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인산업의 차세대 주자
오레곤 & 워싱턴
최근 오레곤 주의 와인산업은 외부 자원의 유입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다. 일례로, 얼마 전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유명한 와인생산자이자 네고시앙인'루이 자도Louis Jadot’는 32 에이커 규모의 Resonance Vineyard를 사들이면서 역사상 최초의 해외 확장을 감행했다. 루이 자도의 피에르 앙리 가제 대표는 “오레곤에서 생산된 와인을 맛보고 그 품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언급하며, 42년 간 루이 자도에서 양조를 맡아온 자크 라디에르를 이곳의 양조 책임자로 지명했다. 루이 자도가 생산하는 오레곤산 피노 누아의 첫 빈티지는 2013년 빈티지가 될 예정이다.
재미있는 것은, 루이 자도가 매입한 Resonance Vineyard와 이웃해 있는 460 에이커 규모의 Gran Moraine 포도원 역시 최근 외부 자본에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캘리포니아 와인업계의 큰손'잭슨 패밀리 와인Jackson Family Wines’이 이 포도원을 사들인 것은 지난 10월, 올해 3월에 윌라메트 밸리에 위치한 포도원 세 군데를 인수한 데 이어 네 번째다. 잭슨 패밀리 와인의 휴 레이머스 부사장은 “오레곤 윌라메트 밸리에서 세계적인 품질의 피노 누아 와인을 생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이를 위해 장인 정신으로 와인을 생산해 온 와이너리를 인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외부 자본의 유입이 목격되는 것은 비단 오레곤 주뿐만이 아니다. 2012년, 세계 최대 와인기업 중 하나인 E. & J. Gallo는 워싱턴 주에 위치한 두 개 와이너리(Columbia Winery와 Covey Run Wine)를 인수하면서 화제를 몰고 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갤로가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 구축에 대해 열의를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워싱턴 주는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바로 뒤를 잇는 프리미엄 와인 산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1일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진행된 ‘오레곤 & 워싱턴 와인세미나’는, 이렇듯 프리미엄 와인산지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두 지역 와인들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오레곤의 포도원은 햇빛을 쬐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고(위도가 높기 때문에) 밤의 서늘한 기온은 포도가 신선한 산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와인의 풍미가 균형을 이루고 포도의 순수한 풍미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데, 와인생산자들은 인위적인 간섭을 최소화하여 이러한 특징을 유지하고자 한다. 오레곤에는 공식적으로 16개의 와인산지(AVA, American Viticultural Area)가 있으며 72여 종의 다양한 포도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특히 피노 누아는 오레곤을 세계 와인 지도에 올려놓은 장본인으로 이 지역 와인양조의 핵심이다. 이곳의 피노 누아 와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관능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늘한 한계 기후에서 생산되는 피노 누아 와인의 특징인 우아한 면모를 드러낸다.
‘오레곤 & 워싱턴 와인세미나’에 등장한 세 개의 오레곤 지역 피노 누아는 공통적으로 잘 이룬 균형, 적절한 산미, 그리고 풍부한 향을 갖추었는데, ‘Sokol Blosser’(소콜 블로서, 위 사진 왼쪽) 피노 누아의 경우 도드라지는 베리류 향과 여기에 복합성을 더하는 허브와 향신료 풍미가 무척 매력적이다. 밝고 경쾌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투명한 타닌 덕분에 목넘김이 부드러우며 오랫동안 향이 지속된다. 한편 ‘Adelsheim’(아델스하임, 사진 중앙)의 피노 누아는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있지만 무겁지 않고, 매끈하고 우아한 질감, 어두운 색을 띤 과일의 풍미와 옅은 민트 향이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은은히 풍기는 감초 향이 인상적이다. ‘Ponzi Vineyards’(폰지, 사진 오른쪽)의 피노 누아는 베리류의 향에 담배나 건초의 향이 더해져 흥미로운데, 마치 앞의 두 와인을 합쳐놓은 듯 복합적이고 화사한 향을 지닌다. 동시에 강건하고 유연한 질감과 잇몸 사이를 화끈거리게 하는 알코올 농도를 느낄 수 있으며, 점차 잼처럼 진득한 과일 풍미를 드러낸다.
한편 워싱턴 주는 미국 최고의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산지 중 하나로 평가 받는데, 이곳의 와인은 힘찬 구조감과 깊은 베리 향이 특징이다. 워싱턴 주 대부분의 포도재배지는, 캐스케이드 산맥이 비의 방패 역할을 하는 메마르고 거의 사막과 같은 동부에서 재배되는데, 이곳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현저하여 포도의 산도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Milbrandt Vineyards’(밀브란트, 사진 왼쪽)의 “The Estates”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세 가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중에서 과일 풍미가 가장 도드라진다. 어둡고 짙은 색의 과일을 연상시키는 풍미에 약간 짭조름한 맛이 더해져 흥미로우며, 강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타닌 덕분에 마시기에 편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일 잼의 풍미도 드러난다. 'Columbia Crest’(콜럼비아 크레스트, 사진 중앙)의 “H3” 카베르네 소비뇽은 과일 풍미보다는 민트나 삼나무의 향이 도드라지며 여기에 건초 향이 은은하게 더해진다. 모난 데 없이 온화한 인상을 주는 와인이다. 마지막으로 ‘L’Ecole No 41’(레콜 41, 사진 오른쪽) 카베르네 소비뇽은 코를 갖다대자 마자 옅은 간장 냄새가 풍겨 호기심을 자극하며 야채나 허브의 풍미가 지배적이다. 신선하고 부드럽지만 강력한 타닌 때문에 치즈나 육류 요리 같은 안주를 곁들일 것을 권한다.