 전혀 다른 와인이다. 월트너나 드와브랭 시절에는 수확을 오브리옹보다 현저히 늦게 하였다.

라미씨옹의 와인은 껍질과 함께 특별히 장기간 침용을 시키고 온도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효를 몇 주일씩 오래 끌게 하면 감산 발효까지 동시에 잘 이루어진다. 이 와인은 숙성이 안되었을 때는 색이 대단히 진하고 대단히 타닉한 떫은 와인으로 흡사 샤또 라투르(Château Latour) 와인 같다.

라미씨옹의 농원은 보르도에서 아르카콩(Arcachon)으로 가는 기차 철로 길 양쪽에 위치하고 있다. 즉 따랑스(Talence)와 페쌱(Pessac) 양 지역에 걸쳐 위치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농장은 따랑스 지역에 있다. 부분적으로 서쪽의 오브리옹 농원과 인접하고 있으며 약 21 헥타르의 농원에 60% 까베르네 쇼비뇽, 5% 까베르네 프랑 35% 메를로를 경작하고 있다.

라미씨옹의 농원에 맞다아 있는 라투르 오브리옹 농원(5헥타르)의 경작 비율은 라미씨옹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비슷하다.

지난 20년 동안 레드 와인의 평균생산량은 약 65토노(Tonneaux)며, 이중 50~70 % 의 와인을 라미씨옹의 레이블로 입병을 하고 잔여분은 라투르 오브리옹(Cru Classe)5 레이블로 생산하고 있다.

샤또 라투르 오브리옹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라미씨옹 오브리옹에서 독립하게 되며6 본래의 권리를 되찾았다.

라투르 오브리옹 와인은 샤또 오브리옹을 닮았다는 면에서는 라미씨옹의 와인과는 현격한 차이를 나타낸다. 라투르 오브리옹은 오브리옹과 같은 타입의 부케나 좀더 스모키한 향을 지녔으며 복합적인 향은 오브리옹보다 떨어지나 우아함에서는 오브리옹과 비슷하다.

라미씨옹과 오브리옹의 포도나무는 사이 좋게 나란히 자라고 있지만 서로 닮지 않았다. 이 두 와인을 비교하면 라미씨옹은 힘을 느끼는 남성스러운 와인이며 오브리옹은 섬세함을 느끼는 여성스러운 와인이다.

[_이석기_]


1. 샤또 오브리옹에 대한 글은 Greatwines List 첫번째 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2. 레스토냑 아르노는 오브리옹의 소유주인 퐁탁 장(Jean de Pontac)의 누이 퐁탁 메리(Marie de Pontac)와 결혼하였다.

3. 레이블의 내용 : Chateau Laville , Terroir du Haut Haut - Brion, Premier Cru de Graves.

4. 이는 라빌 오브리옹은 샤또 자체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5. 라투르 오브리옹은 자체 샤또는 있으나 라미씨옹에서 양조와 입병을 한다.

6. 라투르 오브리옹은 이때까지 라미씨옹 오브리옹의 제2의 와인(second labe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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