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더 친근해지는
피에몬테 와인 [2]
글, 사진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앞서 소개한[알면 더 친근해지는 피에몬테 와인 1편]에서는 피에몬테 남부의 와인산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북쪽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이곳 역시 랑게처럼 피에몬테 레드 삼총사가 다시 주인공이 되는데, 특히 네비올로는 고집스러울 만큼 북피에몬테 곳곳에서 재배된다. DOCG, DOC 등급에 올라있는 와인은 가티나라와 겜메 ,보카, 브라마테라, 파라, 레손나, 시자노,카레마 등으로, 모두 네비올로 100%로 빚거나 또는 블렌딩할 경우 토착품종만 30% 이하로 허용해 네비올로의 순수성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랑게에서 동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다섯 종류인데 비해 북피에몬테는 여덟 종류로, 네비올로에 대한 집착과 네비올로의 장점을 찾아내 최대한 돋보이도록 하려는 북쪽 포도농가의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다 보면 생산자들이 바롤로, 바르바레스코를 남쪽의 가티나라, 겜메 와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데, 이들의 이러한 자부심은 과연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그들은 그 첫 번째 이유로 토양을 든다. 50만 년 전 알프스의 거대한 빙하가 지금의 북피에몬테 평원으로 이동하면서 알프스의 흙도 함께 실어 와 둔덕을 만들었다. 이처럼 얼음에 의한 퇴적작용이 4번에 걸쳐 반복되면서 오늘날 해발 500-600m의 언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북쪽의 포도밭은'낮은 알프스산’이라 할 수 있는데 화강암, 반암, 석영 등 미네랄 성분이 강하고 산도가 매우 높으며 석회석이 희박하다. 이러한 토양에서는 네비올로, 바르베라, 베스폴리나, 우바라라, 크로아티나, 네레토 등 적포도 품종과 북쪽의 유일한 토착 청포도 품종인 에르바루체가를 재배한다.
바롤로 와인은 1800년대 사보이 왕국의 카를로 알베르토 왕이 그 맛에 반해 적극적으로 유럽의 왕실에 알리면서 유명해졌다. 반면 이곳의 가티나라와 겜메 와인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유럽왕실에 잘 알려져 있었으며 16세기 스페인의 군주 카를로 5세에게 가티나라 와인을 헌주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북피에몬테에서는 그 흔한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카베르네 쇼비뇽 같은 국제품종을 전혀 재배되지 않고 오직 토착품종만 재배한다. 이곳에서만 재배하는 청포도 품종으로 에르바루체(erbaluce)가 있는데 재배지역은 한정되어 있지만 모든 양조법을 다 소화할 수 있어 드라이한 와인은 물론 스푸만테와 파시토 와인도 만들 수 있다.
파시토는 작업과정이 길고 생산량도 적은 매우 귀한 디저트 와인이다. 9월 중순에 수확한 포도를 선별하여 건조실로 옮기고 난 후 최소 5개월 동안 건조시키는데, 3월 말경이면 포도송이의 크기가 원래의 3분의 1로 줄어든다(즉 수분이 증발하여 당분이 농축된다). 그리고 이것을 압착해서 발효시킨 후 이 농축된 포도즙를 큰 보테(나무통)에 옮겨 최소 4년 이상 숙성시킨다. 와인이 지닌 적절한 산도는 파시토가 너무 달지 않다는 느낌을 주며 말린 과일향과 열대과일, 건과류 향이 풍부한데, 크림이나 잼을 넣지 않은 담백한 과자와 잘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와인은, 생산되는 마을의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카레마DOC와인이다. 북피에몬테 끝자락에는 발레다오스타 주의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전히 겪는 카레마(Carema) 마을이 있다. 오래 전부터 이 마을은 여기서 생산하는 와인의 맛과 향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와인의 주원료인 네비올로를 재배하는 방식 때문에 더 유명하다.
포도재배자들은 농작물 경작이 거의 불가능한 돌산에 흙을 날라 쌓은 다음,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다진 후 돌맹이를 흙 앞쪽에 쌓는다. 이것을 테라체terrazze라고 부르는데, 카레마 마을에서는 특이하게 피룬Pilon이라 불리는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격자모양으로 나무가지를 얼기설기 엮은 다음 네비올로를 키운다. 이 피룬 기둥은 이곳에 흔한 돌맹이와 석회가루를 섞어 만든 것으로 낮 동안 햇빛의 열기를 저장했다가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밤에 열을 배출함으로써 네비올로가 얼지 않도록 보호한다.
이곳은 겨울이 길고 포도의 성장 주기에서 중요한 여름이 짧다. 하지만 다 익은 포도가 완숙하는 초가을 무렵, 랑게나 몽페라토에서는 흔한 안개가 이곳에서는 잘 생기지 않는다. 안개를 뜻하는'네비아’에서 네비올로의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네비올로는 안개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껍질이 부드럽다’는 뜻의'피쿠테너’라고 불린다. 여기서 가까운 가티나라나 겜메 마을에서 역시, 안개와는 거리가 먼'한 뼘’이라 뜻의'스판나’라 불리며'발텔리나 수페리오’로 알려진 롬바르디아 네비올로 와인 또한'와인에 적절한 포도’라는 뜻의'키아벤나스카’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